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의 말 가족이 준 상처의 의미를 발견하기를!
1부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요
우리 가족은 이 애만 아니면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_가족희생양
원만한 부부관계의 진실
배우자의 자리를 대신한 자녀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요_융합, 미발달된 자기
부모와 분리되지 않은 자기
부모의 삶을 대신 사는 아이
착한 아들과 함께 사는 아내_자기분화
가장 사랑하는 두 여자 앞에서 얼어붙은 남자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헌신하는 엄마에게 왜 짜증이 날까?_자기희생형 성격과 피학적 성격 사이
희생을 넘어 피학이 될 때
부모님의 상처까지 당신이 책임질 수는 없다
알코올 중독 가정의 그림자_동반의존
“나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입니다”
중독자의 가족 구성원이 나타내는 심리적 특징
알코올 중독 아버지를 둔 미선씨가 해야 할 것
나는 이혼 가정 자녀입니다_가족의 비밀
아이들은 자신을 탓한다
딸로 태어난 죄인입니다_아들과 딸
엄마를 기쁘게 해주는 딸이 아니어도 된다
2부 사랑과 결혼의 심리
그 남자가 정착하지 못하는 이유_외도하고 싶은 마음
여자를 외롭게 하는 그 남자의 심리
‘네가 나를 버리기 전에 내가 먼저 버릴 거야’
왕자와 공주는 행복했을까_다이애나를 통해 본 사랑과 결혼의 심리
연상의 여인으로부터 모성을 추구했던 왕세자의 심리
다이애나의 고통스러운 결혼생활
다이애나의 죽음을 둘러싼 음모론
왕자와 공주는 어울리지 않는다
독박육아, 대화를 피하며 술만 찾는 남편_억압
출산 후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각자가 살아온 과정을 바라보다
억압은 더 큰 고통으로 이어진다
부부상담을 거부하는 남편
그들이 결혼하는 이유, 이혼하는 이유_상대에 대한 환상과 투사
사랑에 빠졌다가 헤어짐을 결심하는 부부들
당신이 결혼을 결심하는 이유
상대는 나의 이상적인 부모가 아니다
행복한 결혼을 위해 필요한 것들_미해결된 욕구 이해하기
결혼에 대한 흔한 통념
콩깍지를 벗어내는 과정
해결되지 않은 어린 마음을 바라보다
이혼할 수 있는 용기_이혼 후 심리
“이혼녀 타이틀이 수치스럽습니다”
이혼 후 흔히 경험하는 심리 상태
이혼이 뭐 어때서!
3부 가족의 상처를 마주하기
나의 어린 시절, 나의 부모님은 완벽해요_이상화와 부인
부모님을 이상화하는 과정
심리상담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이유
고통스러운 감정이 전하는 말_감정의 기능, 지킬박사와 하이드
애처가 남편에서 하루아침에 폭군이 된 남자
고통스러운 감정 다루기
가족이라는 웬수?_가족, 나를 분노하게 할 때
분노는 아무 잘못이 없다
가족 간의 갈등을 해결하게 하는 힘_가족 간의 갈등, 어떻게 해결할까
갈등은 마주해야 해결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것_경청과 수용의 대화법
사랑하는 이의 말을 경청해야 하는 이유
분홍곰을 생각하지 않기
달려오는 열차에 뛰어들지 않기
4부 가족의 상처를 넘어서
애착 유형은 변하지 않는가?_획득된 안정애착
애착과 대물림에 대해
우리는 변할 수 있는 존재다
가정폭력은 대물림 되나요?_공격자와의 동일시
아이가 겪는 어려움은 부모의 문제와 직결된다
가정폭력의 대물림을 끊는 방법
과거의 상처를 마주하고 가족의 상처와 결별하자_가족의 상처 떠나보내기
외상 후 성장으로 나아가기
가족의 상처는 당신 자신이 아니다, 당신 탓도 아니다
부록 1 심리상담을 받고 싶다면?_심리상담센터 선택 기준
부록 2 심리상담을 받았는데, 상처만 받았다면?_상담자와 잘 맞지 않을 때
참고문헌
사람들은 피가 물보다 진하다고 말하지.
아마 그렇기 때문에 남에게 쏟는 것보다
더 많은 에너지와 열정으로 가족과 싸우는 걸 거야.
• 데이비드 아셀(미국의 작가)•
“당신은 어려서부터 꿈이 뭐였어?”
“좋은 아빠 되는 거.”
내 딸의 아빠이자 나와 한집에서 살고 있는 남자는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좋은 아빠가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초등학교 시절, 꿈을 적어내는 칸에 다른 친구들은 ‘의사’ ‘판사’를 적어낼 때, 본인은 당당하게 ‘좋은 아빠’를 적어냈다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명절에는 앞장서서 장을 보며 제사를 준비하고, 일을 하면서도 집안일, 육아에 저보다 더 능숙하니 평균적인 남성들의 모습과는 조금 달라 보입니다.
저는 남편과 10년 이상 사귀고 결혼했습니다. 첫사랑의 꿈을 이루었으니 행복한 사람이지요. 남편은 스무 살, 스물한 살 때부터 “나는 너와 결혼할 거야”를 외치며 좋은 아빠가 되겠다는 꿈을 꼭 이루고야 말겠다고 했습니다.
그 시절에는 ‘왜 사람이 야망이 없을까? 좋은 회사에 들어가겠다거나, 교수가 되겠다거나, 아니면 사업가가 되겠다거나 하는 꿈을 두고 왜 좋은 아빠가 되고 싶어 하지?’라고 생각하며 그저 특이하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저는 제 꿈을 묻는 당시 남자친구(지금의 남편)에게 심리학을 공부해 다른 이들의 아픔을 치유하는 ‘상담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지요. 특히 가족으로 인한 아픔을 겪는 청소년에게 관심이 많았고, 가족 상담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꿈이 뚜렷했습니다. 저희 두 사람은 조금 다른 꿈을 말하는 것 같았지만 이 사람과 생애 반 이상을 함께하고 중년이 된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가 꾼 꿈의 뿌리는 다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편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신 아픔을 갖고 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몸이 약하던 어린 동생은 병에 걸리고 말았지요. 어머니는 남편을 잃은 여자 혼자의 몸으로 두 아이와 생존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만 했습니다.
남편은 어려서부터 동생을 업고 다니고, 엄마와 함께 장을 보러 다녔다고 하니 엄마의 아픔을 품고 싶어 하는 어른 아이였던 것 같습니다. 남편은 아버지의 부재를 경험하며 자신은 반드시 ‘좋은 아빠’가 되고 말 것이라 결심한 것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자기희생형 성격을 내재한 남편은 다른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지 못합니다. 늘 사람들에게 베푸는 성향이라 집에서도 쉬지를 못합니다. 쉼 없이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며 나와 딸이 잠들기만을 기다립니다. 그 시간만이 자신의 온전한 휴식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상한 남편이기도 하지만 그 반대의 그림자는 걱정이 많고 잔소리가 많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이를 낳고 나서는 남편의 잔소리가 더 심해져서 심하게 다투기도 했습니다. 모든 면을 세심하게 돌봐주고 대신 해주는 것은 좋은데, 저는 왠지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아 무력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이런 둘의 상호작용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며, 남편이 가족을 돌보느라 쉬지 못하는 것에 대해, 그리고 아내는 점점 무력해지고 무능해지는 것에 대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았습니다.
오래된 패턴을 깨트리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작은 실천 요소들을 염두하며 하나씩 하나씩 해보려고 노력합니다. 저는 남편에게 더 의존하지 않기 위해, 남편은 잔소리를 덜하고 혼자 하도록 내버려두기 위해 노력하지요. 우리 두 사람은 그렇게 균형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제 남편이 좋은 아빠의 꿈을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의 상처에서 싹튼 꿈은 아름다운 열매를 맺었습니다. 자녀와 아내에게 잔소리가 많기는 하지만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갈등이 일어났을 때 풀어나갈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에 말입니다. 오늘 남편이 살아가는 모습은 과거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남편과 마찬가지로 저 또한 꿈을 이루어냈습니다. 상담사가 되겠다는 꿈 말입니다. 심리학을 제대로 공부하고 수련과정을 거쳐, 개인이 가진 고통을 가족체계 내에서 분석해 풀어낼 수 있는 혜안과 전문성을 가진 상담사가 되었습니다. 치유사로서의 힘을 지니게 되었으니 저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남편이 자신의 상처에서 비롯된 꿈을 품었던 것처럼 저 또한 제 자신의 상처에서 피어난 꿈을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태어나고 자란 집안은 어머니, 아버지 집안 모두 ‘학업’을 강조하는 문화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 시절 어머니의 형제자매들이 남녀를 가리지 않고 전문직을 가졌고, 아버지 집안 또한 마찬가지였으니 양가 모두 교육열이 높은 집안이었지요. 그런 집안에서 우등생으로 자라온 저는 청소년기에 어린 마음으로 품기에는 버거운 심리적인 상처를 입게 됩니다.
엎치락뒤치락 경쟁하던 오빠는 서울대 의대에 입학했고, 동시에 저와 성적 경쟁을 하던 친구는 제게 1등을 빼앗기고는 극단적인 선택을 합니다.
하버드 의대에 가지 않는 한 그토록 미워했던 오빠를 이기기는 불가능해졌고, ‘이기는 것이 최선’이라는 가치관으로 살아왔는데 그것이 누군가의 삶을 끝내는 귀결로 이어졌으니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가 사라진 것입니다.
전교권의 우등생은 시험지를 마주하고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찍으며’ 방황을 시작합니다. 부모님은 심리적으로 방황하는 딸을 많이 이해해주셨지만 그 시절은 끔찍이도 고통스러웠습니다.
그 방황이 결국 가야 할 곳은 ‘승화’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랜 시간 심리상담을 받으면서 무너졌던 삶의 패러다임을 다시 찾아가기 시작합니다. 중요하게 생각하던 신념들은 부수어지고 다시 지어졌습니다.
• 경쟁에서 이기는 것보다, 타인을 돕는 것이 중요하다.
• 홀로 잘 살아가는 것보다 상생하는 것이 중요하다.
• 세상에는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많이 있다.
• 타인의 아픔은 나의 아픔과 다르지 않다.
아픔은 다지고 다져져 ‘상담자’라는 꿈을 찾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상담실에서 여러 가족들이 가진 아픔을 마주하며 내가 그것을 풀어갈 수 있음에, 아픔이 치유와 성장으로 승화되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저는 오늘 행복하고 나 자신을 사랑하기에, 내가 걸어왔던 가시밭길의 의미를 알고 있기에 시간을 돌려 과거를 바꿀 수 있다고 해도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완벽하게 예정된 길을 걸어왔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편과 저는 이처럼 과거를 토대로, 가족과 함께 거쳐 왔던 상처를 토대로 오늘날의 내가 되었습니다. 삶을 잘 살아간다는 것은 상처가 없는 삶, 상처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이어간다는 뜻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상처를 마주하지만 끌어안고 살아가는 것, 심리적인 상처와 고통이 의미하는 바를 발견해 미래를 찾아가는 것이 꽤 괜찮은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책을 만난 당신이 이제는 그러한 기회를 마주했다고 생각합니다. 가족 때문에 흘린 눈물이 의미 없던 것이 아님을, 가족으로 인한 상처가 당신을 갉아먹기만한 것이 아님을 알아차릴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이 책을 통해 가족이 준 상처의 의미를 발견하기를, 그래서 내게 아픔을 준 이들을 연민의 마음으로 바라보고, 무엇보다도 자기 스스로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과정에 이르기를, 저는 소망합니다.
이 책에 실린 사례는 실제 사례가 아닙니다. 상담자 윤리상 실제 사례를 공개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생생한 이야기가 되도록 현실성 있는 이야기를 담았고, 상담실에서 실제 있을 만한 상담자와 내담자의 대화를 실었습니다.
이 책이 가족으로 인한 상처를 극복해내고 있는 당신에게, 상담자가 되기 위해 상담학도나 심리학도의 길을 걷고 있는 당신에게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 책을 쓰기까지 영감을 준 나의 남편, 딸, 시어머니, 부모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조영은
그녀의 진짜 자기(Self)는 사라져버린 것으로 보였습니다. 아니, 어쩌면 자기의 존재 자체를 알아차리고 키워낼 수 있는 기회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부모의 상처를 해결하는 도구로 이용당하는 자녀는 자기가 정작 누구인지, 스스로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잃어버리곤 합니다.
가족희생양이 된 자녀는 가족의 병리가 요구하는 역할에 순응하며
안타깝게도 자신의 본래 모습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윤화씨는 고등학생인 딸과 함께 상담실을 찾았습니다.
“사실 우리 가족은 이 애만 아니면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부부 사이도 원만해 싸움도 없고요. 경제적으로도 넉넉하고요….”
부모상담시간에 윤화씨의 눈빛은 근심 걱정으로 흔들렸습니다.
“무엇이 문제인가요?”
“아이가 음식을 먹지 않아요. 뭐라고 하면 소리를 지르고 집을 나가겠다고 협박을 해요. 원래 우리 딸이 이런 애가 아니었는데.”
윤화씨는 눈물을 글썽이며 딸이 과거에 얼마나 모범생이었는지, 얼마나 사랑스럽고 착한 아이였는지 이야기했습니다. 기질적으로 순한 아이를 낳아 육아가 수월했고, 외동딸이었기에 금지옥엽으로 키웠다고 합니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큰 문제나 어려움이 없었는데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차츰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사소한 일로 짜증을 부리기 시작하더니 이성을 잃고 화를 냈으며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음식 거부’였습니다.
전업주부인 윤화씨는 늘 딸을 위해 정성껏 음식을 준비해왔습니다. 현미와 잡곡을 적절히 섞은 밥에 제철 나물과 채소, 생선구이나 찜닭 등 영양소를 고루 갖춘 정성스러운 집밥을 하루도 빠짐없이 차렸습니다. 윤화씨는 누구보다도 딸을 위해 헌신한다고 자부해왔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만들어주는 음식을 일체 거부하고는 책상 서랍에 초콜릿, 사탕, 과자 같은 군것질거리를 쌓아두고 몰래 먹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걱정이 돼서 딸만 들여다보고 있어요.”
윤화씨는 모든 안테나를 세워 딸에게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관심과 주의를 딸에게 향하는 것이 최근의 일만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딸에 대한 엄마의 사랑, 적당한 관심 수준이 아닌 지나친 집착의 단서가 비춰져 조금 더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섭식 문제는 많은 경우 가족이 가진 어려움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음식물을 먹는 행위는 내 몸 바깥에 있는 영양분을 내 몸 안에 들이는 과정입니다. 어려서부터 음식을 주는 존재는 주로 부모로 대표되는 주양육자로, 섭식은 부모의 사랑을 내 안에 들이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음식은 부모가 주는 사랑과 돌봄, 혹은 통제의 상징물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섭식 문제가 있는 사람의 경우 가족 시스템 내에 어려움이 있거나 부모와의 관계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와 제 남편이 상담을 받아야 한다고요? 왜요? 문제는 우리 딸인데….”
윤화씨는 자녀를 치료하기 위해 부모님의 개인상담이 필요하다는 상담자의 권유에 놀란 표정이었습니다. 이런 장면은 상담실에서 흔합니다만, 심리상담을 받는 과정이 용기를 필요로 하기에 실제로 부모님이 개인상담을 받는 경우는 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윤화씨는 자녀를 위해 상담을 받아 자신에 대한 진실을 알아가기로 했습니다.
“다만 문제가 있어요. 남편은 상담실에 데리고 올 수가 없어요. 남편은 아직 우리 딸이 이런 문제가 있는 줄 모르거든요. 회사를 경영하느라 바빠 늘 늦게 오니까요.”
윤화씨는 자녀의 문제는 남편에게는 절대 비밀이라 알릴 수 없다고 했습니다.
상담자의 머릿속에 경고음이 울렸습니다. 윤화씨는 남편과의 사이가 원만해 부부관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거듭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원만한 관계의 부부가 자녀가 겪는 어려움에 대해 공유하지 않는다? 싸움조차 없는 부부관계가 진정한 친밀함에 기원한 것이 아니라, 갈등 회피와 현실 부정에 기인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습니다.
윤화씨의 가족이 지금 어떤 모습인지 알아보기 위해 ‘작은 인형을 활용해 가족 세우기’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가족 세우기를 통해 본 이 가족의 심리적 구조는 위와 같았습니다. 아빠는 회사 일로 인해 가족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바깥 일만 바라보느라 가족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지요. 엄마는 아빠와 한참 떨어져 있고, 딸에게 밀착해 있습니다. 시선은 딸에게 고정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딸은 다른 곳을 바라보며 엄마와 떨어져 있고 싶어 합니다. 딸의 시선에는 아빠도, 엄마도 들어오지 않습니다. 딸은 저 구조 속에서 강한 분노를 느끼고 있고, 엄마는 불안감과 외로움,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낍니다. 아빠는 대체로 무덤덤하나 회사 일로 피곤해 짜증이 잔뜩 나 있습니다.
부부관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윤화씨의 잘못된 인식은 현실을 정확히 알아차리지 못한 데 기인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가족 세우기를 통해 이 가족이 겪고 있는 어려움이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윤화씨는 상담을 통해 그간 부정해왔던 결혼생활의 어려움을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정서적으로 채워지지 않는 관계 속에서 내면을 차갑게 식히는 쓸쓸함을 알아차리기 시작했지요. 자신을 방치해두는 남편에게 분노하기도 했지만 화를 내봤자 돌아오는 것은 “경제적으로 넉넉하게 해주니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을 싼다”는 비난뿐이었다고 합니다.
남편과 대화를 시도해봤자 ‘우리는 통하지 않는다’는 깨달음만 강해지니 어느 순간 깊은 대화를 하려는 시도를 포기하게 되어버렸습니다.
윤화씨는 모든 것을 체념하고 결혼을 후회하던 시기, 딸을 임신했고 사랑스러운 딸이 태어나며 쓸쓸함을 잊었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돈 벌어오는 사람쯤으로 생각하고 딸 키우는 데만 집중하면 되니 문제가 될 게 없었다고 합니다.
윤화씨는 부부관계에서 채워지지 않는 정서적 결핍을 딸을 통해 채우고자 했고, 딸은 고스란히 어머니의 심리적 배우자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헌신하는 어머니였지만 결핍과 상처에 기인한 헌신은 집착으로 이어지곤 했고, 자녀는 통제당하는 느낌에 질식할 것 같은 고통을 호소하고 있던 것입니다. 윤화씨의 자녀는 ‘엄마가 주는 음식을 거부함으로써’ 무의식 수준에서 엄마로부터의 심리적 분리, 독립을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이 경우 딸의 심리상담도 필요했지만, 엄마인 윤화씨가 자신의 상처를 바라보는 과정이 병행되어야만 했습니다. 외로움과 두려움이 올라올 때 딸에게 어떻게 집착하게 되는지, 어떤 식으로 딸을 통제하고자 시도하는지 알아차려야만 했지요.
또한 궁극적으로는 부부관계의 친밀감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부부가 서로 마주하고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때, 두 사람이 진정한 친밀함을 경험할 때 자녀 또한 심리적으로 편안해질 수 있었습니다.
윤화씨 가족의 이야기는 많은 가정에서 흔히 나타나는 주제입니다. 부모의 심리적 배우자 역할을 하는 아이들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역할을 떠안으며 심리적인 희생을 치릅니다. 윤화씨의 딸은 비교적 어린 시기에 자신을 찾고자 고군분투했지만 많은 이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결혼을 해서도, 자녀를 낳고서도 부모의 대리 배우자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 경우 결혼생활에 문제가 생기고, 건강한 부모 역할을 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곤 합니다. 부모가 가진 어려움을 자신의 것으로 가져오는 것입니다.
문제 가정에서 희생양이 되는 자녀가 떠안는 역할은 실로 다양합니다. 윤화씨의 자녀는 어머니의 심리적 배우자 역할을 했지만 가족의 영웅이나 구세주 역할을 할 수도 있고, 가족상담사처럼 가족의 중재자 및 치료자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아버지의 배우자 역할을 할 수도 있고, 가족들을 웃기는 바보나 광대 역할, 부모의 부모 역할을 맡을 수도 있습니다.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것은 ‘문제아’ 역할입니다. ‘문제아’ 자녀는 가족 내에 만연한 긴장과 불안을 깨트리기 위해 말썽을 일으키며 주의를 본인에게 집중시킵니다. 가족 구성원은 문제아를 탓하며, 가족이 근원적으로 가진 진짜 문제를 잊어버립니다.
이처럼 가족이 가진 문제가 자녀에게 나타나는 경우, 그 자녀는 ‘가족희생양’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형제가 여럿일 때 가족희생양의 역할을 하는 자녀는 타인의 고통에 가장 민감하고 섬세한 감수성을 가진 사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족희생양이 된 자녀는 가족의 병리가 요구하는 역할에 순응하며 자신의 본래 모습을 잊어버립니다. 그러면서 큰 불안과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지요.
상담자가 개인이 가진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가족에 대해 묻는 것은 이와 같은 과정을 알아차리기 위함입니다. 나에 대한 진실을 발견하기 위해 가족의 상처를 마주하는 것, 그 과정이 욱신거리며 아프더라도 진짜 나의 얼굴을 찾아가는 과정, 그것이 심리상담의 핵심이 아닐까 싶습니다.
융합되어 있는 사람은 자기만의 정체성을 발달시키지 못해
어디까지가 나이고 어디까지가 타인인지 구분하지 못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어요. 나는 그냥 나를 찾고 싶은 건데… 내가 나이고 싶은 건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창밖이 주황빛으로 물드는 저녁의 상담실, 마주앉은 여성의 커다란 눈망울에서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내렸습니다. 세상에 이처럼 완벽한 사람이 있나 감탄할 정도였습니다. 부러울 것 없이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성공을 위해 밟아온 엘리트 코스, 멋진 직업, 좋은 집안과 훌륭한 부모님, 외모도, 스펙도 완벽한 그녀는 20대 중반부터 이유를 알 수 없는 공허감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마치 가슴이 뚫린 듯한 공허감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녀가 가진 삶의 역사는 자기가 없는 삶이었다고 합니다. 모범생이자 우등생, 엘리트로 살아오면서 자신을 눈앞에 두고 놓아주지 않는 어머니의 기대, 따가운 시선이 참 많이 버거웠다고 합니다.
“어머니와 함께 했을 때 가장 기억이 나는 장면이 무엇이죠?”
“문제집을 풀라고 해요. 오늘까지 풀지 못하면 혼난다고…. 난 위축되어 있어요. 엄마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살아왔어요. 오늘날까지. 엄마가 원하는 대학을 가고, 엄마가 원하는 직업을 가졌죠.”
“…”
“최고의 학벌과 직장을 가졌지만, 난 너무 초라해요. 나는 그냥 나이고 싶어요.”
“지민씨는 무엇을 원하죠?”
“원하는 게, 원하는 게 뭔지 모르겠어요. 그냥 나이고 싶은 건데….”
그녀의 진짜 자기(Self)는 사라져버린 것으로 보였습니다. 아니, 어쩌면 자기의 존재 자체를 알아차리고 키워낼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지민씨는 부모의 기대에 맞춰 착하고 완벽한 딸 노릇을 충실히 해왔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해도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은 자기가 부재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였습니다.
융합된 자기, 미발달된 자기(Self)는 이 같은 현상을 설명하는 데 쓰입니다. 지민씨는 부모와 분리된 자기만의 정체감을 갖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성장과정에서 자신만의 욕구, 감정, 생각을 알아차리거나 발달시킬 기회를 갖지 못했던 것입니다.
지민씨는 심리적으로 융합된 중요한 대상, 어머니의 욕구와 감정, 생각을 그대로 흡수해 자신만의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지 못한 채 살아왔습니다.
지민씨는 어느 날 문득 알 수 없는 분노와 불안에 시달리며, 모범생의 길을 걸어왔던 자신의 인생에 의문을 품으며 상담실을 찾아왔습니다. 상담자가 지민씨만의 생각, 감정, 욕구를 물었을 때 그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민씨의 부모님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큰 법률회사를 운영하는 변호사로 늘 일에 파묻혀 바쁘게 지냈다고 합니다. 어릴 때에는 아버지가 늘 늦게 퇴근했기에 매일같이 얼굴을 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고 했으니 말이죠.
전업주부였던 어머니는 부부관계에서 채워지지 않는 마음을 외동딸인 지민씨에게 돌렸습니다. 딸을 정성들여 키우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딸을 심리적인 배우자로 삼으며 허전한 마음을 채우고자 했던 것으로 보였습니다.
“저는 엄마의 인형이었던 것 같아요. 아직까지도 옷을 엄마가 골라줘요.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어머니의 가장 가까운 단짝 친구로 지내온 지민씨는 모든 걸 어머니에게 물어서 결정한다고 했습니다. 대학 선택, 학과 선택, 직업 선택뿐 아니라 매일 입을 옷, 구두, 가방까지 어머니가 결정해준다고 합니다. 30대 중반인 지금까지 연애를 제대로 해본 적도 없다고 했습니다.
“어떤 남자도 엄마 마음에 들기는 힘들 거예요. 제게 다가오는 남자들이 있으면 엄마는 어떻게 해서든 단점을 찾아냈어요. 엄마의 비판적인 의견을 들으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