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두기
1. 책에 등장하는 주요 인명, 지명, 기관명 등은 국립국어원 외래어표기법을 따랐다.
2. 단행본은 《 》로 표기했으며 단편작품, 노래 제목, 영화, 방송 프로그램 등은 〈 〉로 표기했다.
3. 민족사관고등학교, 듀크대학교, 하버드대학교는 편의상 민사고, 듀크대, 하버드로 표기했다.
윤 지 씨를 처음 만난 곳은 서점에서 열린 북토크에서였다. 강연을 마치고 서로의 고민을 나누는 시간, 조용히 말문을 연 그는 하버드 로스쿨에 다니는 학생으로 현재 불안증과 우울증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솔직히 첫마디에 그에게 관심이 갔던 건 내가 미국 법정 드라마 마니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드라마 속 야망에 이글거리는 인물들과는 달리, 툭 치면 쓰러질 것 같은 여린 눈빛과 목소리가 마음에 걸려 나는 몇 가지 이야기를, 나름 신중해지려 노력하며 건넸던 기억이 남아 있다.
몇 달 뒤, 그는 나의 새 서점에서 열린 또 다른 북토크에 나타났다. 전보다 훨씬 밝은 표정으로 하버드 기념품 열쇠고리와 엽서를 주었는데, 그 글 속에는 그날의 만남으로 인해 그가 꾸준히 회복해왔다는 고백이 담겨 있었다. 그날 이후 더 많은 책을 읽기 시작했고, 서평을 남겼으며,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책을 추천하기 시작했다고. 사실 그 도전과 변화에 내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 클 리가 없다. 그 모든 기적은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어낸 것이다. 게다가 그는 모르겠지만, 그날의 환해진 표정은 나에게도 기억에 남을 큰 선물이 되었다.
원고를 읽으며 다시 한 번 그 순수하고 소중한 마음의 기록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언제나 힘껏 달려야만 할 것 같은, 숨 쉬는 법을 잊을 것만 같은 부담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완벽한 방법은 없다. 때로는 많은 일들이 어렵고 고통스럽지만, 마음이 가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 생각하고 이를 나누는 것이 좋은 회복의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걸 알려준 작가에게 고맙다.
김소영, 책발전소 대표·방송인
프롤로그
2017년 8월 25일 열린 하버드 로스쿨 입학 오리엔테이션. 벌써 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이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렵고 긴장되었다. 치열한 경쟁 끝에 이곳에 도착했지만, 이곳에서 또 다른 경쟁이 시작될 것이라는 직감을 공기의 흐름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미국 내 여러 로스쿨 정원이 대체로 학년당 100~200명인 데 비해 하버드 로스쿨은 학년당 학생 수가 500명 이상이다. 하버드에서는 이 많은 학생들이 교수진과 최대한 자주 교류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1학년을 80명씩 일곱 개 섹션으로 나눈다. 나는 ‘섹션 6’으로 배정되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로 가득한 넓은 교실에서 간단하게 자기소개가 시작되었고, 어느새 내가 이 섹션에서 막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입학생의 80퍼센트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로스쿨에 진학하는 ‘스트레이트 쓰루straight through’였는데, 지금은 대학교 졸업 후 일을 몇 년 하고 로스쿨에 입학하는 사람들이 주를 이룬다. 학교 홈페이지에도 실무 경험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공지를 해두었던 터라, 대학교를 1년 조기 졸업하고 바로 로스쿨에 입학한 내가 막내뻘인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섹션의 지도 교수님이자 섹션 리더라 불리는 존 핸슨 교수님이 열심히 우리의 긴장을 풀어주려고 하셨지만, 내 머릿속에는 온통 불안한 생각뿐이었다. 내가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지? 혹시 전산 오류가 있었던 건 아닐까? 여기 같이 앉아 있는 동기들은 다들 엄청 대단한 커리어를 가진 사람들이겠지? 이곳에서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겉으로는 침착한 척했지만 속은 바싹바싹 타들어가고 있는데, 핸슨 교수님이 우리에게 종이를 한 장씩 나눠주셨다. 교수님은 학생들에게 로스쿨에 온 이유, 앞으로 3년 동안 이 학교에서 얻고자 하는 것,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 어떤 법조인이 되고 싶은지 등을 써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 종이는 교수님이 다시 걷은 다음, 우리가 졸업할 때 돌려주신다고 하셨다. 교수님은 오랫동안 이곳에서 많은 학생을 가르쳐보니, 3년 동안 자신도 모르게 변해버린 스스로를 마주할 때 학생들이 가장 힘들어하더라고 말씀하셨다. 누구나 저마다의 열정과 꿈을 가지고 하버드 로스쿨에 지원했을 텐데, 여러 가지 이유로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처음 가졌던 꿈은 물론 자기 자신까지 잃어가는 모습을 수없이 보았다며, 지도 교수로서 너무나 안타깝다고도 하셨다. 고민 끝에, 신입생들에게 가치관과 목표를 직접 쓰게 하고 졸업식 때 돌려준다고 하면 80명 중 몇 명이라도 초심을 기억하며 자신을 굳건하게 지켜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이런 과제를 내신 것이었다.
이제 막 입학해 교수님께서 내주신 첫 과제를 할 때만 해도 나와 동기들은 이런 활동이 재미있다고 여겼다. ‘오리엔테이션이 다 이렇지 뭐’ 하면서 종이를 앞에 두고 나름 진지하게 고민하면서도, 한편으로는 3년이 그리 긴 시간도 아닌데 그사이에 생각이 바뀌어봤자 얼마나 바뀔까 싶은 의구심도 들었다.
내가 그때 적었던 내용은 인간관계와 사람의 감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법조인, 꿈을 좇느라 지금까지 나를 응원해준 이들을 잊지 말 것, 법은 결국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켜주는 도구일 뿐 법 자체에만 집중하느라 사람을 잊지 말자 등이었다.
해마다 수천 명이 이곳에서 힘겹게 적응하면서도 자신을 지키려고 애를 쓴다. 그 과정을 오래 지켜봐오신 교수님의 과제를 가볍게만 생각했던 내가, 지금은 참 어리석게 느껴진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지난 2년 동안 온갖 고민과 이런저런 조언에 갈대처럼 흔들렸다. 읽어도 읽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리딩과 콜드콜cold call의 긴장 때문에 내가 지금 무슨 공부를 하고 있는지, 어떤 분야가 더 마음에 드는지 생각할 겨를 같은 건 아예 없었다. 참고로 콜드콜이란 수업 시간에 교수가 학생을 무작위로 골라 질문하는 수업 방식을 말한다.
1학년 1학기가 끝날 때쯤에는 다음 해 여름에 일할 곳을 찾아야 했다. 나는 어느 분야의 법을 다루고 싶은지 제대로 고민하지도 못하고 지원서를 내기 시작했다. 입학 당시에는 정말 많은 동기들이 정부기관이나 NGO에서 공익을 위해 일하길 희망했는데, 학교에서 대형 로펌에 취업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제공하는데다 현실적으로도 취업 후에는 엄청난 학자금 대출을 갚아야 하는 경우가 태반이라, 많은 학생들이 대형 로펌으로 진로를 바꾼다. 이러한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공익 분야에서 일하기 위해 묵묵히 나아가는 동기들이 새삼 대단해 보인다.
나는 ‘로스쿨 졸업 후 어떤 법조인이 되겠다’라는 목표가 없는 상태로 입학했기 때문에 유난히 더 흔들렸다. 사람을 위해 일하고 싶은 마음은 변함이 없었지만 더 좋은 로펌, 더 많은 연봉, 더 주목받는 위치에 오르기 위해 피나게 노력하는 동기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이전에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꿈을 꾸기 시작했다. 로스쿨 졸업 후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나는 어느새 미국 로펌 취업을 위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부모님은 애초에 미국에서 일하고 싶어하지도 않았으면서 왜 그렇게 미국 취업에 매달리느냐고 물으실 정도였다.
하버드 로스쿨 특유의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입학 당시 많은 학생들의 꿈이 로펌이 아니었음에도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뉴욕에 있는, 매출액과 인지도가 높은 로펌에 취직해야 할 것 같은 압박에 시달렸다. 혼란스러웠던 1학년 말, 미국 로펌 취업이 확정되고 동기들끼리 맥주를 마시며 우리 모두 그때는 왜 그렇게까지 순위, 성공, 타인의 시선, 연봉, 뉴욕이라는 도시에 집착했을까 하며 웃었다. 아마 핸슨 교수님이 우리에게 조언하셨던 3년 뒤의 혼란이 이런 것이지 않았을까.
지금 돌이켜보니, 이 폭풍 같던 시기에 나를 완전히 잃어버리진 않았다는 점이 참 다행이다. 동기들이 많이 참여한다는 이유로 별 관심 없던 행사에 기웃거리기도 했고 하버드 로 리뷰Harvard Law Review나 무트 코트Moot Court처럼 사회에서 인정하는, 그래서 학내에서도 경쟁이 치열한 활동에 지원해야 하나 고민할 때도 많았다.
자꾸 앞만 보고 달려가느라 어릴 때부터 가졌던 꿈과 중요하게 여겨온 가치를 잊지 않기 위해 내가 선택한 방법은 바로 책 읽기였다. 처음부터 어떤 거창한 목표를 가지고 책을 읽은 건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워낙 책 읽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책은 언제나 내 곁에 있었다. 공부가 힘들거나 인간관계에 지치면 침대 속으로 기어들어가 허리까지 이불을 덮고 베개에 기댄 채 책을 읽었다.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혼란스러울 때도 책을 펼쳤다.
학교 생활에 집중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 눈앞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라고 착각하기 쉬웠다. 하지만 책을 읽을 때면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저마다의 삶을 꾸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킬 수 있었다.
때로는 내가 하는 고민을 다른 누군가도 똑같이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위로받기도 했다. 미셸 오바마는 《비커밍》을 통해 자신은 깊은 고민 없이 친구들을 따라 하버드 로스쿨에 지원했다고 밝혔다. 그녀는 뚜렷한 목적의식 없이 진학한 학교에서 공부할 이유와 법의 의미를 찾지 못했지만, 어릴 때부터 최고가 되기 위해 달려온 습관 덕분에 졸업 후 유명한 로펌에 어렵지 않게 입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셸은 어느 순간부터 시카고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47층 사무실에서 벗어나 사람들과 직접 소통하며 살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된다. 물론 엄청난 학자금 대출금을 갚을 수 있고 대형 로펌 변호사로 화려한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는 고액 연봉은 쉽게 뿌리칠 수 있는 유혹이 아니었다. 미셸은 오랫동안 망설이고 고민했지만, 결국 버락 오바마의 따뜻한 지지와 마음의 소리를 따라 로펌을 퇴사한다.
나만 줏대 없이 자꾸 흔들리는 건지 의기소침해질 때마다 미셸 오바마를 떠올리면 힘과 용기가 생긴다. 내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미셸처럼 내 결정이 그 순간의 내 가치관과 꿈과 일치하기를 바랄 뿐이다.
솔직히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책만 펼치면 머리가 지끈거리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 그런데 왜 나는 이런 책을 쓰게 되었을까. 내가 비록 인생을 오래 산 것은 아니지만, 살다 보면 흔들리는 순간이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 꿈이 아닌 다른 사람의 꿈을 꿀 때도 있고, 나는 동의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연장자나 윗사람, 공동체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는 순간도 정말 많다.
나는 그런 순간마다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책을 읽었다. 책을 읽으며 내 생각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고, 나와 다른 상황에 놓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책을 통해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생각을 할 수 있었고, 책이 있어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만날 수 있었다. 이런 시간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나의 내면이 더 단단해졌고, 나의 생각이 더 넓어졌고, 나의 이해가 더 깊어졌다고 확신할 수 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은 젊은이이지만.
2018년 초, 지금까지 내게 힘과 용기를 준 책들을 알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SNS에 짬짬이 서평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멋진 서평도, 통찰력 있는 비평도 아니었지만 내가 틈틈이 올리는 글을 읽으며 위로받는다는 댓글을 보면서, 어느 순간 내가 위로를 받게 되었다. 무엇보다, 베스트셀러가 아니어도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는 책들을 알게 되었다는 인사가 감동적이었다. 대단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내 서평과 책 소개가 누군가에게는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꾸준히 책을 읽고 글을 쓰다 보니 어느새 150편이 넘는 서평을 남기게 되었다.
《나는 하버드에서도 책을 읽습니다》는 이 글들을 엮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고 싶다는 바람의 결과물이다. 내가 그동안 많은 책을 읽으며 고민했던 순간, 뼈저리게 공감했던 구절, 설득되었던 목소리, 가슴 따뜻해졌던 시간을 담았다.
제목에 대해 잠시 언급해야겠다. 혹시 제목을 보고 하버드 학습법, 하버드 로스쿨 입학하는 법 같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기대한 분이 있다면 미리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한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화려하다고 생각하는 스펙을 내세워 내 자랑을 하고 싶지도, 공부벌레가 되는 방법을 소개하고 싶지도 않고 그런 방법을 소개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다. 우선 나 자신이 공부벌레가 아니고, 학벌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편집장님의 간곡한 설득으로 이 제목에 동의했지만, 많은 분들이 ‘하버드’보다 ‘책’을 주목해주셨으면 하는 것이 나의 진심이다.
노래든 공연이든 드라마든 여행이든, 나를 찾고 나를 잘 알게 해주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나에게는 책이 가장 큰 나침반이 되어주었다. 부족한 점이 많지만 최선을 다해 나의 솔직한 마음과 일상을 담았다. 나의 수많은 시행착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할 민사고와 하버드 로스쿨의 이면, 책을 읽으며 울고 아파하고 분노하고 후회하고 반성했던 나의 솔직한 고백을 통해 단 한 사람이라도 조금이나마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프롤로그
추천사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어낸 기적을 응원하며 •
프롤로그 책이 있어 나라는 사람을 더 잘 알 수 있었습니다 •
1장 책을 읽으며 세상을 공부합니다
민사고가 궁금하신가요? •
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네가 있을 뿐 •
인생에 오르막과 내리막만 있는 건 아니라서 •
내가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이유 •
책으로 만나는 인연, 책으로 나누는 마음 •
왕관을 쓰고도 행복할 수 있다면 •
우리는 모두 다르다고 가르치는 교육 •
입시가 너를 끌고 가게 내버려두지 마 •
미성숙했던 진심 •
지금 내가 하는 고민을 먼저 했던 사람들 •
엄마 아빠 딸로 태어나서 행복하고 감사해요 •
도망치고 싶을 때까지 참지 않아도 괜찮아 •
2장 책을 읽으며 사람을 생각합니다
그 사람의 인생과 나의 인생은 다르니까 •
눈에서 멀어지기에 더 소중한 사람들 •
이제는 눈을 감고 내 안을 들여다보자 •
나이가 들어도 꿈이 뭔지 묻고 싶다 •
당신을 이해하고 싶어 책을 펼쳤습니다 •
출산, 버스 기사, 예쁜 옷, 할머니 •
얼굴과 몸매 외에는 궁금한 게 없으신가요? •
타인을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 •
저도 따돌림을 당해봤어요 •
3장 책을 읽으며 법을 고민합니다
책을 출간하면서 보고 듣고 배우는 것들 •
불편함을 마주할 용기, 다름을 받아들일 용기 •
방탄소년단의 노래가 나에게 미친 영향 •
아이에게는 발언권이 없는 ‘아이의 최대 행복’ •
나는 평생 법을 두려워하고 싶다 •
버닝썬, 그리고 고故 장자연 님 뉴스를 보면서 •
어쩌다 로스쿨, 어쩌다 변호사 •
우리는 듀크대라는 버블에 갇혀 있었던 거야 •
폭력의 정의, 폭력의 범위 •
혐오는 취향도, 의견도 아닙니다 •
에필로그 책이 있어 내가 더 나다워질 수 있었습니다 •
기상송이 요란하게 울린다. 벌써 여섯 시가 되었나보다. 방송반에서 학생들에게 신청곡을 받아 매일 아침 기상송을 틀어주는데, 어떤 날은 우리를 웃게 해주려고 학생들이 직접 녹음한 노래를 내보내기도 한다. 솔직히 재미있다기보다는 피곤해서 짜증이 날 때가 더 많지만, 어쨌거나 민사고의 아침은 기상송으로 시작된다.
종이 울리면 비몽사몽으로 이층 침대에서 조심조심 내려온다. 예전에 급하게 내려오다가 몇 계단을 구르는 바람에, 몇 주 동안 허벅지 뒤쪽에 멍이 심하게 든 적이 있다.
이곳에서는 여섯 명이 각 호별로 지낸다. 양쪽 방에 세 명씩 살면서 호 가운데 있는 복도와 화장실을 함께 쓴다. 호마다 가장 잘 일어나는 아이가 호 전체를 깨우면 다 같이 아침 운동을 하러 간다. 보통 1학년은 검도나 태권도, 2학년은 조깅, 3학년은 체조를 한다. 내 룸메이트처럼 아침에 몇 분이라도 더 자기 위해 밤에 검도복을 입은 채로 바닥에서 자는 친구들도 있다.
혹시 사람들은 검도복이 바지인지 치마인지 알고 있을까? 나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검도복은 당연히 치마일 거라 생각했다. 1학년 아침 운동 첫날 한쪽 다리에 두 다리를 넣고 펭귄처럼 뒤뚱대며 체육관까지 간 적이 있는데, 다른 친구들을 보니 뭔가 이상해서 같이 가던 친구에게 물었다가 3초간 정적이 흘렀다. 이 일로 얼마나 오랫동안 바보 소리를 들었는지.
‘민사고 3년’ 하면 가장 먼저 매일 아침마다 같은 방 친구들을 깨우고 옷을 갈아입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소등을 하고 체육관으로 향하던 기억이 난다. 3년 내내 새벽마다 온몸으로 맞았던 강원도 산골 칼바람을 양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참고로 소등을 하지 않았다는 게 발각되면 즉시 벌점을 받는다. 청소 불량, 기물 파손, 연애, 선생님 말씀 불복종, 지각 등 벌점을 받는 항목은 정말 많다. 이곳에서는 매주 목요일 1자습마다 학생회 사법부에서 진행하는 ‘법정’이 열린다. 만약 그 주에 교칙을 위반하면 귀한 자습 시간을 날려가며 자신이 어긴 항목에 대한 벌점을 받으러 법정으로 간다.
체육관까지는 서둘러 가도 5~7분은 걸린다. 잠에서 덜 깬 아이들이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체육관으로 향하는 걸 쉽게 볼 수 있다. 나는 1학년 초에 아침기를 가다가 양볼에 동상이 걸렸던 적이 있다. (참고로 민사고에서는 아침 운동을 아침기라고 부른다.) 아침기를 마치고 기숙사 12층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방으로 내려왔는데, 양 볼이 불타는 고구마처럼 변해 있었다. 며칠간 얼굴이 계속 따가워 병원에 가니 의사 선생님이 의아해하며 요즘 같은 시대에 대체 어디서 지냈기에 볼에 동상이 걸렸냐고 물으셨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오면 수업 전까지 잠깐 여유가 생긴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아침을 안 먹고 바로 방으로 돌아와서 다시 잔다. 특히 겨울에 난방을 빵빵하게 틀어놓고 바닥에 큰 대大 자로 누우면 천국이 따로 없다. 어떤 친구는 일주일 식단표를 미리 확인해 좋아하지 않는 메뉴가 나오는 날이면 전날 밤에 받은 빵을 먹기도 한다.
오후 일곱 시부터 시작되는 1자습이 끝나고 아홉 시가 되면 사감 선생님께 문안을 드리는데, 이걸 혼정 시간이라고 한다. 이때 여학생, 남학생끼리 따로 모여 동아리와 학생회 공지사항을 듣고 선생님께 인사를 드린 뒤 식당에서 제빵사분들이 구워주시는 빵과 우유를 먹는다. 빵은 매일 바뀌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깨찰빵을 제일 좋아한다. 평소에는 흰 우유가 나오는데 가끔 초코 우유나 바나나 우유가 나오면 학생들이 몇 개씩 집어가서 후배들은 못 먹을 때도 있다. 급식으로 치킨이 나올 때도 후배들에게 많이 미안해진다. 그래도 매달 학년별로 급식 순서가 바뀌어서 다행이다. 어느 학교든 급식은 매우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학교 수업은 8교시까지 있고, 1교시 시작 전에 어바 타임을 갖는다. 10~20분 정도 어드바이저 선생님과 보내는 시간을 어바 타임이라고 하는데, 일반 고등학교의 담임 선생님을 이곳에서는 어드바이저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대부분은 이 시간에 부족한 잠을 마저 잔다. 이 시간에 가끔 학급별 공지사항이 전달되기도 한다.
우리 학교는 워낙 넓어서 만약 산 아래에 있는 다산관, 충무관에서 한 수업이 끝나고 다음 수업을 산 위에 있는 민교관, 영교관, 체육관에서 듣게 되면 쉬는 시간이 산 타기 시간이 되어버린다. 겨울에는 눈이 워낙 많이 오고 길도 다 얼어서 학교에서 나무마다 밧줄을 묶어준다. 미끄러지지 않게 다들 밧줄을 잡고 이동하지만, 그래도 다리를 다쳐 목발을 집는 학생들이 해마다 꼭 생긴다.
민사고에서는 본인이 원하는 과목으로 수강 신청을 할 수 있어서 학생들마다 시간표가 다른 편이다. 과학, 사회, 인문, 역사, 수학 등 다양한 과목이 세부적으로 나뉘어 있어서 선택지도 넓은 편이다. 또 국내 진학반, 국제 진학반으로 구분돼 있어서 국어, 수학, 영어는 국내반, 국제반끼리 모여 듣는다. 진학반은 언제든지 옮길 수 있어서 꽤 많은 학생들이 진로를 바꾸기도 한다.
대신 수학은 진도가 완전히 달라서 본인이 따라잡으려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나는 전형적인 문과생이어서 법, 사회, 영문학 기초, 미국사 등을 수강했고 과학 영역도 하나는 들어야 해서 그나마 외울 수 있는 생물을 골랐다.
선생님이 개별적으로 선정하시는 필독서 중에 지금도 뇌리에 남아 있을 정도로 나를 흔들어놓았던 책이 몇 권 있다.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는 내가 법과 정의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 앨리스 워커의 《더 컬러 퍼플》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존엄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박탈당한 채 살아가는 주인공 셀리를 통해 사회에 분노를 느끼게 해주었다.
숱한 실패와 좌절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나 역동적으로 도전하는 주인공을 통해 “인간은 파괴될 수 있어도 패하지는 않지”라는 명언을 남긴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언제 읽어도 마음이 포근해지는 포리스트 카터의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등도 빼놓을 수 없다.
민사고는 도서관 시설이 정말 잘 갖춰져 있어서 시도 때도 없이 책을 빌려 읽곤 했다.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를 읽을 때는 마지막 반전에 씩씩대며 분노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드라마로도 제작된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을 읽으며 시험으로 피폐해진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달하게 채우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민사고 학생들이 다들 치열하게 공부만 하진 않는다. 남학생들 중에는 일반고에 진학했다면 상상도 못 했을 만큼 게임을 많이 하는 친구들도 있다. 시험 기간이 끝나면 너 나 할 것 없이 밀린 드라마나 영화를 본다. 학교가 동아리 활동에 투자를 많이 해서인지 학교 생활을 하는 틈틈이 운동이나 공연, 연구 등을 하며 논문을 써서 여러 대회에 참가하는 학생들도 있다.
대학처럼 공강 시간도 있는데, 나는 공강 시간을 비롯해 고등학교 3년 대부분을 배구부 활동에 쏟아부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학년 때 운동을 하고는 싶은데 다른 친구들처럼 꾸준히 하던 운동이 없다 보니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배구를 골랐다. 운이 좋게도 1학년에서는 한 명만 출전할 수 있는 도민체전에 나갈 수 있었는데, 경기는 뛰지 못했지만 선배들과 친분도 쌓고 배구부에 애정이 생겨 부장도 하면서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동아리 활동을 했다.
많은 학생들은 학교 일과가 끝나면 주로 운동을 한다. 그런데 배구부와 농구부는 체육관을 같이 쓰다 보니 저녁에 체육관을 먼저 선점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민사고에서 공부만 하는 애들한테 체육관이 뭐가 중요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식당에서 주장들끼리 진지하게 회의해 체육관 이용 시간과 공간을 정하는 경우가 꽤 많다. 연습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남자 배구부 주장과 함께 저녁을 얼마나 굶었던지.
1년에 한 번 있는 강원도민체전에 참가하는 운동부들은 입상을 하기 위해 그야말로 죽기 살기로 연습한다. 살면서 언제 이렇게 피 말리는 긴장감과 팀워크를 느껴볼까 싶을 정도다. 간혹 상대 팀 선수들 중에는 우리를 보고 공부만 하는 애들이 괜히 대회에 출전해서 나댄다고 욕을 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력서에 대외활동 경험 한 줄을 넣기 위해 대회에 나가는 학생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정말 순수한 열정으로 경기를 뛴다. 이기면 다들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고, 지면 팀원들에 대한 미안함과 아쉬움으로 통곡을 했다. 내가 학생이었을 때는 원통고등학교 여자 배구부에 져서 한 번도 금상을 타지 못했다. 3년 내내 양팔에 피멍투성이였지만, 내 고등학교 3년을 통틀어 가장 잘한 선택 중 하나가 배구부 활동이었다.
어쩌면 민사고 학생들처럼 운동이나 원하는 취미 활동에 몰두할 수 없는 학생들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일단 민사고 학생들은 다 같이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고, 학교가 강원도 산속에 자리잡고 있는 것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시간 배분을 잘하고 공부 효율성이 높은 똑똑한 친구들이 많이 모여 있어서 가능한 일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민사고에 천재들만 모여 있느냐, 하면 그건 당연히 아니다. 민사고에도 유별나게 머리가 좋은 친구들이 있고, 나 같은 노력파도 있다. 선생님들이 자습 시간에 감시를 하지 않고 전적으로 자율에 맡기기 때문에 잠을 자거나 인터넷을 해도 잘 걸리지 않는 상황에서, 이 시간에 온전히 공부를 하는 친구들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참고로 나는 잠이 너무나 중요한 사람이라 최소 여섯 시간 수면을 확보하기 위해 3년 내내 열두 시 취침을 칼같이 지켰다. 친구의 시험 공부를 도와주기 위해 딱 두 번 새벽까지 같이 공부한 날 외에는 대부분 1, 2 자습 시간에 미친듯이 공부하고 2자습이 끝나면 곧바로 침대에 눕곤 했다. 남들보다 상대적으로 많이 자는 나도 수업 시간에 졸려 죽을 것 같았는데, 이 시간에도 공부하는 친구들을 보면 새삼 존경스럽다. 특히 컴퓨터 프로그래밍이나 수학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은 공강 시간에도 선생님을 찾아가 여러 이론에 대해 질문을 하거나 토론을 벌이곤 했는데, 지금 보니 이런 친구들이 결국에는 자기 분야에서 탁월한 자질을 발휘하는 것 같다.
민사고 하면 빠질 수 없는 것 중에 한복 교복이 있다. 다른 학교 교복처럼 예쁜 옷을 입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우리 교복에도 나름의 장점이 있다. 남학생들은 계량한복을 입고 축구를 하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하고, 여학생들은 살이 쪄도 티가 나지 않아서 좋아한다. 민사고는 각 기수마다 교복 디자인이 달라서 윗기수 선배들의 교복을 물려받는 친구는 질투를 받기도 한다. 디자인이 예쁜 교복은 아무래도 드물어서 인기가 많고 그만큼 비싸다. 물론 친한 선배가 있으면 공짜로 물려받기도 한다.
교복 종류가 다양해서 정신이 없을 때는 위아래를 헷갈리기도 한다. 한번은 급하게 교복을 입다가 상의는 검은색 하의는 파란색이어야 하는데, 위아래를 모두 검은색으로 입는 바람에 친구들이 저승사자냐고 놀리기도 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 학교를 ‘한복 입고 공부하는 아이들이 모인 특이한 곳’이라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민사고는 여느 고등학교처럼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넘쳐나는, 말 그대로 나의 ‘고등학교’이다. 전국 각지에서 뚜렷한 개성을 가진 친구들이 모인 곳이라, 동기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저마다 떠올리는 민사고에 대한 이미지도 정말 다양하다.
나에게 민사고는 애증의 대상이다. 아쉽고 답답한 부분도 많아서 친구들끼리 툭하면 ‘빠졸답(빠른 졸업이 답이다)’이라고도 했지만, 정말 사랑스럽고 똑똑하고 다재다능한 친구들을 많이 만난 소중한 곳이기도 하다. 다른 학교에 진학했다면 하지 못했을 경험도 많이 했고,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숱한 영향을 미친 모교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민사고에서 보낸 3년을 100퍼센트 행복하고 좋았던 추억으로만 기억하지 않는 나에게도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으니, 혹시 주변에서 민사고 출신을 만나게 되면 그 사람의 추억을 물어봐도 좋을 것 같다. ‘민사인’의 한 사람이자 민사고를 사랑하는 졸업생으로서 많은 분들이 민사고를 한복, 귀족 학교, 공부벌레 집합소 같은 딱딱한 이미지만으로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저녁 여섯 시, 불을 끄고 커튼을 닫고 침대에 눕는다. 잠들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지만 상관없다. 쓰러질 것 같던 순간을 하루종일 악착같이 버텨냈더니 눈앞이 어지럽고 머리가 띵해서 더 이상 앉아 있기조차 힘들다.
침대에 눕기만 하면 기절할 듯 곧바로 잠들 것 같았는데 막상 누우면 잠이 오지 않는다. 이리저리 뒤척이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꿈을 꾸는 것처럼 눈앞에 뭔가가 펼쳐지는 듯하다. 보이지 않아야 할 사람들이 보이면서 마치 연극처럼 상황이 계속 바뀌니 당연히 꿈이라는 건 안다. 신기한 건 내 방도 같이 보인다는 거다. 인형을 꽉 잡은 손, 이불을 쓰다듬는 손도 겹쳐 보인다. 잠을 자는 것도 깨어 있는 것도 아닌, 그 중간 지점 어딘가에서 홀로 헤매는 듯한 느낌에 시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지쳐서 결국 눈을 뜬다. 다시 눈을 감지만 않으면 계속 깨어 있을 수 있다. 그래도 어제 못 잔 잠을 이렇게라도 보충하면 쓰러질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