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석혜원
서울대학교 소비자아동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습니다. 메트로은행 서울지점장 겸 한국 대표를 지냈습니다.
자녀들이 어렸을 때 쉽고 재미있게 경제를 이해할 수 있는 경제 책이 없는 것이 안타까워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냉철한 머리와 따뜻한 가슴의 경제가 만드는,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꿈꾸며 지금까지 《엎치락뒤치락 세계 경제 이야기》, 《장바구니는 왜 엄마를 울렸을까?》, 《용돈 좀 올려 주세요》, 《잘사는 나라 못사는 나라》, 《주식회사 6학년 2반》, 《둥글둥글 지구촌 경제 이야기》, 《둥글둥글 지구촌 돈 이야기》, 《MUST KNOW! 대한민국 경제사》 등 여러 권의 책을 썼습니다.
그림 신병근
디자인을 하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그림을 그리면서 디자인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몇 해 전부터는 도봉산과 수락산 언저리에서 마음 맞는 친구인 혜원, 주리와 디자인하고 그림 그리는 작업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림을 그리고 디자인한 책으로는 《모두 다 문화야》, 《수취인: 자본주의, 마르크스가 보낸 편지》, 《고전하는 십 대의 이유 있는 고전》, 《어서 오세요! 수학가게입니다》, 《멍 서방과 똑 서방》 등이 있습니다.
디자인 :: 윤현이
사람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을 물어보면 외국으로 배낭여행을 떠났던 일이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아. 배낭여행은 여행 중 필요한 최소한의 물품만 넣은 배낭을 둘러메고 가고 싶은 곳들을 스스로 찾아다니는 여행이지. 큰 도시 위주로 여행을 할 때는 배낭 대신 캐리어 가방을 끌고 가기도 해. 말이 잘 통하지 않는 낯선 나라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어려움을 겪는 고생을 각오해야 하지만, 힘이 들수록 이를 극복한 기쁨도 커서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다음 여행을 꿈꾸게 만드는 중독성이 있어.
외국어에 능통하지 않아도 배낭여행이 가능하냐고? 물론이지. 세계 공통어인 ‘보디랭귀지’만으로도 의사소통이 가능하거든.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얼마예요?” “어디예요?” “어떻게 가요?” 등 꼭 필요한 몇 마디만이라도 알고 떠나면 더 좋고.
“얼마예요?”는 가격을 물어보는 말이야. 해외여행을 할 때 꼭 필요한 몇 마디에 왜 이 말이 들어갈까? 가격은 물건이나 서비스의 가치를 돈의 가치로 나타낸 거야. 우리는 매일 여러 가격을 접하며 살고 있어. 일과가 복잡해질수록 행동을 결정하기 전에 알아야 하는 가격은 더 많아지지. 여행 중에는 평소보다 훨씬 다양한 일정을 소화해야 하니까 가격을 알아야 하는 경우는 더 잦아질 거야. 그러니까 “얼마예요?”라는 말은 여행지의 말로 알고 가는 게 좋지. 여행하는 동안은 주로 먹고, 잠자고, 교통수단을 이용하고, 유적지나 박물관, 미술관 관람을 하며 돈을 써. 이럴 때 현지 통화로 표시된 가격이 대충 우리 돈으로 얼마인지 따져 보려면 우리 돈과 현지 통화의 교환 비율인 환율을 알아야 해.
여행 중 무거운 짐을 지고 다니는 건 힘이 드니까 쇼핑은 주로 마지막 여행지에서 하게 될 거야. 정찰제가 아닌 경우 현지 사정에 익숙하지 않은 여행객이 가격을 물어보면 바가지를 쓰는 경우도 있어. 바가지가 뭐냐고?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지불하게 만드는 거야. 하지만 “얼마예요?”라고 물어보고 “비싸요. 깎아 주세요.”까지 그 나라 말로 하면 바가지를 쓸 확률은 현저히 줄어들어. 영어로 해도 알아듣지만 현지 말로 하면 현지 사정에 밝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게 되거든.
같은 물건이라도 나라마다 가격이 달라. 그래서 물가가 싼 나라에서 잘 먹고, 잘 쉬고, 쇼핑을 잘하면 정말 기분이 좋지. 알뜰한 사람들은 떠나기 전에 한국보다 여행지에서 훨씬 저렴한 물건의 목록을 작성하고, 가격에 대한 정보까지 미리 찾아보기도 해. 같은 물건인데 왜 나라마다 가격이 다르냐고? 경제는 어렵다고 싫어하는 사람이 많은데, 가격에 관심이 있다니 대단한데! 이를 이해하려면 가격이 어떻게 결정되고 왜 변동되는지, 각 나라의 시장의 특성은 무엇이고, 통화 가치는 어떠한지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해.
우선 어느 나라에서든지 적용이 되는, 가격이 어떻게 결정되고 왜 변동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볼래?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하지? 시장의 종류와 특성, 수요와 공급, 가격의 결정과 변동에 대한 이론이나 법칙은 경제를 이해하는 데 가장 기본적인 지식이야. 이를 아는 것이 복잡한 경제 현상을 분석하고 흐름을 파악하는 능력을 기르는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지.
이 책에선 경제 이론이나 법칙을 알려 주면서 실생활에서 일어나는 사례들과 관련된 이야기를 되도록 많이 할 거야. 지식은 단순하게 아는 것에서 그치면 안 되고, 실제 우리 생활에 끼치는 영향이나 결과와 연결할 수 있어야 의미가 있거든. 자,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었니?
승용차 대신 전철을 타고 오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네. 9월 초순이라 코스모스가 이렇게 많이 피었을 거라고는 예상 못했는데. 원덕역에서 여기까지 걸어오면서 가을이 온 걸 실감했어. 할아버지 생신을 축하하려고 가족들이 콘도에서 함께 모이기로 한 건 잘한 일이야. 덕분에 답답한 도시를 탈출해서 산도 보고, 물도 보고, 꽃도 보고, 정말 너무 좋아!
다른 사람들은 점심 먹고 출발한다고 했고, 체크인 시간은 오후 3시니까 우선 점심부터 먹자. 들어오면서 이탈리아 음식점 앞에서 몇 가지 메뉴를 점심에 특별히 싸게 판다는 안내판을 봤어. 가끔씩 이탈리아 음식을 먹으면 기분전환이 되는데, 가 볼까?
여행지에서는 바가지 가격이 많은데, 가격이 정말 착하네.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음식점이나 기념품점에서 여행객들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경우가 많아. 여행 온 뜨내기손님의 평판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이윤만 많이 챙기려는 속셈이지. 그런데 요즘은 여행지 바가지요금이 많이 줄어든 것 같아. 블로그나 SNS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여행을 떠나기 전 미리 정보 검색을 하는 일이 많아지니까 한번 들르는 손님의 불만도 영향력이 생겨서 바가지를 씌우는 데 조심스러워졌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메뉴판에 동그라미 딱지가 붙어 있는 메뉴가 점심시간에 저렴한 가격으로 먹을 수 있는 거네. 그중에서 골라서 먹어야지.
아, 잘 먹었다. 가격도 착한데 맛도 아주 훌륭해. 같은 메뉴인데 왜 점심시간에는 가격을 저렴하게 하느냐고? 혹시 ‘가격차별’이라고 들어 봤니? 이 식당에서 내가 점심시간에 먹은 음식을 저녁에 먹는다면 돈을 더 지불해야 해. 동일한 음식이 점심과 저녁이라는 시간적 차이에 따라 가격이 다른 거지. 이처럼 생산비용이 같은 동일한 상품에 대해 서로 다른 가격을 매기는 일을 가격차별이라고 해.
이 콘도에 있는 이탈리아 식당은 이곳뿐이야. 콘도에서 묵을 사람들이 많이 도착하는 저녁시간에는 평소 가격을 받아도 이탈리아 음식을 먹고 싶은 사람은 여기로 올 거야. 그런데 점심 먹을 즈음은 오늘 묵을 사람들이 도착하기에는 이르고, 어제 묵은 사람들은 떠날 때이지. 오늘 묵을 사람들이나 떠날 사람들 모두 다른 곳을 식사 장소로 선택할 여지가 많아. 그런데 여기서 음식을 저렴하게 팔면 미리 와서 식사를 하고 체크인을 하거나 체크아웃 후 점심을 먹고 떠나는 사람들이 생길 거야. 음식점 시설은 이미 갖추어져 있고, 직원들의 임금은 일정할 테니 점심에 더 많은 음식을 팔 때 늘어나는 비용은 재료비나 연료비 정도이지. 이런 비용을 충당하고도 이윤이 생길 정도로만 가격을 매기면 점심 손님이 늘어날수록 전체 이윤은 커지게 돼. 그러니까 같은 메뉴인데도 시간에 따라 가격을 다르게 매기는 것은 기업이 이윤을 늘리기 위한 경영전략이지.
영화관에서 이른 아침에 상영하는 영화의 관람권을 싸게 파는 것도 가격을 차별해서 이윤을 높이려는 마찬가지 전략이야. 기차를 이용하는 사람이 적은 평일에는 주말보다 저렴하게 열차표를 파는 것도 같은 이유고. 콘도의 평일 숙박요금도 주말보다 저렴해. 평일에 그냥 방을 비우는 것보다 평일 요금을 저렴하게 해서 더 많은 사람이 찾아와 방을 채우는 것이 더 이익이거든. 이처럼 가격차별은 독점시장이나 독점적 경쟁시장에서 수요자를 그룹으로 나누었을 때, 그룹별로 수요의 가격탄력성이 다른 경우에 이루어져.
가격차별이 무엇인지 왜 하는지는 알겠는데, 독점시장이나 독점적 경쟁시장, 수요의 가격탄력성 등 모르는 말이 많아서 어떤 경우에 가격차별이 이루어지는지 짐작을 못하겠다고? 미안! 너무 어려운 말을 했구나. 시장과 가격에 대한 경제학적인 지식이 있어야 이해할 수 있는데 말이야. 자세히 알려 줄까?
그보다 알쏭달쏭하게 느꼈던 가격에 대한 궁금증부터 풀고 싶다고? 그래, 궁금한 게 무언지 이야기해 봐.
지난여름이 너무 덥다 보니 부모님과 신경전을 벌이는 일이 잦아졌다고? 날씨가 덥고 습하면 불쾌지수가 올라가서 평소라면 그냥 넘어갈 일도 짜증이 나고 트집을 부리는 일이 생겨. 아, 신경전을 벌인 게 주로 에어컨 켜는 일 때문이었구나.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가 계속 들리면 머리가 아프다는 사람들이 많아. 전기요금은 많이 쓸수록 비싸지는 누진제가 적용되니까 전기요금 폭탄을 맞을까 봐 걱정돼서이지.
한국의 전기요금은 주택용, 일반용, 교육용, 산업용, 농사용, 가로등으로 분류해서 받고 있어. 집에서 사용하는 전기에 대해서는 주택용 요금이 적용되는데,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는 3단계로 되어 있어. 전기요금 누진제가 무어냐고? 우선 주택용 전기요금이 어떻게 매겨지는지 표로 보여 줄게.
<주택용 전기요금>
이렇게 표로만 보니 누진제 때문에 전기요금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모르겠다고? 예를 들어 볼게. 2단계와 3단계의 경계는 400kWh이지? 어떤 집에서 한 달간 2단계 최고 경계 사용량인 400kWh만큼 전기를 사용했다면, 2단계 전기요금을 적용해야 해. 2단계 기본요금까지 합산한 전체 금액은 1600원(2단계 기본요금) + (200kWh × 93.3원) + (200kWh × 187.9원) = 5만 7840원이야. 여기에 전력기반기금 3.7%, 부가가치세 10%가 붙어서 실제로 내는 전기요금은 6만 5760원이 돼.
그런데 덥다고 에어컨을 좀 더 틀었더니 이번 달엔 410kWh만큼 사용하게 되었네. 미미한 차이지만 3단계 요금이 적용되겠지? 이때는 7300원(3단계 기본요금) + (200kWh × 93.3원) + (200kWh × 187.9원) + (10kWh × 280.6원) = 6만 6346원이고, 추가되는 전력기반기금과 부가가치세를 합쳐서 총 전기요금은 7만 5430원이야. 단지 10kWh를 더 사용했을 뿐인데, 이전 달과 이번 달 전기요금은 무려 9670원이라는 차이가 생기지. 난 전기요금이 계산되는 방식을 보여 주려고 일일이 계산했지만, 인터넷에서 전기요금 계산기를 검색해서 전기사용량을 치면 해당하는 전기요금을 바로 알 수 있어.
한국의 7월과 8월 가구당 한 달 평균 전기사용량은 약 230~ 290kWh니까 2단계 요금을 내는 집이 많아. 요즘 1~2인 가구가 많아서 평균이 이 정도인데, 식구가 3~4인인 집은 평균보다 더 많은 전기를 사용할 거야. 그러니까 에어컨을 조금 많이 켜서 전기사용량이 400kWh 초과가 되면 2단계가 아닌 3단계 요금을 내야 해. 너희 집에서 평소에 한 달 350kWh의 전기를 사용했는데, 날씨가 더웠던 어느 달에 20일간 하루에 10시간씩 소비전력이 1.55kWh인 에어컨을 틀었다고 하자. 그럼 에어컨 때문에 추가로 사용한 전기량은 1.55kWh × 10(시간) × 20(일) = 310kWh야. 한 달 총 사용량이 660kWh가 되는 거지. 전기요금 계산기에 350kWh를 치면 5만 5080원, 660kWh를 치면 15만 5190원이 나오지. 세상에, 차이가 10만 원이 넘어. 부모님이 전기요금 폭탄을 맞는다고 에어컨을 오래 켜는 걸 싫어하시는 게 이해가 되지?
다른 제품은 많이 사면 오히려 할인을 해 주는데 왜 전기는 많이 쓸수록 거꾸로 비싸질까? 정부가 에너지 절약을 위해 전기 가격을 통제하기 때문이야.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의 90퍼센트가량은 외국에서 수입한 석탄, 석유, 천연가스, 우라늄을 이용해서 생산해. 전기를 많이 쓰면 더 많은 외화를 주고 원료를 수입해야 하지. 그래서 전기를 아껴 쓰도록 하려고 많이 쓸수록 비싼 요금을 받는 거야. 이런 걸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라고 해.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가 시작된 시기는 1974년이었어. 1973년에 발생한 1차 석유파동으로 국제원유가격이 갑자기 많이 올라 세계적으로 큰 문제가 되었던 시기였지. 대부분의 에너지 자원을 수입에 의존했던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도 타격이 더 컸어. 그래서 에너지 절약의 필요성이 커졌고, 이를 생활화할 방안으로 전기요금 누진제가 도입된 거란다. 쓰면 쓸수록 전기요금이 비싸지면 되도록 전기를 아끼려고 할 거라고 판단했거든.
일반용, 교육용, 산업용, 농사용, 가로등에 적용하는 전기요금은 주택용 전기요금보다 저렴하면서도 누진제가 적용되지 않아. 그래서 에어컨을 틀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정도의 날씨가 지속되는 여름이면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지. 2016년 12월 이전까지는 누진의 정도가 더 심했어. 아까 350kWh 사용할 때와 660kWh 사용할 때 전기요금 차이가 10만 원 정도라고 했지? 그 전에는 같은 사용량에 대해 20만 원 정도 차이가 났거든. 그러니 전기요금 누진제에 대해 불만의 목소리가 얼마나 높았겠니. 결국 정부가 누진의 정도를 낮출 필요가 있다고 느껴 제도를 개선하면서 지금 정도가 된 거야. 그나마 나아진 거지만 폭염이 심했던 지난여름에도 전기요금이 너무 비싸 힘들다는 기사를 종종 봤지?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는 전기라는 상품을 공기업인 한국전력공사가 독점적으로 팔기 때문에 가능한 제도야. 만일 전기도 다른 상품처럼 여러 기업이 판다면 경쟁 때문에 누진제를 도입하기가 쉽지 않을 거야.
깨끗한 물을 사용할 때 내는 상수도요금과 사용한 물을 버릴 때 내는 하수도요금에도 누진제가 적용돼. 한국전력공사에 내는 주택용 전기요금은 전국적으로 일정하게 적용되지만, 수돗물을 공급하는 사업자는 지역별로 달라서 상하수도요금은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요금이 적용돼. 하지만 거의 대부분 지역의 수도사업자들은 상하수도요금을 매길 때 누진제를 적용하고 있어. 전기와 마찬가지로 물이라는 자원을 낭비하는 걸 막기 위해서이지. 도시가스도 전기나 수돗물처럼 중요한 자원이지만 도시가스요금에는 누진제가 적용되고 있지 않아.
이번에도 부모님과 실랑이를 벌이다 생긴 궁금증이구나. 옷, 가방, 신발을 살 때마다 요즘 유행하는 유명 상표가 붙은 물건을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