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은 반드시 실천할 때 만들어집니다.
좋은습관연구소가 전하는 17번째 습관은 ‘다시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습관’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책과 영화를 통해 예상치 못한 위로를 받아본 적 있다. SNS, 유튜브, 넷플릭스 등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 콘텐츠가 넘치는 세상이지만 다시 한번 책과 영화로 시선을 돌려보는 건 어떨까?
* 이 책은 2020년부터 2021년까지 작가의 브런치 계정에 연재된 글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 이 책에 대하여 |
위로받지 못할 인생이 과연 존재하기나 한 걸까?
“하루가 끝나고 사람들이 서두를 무렵 나의 하루는 시작된다. 메뉴는 이것뿐, 손님들이 원하는 대로 만들어준다. 굽이굽이 후미진 곳까지 찾아주는 이가 있냐고? 그게 꽤 많다.”(심야 식당 인트로)
심야 식당의 노렌을 열고 들어가면 그곳에는 우리를 위로해줄 것 같은 식당의 주인장 ‘마스터’가 나온다. 그는 식당을 찾는 손님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위로와 같은 음식을 내어준다.
이 책의 작가 정화영은 바로 마스터와 같은 존재다. 휴먼 다큐를 오랫동안 집필해온 이력은 사람을 관찰하고 꿰뚤어 보는 시선으로 평범한 이들에게서도 숨은 사연을 발굴해내는 묘한 힘이 있다.
그녀는 총 20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그동안 ‘마스터’로서 자신을 지나쳤던 사람들을 하나씩 회상하며, 그들에게 보냈던 위로 혹은 위로하지 못했던 후회의 말들을 하나씩 펼쳐 놓는다.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각각의 에피소드는 모두 매력적이고 흥미진진하다. 그리고 여기에 오랫동안 읽고 봐온 책과 영화를 덧붙이며 우리의 고민은 특별한 누군가 만의 것이 아니라 누구나 겪는 일상의 한 부분임을 알려준다.
이 책을 읽는 독자는 때로는 작가가 되었다가 때로는 에피소드의 주인공이 되었다가, 그렇게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며 ‘위로’라는 선물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작가가 인용한 수많은 책과 영화는 더더욱 우리의 내면을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씨앗이 될 것이다.
| 지은이에 대하여 |
감정쓰레기통이 되면 어때서
고등학교 때부터 다큐멘터리 방송 작가가 꿈이었다는 작가 정화영은 어떻게 보면 꿈을 이룬 사람이다. 혼자 자료 조사해서 썼던 생애 첫 번째 기획안이 상을 받게 될 줄이야. 그렇게 SBS TV 문학상에서 다큐멘터리 부문 우수상을 받으며 진짜 방송 작가가 되었다. 이후 그녀는 한 가지 고민에 빠졌다.
“방송일을 시작한 지 겨우 2년 만에 지상파 메인 작가가 되긴 했는데 말이죠.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글을 잘 쓰기 위해,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뭘까 고민했어요. 그리고 알게 됐죠. 공감이라는 걸요. 출연자의 감정과 인생에 공감하는 습관은 그렇게 조금씩 생겼어요.”
휴먼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때 작가는 PD가 찍어온 영상과 일방적인 공감을 해야 한다. 출연자는 이미 과거의 모습으로 남아 작가의 손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렇게 영상을 보며 주인공의 희로애락을 따라가다 보면 박수를 치기도 하고 함께 울기도 한다. 심지어 주인공이 멍하니 서 있는 뒷모습에서도 그들의 감정을 읽기도 한다.
작품에 출연하는 사람들은 한국인일 때도, 언어가 다른 외국인일 때도 있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일 때도 아파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좌절에 빠진 사람일 때도 있다. 작가에게 관찰의 대상은 언제나 달랐지만 누구든 상관은 없었다.
그녀는 누구보다 삶의 소리를 잘 끄집어내는 작가다. 그래서 자신이 감정쓰레기통이 되면 어떠냐고 말한다. 휴먼 다큐멘터리 작가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렇게 스스로 감정쓰레기통이 되어 수많은 영상의 주인공들이 내뿜는 감정들을 모두 받아주었다. 그게 그녀의 일이었다. 그녀 주변을 스쳐 지나갔던 수많은 인연들 사이에서 그들의 감정을 읽고 그들의 감정에 공감하고 때로는 위로를 보내며 기록했다.
서문
기적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로하던 순간에 일어났다
위로 받고 싶은 날들이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주하는 거절, 예상하지 못했던 배신, 용서되지 않는 상처, 나를 기만하고 속인 사람들. 열심히만 하면 될 줄 알았지만, 줄 세우기로 버림받았을 때 - 나는 눈물도 나오지 않아 주저앉았다.
가끔은 나의 신앙심을 부채질해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기도 했지만, 그렇지 못한 날도 많았다. 신이 도와주려고 해도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받을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며 사람을 찾아가 변명하기도 했다. 억울하다거나, 화가 난다고도 했다.
그렇게 해도 해결되지 않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쓸릴 때면 방송사 앞에 있는 작은 편의점에 들어가 병맥주를 사마시기도 했다. 유리창 너머로 누군가 아는 얼굴이 없기를 바라면서.
때론 친한 동료들과 작은 공원에 숨어 들어가 수다를 떨기도 했다. 선배 그리고 후배와 함께 나를 가해한 사람을 욕하기도 했다. 그것이 그때 할 수 있던 위로의 방법이었다.
하지만 가까운 동료에게 남긴 말이 부풀려져 또 누군가에게 생채기를 냈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사람이 아닌 다른 것에서 위로를 찾기로 했다. 해결되지 않는 깊은 절망과 슬픔에 잡아 먹히기 전에, 뭔가 하기 위해 눈을 들어야 했다.
그날이었다. 내가 하던 프로그램이 폐지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냥 ‘기분 나쁘다’라는 말로 설명 안 되는 허무함에 빠졌다. 다행히 나는 새로 시작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소위 ‘선택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빚진 것 같았고, 감정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밤 10시를 십분 남겨놓은 늦은 시간까지 회의하다 사무실을 빠져나왔을 때, 나는 돌연 목적지를 바꿨다. 늦은 밤 찾아간 곳은 예술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이었는데, 상영 날짜가 얼마 남지 않은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2011)을 보기 위해서였다.
새로 생긴 고속 열차가 반대편 기차와 스치는 순간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망상 같은 기적을 꿈꾸는 아이들이 각자의 소원을 빌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였다. 아이들은 기찻길을 따라, 고속 열차가 스치는 시간을 찾아서 유랑하고 있었다.
어른들은 믿지 않을, 기적을 꿈꾸는 여행을 쫓아가면서 나는 예상 못 했던 위로를 받았다. 정말로 고속 열차가 스치는 순간을 마주한다고 해도, 기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 희망에 가득 찬 아이들 얼굴이 내 모습 같아 웃음이 나왔다.
그 밤 잠자리에 누워 기적에 관해 생각해보았다. 정말 진짜로 일어날지 모를 기적이라는 것이 나의 삶에 있었을까? 질문은 어리석었지만, 답은 명확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어쩌면 기적은, 좌절이 만든 자리에서 포기하지 않고 발버둥 치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기적은, 슬픔에 사로잡힌 순간을 박차고 일어섰던 그때였다는 것을. 그래서 기적은, 내 삶에 이미 여러 번, 일어났었다는 것을.
***
그렇게 다른 위로를 만났다. 문학이, 영화가, 시와 노래가, 음악과 미술이 주는 위로였다. 언어가 있기도 했고, 침묵일 때도 있지만 형식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나는 진짜 어른이 됐고, ‘기적을 꿈꾸던 나’에서 ‘기적을 경험하는 나’로 성장했다. 그래서 오늘, 나의 부족한 위로를 낙서 같은 글로 대신해 말할 수 있다.
나는 특별한 위로자는 아니지만, 당신이 어떤 위로라도 해달라고 내 팔을 두 번 친다면. 함께 대화하자고 손 내밀 수 있다.
Although the world is full of suffering, it is also full of overcoming of it.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지만, 그것을 이겨내는 일로도 가득 차 있다.)
- 헬렌 켈러 (Helen Keller)
밤 12시 무렵이었다. 잠이 들 시간은 아니었지만 잠잘 준비를 끝낸 나는 널찍한 침대에 누워 이불에 몸을 비비고 있었다. 한 손에 핸드폰을 들고 궁금하지 않은 뉴스들을 보면서 내가 세상과 분리되지 않으려고 애쓰는 중이었다. 그때 전화가 왔다.
“잤어?”
바짝 긴장한 친구의 목소리가 낯설었다.
“안 잤지.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저기 내가 할 말이 있어서….”
말투가 이상했다. 마치 누군가 곁에 있는 듯. 아니 자신의 곁에 있는 사람에게 쇼를 시작하는 사람처럼, 부자연스러웠다.
“뭐야. 누구랑 같이 있어?”
“…….”
“누구랑 같이 있는데?”
“…….”
“남편이랑 싸웠어?”
숨소리가 다르게 느껴졌다. 친구가 밤 열두 시에 전화해서는 입을 다물다니…, 내가 알아야 했다. 내가 친구의 마음을 헤아리고 입을 열게 할 한마디를 해야 했다. 뭔가 안 좋은 일이 벌어지려는 것은 아닐지, 머리가 팽팽 돌았다.
“나 들을 준비 다 됐어. 다 괜찮으니까 말해. 괜찮아. 말해봐.”
그리고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 친구가 입을 뗐다.
“고해성사를 하려고 합니다. 저는 죄를 지었습니다.”
“……!”
숨소리를 죽여가며 수화기에 귀를 바짝 가져다 댔다.
방금까지 평화롭던 나의 세계는 사라졌고, 이내 어두운 밤 어딘 가에 아이처럼 주저앉아 있을 친구의 세계가 열렸다.
“남편이 아닌 남자를 만났습니다.”
사실 나는 알고 있었다. 어찌 모를 수 있을까. 남편과의 불화가 길게 이어졌고, 외롭게 혼자 두 아이를 키우고 있었으니까. 돈을 벌겠다고 들어간 그곳에서 다정하게 도와주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난 이미 알았다. 친구는 그 남자에게 인생을 기대고 싶었다는 걸. 슬픔을 위로받고 싶었다는 걸.
친구의 고해성사를 뚝 잘라내며 다시 물었다.
“알아. 지금 같이 있어?”
“응.”
“근데 왜 지금 전화를 해. 남자 보내고 전화해. 지금 어딘데?”
“차 안이야.”
“빨리 들어가. 애들 기다리잖아. 어서 집에 들어가서 전화해.”
나는 다그쳤지만, 친구는 울기 시작했다. 숨소리만 들려왔지만 난 알 수 있었다.
‘헤어지려고 했어. 오늘 헤어지려고 했어. 너한테도 얘기하고 내가 잘못하고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어. 아이들에게도 미안해. 그런데 잘 안돼. 어떻게 해. 나를 도와줘’라는 말. 하지 않을 그 말들이 들리는 듯했다.
친구는 함께 있는 ‘남편 아닌 남자’에게 아마도 그날 헤어질 것을 말했을 것이다. 나에게 전화했지만, 그 말은 내가 아닌 그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힘이 들고, 상처가 되고, 헤어져야 한다는 걸 알고 있으니, 제발 이 관계를 끝날 수 있게 도와 달라는 말이었을 것이다.
한참 울고 난 친구는 전화를 끊었고, 나는 ‘기다릴게. 다시 전화해’라고 덧붙였다.
***
며칠이 지났다. 장거리 운전을 해서 친구를 만나러 갔다. 경기도에서 서울을 지나 다시 경기도로, 지도를 대각선으로 접은 것처럼 멀리 떨어져 자주 보지 못한 친구를 오랜만에 봤다. 우리는 함께 나이 들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내가 먼저 말했다.
“뭐야. 왜 이렇게 좋아 보여?”
놀리듯 물었더니 피식 웃는다. 좋을 일이 있을 것도 없는 친구의 삶을 이미 다 알고 있는데.
“남편은 요즘도 집에 안 와?”
‘남편 아닌 남자’의 이야기는 뒤로 미뤘다. 내가 얼굴도 알고 밥도 같이 먹었던, 결혼식장에도 쫓아가 축복을 빌었던 남편의 안부부터 먼저 물었다.
출장이 잦은 직업을 핑계로 떨어져 살다 보니 아이들과도 이미 서먹해진 ‘한 집안의 가장’은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집에 자주 오지 않았다. 게다가 술주정과 폭언, 폭력을 반복하던 가장이었으니, 가족도 마음이 떠나버린 지 오래였다.
그리고 다음 순서를 진행했다.
“그 남자 한 번 같이 만나자. 내가 물어볼 게 있어서 그래.”
“…그럴까? 아니다. 아니야.”
친구는 깊은 비밀 속에 숨은 얼굴을 내게 결코, 보여주지 않을 작정인 듯했다. 스무 살,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처럼 - 친구는 긴 갈색 머리는 길게 늘어뜨리고 덧니를 들어내고 웃었다. 마음이 약해 싫은 소리는 하지 못하는 착한 소녀. 어디서 왔을지 모를 인생의 죄책감을 어깨에 메고 매번 헛웃음으로 단단하게 자리를 지켜왔던 친구였다. 거친 세월에 무뎌졌고 단단하고 억세 졌던 얼굴이 다시 소녀처럼 되어 있었다. 틀어 올리고 묶어 두었던 머리칼을 다시 길게 늘어뜨리고 앉아 또 수줍게 웃었다.
‘아이 씨 뭐가 이렇게 아이러니야. 뭐야, 사랑에라도 빠진 거야?’ 묻고 싶었지만, 그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나에게 고해성사를 하던 친구의 진심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사랑’이라는 단어는 쓰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그 친구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불륜’이라는 말도 쓰지 않기로 했다.
그 밤 친구의 고백은, 그저 자신과 가정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었다는 걸, 나는 안다.
“왜 안 보여주려는데. 내가 그 남자 만나는 게 싫어?”
“응.”
“그럼…, 헤어질 거야?”
“그래야지.”
차마 친구 얼굴을 보지 못해서 커피잔만 만지작거렸다.
“잘 생각했다. 헤어져. 당장 헤어져. 알았지?”
대답 없는 친구한테 한 마디 덧붙였다.
“남편하고도 헤어져. 당장 헤어져. 그냥 다 헤어져. 알았지?”
친구는 피식 웃었다가, 깔깔 웃는다. “그럴까?” 하고는 다시 배시시.
***
아내의 외도를 눈치챈 사무엘은 불륜남을 직접 만나러 가기 전 권총 한 자루를 샀다. 그저 권총 한 자루를 산 것뿐인데. ‘사무엘’은 몇 년간 잊고 살았던 삶의 환희를 경험한다. 소설 『케네디와 나』(장 폴 뒤부아, 밝은세상, 2006)의 이야기다.
작가이자 세 아이의 아버지인 마흔다섯 살 ‘사무엘 폴라리스’에게 어느 날 권태가 찾아왔다. 애정을 가지고 지키려고 했던 모든 일에 회의가 느껴졌고 무력감이라는 늪에 빠져버린 것이다. 그런데 서랍에 들어 있는 ‘권총 한 자루’가 사무엘을 조금씩 흔들게 된다. 권총이 준 용기였을까? 아내의 불륜남을 직접 찾아가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가 하면, 자신을 무시하던 치과 의사를 물어뜯기도 했다. 게다가 몇 년간 거리를 두고 살았던 아내와도 다시 잠자리를 한다.
권태는 우리를 무너뜨리는 무서운 질병이다. 관계에서만이 아니다. 반복되던 일상, 매일 습관처럼 가는 회사에서도 권태는 찾아온다. 문제는 이 권태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고, 빠져나오려다 잘못된 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사무엘이 가진 권총 한 자루가 없다. 하지만 무엇이라도 꺼내 들어야 한다. 절망이 가끔은 분노가 되어 나를 지켜주는 것 같아도 그건 방법이 아니다. 힘없이 쓰러진 나를 일으킬 뭔가를 찾아내지 않는다면 돌이킬 수 없는 늪에 빠질 수도 있다.
나는 나 혼자만의 세계에 틀어박혀, 말하자면 아내와 세 아이와는 전혀 상관없이 혼자 사는 셈이다. 우리는 한 집에 살지만, 다 같이 살고 있는 게 아니었다. 우리는 이른바 가족이라는 일체감을 잃어버린 지 아주 오래되었다. 세월이 갈수록 우리의 감정은 파편화되어 조각조각 흩어졌다. 그렇다고 우리 중 그 누구도 각자 다른 세계를 찾아 떠나 살만큼 똑똑하거나 용기가 있는 것도 아닌 채 서로 멀어졌다. 오늘도 한 집에 모여 보통 가족의 관습과 형태를 그대로 흉내 내며 정해진 시간에 함께 식사를 한다. 그러나 나머지 시간에는 각자 무엇을 하든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게 유일한 자존심이라도 되는 사람들처럼 서로 모른 체하며 지낸다.
(중략)
나는 옷을 다 벗은 채 욕실 거울 앞에 섰다. 김이 잔뜩 서려 불투명해진 거울을 통해 나의 모습이 조금씩 보였다. 내 섹스의 윤곽도 보였다. 마치 죽은 새 같다.
- 장 폴 뒤부아의 소설 『케네디와 나』 중에서
***
그날 이후 친구가 그 남자를 계속 만나고 있는지, 묻지 않았다. 어쩌면 그냥, 내가 비밀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내가 다른 일로 안부를 물을 때마다 나와의 약속을 기억할 테니까. 위로는 이렇게도 다가간다.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말이다.
나는 위로 전문가는 아니다. 그냥 평범한 사람이다. 직업은 방송 작가지만 글 쓰는 일이라면 뭐든 한다. 생계형 작가니까, 돈을 준다면 쓴다. 홍보물도 쓰고 웹드라마도 쓴다. 글을 쓰는 일이 익숙하니까. 그냥 쓴다.
그런 나에게 가끔, 예고 없이 누군가가 찾아와 삶의 통증을 덜어내려 한다. 전화가 오고, 메일이 오고, 문자도 톡도 온다. 그리고 우리는 만난다. 부족한 위로의 말을 건네고 서로를 바라본다. 이것이 전부다.
위로 전문가가 아닌 내가 서툴게 위로를 하다가 가끔 그 ‘억지스러운 격려’ 때문에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런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 나에게도 있다.
소연이는 착한 동생이었다. 나이도 한 살밖에 차이 나지 않았는데 늘 존댓말을 썼다(내가 12월생이었고 소연은 3월생으로 겨우 내가 3개월 언니였지만). 때론 소연의 ‘예의 바름’이 부담스러워 “그냥 반말해!”라고도 해봤고, “뭐야~ 나만 늙은이 같잖아~”라고도 했지만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우리는 더 가까워지지도, 더 멀어지지도 않고 일정 거리를 유지했다.
우리는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을 하면서 만났다. 다른 프로그램 작가였지만 경력도 비슷하고 집 방향이 같아서 자연스레 같이 퇴근했고 긴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 퇴근길이 1년 정도 이어지다가 내가 라디오를 떠나 TV 방송으로 일자리를 옮기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서로의 일상은 쉽게 공유되지 못했지만, 가끔 만나 수다를 떨며 인연을 이어갔다. 1년에 한두 번 문자를 주고받았고 문득 생각날 때 밥을 먹고 문득 서로를 걱정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이었다. 출근 준비를 한참 하고 있던 때에 전화가 왔다.
“소연! 안녕? 잘 있었어? 근데 급한 일이야?”
“아니에요, 언니. 바쁘시면 나중에 전화할게요.”
소연의 예의 바른 태도에 잠깐 긴장이 됐다. 1년 만의 전화 통화인 데다가 지나치게 정중한 태도였기에 “내가 좀 있다가 할게!”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괜히 상처받을까 신경이 쓰여 전화를 끊을 수 없었다.
“아니야. 그냥 얘기해. 무슨 일 있어?”
나는 한 손으로 집 정리를 하면서 대화를 이어 나갔다. 시계를 힐끔 봤다. 회의에 맞춰가려면 10분 내로 나가야 했다. 결국 뛰다시피 하면서 소연이 하는 말을 들었다.
“내가 좀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은 내가 자기를 좋아하는지를 몰라요. 오늘 그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전혀 예상 못 했던 주제였다. 아침 9시가 좀 넘은 시간에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되는 거였다.
“아. 그래? 어떤 관계인데? 일하면서 만난 사람이야?”
동생이 좋아하는 남자와 처음 만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는데, 나는 순간 집중력을 잃었다. 길게 들어줄 시간은 부족한데 어떻게 대화를 이어가야 할지 머릿속이 하얘졌다.
“근데 미안해 소연아. 그런 얘기는 지금 내가 시간이 부족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