그리스도의 승천: 방치되어 있던 교리의 재발견
종이책 발행 2022년 8월 25일
전자책 발행 2022년 11월 28일
지은이 패트릭 슈라이너
시리즈 편집자 마이클 버드
옮긴이 박장훈
기획·마케팅 김정태
편집 송혜숙, 오수현
총무 곽현자
발행처 도서출판 이레서원
발행인 문영이
출판신고 2005년 9월 13일 제2015-000099호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로71번길 46, 1층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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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값 8,400원
ISBN 978-89-7435-609-5 (95230)
Copyright© 2020 Patrick Schreiner
Originally published in English under the title
The Ascension of Christ: Recovering a Neglected Doctrine
Snapshots, edited by Michael F. Bird
by Lexham Press, 1313 Commercial St., Bellingham, WA 98225, U.S.A.
All rights reserved.
Translated and used by permission of Lexham Press.
This Korean translation edition © 2022 by Jireh Publishing Company,
Goyang-si, Gyeonggi-do, Republic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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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릭 슈라이너는 현대 기독교 학계의 밝은 빛 중 하나다. 슈라이너는 이 책에서 중대하면서도 그동안 방치되었던 승천이라는 주제가 성경 이야기 속에서, 또한 각 신자의 이야기 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전문가답게 설명해 준다. 그리고 하늘에 계신 예수님의 현재 위치가 지금 이 땅에서 여러분의 삶을 어떻게 완전히 더 나은 방향으로 뒤바꿀 수 있을지를 보여 준다.” _ 러셀 무어, 서던 뱁티스트 컨벤션 윤리와 종교 자유 위원회 회장
“승천은 현존하는 기독교 교리 중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임에도 가장 도외시되었던 주제다. 짧지만 도움이 되는 통찰력과 실례로 가득한 이 책에서 패트릭 슈라이너는 승천이 무엇이고, 왜 중요한지, 이것이 왜 단순히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기쁨이 되는지 설명해 준다.” _ 앤드류 윌슨, 런던 킹스 처치 교육 목사
“그리스도의 승천은 그 우주적 중요성과 범위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들이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가진 주제다. 패트릭 슈라이너는 이 교리를 통찰력을 가지고, 읽기 좋게 다룸으로써 그리스도의 현재 하늘에서의 통치에 대해 우리가 마땅히 기울여야 할 관심을 기울이게 해 준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승천에 대해 전혀 들어 보지 못했든, 또는 이에 대한 신학 공부를 했든, 이 책은 여러분에게 예수님의 구원 사역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이 승천 사건에 대해 신선한 통찰력과 깊은 이해를 가져다줄 것이다.” _ 매튜 에머슨, 오클라호마 침례대학교 부교수
“패트릭 슈라이너의 책은 중요하지만 종종 간과되는 그리스도의 사역의 한 면모를 탁월하게 다룬다. 슈라이너는 아주 짧은 지면에 승천에 대해 놀랍도록 포괄적이면서도 명쾌한 분석을 제공해 준다. 슈라이너의 글에는 재치와 따뜻함, 그리고 신학적 정교함이 있다. 이 책이 승천이라는 주제에 대해 쓴 최고의 책들 중 하나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_ 피터 오르, 호주 시드니 무어 신학대학교 강사
“그리스도의 승천이 신학에서 중요하지만 간과된 분야임을 주목하며, 슈라이너는 이 주제에 대해 통찰력 있고, 간결하면서도 접근하기 좋게 소개해 준다. 그는 특히 선지자, 제사장, 왕이라는 그리스도의 삼중직에 대한 중요성을 잘 보여 준다. 독자들은 이 책이 짜임새 있고, 간결하나 성경적으로 심오하며(특히 구약 사용에 있어서), 신학적으로 정확하다는 점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신학과 교회의 실천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승천이 가지는 중요성을 총체적으로 가르쳐 주는 훌륭한 책이다.” _ 가빈 오트룬드, 캘리포니아 오하이 퍼스트 뱁티스트 교회 담임 목사
“패트릭 슈라이너는 어떻게 자신이 사도행전에서 시작해 성경 이곳저곳을 살펴보다가 곧 승천이라는 주제가 성경 전체에 퍼져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는지를 말해 준다. 이 교리가 딱 그러하다. 간과할 만큼 쉽지만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면 그 범주와 중요성에 매우 놀라게 된다. 이 책은 예수님의 승천에 대한 훌륭한 안내서이며 승천하신 예수님을 모든 곳에서 볼 수 있게 해 주는 초대장이다.” _ 프레드 샌더스, 바이올라 대학 토레이 아너스 인스티튜트 신학 교수
“우리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는 아주 많이 관심을 두지만(그리고 이는 옳은 일이다) 그 후에 일어난 일은 무시하거나 소홀히 여기는 경우가 매우 많다. 슈라이너는 그리스도가 어떻게 승천과 아버지의 우편에 앉으심을 통해 자신의 사역을 완성하셨는지를 보도록 아름답고도 훌륭하게 안내해 준다. 우리의 선지자, 제사장, 그리고 왕으로서의 그리스도의 사역은 부활 이후의 사역을 포함한 모든 면에서 우리의 존귀와 예배를 받아 마땅하다. 만약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승천에 대해 단 한 권의 책을 읽는다면 이 책으로 하라. 적극 추천하는 바다!” _ J. 스콧 듀발, 와쉬타 침례대학교 신약과 학과장
“그리스도의 승천은 기독교 신앙에 있어 필수적인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이야기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무척 적다. 하지만 승천은 정말 중요하다! 패트릭 슈라이너는 우리의 눈을 열어 승천이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에 중요성을 가지는 무수한 방식들을 보게 해 준다. 승천이 없다면 선지자, 제사장, 왕으로서의 그리스도의 권위는 그 정당성을 입증할 수 없으며, 그분이 하시는 하늘 보좌에서의 중보 사역과 통치 사역도 지속할 수 없고, 말씀과 성령을 통한 교회 건설도 불가능하다. 승천이 없으면 우리에게는 아무런 소망이 없다. 그러니 이 책을 들고 읽어 보라. 예수님은 단지 살아 계실 뿐 아니라 통치하시며, 언젠가 우리가 그분과 함께 영광 중에 승천할 그날까지 자신의 교회를 인도하고 계신다.” _ 매튜 바레트, 미드웨스턴 침례신학대학원 기독교 신학과 부교수 및 크레도 매거진 편집장
내 아이들에게 — 리디아(아홉 살), 케시드(일곱 살), 줄리아나(다섯 살), 케이난(세 살)
이 책은 짧으니, 너희들도 언젠가 읽을 수 있을 거야.
• 서문
• 소개의 말
1장 간과된 주제, 승천
- 이야기를 잠시 멈추고
- 승천이 소홀히 여겨졌던 다섯 가지 이유
- 승천을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다섯 가지 이유
- 결론
2장 선지자의 승천 : 그의 교회를 세우심
-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힘을 주심
- 선지자 예수님
- 선지자의 초상
- 선지자의 승천을 암시하는 이야기들
- 승천과 자기의 교회를 세우시는 그리스도
- 선지자로서의 교회
- 결론
3장 제사장의 승천 : 하늘에서 중보하심
- 중보
- 제사장 예수님
- 제사장의 초상
- 제사장의 승천을 암시하는 이야기들
- 승천과 제사, 중보, 그리고 축복
- 제사장으로서의 교회
- 결론
4장 왕의 승천 : 만물을 다스리심
- 주로 선포됨
- 주 예수님
- 왕의 초상
- 왕의 승천을 암시하는 이야기들
- 승천과 주님의 통치
- 왕의 가족으로서의 교회
- 결론
5장 신학에서의 승천
- 서론
- 승천과 삼위일체
- 승천과 성육신
- 승천과 십자가
- 승천과 부활
- 승천과 종말론
- 승천과 신학적 체계
- 결론
나는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승천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 사도행전 주석의 소개말에서는 누가의 상상 속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주제가 승천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내가 느끼기에는 바울과 그 외 신약성경 저자들은 자신들의 글 속에서 이 흐름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나의 이 생각을 좀 더 확장했고 이내 승천을 모든 곳에서 발견하기 시작했다. 보좌에 앉으신 그리스도의 지속적 통치와 살아 계심은 사도행전과 그 외 신약성경의 신학적 핵심이자 내러티브의 중심이다. 이전에 승천을 부인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내 사고의 과정에서 승천의 중요성을 명확하게 규명하지 못했었다.
내 개인 연구에 이 주제가 도움이 되었던 까닭에, Por Que No(역주: 스페인어로, 안 될 이유가 있나요?)라는 포틀랜드의 한 유명 식당에서 렉스햄 출판사의 데릭 브라운을 만났을 때 나는 승천을 다루는 책을 내자고 그에게 제안했고, 데릭은 “안 될 이유가 뭐가 있겠어요?”라고 답해 주었다. 내가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도록 시간을 내준 웨스턴 신학대학원, 특별히 내 집필 프로젝트를 지지해 주는 척 코너리에게 감사한다. 또한, 내 원고를 읽고 초고보다 훨씬 좋은 글로 만들어 준 모든 분께 감사를 드린다.
데릭 브라운은 원고를 꼼꼼히 읽고 내 글이나 개념 중 불분명한 부분을 지적해 주었다. 우리 아버지는 초고를 읽으시고는 해석학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제안해 주셨다. 피터 오르는 성경 신학의 최신 연구들(New Studies in Biblical Theology) 시리즈의 한 권으로 쓴 그의 책 초판을 보내 주며 내 글에서 모순된 부분, 특히 함께하심과 부재하심(presence and absence)에 대한 내용을 짚어 주었다. 팀 하몬은 조직신학적 관점에서 내 몇몇 논증을 명확히 표현하게 해 주었다. 친구 자레드 퓰리엄 목사는 승천이 절정의 사건인지 예수님의 재림이 절정의 사건인지 구분하도록 도움을 주었다. 동료 라이언 리스터는 작문 스타일에 대한 유용한 피드백을 주었고 여러 군데 쉼표를 첨가해 주었다. 게리 브레쉬어즈는 내 글에서 몇 군데 불명확한 곳을 짚어 주었다. 매트 에머슨은 Pride Rock을 쓸 때 첫 자를 대문자로 쓰라고 말해 주었을 뿐 아니라 그 이상의 작업을 해 주었다. 바비 제이미슨은 그리스도의 천상 사역에 관련된 자신의 작품을 보내 주며 내가 그리스도의 천상의 제사장직을 더 주의 깊게 생각하도록 도전해 주었다. 개빈 오트룬드 역시 자신이 집필했거나 작업했던 자료들을 참고하게 해 주었다. 필립 하월은 몇 가지 실수를 찾아 주었고 중요한 논문 몇 편을 읽도록 해 주었다.
처음에는 이 책의 개요를, 그리스도가 하신 일이 “자신의 증인들에게 힘을 주심, 그리스도의 천상에서의 중보, 그리고 주가 되심”이라고 짰다가, “자신의 교회를 세우심, 하늘에서 중보하심, 그리고 모두를 통치하심”이라고 바꾸었다. 우리 교회에서 공동 고백으로 리고니어 기독 강령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표현들이 내 요지를 더 잘 요약해 준다.
마지막으로, 집필 시간 대부분을 보냈던 우드스톡에 있는 하트 커피숍의 바리스타들에게 감사하는 바다. 그들은 내가 거기서 오랜 날들을 머무르며 차를 계속 무제한으로 마셔도 잘 참아 주었다. 이 책을 쓰며 들었던 음악으로는 스포티파이(역주: 온라인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앱) 플레이리스트가 있는데 나는 그중에서도 몇몇 아티스트의 음악을 계속 들었고 그래서 이들에게도 감사를 전하고 싶다. 더 내쇼날, 퍼스트 에이드 키트, 아모스 리, 본 이베르, 뱀파이어 위켄드, 엘피(LP), 루도비코 에이나우디, 니콜라스 브리텔, 그리고 막스 리히터다.
도덕적 우주의 굴곡은 길지만 메시아의 승천이 그 피날레를 좌우한다. 하지만 우리는 승천을 자주 간과한다. 그럼에도 이것은 복음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순간이며, 선지자, 제사장, 왕이신 그리스도의 삼중직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나는 그리스도의 승천이 성경 이야기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 더 잘 살펴보고 그 신학적 위치를 다지고자 이 짧은 책을 썼다.
그리스도의 승천은(올라가심) 예수님이 지상에서 하늘로 올라가심을 말한다. 그의 좌정(앉으심)은 그리스도가 아버지 우편에 앉으심을 말한다. 이 둘은 그리스도의 승귀와 승리를 나타내는 밀접하게 연결된 단계들이지만, 사실 올라가심은 올라가시는 ‘여정(journey)’이고 앉으심은 ‘목적(goal)’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 둘을 크게 하나로 간주하려 한다. 이 둘은 모두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하고 그가 승리를 이루셨음을 선포한다. 승천이라 말할 때 나는 그의 좌정을 염두에 둔다. 좌정이라 말할 때는 승천을 염두에 둔다.1 예수님은 승천하셔서, 보좌에 앉으시고, 현재도 앉아 계시며, 나중에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다시 오실 것이다.
나의 목적은 독자들이 예수님의 사건 중 이 부분에 대해 자세히 생각하고 그 중요성을 깊이 이해하도록 돕는 데에 있다. 이를 위해 성경 이야기 전체를 훑기보다 이 사건을 선지자, 제사장, 왕으로서의 메시아의 삼중직(munus triplex)의 관점에서 살펴보려고 한다.
내가 이렇게 구조를 짠 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삼중직은 어떻게 그리스도가 구약에서 가장 중요한 직분들을 완성하셨는지를 강조해 준다. 둘째, 이 직분들은 모두 “기름 부음을 받은 직”이라는 제목 아래 살펴볼 수 있는데, 이는 예수님이 어떻게 메시아이신지를 잘 설명해 준다. 마지막으로, 이 세 가지 직분을 살펴봄으로써 그리스도의 승귀와 승리를 더욱 정확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2
나의 기본적인 주장은 승천이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며 그리스도의 사역에 있어서 전환점이라는 것이다. 이는 예수님의 사역을 권위 있게 하고 보증해 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세 가지 역할을 ‘지속하게’ 만든다. 그리스도의 하늘에 오르심은 그의 지상 사역을 완성시키며 선지자, 제사장, 왕으로서의 그리스도의 역할에 변환점이 된다. 게릿 스콧 도슨(Gerrit Scott Dawson)은 이렇게 말한다. “승천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현재[그리고 미래]의 사역의 전 범위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역동적으로 작용한다.”3
이전에 지상에서 그리스도는 선지자였다. 지금 그는 하늘의 선지자로서 자신의 교회를 세우고 계신다. 이전에 지상에서 그는 제사장이었고 지금은 하늘의 제사장으로서 우리를 중보하고 계신다. 이전에 그는 유대인의 왕으로 경배받으셨는데 지금은 하늘과 땅의 주가 되셨다.
승천 없이는 그리스도의 사역이 불완전하다. 승천이 없다면 이야기에 아주 커다란 구멍이 생길 것이다. 승천 없이는 다른 교리들도 비뚤어질 것이다. 나는 이 책이 그리스도의 온전한 사역을 더 잘 알고 그의 백성을 더 신실하게 섬기기 원하는 모든 이에게 도움이 되기를 기도한다.
놀랍게도 요즈음 승천에 관한 언급이 너무나 적다. 한때 승천은 그리스도의 신비의 절정으로 받아들여졌었는데… 오늘날 승천은 당혹스러운 것이 되었다.
_ 더글러스 패로우
몇 년 전부터 오디오 책을 듣기 시작했다. 책을 듣다 보니 이상한 시점에서 멈추게 된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차에서, 운동할 때, 또는 아침에 하루를 준비하면서 이 오디오 책을 듣고는 했는데, 하던 일을 끝마쳤을 때 내가 이 책 듣기를 멈추고 있었다.
실제 종이책을 읽을 때는 이와는 다르게 더 자연스럽게 멈추게 된다. 오디오 책은 중요한 순간에서 듣기를 멈추어야 할 수도 있다. 한번은 『레디 플레이어 원』(Ready Player One)이라는 책을 듣고 있다가 집에 막 도착해서 끄려는 때에 주인공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죽었다.”
성경의 이야기를 요약할 때도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성경을 읽다가 가장 중요한 사건이 막 일어나려는 참에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르는 때가 우리에게도 많다. 어떤 한 부분에 집중한 나머지 다른 부분들을 놓치기도 한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예수님의 삶과 죽음, 부활로 복음을 요약한다. 승천에 대해서는 거의 속삭이지도 않는다. 때로 복음주의자들은 십자가와 부활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승천은 그 그늘에 가려 버린다. 피터 오르가 말하듯이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 ‘하신’ 일(그의 삶, 죽음, 부활)과 ‘하실’ 일(재림과 통치)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1 그리스도가 현재 하고 계시는 일이나 부활 후에 발생한 일에 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매우 적다.
그러나 만약 승천이 성경 이야기의 해법이라면, 승천이 그리스도의 권위를 확증해 준다면, 승천이 이 이야기를 온전히 완성하는 필수 단계라면, 승천이 그리스도의 사역과 삼위일체 신학의 중심이라면, 우리는 이를 받아들이고 자주 가르쳐야 할 것이다.
이 책의 첫 번째 장에서는 그리스도의 승천이 소홀히 여겨졌던 다섯 가지 이유를 살펴보고, 그다음에는 이 중요한 사건에 우리가 집중하고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다섯 가지 이유를 살펴볼 것이다.
성경이 이것에 대해 적게 이야기한다
그리스도의 승천이 간과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명백한 이유 중 하나는 성경이 이에 대해 적게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신약성경 어디에도 “승천(아나바시스)”이라는 통상적 헬라어 단어가 없다. 성경에서 이 사건이 나오는 부분이 딱 두 군데 있는데 누가복음의 끝과 사도행전의 시작이다(눅 24:50-53; 행 1:9-11). 승천에 대한 설명은 성경에서 겨우 일곱 절만 차지하는데, 이는 성경의 전체 구절 중 0.03%에 해당한다.
어떤 독자들은 마태복음의 마지막이 예수님이 승천하시는 모습을 보여 주지 않고 끝난다는 사실에 놀랄 것이다. 마가복음의 원래 결말은 승천에 대한 언급이 없고 요한복음 마지막에서도 예수님은 여전히 땅에 계신다. 심지어 바울이 말하는 가장 중요한 것들의 목록에도 메시아의 승천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전 15:1-2). 만약 승천이 핵심 부분이라면 왜 다른 복음서 저자들은 이를 이야기에 포함시키지 않았을까? 왜 승천은 성경에서 그토록 적은 부분을 차지하는가? 왜 이 단어는 전혀 사용되지 않았는가? 또 왜 바울은 이것에 큰 중요성을 두지 않았는가?
안 좋은 계획처럼 보인다
승천이 소홀히 여겨지는 두 번째 이유는 이것이 안 좋은 계획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땅에 남아 계시는 것이 직관적으로 생각했을 때 더 좋아 보인다는 뜻이다. 이것은 다음의 가정과 결론을 보면 알 수 있다.
가정 1: 몸을 가지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이 가장 좋은 상태의 결말이다.
가정 2: 예수님은 더 이상 몸을 가지고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는다.
결론: 예수님이 떠나시지 않는 것이 더 좋았을 뻔했다.
어떤 면에서 승천은 최악의 계획 같다. 예수님의 삶은 좋다. 예수님의 죽음도 좋다. 예수님의 부활도 좋다. 그런데 예수님의 승천은? 우리는 이렇게 질문할 수밖에 없다. 만약 예수님이 여기 땅 위에서 우리와 함께 계셨다면 많은 일이 훨씬 더 쉽게 진행되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전도를 생각해 보자. 오래전에 사라진 이 인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이 땅에 계셨다면 사람들에게 그분의 중요성을 확신시키기가 훨씬 더 쉬웠을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실제적 증거를 소중하고 중요하게 여긴다. 사람들은 주장을 뒷받침해 줄 실질적인 증거를 원하지 증명 불가능한 단언을 원하지 않는다.
또한 승천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른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속 계셨더라면 우리에게 더 위로가 되었을 것이므로 승천하시지 않는 편이 더 좋지 않았을까? 만약 그리스도가 물리적으로 우리 옆에 계셨다면 우리가 슬픔을 겪을 때 그의 위로의 손이 우리와 함께하셨을 텐데 현재 우리는 직접 볼 수 없고, 많은 경우 직접 음성을 들을 수 없는 주님께 기도해야만 한다. 우리 아이들은 왜 하나님이 오셔서 우리에게 자신을 보여 주지 않으시냐고 나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만약 그랬다면 자기들이 더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거라면서 말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정직하다면 우리도 이처럼 느낄 때가 있었다고 고백할 수 있으리라. 메시아의 승천은 나쁜 계획인 것만 같다.
그 의미가 불분명하다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승천에 관심이 없는 세 번째 이유는 이 사건이 왜 필요했는지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승천의 의미는 다소 흐릿하다. 어쩌면 우리의 눈이 흐릿한 것인지도 모른다. 왜 예수님은 올라가셔야만 했는가? 부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는가?
제자들도 예수님의 부활 후에 이런 방식의 생각에 빠졌다. 예수님의 승천 전 제자들이 물었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행 1:6) 제자들은 승천을 기대하고 있지 않았다. 지금이 바로 예수님이 그의 왕국을 세우시고 그에게 대적하는 모든 세력들을 무찌르실 때가 아닌가? 어쩌면 그래서 제자들은 하늘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고, 천사들은 이들에게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말했을 것이다. 제자들이 생각하고 바랐던 것은 현실과 달랐다. 그들의 계획에 의하면 예수님은 떠나시면 안 되셨다.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승천을 기록하는 유일한 성경 구절 두 군데에서도(눅 24:50-53; 행 1:9-11) 승천의 목적에 대한 신학적 설명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현대의 독자들도 제자들의 옆에서 헷갈리는 표정을 한 채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러한 설명 부족 때문에 해석가들은 그리스도의 승천의 목적과 목표를 연구했다. 앞으로 논의를 진행하며 내가 증명하겠지만, 성경의 나머지 부분들은 우리를 위해 이 점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승천한 이유가 모두 같은 페이지에 나와 있지 않으며, 구약이나 신약 한곳에 다 담겨 있지도 않다.
사건이 비정상적이다
사람들이 승천을 도외시하는 네 번째 이유는 이 사건이 객관적으로 이상하고 현대의 시각으로 보면 기이하기 때문이다. 갈릴레오와 천체 물리학, 뉴턴과 신경계 탐구, 코페르니쿠스와 클론 복제의 시대를 모두 지난 오늘날 승천 개념은 터무니없다. 예수님의 승천은 한 중년의 남자가 공중으로 올라가서(빠르거나 느리게, 하지만 나는 중간 속도라 생각하고 싶다) 구름 속으로 사라진 사건이다. 그는 실제로 어디로 갔는가? 우리의 현대 과학적 세계관으로 보면 그는 분명 대기권을 지나갔을 것이다. 그다음에는 어떻게 된 건가? 나사 우주복 없이 어떻게 그는 살아남을 수 있었단 말인가?
초자연적인 치유와 죽은 자 가운데서의 부활을 받아들인다 해도 어려움이 남는다. 오히려 이런 기적들은 이해가 더 잘 되는데 왜냐하면 이를 통해 사람들이 회복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님의 승천 때는 남은 제자들이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놀라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모른 채 하늘을 보고 서 있었다. 이번에는 죽지 않으셨다. 떠나셨다. 우리는 우리가 제자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하고 싶어 하지만 사실 우리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왜 이 사건이 필요했는지 궁금해하며 하늘을 쳐다보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부활은 승천을 포함한다
승천이 소홀히 여겨지는 마지막, 그리고 가장 영향력 있는 이유는 때때로 성경에서 부활과 승천을 개념상 함께 묶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가끔 예수님의 죽음이 그의 영광과 구분 없이 연결되기도 하는데 이때 부활과 승천 모두가 후자의 범주에 포함된다. 누가복음 24:26에서는 예수님이 어떻게 고난받으시고 영광에 들어가실지를 밝힌다. 누가는 예수님의 죽음에서 그의 영광스러운 상태로 재빨리 이야기를 전환한다. 바울은 빌립보서 2:8-9에서 십자가를 중심으로 해서 곧바로 그리스도의 승귀까지를 다룬다. 베드로는 첫 번째 설교에서 “하나님이 [예수님을] 살리셨음(행 2:24, 32)”에 대해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하지만 사도행전 2:24-36은 전부 부활과 승천에 관한 내용이며 때로 이 둘을 구분하기는 참 어렵다.
사도들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 위로 올라가시는 예수님의 이동이 승천에서도 계속되었다고 생각했다. 존 웹스터(John Webster)가 말하듯, “부활, 승천, 그리고 천상 사역은 모두 예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