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림
날마다 다른 옷과 액세서리를 해야만 외출할 수 있었던 전 맥시멀리스트. 어느 날 옷의 무게에 무너져내린 행거 앞에서 맥시멀리즘에 회의를 느끼고 미니멀리스트로 전향했다.
아홉 평의 신혼집에서 사계절 서른 벌의 옷으로 설레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10년차 미니멀리스트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블로그에 기록하면서, 수많은 맥시멀리스트를 미니멀리즘의 세계로 끌어들였다.
가득 채우고 왕창 버리기를 반복하는 일회성 미니멀리즘이 아니라, 처음부터 내 인생에서 진짜 중요한 것들로만 채우는 미니멀리즘 습관을 오늘도 열심히 전파 중인 건강한 미니멀리즘 전도사.
| 프롤로그 |
뭐든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시절이었다. 주 5일 출석하는 강의실에 하루라도 같은 옷, 같은 액세서리를 하면 안 된다는 규칙이 있는 것처럼 나는 늘 새로운 옷과 새로운 액세서리를 탐냈다.
나는 옷을 좋아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외부에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으니까. 매달 한정된 용돈 안에서 다양한 옷들을 사야 했기에 늘 저렴한 것들로 구입했다. 여름엔 통기성이 안 좋고, 겨울엔 보온이 안 되는 옷들. 한 철 입으면 늘어나거나 보풀이 일어나서 더는 입기 힘들어지는 옷들로.
방 한 칸짜리 자취방은 시간이 흐를수록 옷들로 쌓여갔다. 처음에 구입했던 1단짜리 행거에 옷을 걸 자리가 없어지자 2단짜리 행거를 새로 사들였다. 2단 행거도 빽빽해지자 길가에 버려져 있던 5단짜리 서랍장과 선반을 주워 왔다. 머지않아 그 수납장도 나의 옷들과 소지품으로 가득 찼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늘 입을 옷이 없었다. 아침이면 뭘 입어야 할지 행거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나의 수집 병은 옷에 그치지 않았다. 색깔별로 모은 하이힐과 플랫슈즈들, 하늘 아래 같은 색조는 없다며 세일할 때마다 사들인 로드숍 화장품들, 예쁜 것 같으면 무조건 장바구니에 넣고 보았던 다이소표 주방용품들과 인테리어 소품들. 그중에서도 옷과 막상막하로 수집 병을 자랑하던 것은 바로 책이었다.
나는 심심하면 책을 드는 독서광으로서 서점에 드나들며 책을 사는 게 취미였다. 매달 다 읽지도 못한 많은 책이 쌓여갔다. 책을 읽는 속도가 사는 양을 따라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책을 사는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집에 읽지 못한 새 책들이 잔뜩 쌓여 있지만 언제나 또 다른 새 책을 사는 데에서 만족을 느꼈다.
자취방에는 먼지가 많아서 아무리 책상과 선반을 자주 닦아도 늘 뽀얗게 먼지가 쌓여 있었다. 우리 집에 놀러 온 기관지가 약한 친구의 재채기가 멈추지 않은 적도 있었다. 부끄럽지만 그땐 이유를 몰랐다. 대책 없이 사 모은 수백 벌의 옷과 수십 권의 책 때문에 내가 먼지 속에 갇혀 지내는 줄을.
텅 비어 있던 작은 원룸은 어느새 벽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물건이 가득 찼다. 이 집에 들어온 지 불과 2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멀쩡하던 행거가 갑자기 무너졌다. 행거에 걸려 있던 옷가지들이 모두 앞으로 쏟아졌다. 서둘러 행거 기둥을 붙잡고 다시 세우려는데 걸려 있는 옷들의 무게에 눌려 행거는 폭삭 내려앉아 버렸다. 땀범벅이 되어가며 옷가지들을 걷어내고 행거를 세우기 위해 애써보았지만 헛수고였다.
그때 처음으로 내가 가진 옷의 무게를 느꼈다. 내 몸은 물론 행거도 감당하지 못하는 옷의 무게. 옷에 짓눌리는 느낌이었다.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무너진 행거 주변으로 널브러져 있는 옷들을 보면서 사놓고 한 번도 입지 않은 옷들이 가득하다는 걸 깨달았다. 몇 년 전엔 잘 입었지만 지금은 어쩐지 손이 안 가는 옷, 단추가 떨어지거나 얼룩이 안 지워지는 옷 등 갖가지 이유로 더는 입지 않는 옷이 많았다. 심지어 오늘 처음 보는 듯한 옷도 있었다.
내가 가진 물건들의 부피가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방 한가운데에 앉아 자취방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내 시선이 훑어본 나의 자취방은 작은 빈틈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온갖 물건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선반 뒤쪽과 서랍 안쪽, 저 박스와 이 박스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나조차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갑자기 숨이 턱 막혀왔다.
내가 가진 물건들의 양이 현실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저 당시 내가 알고 있던 사실은 무언가 변해야 할 타이밍이 왔다는 것이었다.
공허함만이 남았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미니멀 라이프’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되었다. 자신을 ‘미니멀리스트’라 칭했던 어느 블로거를 통해서였다. 그는 미니멀 라이프란 최소한의 물건만으로 살아가는 삶이라 말했다.
‘최소한의 물건’이라니, 물건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게 아니던가? 그 개념이 무척이나 생소했다. 나는 살면서 단 한번도 꼭 필요한 물건들만으로 생활하는 삶을 그려보지 못했다. 그렇게 사는 사람도, 그런 삶도 지금껏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다.
이참에 나도 미니멀 라이프라는 걸 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그날 이후 나는 자취방의 물건들을 버리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비우는 삶에 빠져들었다. 그러다 한 장의 사진을 보고 본격적으로 극한의 미니멀 라이프에 돌입했다.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의 저자 사사키 후미오의 집 사진이었다. 사진에 담긴 그의 집은 햇살이 가득 쏟아져 들어오는 밝은 화이트톤의 아주 작은 원룸이었고, 방에는 새하얀 이부자리만 펼쳐져 있었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장면이었다. 그에게는 이부자리 외의 어떤 가구도 없다고 했다. 텅 비어 있는 방. 빈 벽과 여백이 가득한 공간. 저런 집에서 살게 된다면 물건에 얽매이지 않고 늘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후 나는 극도로 물건을 비우고, 되도록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집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목표로 좇았다. 옷들을 비롯해, 더는 읽지 않는 책들을 마구 처분하고, 집 안에 있는 줄도 몰랐던 수많은 잡동사니와 살림살이, 인테리어 소품들을 내다 버리기 시작했다.
덕분에 옷 한 벌을 꺼내려면 한참 진을 빼야 했던 빽빽한 2단 행거에는 옷들이 넉넉하고 여유 있게 걸렸고, 집 안에 쌓이던 먼지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공간이 쾌적해지면서 마음도 상쾌해졌다. 홀가분했다. 이게 답이라 여겼다.
나는 매일 어떻게 하면 물건을 더 비울 수 있을까 고민했고, 반드시 들여야 하는 물건이 생기면 짐스럽게 여기며 스트레스를 받았다. 물건을 더 줄일 수만 있다면 생활에서의 불편함은 기꺼이 감수했다.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던 책상까지 비워내면서 기어코 아무것도 없는 방을 만들어냈다.
모든 벽과 바닥을 가구와 물건으로 가득 채웠던 나의 방에는 4단짜리 서랍 하나와 작은 스탠드, 전신거울만 남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부자리를 걷어 서랍 위에 개어두었고, 퇴근하고 오면 이부자리를 펼치고 잠을 잤다. 처음에는 텅 빈 방이 주는 황홀감에 빠졌다. 사사키 후미오의 텅 비어 있던 집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하면서 그가 느꼈다는 홀가분함을 나 역시 느껴보았다. 그러나 그건 목표를 이뤄냈다는 성취감에서 오는 그저 찰나의 감정일 뿐이었다.
내가 지니고 있는 물건의 개수는 현저하게 줄었지만, 갈증은 여전했다. 미니멀리스트가 되어 최소한의 물건만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자유로워질 것 같았는데 물건의 개수만 줄었을 뿐, 나는 여전히 어떤 것에서도 자유로워지지 못했다. 비워내는 것이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텅 빈 듯한 집 안 풍경, 심플하고 값비싼 물건, 새하얀 인테리어를 갖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힌 나는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자취방에 옷을 가득 쌓아놓았던 때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많은 것에 집착하느냐, 적은 것에 집착하느냐, 그 차이일 뿐이었다.
텅 빈 나의 방은 아무것도 없어서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방이었음에도 뭐든 할 수 있는 그 방에서 나는 아무런 욕구가 일어나지 않았다. 책상을 없애니 책을 읽는 것이 불편해서 점점 읽지 않게 됐고, 침대가 없으니 낮에 잠시 누워 쉴 곳조차 없었다. 매일 똑같은 옷을 입으면 단순하고 편할 줄로만 알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지겨움이라는 감정이 찾아왔다. 모든 게 재미가 없어졌다. 내 방인데 내 방 같지 않은 나날이 이어졌다. 방을 비우면 자유롭게 뭐든 해낼 줄 알았는데, 내게는 오직 허무와 공허함만 남았다.
물건을 채우며 모든 욕구를 풀던 습관과 많은 것을 소유하려는 집착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작한 비우기였는데, 어느새 나는 또 다른 강박과 자기 검열에 휘둘리고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무력감이 이어지다가 나의 질문부터 잘못되었다는 깨달음이 찾아왔다. 텅 빈 방을 만들기 전에 무엇을 비울까가 아니라 무엇을 남길까를 물어야 했고, 어떻게 비울까가 아니라 어떻게 남길까를 고민했어야 한다. 그런 고민 없이 비워낸 방에는 나의 삶이 없었다. 물건만 비운 게 아니라 나를 함께 비웠던 것이다. 모든 것을 가차 없이 비워버리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황무지 같은 삶이 행복할 리 없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나는 왜 물건을 줄이고 단순하게 살고 싶은지 나 자신에게 물었다.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라는 답이 나왔다. 비로소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알 것 같았다.
황무지로 변한 내 삶에 이제는 나의 행복을 위해 꽃과 나무를 심을 차례였다. 내가 원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며 텅 빈 방과 텅 빈 인생을 좋아하는 것으로 채우기 시작했다. 편하게 앉아 책을 오래 읽을 수 있도록 책상을 다시 방 안에 들였고, 예쁜 원피스도 몇 벌 구입해서 단벌 신사에서 벗어났다. 한번쯤 배워보고 싶었던 발레를 시작했고, 오랫동안 꿈꾸던 에어비앤비 숙소를 오픈해 호스트가 되었다. 물 공포증으로 늘 고사했던 수영도 배워서 동남아 리조트 수영장에서 튜브 없이 놀아보는 소망도 이뤘고, 차곡차곡 돈을 모아 버킷 리스트였던 세계 여행도 다녀왔다.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어 매일 공허함으로 가득했던 과거가 무색할 만큼, 하루하루가 너무 재미있고 신이 났다.
내 삶에서 불필요와 군더더기를 줄이고 비우며 갖게 된 여분의 시간과 에너지, 공간, 돈으로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시작할 수 있었다. 비로소 미니멀 라이프가 내게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내가 꾸준히, 주기적으로 비우는 이유는 좋아하는 것을 더 마음껏 좋아하기 위해서다. 불필요한 것, 원치 않는 것, 낭비되는 것을 줄이고 비운 자리를 내가 좋아하는 것, 원하는 것, 필요한 것으로 더 촘촘히 채우기 위해서다. 삶에는 정답이 없듯, 미니멀 라이프에도 정답이 없다. 누군가에게는 텅 빈 방이 미니멀 라이프의 이유가 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아니었다. 채우기 위해 비우는 것, 이것이 나의 미니멀 라이프다.
다들 그렇게 산다고 말했다
5년 전, 나는 결혼을 준비하며 신혼집으로 남편이 혼자 자취하던 아홉 평 원룸에서 살기로 했다. 방 두 개에 거실과 주방이 딸린 집이 아닌 원룸 자취방에서 살겠다는 나를 가족을 비롯한 지인들이 뜯어 말렸다.
사실 나도 처음부터 그곳에서 계속 살려고 했던 건 아니다. 남편의 원룸 계약 기간이 꽤 남아 있었기에 결혼식을 올리고 함께 살면서 천천히 시간을 두고 신혼집을 알아볼 계획이었다. 하지만 막상 살아보니 원룸에서의 신혼 생활이 만족스러웠다. 굳이 시간과 돈을 들여 더 큰 집으로 옮길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원룸에서의 생활은 생각보다 좋은 점이 많았다. 집이 작아서 관리비를 비롯한 유지비가 굉장히 적게 들었다. 한여름과 한겨울에 냉방과 난방을 마음껏 틀어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이 집 자체가 마음에 들었다. 벽 한쪽 면이 통창이라서 탁 트인 느낌이 나고, 채광도 좋고, 주변 편의시설도 마음에 들었다. 주인집과 함께 거주해서 관리가 매우 잘되는 신축 건물이라는 것까지 모두 다 흡족했다.
집은 새로운 물건들 대신 각자 자취하며 쓰던 가전제품들과 가구로 채웠다. 중복되는 물건들은 중고로 팔았고, 함께 살면서 필요한 것들만 신중하게 구입했다. 덕분에 월급의 대부분이 저축 통장으로 들어갔다.
결혼하는 과정에서 참 많이 들었던 말이 “다들 그렇게 해”였다. “다이아는 5부 이상 받아야지, 신혼집은 그래도 20평 이상은 되어야지, 샤넬 백 정도는 받아야지.” 그런 삶이 싫다고 했더니 다들 그렇게 산다고 했다.
내가 감당하지도 못할 것들을, 마음이 내키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받아들여야 할까 의문이 들었다. 남편과 충분한 대화를 나누며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것들을 비워내고 그 대신 원하는 것들을 원하는 만큼 채워나갔다. 결혼반지를 하지 않는 대신에 양가 부모님의 건강검진을 해드렸고 웨딩사진, 예단, 예물을 생략하는 대신에 신혼여행에 더 투자했다.
남들이 말하는 기준치에 어느 것 하나도 닿지 못하는 결혼식과 신혼 생활의 시작이었지만 결혼을 계기로 우리 부부는 남들 기준이 아니라 우리 부부만의 기준으로 살아가기 시작했다. 큰마음 먹고 한번 용기 내어 기준에서 벗어났더니 사회적 기준이 모두 허상임을 깨닫게 되었다. 진짜 중요한 것은 다들 원하는 삶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삶이었다. 다들 그렇게 사는 거라는 긴 대열에서 벗어나면 뒤처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우리의 인생은 더 풍요로워졌다. 따라잡아야 하는 기준도 앞서야 하는 경쟁도 없으니, 주어진 삶이 늘 선물처럼 여유롭고 느긋하다.
결혼하고 6개월쯤 지났을까,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세계를 유랑하듯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일렁였다. 한참을 떠돌다 돌아와서 다시 시작해도 그리 늦지 않은 나이에, 충분한 체력이 받쳐줄 때 긴 여행을 떠나보고 싶었다.
남편과 오랜 기간 많은 대화를 통해 이것이 정말 우리가 원하는 것인지 신중하게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세계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 지 1년 4개월 만에 우리 부부는 정말로 여행을 위해 한국을 떠났다. 그 과정에서 남편은 첫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고 집을 사기 위해 모으던 돈은 여행 자금이 되었지만 1년간의 세계 여행을 마치고 귀국한 지 2년이 지난 지금, 결혼반지 하나 없이 치른 작은 결혼식만큼이나 한국 생활을 모두 청산하고 미련 없이 떠났던 세계 여행도 인생에서 굉장히 잘한 선택이 되었다.
요즘 우리 부부에게는 또 다른 꿈이 생겼다. 내 속도대로 사는 게 무척 자연스럽고 당연한 시골 마을에서 오직 휴식만을 위한 작은 민박집을 여는 것이다. 민박집 사장님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직장을 잡고 다시 열심히 돈을 벌며 한국에서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결혼하면 빨리 돈 모아야지, 돈 모으면 대출 가득 받아 아파트 장만해야지, 아파트 장만하면 얼른 아기 낳아야지, 아기 한 명은 외로우니 적당한 터울로 둘째 가져야지, 애들 공부 시키려면 돈 더 벌어야지, 그다음엔 노후 준비 해야지. 그렇게 평생 쉴 틈 없이 계속 주어지는 과제와 숙제는 저만치 치워버리고서 우리는 여전히 오직 우리 두 사람의 목소리에 집중한다. 언제나 살고 싶은 모습으로 산다. 다들 그렇게 살아도 나는 이렇게 산다.
모르는데……”
원룸에서 보낸 2년간의 신혼 생활은 우리 두 사람을 미니멀리스트 부부로 만들어준 결정적인 시간이었다. 돌이켜보면 작은 공간에서 어떻게든 생활해야 했던 환경 자체가 우리 두 사람을 그렇게 만들어준 게 아닌가 싶다.
남편은 물건을 많이 사는 편은 아니지만, 물건을 한번 집에 들이면 어지간해서는 버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남편의 자취방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하던 날, 이미 남편의 물건으로 가득 찬 원룸에 내 물건들까지 들이고 나니 우리의 아늑한 집이 되어야 할 공간은 순식간에 창고가 되어버렸다.
혼자 살 때는 문제가 없었지만 두 명이 함께 살아가기에는 부족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이 집에서 살기로 결정한 이상, 해결책이 필요했다. 그래서 집의 크기에 맞춰 물건을 줄이기로 했다. 대학 시절 방 한 칸을 꽉 채웠던 물건들을 몽땅 비워내고 광명을 찾았던 것처럼, 내 삶에서 다시 한번 대대적으로 물건을 줄어야 할 때라는 직감이 들었다. 망설임 없이 행동에 나섰다. 그러나 멀쩡한 물건을 비우는 것에 대한 남편의 거부감이 강했다.
“언젠가 쓸지도 모르는데 그때 다시 사려면 아깝잖아.”
내가 보기엔 몇 년간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사용할 일이 없을 것 같은데 남편은 언젠가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집에 물건을 쌓아두길 원했다. 과거의 나 역시 그랬기에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게다가 이 집은 나만이 아닌, 우리 두 사람의 공간이 아닌가. 남편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다. 대신 남편이 거부감 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집 안의 물건을 조금씩 비워나갔다.
동일한 목적으로 여러 개 가지고 있는 것, 고장 난 것, 그저 처분하기 귀찮아서 방치한 것들을 먼저 버렸다. 남편의 물건은 반드시 남편의 의사를 물어본 뒤에 처분했고, 대신 내 물건들을 더 많이 비웠다. 물건을 쌓아두지 않는 집에서 사는 게 어떤 느낌인지 직접 보고 느끼면 남편도 달라질 거라 믿었다.
집 안이 환해지고 모든 물건이 제자리에 정리 정돈된 깔끔함에 익숙해지자 남편도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가장 큰 계기는 우리의 세계 여행이었다. 1년간 장기 여행을 떠나며 우리는 신혼집 자체를 처분하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집 구석구석에 쌓인 물건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다. 더는 입지 않지만 비싸게 사서 아깝다던 옷들과 쓰지 않는 값비싼 살림들도 비워냈다. 그동안 건들지도 못하게 했던 수십 켤레의 운동화도 남편이 직접 선별해서 비웠다.
세계 여행 중에는 각자 배낭 하나씩을 메고 다녔다. 그렇게 1년간 배낭 하나 분량의 물건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삶에 꼭 필요한 물건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남편과 나는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들, 얽매인 것들, 내려놓으면 자유로울 수 있는 것들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눴다.
지금의 남편은 나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미니멀리스트가 되었다. 내가 살림살이에 뭐가 필요한 것 같아서 사려고 하면 남편은 일단 없이 살아보고 정 불편하면 그때 사자고 한다(그래서 우리 집에는 아직도 로봇청소기, 건조기, 식기세척기, 제습기, 공기청정기, 텔레비전, 전자레인지, 정수기 등의 가전제품들이 없다). 세상에서 옷과 신발을 가장 좋아해서 10년 전 옷까지 모두 끌어안고 살던 남자가 여름에는 검은색 반팔 티셔츠 다섯 장을 번갈아 입고, 겨울에는 검은색 긴팔 티셔츠 세 장을 번갈아 입으며 지낸다. 늘 포화 상태였던 남편의 옷장과 신발장에는 여유가 생겼고, 덕분에 넉넉해진 용돈으로 남편은 재테크를 시작했다.
두 사람이 한마음으로 단순한 삶을 살아가기까지 많은 시간과 이해가 필요했다. 만약 내가 처음부터 내 뜻만 고집해서 남편의 의사와 상관없이 집 안의 물건을 마구 버리고 비웠다면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남편의 거부감은 커졌을 것이다. 나는 나대로 너무 많은 물건을 소유하는 남편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남편은 남편대로 무턱대고 다 버리기만 하는 것 같은 나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우리는 끝없는 평행선을 걸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의 방식을 존중했다. 그리고 모든 경험을 함께 나눠보기를 택했다.
가득 채워본 경험, 모두 비워본 경험, 필요한 것만 선별해서 생활해본 경험은 지금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마음을 갖게 해주었다. 아니,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생각은 사회가 만들어낸 환상이고, 내가 느끼고 깨달은 것만이 진짜라는 확신이 생겼다. 우리는 정말로 현재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한번 소유한 물건은 마치 죽을 때 가져갈 것처럼 애지중지 소중하게 쓰다가도 만약 이 물건의 쓰임이 다한다면 미련 없이 기꺼이 비우겠다는 마음으로 산다. 소유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있을 때 충분히 누리겠다는 가벼운 마음은 우리의 삶을 더 행복하게 한다.
불편하지 않아요?
누군가 그렇게 살면 불편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네, 조금 불편해요”라고 답한다. 그러고 나면 다들 예상 밖의 대답이라는 듯 눈을 휘둥그레 뜨고 나를 바라본다. 그렇게 불편한데 왜 그렇게 사느냐는 듯이 말이다.
없으면 불편한 건 당연하다. 하지만 없이 사는 불편함을 택하는 것이 수많은 것을 짊어지고 사는 것보다 좋다. 불편하지만 이렇게 사는 이유에 대하여 무언가 멋진 답을 해주고 싶지만 쉽지 않다. 그냥 좋은데, 그 안에서 오는 즐거움이 분명 있는데. 그래서 이해받길 바라는 이유를 만드는 대신 이렇게 말하기로 했다.
“전 그냥 이게 좋아요.”
비우다 보면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인다.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걸리적거리는 것들이 줄어들면서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을 살겠다는 다짐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에 한 뼘 더 용기를 낼 수 있게 된다.
내 목을 죄어오는 수많은 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물건을 줄이고 또 줄이던 시절, 내게는 꿈이 하나 있었다. ‘내가 가진 모든 짐이 캐리어 하나에 몽땅 다 들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럼 언제 어디서든 내가 떠나고 싶으면 떠나고, 머물고 싶으면 머물면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을 텐데!’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 정말로 나의 모든 물건을 캐리어 하나에 몽땅 털어 넣고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살아보는 꿈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남편과 떠나는 세계 여행을 통해서 말이다.
세계 여행을 앞두었을 때 작은 원룸의 살림들을 모두 처분하고 딱 두 사람의 배낭에 들어갈 만큼의 물건만 남겼다. 침대와 옷장을 비롯한 크고 작은 가구들은 다음 세입자에게 저렴한 값에 모두 내주었다. 그 외 살림살이는 중고시장에 내다 팔거나 필요로 하는 단체에 기증했다.
‘나 미니멀리스트야!’라고 자부했지만, 알게 모르게 우리 집에도 쌓여 있는 물건들이 꽤 많았다. 아무리 최소한의 물건들만으로 산다 해도 역시나 여전히 나는 많은 물건들을 지니고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는 시간이었다.
여행 떠날 배낭 두 개 외에 친정집에 가져다둘 리빙박스 두 개와 캐리어 두 개, 컴퓨터와 침구세트로 정리 끝. 약 2년간의 결혼 생활이 남긴 우리의 짐이 이렇게 정리되다니, 기분이 묘했다. 한편으로는 이 정도라면 앞으로도 내가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든 여행하듯 떠나고 머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만족스러웠던 원룸에서의 신혼 생활. 내가 가진 공간이 작았기에 어쩔 수 없이 많은 소유물들을 비우고 줄여야 했지만, 그 덕분에 큰 미련 없이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