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글
‘로봇 전문 기자.’
일부러 의도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만, 주위의 많은 분들께서 저를 그렇게 불러 주십니다. 물론 ‘과학 기자’라는 제 정식 직함으로 불러 주실 때 내심 더 기쁘긴 합니다만, 꽤 많은 분들이 저를 로봇을 집중적으로 취재하는 전문 기자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아마 제가 우리나라 최초의 인간형 로봇 ‘휴보’를 12년 이상 꾸준히 취재하며 남들보다 많은 기사를 썼고, 또 그 과정에 전 세계의 다양한 로봇 역시 취재해 국내에 소개한 적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러 해 동안 얻은 내용을 정리해 몇 권의 책으로 낸 적도 있다 보니 주위 분들께서 기특하게 보아 주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간혹 운 좋게 여러 학교나 도서관 등에서 저를 초청해 주실 때도 있습니다. 로봇과 컴퓨터 기술의 미래를 소개하는 ‘일일 강사’로 나서 달라는 요청이지요. 제 강연 내용이야 정식으로 깊게 공부한 학자들께서 보신다면 낯이 뜨거울 정도도 변변치 못한 것입니다만, 제가 좋아하는 ‘로봇’과 ‘컴퓨터’라는 주제로 여러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꽤 즐거워 시간과 규정이 허락하는 한 참석하려고 합니다.
그때마다 학생들이 저에게 많은 질문을 해줍니다. 물론 놀랄 정도로 예리한 질문도 있고, 또 학생들의 참신한 아이디어가 큰 감동으로 다가온 적도 많습니다. 그럴 때는 부족한 식견이지만 최대한 열심히 정답에 가까운 생각을 해보려 노력하고는 하지요.
하지만 그러면서 늘 아쉬운 점도 느끼는데, 로봇이나 인공지능, 첨단 기계 장치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이 현실과 정말 많이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질의응답을 하다 보면 “로봇의 지능이 점점 발전하다가 언젠가 사람을 지배하려고 들면 어떻게 하나요? 살인 로봇이 인간에게 반항하고 범죄를 일으키면 어떻게 하지요? 로봇들이 일자리를 다 빼앗아 가면 인간은 가축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닌가요? ”와 같은 질문들이 빠지지 않고 나옵니다. 그러면 ‘도대체 어디서부터 이런 오해를 풀어 주어야 하나’ 싶어 적잖이 당황하고는 했습니다.
그러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건 굳이 어린 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의외로 지식의 최전선에 살고 있는 과학자들 중에서도 이런 우려를 하는 분들이 많은 걸 보게 됩니다. 예를 들어 물리학을 전공하고 우주의 신비를 밝히는 훌륭한 과학자가 로봇과 정보 기술에 대해서는 다소 현실 감각이 없는 주장을 펼치는 경우가 있지요.
이런 데는 과학과 기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언론, 그리고 영화나 드라마, 만화 등을 만드는 미디어 종사자들의 책임도 적지 않습니다. 영화를 보면 인간보다 똑똑한 로봇이 주인공을 해치려 들고, 강력한 무기를 단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을 공격하는 모습이 나오다 보니 많은 대중이 ‘로봇과 인공지능은 인간에게 위험한 존재’라고 인식하게 되는 것이지요. 어떤 전문가가 인터뷰를 하면서 그저 “ 앞으로 기술 개발 과정에서 좀 더 조심할 필요가 있다” 정도로 말했는데, 기사에는 「과학자 A씨, “인공지능 개발이 인류를 파멸로 몰고 갈 것”」과 같은 자극적인 제목을 달고 세상으로 퍼지기도 합니다. 이런 기사를 자주 접하던 분들은 기술로 인한 사회의 발전 자체를 우려하는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책은 그럴 때마다 느꼈던 답답한 마음을, 시간과 장소의 부족 때문에 학생들에게 해주지 못한 설명들을 차근차근 알기 쉽게 적어 본, 한 과학 기자의 이야기책입니다.
로봇과 인공지능, 컴퓨터 기술은 현재 어느 수준에 와 있는지, 우리 인류는 앞으로 어떤 연구를 더 열심히 해야 하는지, 어떤 기술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인지를 객관적으로 전하고자 했습니다. 자라나는 학생들은 어떤 시각으로 미래를 바라보고, 또 어떤 눈으로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면 좋을지를 알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집필 기간 내내 가장 신경 썼던 점은 ‘읽기 쉬운 책을 만들어야겠다’는 것입니다. 이 책을 쓰는 내내 학생들은 물론, 각종 복잡한 기계나 컴퓨터 장치에 불편함을 느끼는 성인들도 술술 읽어 볼 수 있도록 최대한 쉬운 표현과 문장으로 다듬었습니다.
이 한 권의 책이, 많은 학생과 독자들께서 로봇과 인공지능, 더 나아가 과학 기술에 대한 올바른 미래관과 바른 인식을 가지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기술과 사회가 서로 어떤 연관을 갖고, 어떻게 발전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는 작은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주관적인 의미나 주장은 한 기자의 개인적인 생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다루는 모든 정보들은 언론윤리에 입각해 사실을 기반으로 작성했다는 점도 알려드립니다.
전승민.
여러분 혹시 스마트폰을 쓰고 있나요? 혹시 쓰지 않는다고 해도, 주변에서 쉽게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요즘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니까요. 세계 최초의 스마트폰이 개발된 지는 꽤 오래 되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렇게 대중적으로 쓰이게 된 것은 불과 몇 년 되지 않았지요. 제가 처음 스마트폰을 구입했던 게 2010년이고, 한국에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팔리기 시작한 건 그보다 불과 1~2년 전입니다. 그러니 우리나라에 스마트폰이라는 물건이 처음 들어온 건 이제 십 년이 되었네요.
이 시간 동안 사람들의 생활은 정말로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만큼 큰 폭으로 변했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어디서든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고, 은행 업무를 보고, 인터넷을 검색합니다. 스마트폰으로 카드결제를 해서 물건을 구입하기도 하지요. 어린 시절부터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자라온 십 대 여러분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어른들은 스마트폰이 바꾸어 놓은 변화가 엄청나다고 생각한답니다. 또한 앞으로 더 놀라운 기술이 등장할 것이고, 우리 사회도 큰 변화를 겪으리라 예상하고 있지요.
이것은 한편으로 옳은 예상입니다. 분명 세상은 빠르게 바뀌고 있고, 우리의 생활 모습도 변화하고 있지요. 이렇게 재빠른 변화를 어떻게 따라가야 할지, 무엇을 공부하고 미래에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알기 어렵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지요. 하지만 이 변화를 잘 들여다보면 한 가지를 알 수 있습니다. 바로, 그 중심에 컴퓨터와 정보화 기기가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혹시 ‘슈퍼컴퓨터’라는 말을 들어 봤나요? 이름부터 ‘슈퍼’가 들어가니 뭔가 아주 대단한 컴퓨터 같은데, 어떤 컴퓨터가 슈퍼컴퓨터인지 알고 있나요?
많은 사람들이 슈퍼컴퓨터는 뭔가 특별한 종류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개인용 컴퓨터와 달리, 여러 사람이 뭔가 대단히 복잡한 일을 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대형 컴퓨터는 구조와 원리가 전혀 다르다고 여깁니다. 슈퍼컴퓨터는 아예 설계된 원리가 다른 컴퓨터일 거라 생각하는 거지요.
사실 이런 생각은 틀렸습니다. 컴퓨터의 속도나 용량, 크기 면에서 차이가 있지만, 슈퍼컴퓨터라는 건 여러분이 집에서 쓰는 컴퓨터와 기본 원리나 구조에서 다른 점이 별로 없습니다. 그저 여러분이 쓰는 컴퓨터보다 더 좋은 것들을 수백, 수천 대씩 모아 한 대의 시스템으로 구성해 놓았을 뿐이지요. 이 과정에서 실력이 좋은 컴퓨터 엔지니어들이 참여해 조금이라도 성능이 좋은 컴퓨터를 만들려고 노력합니다만, 누구라도 컴퓨터 여러 대를 가져다 놓고 제어 프로그램만 새로 깔아 주면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이기도 합니다.
그럼 슈퍼컴퓨터란 이름은 어떻게 정해지는 걸까요? 딱히 ‘이 구조로 만들어야 슈퍼컴퓨터!’라고 정해 놓은 것은 아닙니다. 그냥 성능이 세계에서 500등 안에 든 컴퓨터를 말합니다.
이렇게 고성능 컴퓨터에 순위를 매기기 시작한 사람은 독일인 과학자 한스 무이어Hans Meuer랍니다. 그는 1992년부터 미국과 독일의 뜻이 맞는 과학자들과 함께, 세상에서 가장 빠른 컴퓨터 순위를 나누는 탑오백www.top500.org이라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었습니다. 한스 무이어 박사가 고령으로 사망하고 나서, 지금은 그의 아들 마틴 무이어Martin Meuer가 사이트 운영을 맡고 있습니다.
탑오백 운영진은 홈페이지를 통해 매년 2월과 6월, 두 차례에 걸쳐 세계에서 가장 성능이 뛰어난 컴퓨터 500대를 선정해 발표합니다. 이 순위를 어떻게 선정했는지에 대해 논문으로 써서 발표하기도 합니다. 그런 다음 컴퓨터의 주인이나 운영기관에 멋진 인증서를 만들어 종이로 인쇄해서 보내주지요. 해마다 컴퓨터 성능은 빨라지고 있으니, 작년에 500등 안에 들어 슈퍼컴퓨터 칭호를 받았던 시스템이 올해는 순위에서 빠져버린 경우도 많습니다.
마틴 마우어 박사 덕분에 사람들도 슈퍼컴퓨터를 순위에 따라 구분하기 시작했습니다만, 슈퍼컴퓨터라는 말 자체는 그 이전부터 쓰였습니다. 보통 사람이 쓰기 어려운 고성능 대형 컴퓨터를 지칭하는 말이었지요. 그래서 요즘은 500등 안에 든 컴퓨터만 슈퍼컴퓨터라고 부르고, 같은 목적으로 만들었지만 500등 안에는 들지 못하는 고성능 컴퓨터는 HPCHigh-performance computing라고 부릅니다.
우리나라에서 슈퍼컴퓨터를 처음 도입한 건 1988년입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에서 우리나라 과학자들의 연구를 지원할 계획으로 국내 1호 슈퍼컴퓨터 ‘크래이Cray-2S’를 미국에서 사왔지요. 이 컴퓨터의 속도는 2기가플롭스GFlops 정도 된답니다. 1기가플롭스는 1초에 소수 연산을 10억 회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2기가플롭스는 20억 회가 되겠지요? 당시 엄청난 성능을 지닌 컴퓨터가 우리나라에도 들어온다고 해서 대중의 많은 관심을 받기도 했답니다. 행여나 망가질까 싶어 경찰이 운송과정을 경호하기까지 했지요.
지금에 와서 보면 이 슈퍼컴퓨터는 여러분이 집에서 쓰는 개인용 컴퓨터보다도 성능이 떨어집니다. 사실 지금 손에 들고 있는 개인용 스마트폰보다도 더 성능이 떨어질 것 같습니다. 이 슈퍼컴퓨터의 초당 연산속도가 2기가플롭스GFlops 정도이고, 램은 2기가바이트GB, 하드디스크는 60기가바이트 정도였습니다. 그러니 종합적인 성능 면에서 삼성전자에서 2010년에 발표한 갤럭시S2나 S3 정도와 얼추 비슷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면 궁금한 것이 하나 생깁니다. 1980년대 기준으로 보면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슈퍼컴퓨터’를 손에 들고 다니는 세상이 됐는데, 지금 우리 생활은 얼마나 크게 변했을까요.
우리나라에 이 슈퍼컴퓨터가 처음 들어온 1980년대에는 ‘21세기가 되면 집집마다 사람처럼 생긴 로봇이 보급되고, 인공지능이 대신 일하게 될지 모른다’고 예측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물론 그때와 비교하면 세상은 몰라보게 좋아졌답니다. 통신 기술이 발달된 덕분에 차를 타고 가거나 걸어가는 중에도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르는 게 있으면 언제든지 스마트폰을 검색해 답을 찾을 수 있지요. 이렇게 여러 가지로 편리해졌습니다만, 컴퓨터는 여전히 사람처럼 지능을 지니지 못하고, 사람보다 똑똑하지도 않습니다.
사실 컴퓨터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직도 매우 제한적입니다. 스마트폰에게 “ 7시에 깨워줘.”라고 말하면 알람을 설정해 주는 기능은 잘 동작합니다. 하지만 “영숙이한테 ‘내일 도서관에서 함께 숙제하기로 했는데 못 가게 됐어. 미안해’라고 문자 좀 보내줘.”라고 한꺼번에 이어서 말하면 어떻게 될까요. 사람이라면 당연히 알아들을 말이지만, 이 정도 문장을 해석해서 답해 주는 컴퓨터는 아직도 찾기 어렵습니다. 최고급 스마트폰으로 실험을 해봐도 대부분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했습니다.”라고 답하거나 “여러 개의 일치 항목이 발견됨.”이라고 대답하면서 엉뚱하게 인터넷 검색을 시작합니다.
이쯤 되면 컴퓨터가 정말로 사람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는 날이 오기는 올지 의심이 들기 시작합니다. 우리 손안에 있는, 수십 년 전에 무려 ‘슈퍼컴퓨터’였던 이 기계는 정말로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만큼 똑똑해질 수는 없는 걸까요?
2018년 2월 현재. 이 책을 쓰고 있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성능이 뛰어난 슈퍼컴퓨터는 중국 유시Wuxi의 국가슈퍼컴퓨팅센터에 설치된 ‘선웨이 태후라이트Sunway TaihuLight’입니다. 이 컴퓨터의 성능표를 살펴보니 정말로 입이 떡 벌어지게 좋군요. 초당 연산속도가 93,014.3테라플롭스TFlops랍니다. 기가플로스가 아니라 테라플롭스입니다. 1테라플롭스가 대충 1024기가플롭스이니, 대충 계산해 보면 우리나라 최초 슈퍼컴퓨터보다, 그러니까 대강 여러분이 가진 스마트폰보다 4000~ 5000만 배 정도 뛰어납니다.
하지만 이렇게 뛰어난 컴퓨터가 정말로 사람처럼 생각하는 ‘인공지능’을 갖고 있을까요. 컴퓨터 성능이 점점 좋아지다가 어느 날 사람만큼은 못해도 개나 고양이 정도의 인공지능은 생겨도 좋지 않을까요.
그런데 아닙니다. 이 컴퓨터 역시 하는 일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30년 전처럼 사람이 시킨 대로 복잡한 시뮬레이션 계산을 합니다. 물론 다른 컴퓨터로는 시간이 오래 걸려 결과를 내기 어려웠던 우주 전파를 분석해 볼 수 있습니다. 진짜와 구분조차 가지 않는 가상현실 영화를 만들 수는 있습니다. 소프트웨어를 깔아 준다면 초일류 프로기사만큼 바둑도 잘 둘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일들 역시 시간만 많이 주어진다면 여러분의 스마트폰으로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앞으로 30년이 더 지난다면, 그때는 이 정도 성능의 컴퓨터가 아마 우리 손바닥 위로 올라오게 될 것입니다. 즉 30년 후에도 집집마다 사람처럼 생각하는 인공지능 컴퓨터가 생겨 여러분에게 반항을 할 리 만무하다는 뜻입니다.
뭘 시켜도 사람이 일일이 할 일을 정해 주고 결과를 기다려야 하는 것. 더 빠르게 계산해 사람이 복잡하게 종이에 풀어야 할 계산을 대신해주는 것. 사실상 사람 대신 숫자 계산을 바르게 하는 계산기. 결국 그것이 컴퓨터라는 물건의 정체입니다. 더 빨라지고, 더 안정성이 높아지고, 더 들고 다니기 좋아졌다고 해서 그 사실이 변하지는 않습니다.
컴퓨터에 대해 막연한 환상이나 오해가 있는 친구들이 많아 다소 장황하게 설명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컴퓨터를 단순한 계산기로 치부해도 곤란합니다. 컴퓨터는 우리 인간에게 유용한 도구이고, 인간이 상상하기 힘든 속도로 계산해 주어 우리가 얻는 이점은 엄청나게 큽니다. 이 이점을 얼마나 잘 이용하느냐에 따라 미래 사회를 얼마나 더 현명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가 나뉠 것입니다.
요즘은 누구나 컴퓨터를 자연스럽게 배우기 때문에 이런 말을 쓰는 사람도 잘 없을 것 같지만, 제가 어릴 적만 해도 ‘컴맹’이라는 단어가 유행이었어요. 요즘 말로 ‘컴알못(컴퓨터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쓰면 되려나요. 여기서 컴알못이란 컴퓨터 부품을 사서 조립하거나 홈페이지를 만들 줄 아는 파워유저를 말하는 게 아니라, 아예 컴퓨터를 사용할 줄조차 모르는 사람을 뜻합니다.
이런 사람은 이미 현대 사회에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지요. 요즘은 어느 직장에 가도 자리에 컴퓨터가 있고, 모든 일을 그 컴퓨터로 처리합니다. 회계를 하건, 저처럼 글을 쓰건, 설계를 하건, 그림을 그리건 다 컴퓨터를 씁니다. 법정에서 변호를 하건, 사람을 치료하는 일을 하건, 모두 다 컴퓨터로 기록을 관리하고 일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컴퓨터를 쓰지 못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지요. 물론 전혀 쓸 줄 모르는 분들도 분명 계시겠지만, 사회에서 주도적으로 일을 하지는 않으실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그렇다면 이 컴퓨터는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요? 그래서 약간 복잡해질 수도 있지만 컴퓨터의 기본 구조와 원리 등을 잠깐만 짚어 볼까 합니다. 그 편이 ‘컴퓨터와 로봇, 인공지능이 만드는 새로운 미래’를 더 잘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매우 당연한 이야기지만 컴퓨터는 전기로 움직입니다. 전기가 없는 컴퓨터는 1초도 동작하지 못하지요. 항상 전선을 꼽고 써야 하고, 들고 다니는 노트북 컴퓨터는 배터리를 이용해서라도 전기를 공급받습니다. 키보드 없이 터치스크린으로 명령을 받고, 언제나 배터리로 전기를 공급받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도 사실 기본 구조는 한 대의 컴퓨터이지요.
컴퓨터에서 가장 중요한 부품은 크게 세 가지를 꼽습니다. 하나는 CPU(중앙처리장치)라는 계산 장치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이 장치가 계산할 자료들을 보관하는 기억 장치인데, 흔히 램(RAM)이라고 부르지요. 하지만 전기가 꺼지면 기껏 계산해 놓은 자료가 다 사라질 테니, 이런 자료를 저장해 놓았다가 꺼내 쓰는 저장 장치도 필요합니다. 이것을 흔히 하드디스크HDD라고 부르지요.
요즘은 하드디스크 대신에 에스에스디SSD(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라는 것을 많이 쓰는데, 이것은 전자적으로 만든 신형 하드디스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도 하드디스크와 같은 기능을 하는 물건이지요. 다시 말해, 기억 장치는 내가 잠깐 책상에 종이를 펴놓고 메모를 적어 놓은 것, 저장 장치는 책에 제대로 글을 써서 책꽂이에 꽂아 놓은 것이라 생각하면 편합니다.
여러분이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도, 노트북 컴퓨터도, 그리고 집에서 쓰는 책상용 컴퓨터(데스크톱 컴퓨터)도 모두 내부 구조는 이와 같이 다 똑같습니다.
이러한 컴퓨터 구조는 헝가리 출신의 미국인 수학자 ‘폰 노이만John von Neumann ’이 처음 생각해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세상에 있는 컴퓨터는 거의 대부분 폰 노이만이 창안한 기본 구조를 따르고 있습니다. 이 방식에서 벗어난 컴퓨터를 여러분이 시중에서 볼 수 있는 확률은 단 0.1%도 없습니다. 일부 연구 목적의 특수 컴퓨터는 다른 구조로 만들 수 있겠지만 그런 컴퓨터는 연구소 등을 방문해야 하지요. CPU와 RAM, HDD(또는 SSD)의 3가지 핵심 부품을 이용하는 컴퓨터나 스마트폰, 하다못해 카메라나 게임기까지, 최근 팔리는 스마트 전자 장치는 거의 폰노이만 구조를 지녔다고 보면 됩니다.
흔히 우리는 전 세계에서 컴퓨터를 가장 먼저 만든 사람으로 2차 세계대전 때 적군의 암호해독 기계를 만든 ‘앨런 튜링Alan Turing’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컴퓨터를 만들기 위한 논리적 구조나 실험용 컴퓨터의 개발은 폰 노이만의 업적이라고 보는 편이 맞습니다. 바꿔 말해, 우리는 컴퓨터를 최첨단 장비라고 인식하지만, 그 기본 구조나 원리는 이미 1900년 대에 나온 구닥다리 구조에서 별반 변한 것이 없답니다.
어쨌든 폰 노이만의 가장 큰 업적은 현재와 같은 컴퓨터 구조를 확립한 것이라 할 만합니다. 그는 미국의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 즉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할 때 발표한 논문 <전자계산기의 이론 설계 서론>에서 CPU, 메모리, 프로그램 구조를 갖는 ‘프로그램 내장 방식 컴퓨터’의 아이디어를 처음 제시하였습니다. 7년 후 1947년에는 케임브리지대학교의 의뢰로 세계 최초 컴퓨터 중 하나로 꼽히는 에드삭EDSAC을 제작하기도 했지요.
세계 최초의 컴퓨터로는 에드삭보다 1년 앞선 에니악ENIAC을 꼽습니다만, 구조나 동작 원리 면에서 에드삭이 더 최초의 컴퓨터에 가깝다고 보는 사람도 많답니다. 에드삭은 이후에 1952년 개발된 에드박EDVAC으로도 이어집니다. 이것이 최초로 소프트웨어, 즉 원하는 프로그램을 설치해 구동하는 컴퓨터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이 시기에는 컴퓨터의 원리가 밝혀진 이후 너나없이 컴퓨터와 비슷한 장치들을 개발하던 시기였으니 ‘어떤 것이 진짜 최초냐’를 놓고 의견이 분분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지요.
어쨌든 이렇게 컴퓨터라는 물건이 세상에 태어나게 됩니다. 초창기에는 여러 대학이나 연구기관에 하나둘씩 설치되기 시작했어요. 복잡한 계산을 척척 할 수 있다니까 많은 사람들이 공부나 연구를 하는 데 큰 도움이 됐지요.
초창기의 컴퓨터는 ‘진공관’이라는 걸 써서 만들었습니다. 컴퓨터 속에는 전기 회로가 들어가는데, 그걸 만들려면 일반 전선처럼 양쪽으로 전기가 흐르는 ‘도체’만 가지고는 불가능했지요. 전기가 한쪽 방향으로만 흐르거나, 혹은 원하는 때에 전기가 흐르는 방향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반도체’가 꼭 필요했으니까요.
하지만 컴퓨터 개발 초기에는 작은 금속으로 반도체를 만들 기술력이 없었어요.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방법이 ‘진공관’이었습니다. 진공으로 만든 유리관 속에 금속을 넣고, 그 금속을 가열하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금속이 유리관 속에 전자를 방출하게 되지요. 마치 백열전구랑 같은 원리입니다. 생긴 것도 거의 비슷하답니다. 아직도 오디오 장비 등을 만들 때 진공관을 사용하니 아마 보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진공 속에 전기장이 방출되면, 내부에 들어 있는 두 개의 금속 사이에서 전기를 흐르게 만들 수 있습니다. 전기장의 세기에 따라 전류의 증폭, 정류 등의 특성을 조절할 수 있으니 전기가 흐르는 방향도 조종할 수 있게 되면서 현재의 반도체 역할을 하게 되었지요. 이렇게 컴퓨터를 만들려 하니 엄청난 전기가 필요했습니다. 이에 따라 컴퓨터의 크기도 무척이나 컸습니다.
진공관은 백열전구와 사촌이다 보니 툭하면 망가지고 고장이 납니다. 전등의 수명이 다 하면 망가지는 것이랑 똑같지요. 그래서 수천 개가 넘는 진공관을 커다란 방에 설치해 놓고, 사람이 들어가 일일이 망가진 것을 갈아 끼우며 관리해야 컴퓨터로 계산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사람들이 이렇게 불편한 기술을 계속 썼을 리 만무합니다. 과학자들이 연구를 지속해서, 비효율적인 진공관 대신 실리콘(규소)이나 게르마늄 같은 물질을 이용하면 반도체로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지요. 이 물질들을 아주 작게 가공해 여러 겹 겹쳐 연결하면 전기를 한쪽 방향으로만 흐르게 만들 수도 있고, 또 옆에서 전압을 걸 때는 도체, 아닐 경우엔 부도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결국 진공관과 똑같은 역할을 하는 부품, 즉 전기의 방향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초소형 장치를 만들 수 있게 된 거지요.
이 ‘반도체’를 얼마나 더 작고, 더 정밀하게 만드느냐에 따라 컴퓨터 기술의 발전 판도가 달라집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컴퓨터는 급속도로 작고 또 빨라지게 되었고, 이제는 과거 초대형 컴퓨터로 하던 일을 스마트폰으로 처리해내는 세상이 된 것이지요.
어쨌든 진공관으로 만든 컴퓨터가 생겨난 후, 10여 년 만에 사람들은 반도체 칩을 이용해 컴퓨터를 만들게 됩니다. 컴퓨터를 작게 만드는 작업에 눈독을 들인 사람들 중 일부는 ‘이 컴퓨터를 가정에서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편리할까’란 생각을 하게 됐지요.
잘 알려진 대로 그것을 실현한 사람이 ‘스티브 잡스Steve Jobs’입니다. 그는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를 개발했지요. 스티브 잡스가 만든 ‘애플’ 컴퓨터는 곧 여러 나라로 퍼져 나갔습니다. 한편 개인용 컴퓨터를 누구나 손쉽게 만들어 팔 수 있도록 범용 운영체제OS인 ‘윈도우즈Windows’를 만들어 판 사람도 있습니다. 바로 ‘빌 게이츠Bill Gates’입니다. 이 두 천재가 세상에 미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