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sser spät als nie:
Eine Liebeserklärung an das Alter
By Mechthild Grossmann & Dorothea Wagner
Copyright ⓒ Insel Verlag Berlin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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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독자 여러분
여러분이 이 책을 손에 들고 있다니 정말로 감격스럽네요. 이 책은 ‘할머니와 손녀’ 관계인, 우리가 나눈 수많은 대화를 기록한 칼럼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 대화는 나와 할머니 모두에게 큰 선물이 되어주었습니다. 대화를 통해 서로를 훨씬 잘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할머니와 손녀의 관계는 항상 특별합니다. 다행히도 우리는 지금까지 늘 친하게 지냈지요. 하지만 마치 부모 자식 같기도 한 우리 관계는 오랫동안 나를 돌봐주셨던 나의 할머니 메흐틸트 덕분입니다. 할머니는 나를 위해 존재하셨죠. 할머니는 나를 데리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다녔고, 내가 벌에 쏘였을 때는 나를 치료해주셨으며, 전화로 요리 레시피를 알려주셨죠.
나는 사실 사람들의 내면세계에 대해 깊이 알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할머니가 젊은 시절에는 어떻게 살았는지, 나이가 들어서 걱정하는 것, 행복을 느끼는 부분이 무엇인지, 또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가까웠지만, 나는 할머니의 많은 부분을 놓치고 살았습니다.
이 모든 것에 대해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난 후, 나중에 녹음한 내용을 들으며 나는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우리가 얼마나 비슷한 면이 많은지 알게 되었지요. 우리는 함께 웃었고 산책하는 동안 얼굴에 햇살이 내리쬘 때는 비슷한 모습으로 그 기쁨을 만끽했지요.
할머니가 과거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나는 젊은 여성으로서 우리 두 사람이 얼마나 공통된 경험을 많이 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할머니가 할아버지와 어떻게 사랑에 빠졌는지, 두 사람의 데이트는 얼마나 즐거웠는지를 들었고, 이후 할머니가 살아오면서 계획했던 것과는 다르게 일어나는 일들을 어떻게 헤쳐왔는지를 흥미진진하게 들었습니다.
이 대화를 통해 우리는 새롭게 만날 수 있었답니다. 우리는 모든 조부모와 손주들에게 이런 대화를 나누어보기를 권합니다. 조부모와 손주 세대가 서로 마음을 열게 되면 거기서 경험한 것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당신이 지난 10년 동안 얼마나 다른 삶을 살았건 간에, 그 안에는 당신의 할머니와 비슷한 삶의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젊음의 불확실성과 설레는 첫사랑, 괴로운 역경과 일상의 크고 작은 행복…… 이러한 순간들이 얼마나 비슷한지, 조부모님의 삶을 통해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지를 깨닫는 것은 매우 소중한 일입니다.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던 칼럼도, 이 책도 이제 끝났지만 우리의 대화는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랐지만 서로에게 해줄 말이 아주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서로에게 조언을 해주며 상대의 말을 귀담아 듣는 것은 얼마나 값진 일일까요?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대화를 통해 우리는 서로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이제 독자 여러분이 귀를 열고 우리의 대화를 즐기실 때입니다.
메흐틸트 그로스만과
그의 손녀 도로테아 바그너
서문
1
아이쿠! 나 늙었구나! 나이에 겁먹는다는 것
나는 아직도 필요한 것이 많은가? 노년의 쇼핑
짝을 찾아드립니다 오늘날의 파트너 찾기
수영복 몸매의 비결 주름의 아름다움
대체 어디를 또 눌러야 되는 거지?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세상을 가르치기 시작할 때
숨을 깊이 내쉬세요 노년의 운동
진정 위안을 주는 것 조문 편지에 대해
나는 부드러운 증조할머니 손주 양육법
맛있는 케이크를 줘! 노년의 유혹
한 번씩은 바바 가누쉬Baba Ganoush를 먹자! 입으로 여행하기
일요일 저녁의 무서움은 어떻게 사라지는가 외로움에 대처하는 법
로마를 구경하고 죽다 크고 작은 모험들
결코 늦지 않다 노년의 새로운 경험들
세탁기와 휴대전화에 대한 사랑의 선언 과거에 모든 것이 더 좋았다는 미심쩍은 말
오래된 주소록 친구들에게 작별 인사하기
냄새나는 정장과 마블 케이크 장례식의 중요성
문 앞의 자유 지팡이와 보행 보조기
2
늙은 남자, 젊은 여자 나이 차이가 큰 커플
추리닝 바지를 입은 오후 노후의 자유로움
구원은 마지막에 온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
내 장례식에 대한 다섯 가지 소원 이별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한창때의 나 노인도 한때는 젊었다
요거트 사기 노인 대상의 범죄
조심해서 운전하렴 나이 들면 모성이 사라질까?
현대 의학의 선물 인공 고관절
꽃양배추 헤어스타일 여성의 탈모
그가 더 이상 화장실을 찾을 수 없던 날 알츠하이머는 결혼 생활을 어떻게 바꾸는가
더 이상 아내가 아닌 가정부 배우자 돌보기
고장난 심장 배우자를 요양원으로 보내는 결정에 대해
그들이 존경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 요양원과 관리 시스템
당신 없는 세상 남편이 세상을 떠난 날
함께 그를 그리워하다 장례식 계획 세우기
3
나의 행복, 너의 행복 자원봉사 활동의 가치
사랑스러운 괴벽 노년에 성격이 변할 수 있는지
한 번쯤 바다를 건너 노년의 장거리 여행
아주 오래된 생일잔치 높은 숫자의 생일
먼지만 쌓이는 선물은 그만! 노인을 위한 선물
고요한 밤 크리스마스이브는 나 혼자
멋진 결심 노년에 세우는 목표
클릭하고 문을 연 다음 가져가세요! 온라인 쇼핑의 기회
그 옛날 우리의 섹스 은밀한 교육과 피임이라는 어려운 문제
우리 시대의 행복 신화 나이 든 세대의 사랑의 비밀
자동차 키를 넘기며 노년기의 운전
뭐라고 하셨죠? 노년기의 청력
나의 선택 연명 치료 거부 의향서의 중요성
미소 짓는 주부 과거에 지배적이었던 여성의 이미지
향수라는 필터 과거를 미화하는 것의 위험성
4
‘감자 튀김’ 관계는 원치 않아! 노년에 맞이하는 낯선 썸
콘서트에 같이 갈 남자를 찾고 있어요 다시 새로운 관계를 맺고 싶은지에 대해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 나의 상속 정보
아직도 이걸 먹어? 노년의 식욕
느림의 발견 절반의 속도로 산다는 것
그거 누가 마셨어? 와인과 포기에 대해
잼 공장 홈 메이드 잼과 감사의 시간
지폐 대신 동전 은행 잔고와 연금 소득의 변화
제발 나를 요양원으로 보내줘! 누가 나를 돌볼 것인가
양보할 수 없는 오후 낮잠 휴식이 주는 마법의 효과
나는 베이지색을 좋아하지 않는다 노년의 스타일
아직 보고 싶은 것 해야 할 중요한 일의 목록
내 갈비뼈는 이걸 견딜 수 없다! 노년기의 유연성에 대해
삶에서 배운 것들 노년의 중요한 깨달음
악마에게 사로잡혀도 좋다 사후 세계에 대하여
나는 작은 가게에서 자원 봉사를 하고 있다. 최근에 나는 창고에 쌓인 먼지를 꼼꼼하게 닦고 싶어서 작은 사다리를 놓고 올라갔다. 그러자 다른 직원이 나를 향해 달려왔다.
“그로스만 부인, 조심하세요. 넘어질 수 있어요!”
나는 젊은이들을 기죽이는 법을 알고 있다. 나에게는 세 명의 자식과 여섯 명의 손자, 증손자 한 명이 있으니까. 젊은 남자 직원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 나는 느리고 단호한 말투로 말했다.
“고맙지만 난 아직 100살도 채 안 됐답니다.”
물론 그 불쌍한 직원을 기분 나쁘게 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나를 늙고 허약한 할머니로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익숙해지지 않는다. 나조차도 내가 늙었다는 사실을 줄곧 잊고 살기 때문이다. 물론 거울 근처에 다가갈 때를 제외하고는.
주름살이 늘어가는 것을 보며 나는 곧 늙어간다는 느낌이 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젊은 시절에 나는 어른이 되면 분명 세상이 달리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른이 되어서는 노인이 되면 분명 다른 느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나는 말할 수 있다.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눈을 감으면 나는 내가 젊다고 느낀다. 마음이나 영혼, 뭐라고 부르건 그런 것들도 늙는 것인지 나는 궁금하다. 뭔가를 생각할 때 항상 내 머릿속에서는 어떤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목소리는 젊은 시절부터 변한 것이 없다.
물론 내 삶은 많이 달라졌다. 모든 것이 바뀌었다. 어느새 나는 유부녀가 아니고 미망인이 되었다. 또한 이제 더 이상 어린 자녀를 둔 어머니가 아니라 증조할머니가 되었다. 이제 나는 일정한 스케줄이 없다. 매일 아침 침대에서 더 오래 머물러 있어도 된다. 친구들은 언제부턴가 더 이상 일상이나 방금 전 읽은 책에 대해 말하지 않고 대부분 병원에 간 얘기, 달고 다니는 질병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게다가 세상과 단절되고 싶지 않다면 젊은 사람들이 나에게 세상에 대해 설명하는 얘기를 줄기차게, 정말로 줄기차게 들어야만 한다.
하지만 그것은 늙어가는 것의 한 부분일 뿐이다. 늙는다는 것에는 여러 가지 자잘하지만 멋진 순간들이 있다. 가령 나는 내 나이에 비해 몸이 매우 건강하다고 느끼는데 아침에 수영을 하러 갈 수도 있다. 또한 나이가 들면 놀라울 정도의 자유로움을 경험할 수 있다. 어느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무엇이 나에게 좋은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정말 근사한 일이다. 크림 케이크도 내가 선택하고 향기로운 리슬링Riesling(청포도 품종의 하나로 독일의 라인 강이 원산지이다) 와인도 선택할 수 있다. 멋진 인생을 선택할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을 세상으로부터 멀어지지 않게 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이 용기는 분명 가치 있는 것이다. 나이에 대한 두려움과 그로 인한 결과를 극복할 때마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언젠가 손녀가 전화를 걸어 나이가 드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것이 우리 삶의 크고 작은 순간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말해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을 때 내가 생각한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내 마음속의 나는 전혀 늙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 얼마나 많은 것들이 변했는가? 게다가 손녀에게 이런 내 마음을 모두 보여주려면 이 모든 것들을 좀 더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었다. 그래, 얘기해주마. 나는 손녀에게 대답했다.
내 삶에 대한 생각의 타래를 풀어 정리해보고 싶다. 가끔 머릿속에 스치는 외로움과 그 외로움에 맞서는 데 무엇이 도움이 되었는지 돌아보고 싶다. 수영복 밖으로 늘어진 살을 출렁거리며 야외의 수영장에서 걸어다니는 기분이 어떤지 이야기해보고 싶다. (쉿, 비밀인데 올바른 자세로 걷기만 한다면 이 또한 멋진 일이다. 아무튼 나는 지금도 야외 수영장에 가는 걸 좋아한다.) 또한 노인에 대한 여러 가지 편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고, 옛날보다 삶이 더 나아진 점도 있다는 걸 얘기해주고 싶다. (가령 세탁기나 패션, 교육 등.) 또한 사랑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다. 내가 여전히 섹스를 그리워하는지, 내 또래의 남자들이 어째서 ‘감자튀김 연애Bratkartoffel-Afferre(결혼도 동거도 하지 않고 그저 연애만 즐기는 패턴에 대한 비유)’를 선호하는지에 대한 질문에도 답해보려 한다. 또한 식기세척기에 그릇을 넣을 줄 알며, 나의 축 늘어진 살결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소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새로운 사랑을 내가 얼마나 꿈꾸는지에 대해서도 말해주겠다.
나이가, 많은 이들을 두렵게 한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 사람들은 백발과 삐걱거리고 아픈 관절, 그리고 은퇴 후의 하품으로 점철된 공허한 날들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내가 나이 들어 배운 것이 있다면 이것 하나이다. 인생 최고의 시기는 노년에서 끝나지 않는다! 어쩌면 노년은 단지 시작일지 모른다. 무릎이 쥐어짜듯 아프건 말건 매일 아침 눈을 뜨면 크고 다채롭고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오랫동안 자줏빛 코트를 꿈꿔왔다. 사실 내 경험에 따르면 당신이 어떤 용도의 옷을 찾고 있다면 어느 가게에서건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최근에 뮌헨에 있는 손녀를 방문했는데, 어느 가게의 진열대에 걸려 있는 외투에 우연히 눈길이 갔다. 디자인과 색깔, 그 모든 것이 내가 상상하던 그대로였다. 엄청 추운 날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초봄의 쌀쌀한 날씨에 입기 안성맞춤인 그런 코트였다.
젊었을 때라면 나는 망설임 없이 코트를 집어서 계산대로 가서 달라는 대로 돈을 지불했을 것이다. 꿈의 코트를 발견한 사람이 응당 해야 할 행동 아닌가? 하지만 요즘에 나는 그런 순간에도 망설인다. 한 가지 질문이 머릿속에 박혀 있기 때문이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을까?
그 코트를 입을 수 있는 따스한 봄날이 나에게 얼마나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 이는 나에게 앞으로 남아 있는 봄날이 얼마나 되는가의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때 나에겐 삶이 끝없는 나날의 연속처럼 보였다. 이제 더 이상 그렇지 않다. 내 앞에 남아 있는 날들은 이제 어느 정도 헤아릴 수 있을 만큼의 숫자로 줄어들고 있다.
프랑수아 를로르François Lelord(프랑스의 정신과 의사이자 작가)의 책에서 나이에 대한 멋진 비유를 읽은 적이 있다. 개는 약 15년을 산다. 젊을 때에는 당신이 한 평생 여러 개와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당신이 죽을 때까지 삶을 공유할 수 있는 개의 숫자는 줄어든다. 아마 나에겐 겨우 개 한 마리의 수명만큼의 시간이 남아 있을 뿐 그 이상은 아닐 것이다. 새로운 자줏빛 코트를 몇 벌이나 살 수 있을까에 대한 문제도 이와 관련되어 있다. 혹은 그와 적용시켜 생각해야만 한다.
나는 특히 내가 죽고 나면 쓰레기통에 버리거나 헌 옷 더미 속으로 들어갈 것이 분명한 물건들에 대해서는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다른 물건들은 걱정하지 않는다. 내 아이패드는 내가 죽은 후에도 주인을 쉽게 찾을 것이다. 내가 일부러 최신 버전을 샀기 때문에 내 손주 중 누군가가 그걸 물려받을 때쯤에도 여전히 쓸 만할 것이다. 핸드백? 누군가는 좋아할 것이다. 보석이야 말해 뭐 하겠는가? 하지만 옷은? 나는 가족 중에서도 유난히 키가 작기 때문에 내가 물려줄 자줏빛 코트는 딸의 허리춤에나 겨우 올 것이다.
문제는 내가 계속 자줏빛 코트와 같은 문제로 씨름하고 있다는 것이다. 남편이 죽기 전에 나는 작은 아파트로 이사했다. 최근에 진공청소기로 거실을 청소하면서 나는 카펫의 한쪽 면에 실이 많이 풀려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수공예로 짠 카펫이어서 질이 좋은 제품이었다. 하지만 실이 풀어진 것은 카펫 탓만도 아니다. 거의 내 나이만큼이나 오래된 카펫이기 때문이다.
젊었다면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를 찾아온 손님들도 그런 일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젊은이들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이제 나의 집을 찾아오는 이들은 대체로 집안에 놓인 세간의 상태에 관심을 기울이는 나이 든 사람들이다. 나는 카펫과 같은 단순한 세간에 돈을 써야 한다는 운명을 거의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났다. 카펫의 위치를 반대 방향으로 돌려놓기로 한 것이다. 실밥이 터진 부분은 이제 소파 밑으로 들어가서 아무리 흠 찾기를 좋아하는 손님이라도 절대로 보이지 않게 되었다. 거실 마루 쪽에 깔려 있는 카펫은 아주 말끔해 보였다.
가구와 카펫을 옮기는 것은 몹시 지치는 일이다. 일이 끝난 후에는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쉬어주어야 한다. 나는 가게로 달려가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자줏빛 코트를 입었다.
‘내 인생에도 봄날이 필요해.’
내 마음이 그렇게 말했다.
젊은 남자들 여러 명이 내 식탁에 앉았다가 떠났다. 처음엔 딸들의 남자 친구였는데 나중에는 손녀들의 남자 친구들까지 다녀갔다. 남자 친구들은 모두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가족들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자리에선 항상 목소리가 떨리기 마련이다. 나는 후식으로 빨간 과일 젤리를 만들곤 했다. 그 자리에서 나는 항상 “걱정 마세요. 안 물 테니까”라고 농담하곤 했다.
요즘 사람들이 쉽게 여러 번 상대를 바꾸어가며 사는 방식이 나는 좋다고 생각한다. 서로 맞지 않으면 헤어지는 것도 훨씬 쉬워졌다.
하지만 오늘날의 파트너 찾기 방식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어째서 모두 겉모습에 그토록 치중하는가 하는 것이다. 손녀 중 한 명이 뮌헨에 사는데 최근 그 애의 집에 갔을 때 손녀는 휴대폰을 꺼내 ‘틴더Tinder’라는 사이트를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 안에는 수많은 싱글들의 사진이 있었다. 만약 남자가 마음에 들면 오른쪽으로 밀고 맘에 들지 않으면 왼쪽으로 밀면 된다. 오로지 외모만 보고 선택하는 것이다.
기나긴 배우자와의 동반 생활에서 내가 배운 것이 하나라도 있다면 그것은 외모와는 상관없는 것이다. 젊은 시절에는 대부분 아름답다. 그러다 결국 누구나 주름과 틀니를 갖게 되는 때가 온다. 하지만 유머 감각과 같은 내적 요소는 외모와는 상관없다. 당신이 10대에도 유머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었다면 연금수령자가 되었더라도 농담을 잘 할 것이다. 이는 ‘원 나이트 파트너’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같이 농담을 나눌 수 있다면 더 멋진 하룻밤이 될 것이다. 옷을 벗는 것도 어느 정도는 웃기는 일이 아닌가!
내 손녀는 틴더가 실생활에서 서로를 알아가고 서로의 성격이 맞는지 알아보는 데 매우 빠르고 유용한 앱이라고 말했다. 그런 다음 함께 농담 따먹기를 할 수 있는 사이일지, 아니면 지루한 저녁을 보내게 될지 실제로 시도해볼 수 있는 것이다.
학생 시절이었던 1950년대 후반, 나는 뮌헨 슈바빙Schwabing의 작은 방에서 세 들어 살았다. 심지어 그 방조차도 친구와 나눠 쓰고 있었다. 그래서 남자가 찾아오기라도 하는 날이면 미리 준비를 해야 했다. 게다가 그런 날에는 집주인도 반드시 나타났다. 그 당시에는 ‘커플 규정’이라는 것이 있었다. 미혼 여성이 세 들어 사는 방에 남자를 들이는 것에 대해 아무 제재를 가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집주인은 처벌받을 수도 있었다. 우리 둘 중 한 사람이 남자 손님을 데리고 오면, 정각 10시에 집주인이 찾아와 주먹으로 방문을 두드리며 “그 남자를 방에서 내보내!”라고 소리치곤 했다.
당시 미래의 남편이었던 울리와 개인적으로 만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나마 그의 집주인은 우리 집주인보다는 좀 관대한 편이라 그는 몇 번 정도 나를 집으로 초대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요리용 냄비가 하나밖에 없던 처지에서도 그는 나에게 잘게 다져진 당근이 들어간 훌륭한 볼로네즈 스파게티를 대접해주었다. 그것은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훌륭한 요리사는 평생 훌륭한 요리사로 남을 것이다. 그건 유머 감각과도 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애를 좀 더 쉽게 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아쉬움이 들 때가 많다. 시대가 변해서 집주인들이 더 이상 문을 쾅쾅 두드리지 않게 된 세상이 나는 너무나 반갑다. 〈카사블랑카〉 같은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위대하고 격정적인 사랑에 빠지는 일은 내 젊은 시절에는 도저히 가능하지 않았다.
내가 빨간 과일 젤리를 너무 자주 만드는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나는 손주들이 행복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이 보기 좋다. 현실에서 나는 더 많은 〈카사블랑카〉를 지지한다.
나는 내 주름을 매우 잘 알고 있다. 매일 아침 화장실에 갈 때마다 마주치게 되니까. 우리는 같은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어느 주름살이 언제 깊어져 내 피부 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는지 일일이 다 기억할 수 있을 정도이다. 가령 눈꼬리와 관자놀이 사이에 생긴 주름살을 보자. 이것들은 50대 초반에 등장했다. 손주를 돌보던 시절이었는데 잠 못 이루던 밤마다 한 줄씩 늘어난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우리는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어느 날 거울을 보다가 갑자기 자신이 늙었다는 것을 깨닫는 게 아니다. 어느 때부터인지 얼굴이 피곤에 절어 있다. 아무리 자주 크림을 발라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예전에는 길을 걷노라면 곁을 지나가는 남자들이 내 눈을 들여다보며 뭔가 알아챈 듯이 가벼운 미소를 짓곤 했다. 이제는 누구도 나를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그저 ‘늙은이’라는 서랍에 가두어두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서랍 안에는 ‘나이는 들었지만 저 분은 아주 우아하고 치열한 삶을 살고 있어’와 같은 별도의 칸은 없다.
나는 허영심이 많은 성격이었고 평생 그렇게 살아왔다. 학창 시절엔 까끌까끌한 모직 양말을 신느니 차라리 얼어 죽더라도 얇은 스타킹을 신고 학교에 가기를 즐겼다. 부모님이 점심 값을 주시면 나는 끼니는 간단히 때우고 빨간 립스틱을 사기 위해 악착같이 동전을 모으곤 했다. 학교에서는 절대로 립스틱을 바를 수 없었지만 그건 상관없었다. 그저 빨간 립스틱을 갖는 것이 그 당시 내 삶에는 커다란 의미였던 것이다.
그런 느낌들이 그립다. 아침에 거울을 들여다보면 내 안에서 빛이 흘러나오는 기분, 예쁜 옷을 입고 산뜻한 기분으로 거리를 지나가던 때가……. 젊을 때에는 너무나 쉽게 빛이 난다.
아침에 냉정하게 스스로를 검사하면서 나는 알아차린다. 축 처진 피부. 내 양쪽 팔뚝에는 사람들이 ‘닭 날개’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축 늘어진 살덩어리가 매달려 있다. 마치 작은 날개 같다. 목의 피부도 흐물흐물, 주름이 가득하다. 굳이 말하자면 늙은 여자에겐 커다란 스카프를 두르는 패션이 상당히 효율적이다. 또 하나, 나는 더 이상 짧은 소매가 달린 상의를 입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나이와 싸우기보다는 그것을 품위 있게 받아들이려 애쓴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대안일까? 나는 노화 방지 화장품을 믿지 않는다. 그것들은 대체로 주름이 별로 없는 젊은 여성들을 겨냥한 것들이다. 글쎄, 뭐라고 해야 할까. 80살이 넘은 내 나이에는 볼에 크림을 듬뿍 발라도 금세 증발해버리는 것 같다.
머리카락이라면 좀 나았을까? 흰머리를 염색하는 건 좀 효과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그래 봐야 모두들 노인은 금방 알아본다. 마치 탈모를 가리려고 남자들이 남아 있는 머리칼을 한 올 한 올 민머리 위로 빗어 넘기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우리 수영장에도 이런 사람이 한 사람 있다. 그가 물에 뛰어드는 순간 대머리는 홀랑 드러나고 남아 있는 그의 머리칼은 수영장에 둥둥 떠서 그를 따라다닌다.
육체적 노화에 대한 유일한 정답은 침착하고 위엄 있는 태도다. 또한 단지 불편하다는 이유로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수영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수영복을 입기로 했다. 닭 날개가 있든 없든 상관없다.
아침에 거울을 보면서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삶이 불만스러울 때는 주름도 자글자글 넘쳐 보인다는 사실 말이다. 그런데 이 주름을 해결하는 간단한 해독제가 있으니 바로 ‘미소’이다.
남편은 우리가 가진 돈이 어떻게 투자되는지를 항상 신경 써서 관리했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나는 처음으로 은행과 상담이란 걸 했다. 은행의 자문 담당자도 아마 그날의 중요성을 알았던 것 같다. 그는 계좌 명세서를 출력하여 총천연색의 밑줄을 긋고, 형광색 포스트잇을 붙인 다음 이제부터는 내 돈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투자해야 한다는 식의 설명을 시작했다. 그의 표정에서 나는 보았다. 이렇게 불쌍하고 대책 없는 여자를 상대한다면 꽤 남는 장사를 하겠는걸!
나는 그런 상황에 대해 나름의 전술을 가지고 있었다. 그냥 고개만 끄덕이며 상냥히 응대하라. 결정을 내리지 말고 모든 것을 정확히 기억해두라. 그런 다음 이런 종류의 일을 잘 아는 친구에게 조언을 구하라.
내 경우에는 재정 자문가인 친구가 있었다. 나는 홀랑 사기나 당하는 가련한 할머니가 아니라고!
나쁜 점은 나에겐 정말 많은 상황에서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머니와 할머니로서 나는 오랫동안 다른 사람들에게 세상일을 가르치는 위치에 있었다. 하늘이 파란 이유는? (물리학에서는 색 스펙트럼 때문이라고 하지.) 실연의 괴로움은 어떻게 극복할까? (따분하게 들리겠지만 빨간 드레스를 사봐. 도움이 된단다.) 시험 전의 불안 초조와 싸우는 방법은? (핫 초코를 마셔봐.)
남편과 나는 가르침에 관한 한 멋진 분업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감정이나 일상의 문제에 대한 조언을 맡았고 남편은 행정이나 기술 분야를 맡았다. 그러다 남편이 알츠하이머에 걸렸다. 소파에 앉아 있던 어느 날, 나는 내가 빌어먹을 전구 하나도 바꿔 끼울 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단 전구를 어디서 사야 하는지조차 몰랐다. 또 전구 소켓 사이즈를 어떻게 감별하는지도 알 길이 없었다.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나는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살고 싶지 않았다. 세상을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것이 죽음에 의해 잠식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때까지 남편에게 맡겨두었던 일들을 가능한 빨리 익히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아이패드를 샀다. 또한 딸과 함께 철물점으로 차를 몰았다. 세금 서류를 들여다보며 몰두하는 것이 싫어서 그것은 회계전문가에게 맡겼다. 나는 숫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게다가 내 인생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남아 있지 않다.
지식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