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
전 세계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의 저자이며 현재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 역사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히브리 대학교에서 전쟁사와 지중해사를 공부한 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중세 전쟁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사피엔스』 외에 『호모 데우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등을 썼다.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
『총, 균, 쇠』로 퓰리처상을 받은 세계적인 문화인류학자이자 진화생물학자다. 현재 UCLA 지리학과 교수로 있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생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진화생물학, 조류학, 인류생태학 등으로 연구 영역을 넓혀갔다. 그 외 저서로 『문명의 붕괴』, 『어제까지의 세계』 등이 있다.
닉 보스트롬Nick Bostrom
옥스퍼드 대학교 철학과 교수이자 인류 미래 연구소(Future of Humanity Institute) 창립 소장이다. 분석철학뿐 아니라 물리학, 계산신경과학, 수리논리학 등에 해박한 인공지능 전문가다. 주요 저서로 『슈퍼인텔리전스』가 있다.
린다 그래튼Lynda Gratton
런던 경영대학원(런던비즈니스스쿨) 교수이자 인재론, 조직론의 세계적 권위자이다. 2011년에는 경영학계의 오스카상이라 불리는 ‘싱커스 50(Thinkers 50)’에 12위로 선정되었고, 이후로도 3번 더 이름이 올랐다. 저서로 『100세 인생』을 비롯해 『일의 미래』, 『핫스팟』 등이 있다.
다니엘 코엔Daniel Cohen
프랑스를 대표하는 경제학자이자 사상가다. 현재 파리 1대학, 파리 고등사범학교, 파리 경제학교(EEP)의 경제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로 국가 부채와 성장 문제를 연구하며 『악의 번영』, 『호모 이코노미쿠스』, 『세계화와 그 적들』 등을 썼다.
조앤 윌리엄스Joan. C. Williams
캘리포니아 대학교 헤이스팅스 로스쿨 교수이자 워크라이프 법률 센터(Center for Worklife)의 설립자 겸 초대 소장이다. 여성의 지위 향상에 관한 논의마다 핵심적인 임무를 수행해 《뉴욕 타임스》에서 이 분야의 ‘록스타’로 소개된 바 있다. 저서로 『백인 노동자 계급(White Working Class)』 등이 있다.
넬 페인터Nell Irvin Painter
미국 역사가 협회 및 미국 남부사 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프린스턴 대학교 명예 교수이자 미국 과학 아카데미 회원이다. 미국 인종사 전문가로 『백인의 역사(The History of White People)』 등을 썼다.
윌리엄 페리William J. Perry
카터 행정부 국방부 차관, 클린턴 행정부 국방부 장관을 역임했고, 현재 스탠퍼드 대학교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특히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내 북핵위기를 모면하는 데 일조했다. 저서로 『핵 벼랑을 걷다』 등이 있다.
엮은이오노 가즈모토大野和基
다방면에 걸쳐 취재 및 집필 활동을 하는 국제 저널리스트다. 도쿄 외국어대학교 영미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코넬 대학교와 뉴욕 의과대학교에서 공부했다. 놈 촘스키, 마이클 샌델, 짐 로저스 등 세계 주요 인사들과 단독 인터뷰를 해온 베테랑 언론인으로 현재 《주간 현대》, 《보이스》, 《정론》 등을 중심으로 활약하고 있다.
MIRAI WO YOMU
Copyright ⓒ 2018 by Kazumoto Ohno/Jared Mason Diamond et al
First published in Japan in 2018 by PHP Institute, Inc.
Korean translation rights arranged with PHP Institute, Inc.
through Danny Hong Agency
일러두기
본문은 원서의 인터뷰 형식을 따랐으며 질문자의 말은 별색으로, 저자의 답변은 검정색으로 구분했다.
이 책은 진화생물학, 역사학, 경제학 등 각 분야에서 활약하는 세계 석학들과 다가올 세상에 관해 나눈 대담을 엮은 것이다. 여러 나라를 오가며 혜안이 있는 거장들을 취재한 결과, 그들이 향후 미래를 결정짓는 요인으로 주목한 것은 ‘인공지능’과 ‘격차’였다.
우선 인공지능ArtificialIntelligence, AI이 미래를 좌우할 것이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난 2015년에는 구글 인공지능 프로그램인 알파고AlphaGo가 최초로 프로 바둑 기사를 무너뜨렸다는 뉴스가 대대적으로 보도되어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빼앗을 뿐만 아니라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기에 빠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20세기 말에서 21세기 초에는 컴퓨터, 인터넷 등 정보 통신 기술을 동력으로 하는 3차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그로 인해 사람들, 사물들 사이에 새로운 연결망이 구축되어 토머스 프리드먼의 주장처럼 세계는 ‘평평’해졌다.
그 뒤를 이을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이 이끌 것으로 보인다. 인공지능은 건강과 의료, 주거, 교육, 식생활 등 우리 삶 전반을 송두리째 바꿀 것이다. 또한 일의 형태와 성격에도 큰 변화를 불러올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3차 산업혁명이 무르익고 4차 산업혁명이 발아하는 과도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2016년에 영국이 유럽연합EU을 탈퇴한 사건인 일명 ‘브렉시트Brexit’ 사태가 보여주듯, 세계화가 심화됨에 따라 격차와 분극화polarization가 발생해 피로감이 고조되고 있는 한편 인공지능이 이끄는 혁명이 막 발흥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혁명은 사회를 극적으로 바꾸기도 하고, 기존의 가치관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가치관을 세우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 책은 미래의 새로운 가치가 어디를 향하는지 일깨워줄 것이다.
지식의 거장이 예견하는 미래
간단히 책의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방대한 인류사를 거시적으로 조망하고 사피엔스의 미래를 전망하는 통찰력으로 전 세계를 매료시킨 베스트셀러 『사피엔스』(김영사)의 저자 유발 하라리를 만났다. 그는 가까운 미래에 인공지능이 더 발전하면 대다수 인간이 정치적, 경제적 가치를 잃은 ‘무용 계급uselessclass’으로 전락할 거라고 내다본다. 그의 논리적 설명에 반박할 여지는 거의 없다.
다음에는 『사피엔스』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퓰리처상 수상작 『총, 균, 쇠』(문학사상)를 비롯해 다수의 저작을 집필한 세계적 문화인류학자이자 진화생물학자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나온다. 그는 인공지능에 의해서든 다른 그 무엇에 의해서든 국가 간 격차가 확대되면 앞으로 여러 문제들이 발생할 것이라 예측한다. 특히 세 가지 문제, 즉 신종 전염병의 확산, 테러리즘의 만연, 타국으로의 이주 가속화를 지적하며 그 피해를 경감하기 위해서는 선진국들이 적극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또한 향후 인공지능이 가공할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자 오늘날 가장 주목받는 젊은 인공지능 연구자 닉 보스트롬을 인터뷰했다. 그는 2014년에 펴낸 『슈퍼인텔리전스』(까치)에서 인간을 능가하는 초지능superintelligence(슈퍼인텔리전스)의 도래를 다루는데, 이 책에서 최근 수년간 인공지능 기술이 정신을 못 차릴 만큼 빠르게 발전해서 그 등장 시점이 당초 예상보다 앞당겨졌다며 당시의 예측을 정정했다. 초지능이 도래한다면 인류는 멸종하게 될까? 예상되는 시나리오에 대해 보스트롬이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쏟아낸다.
『100세 인생』(클)의 공동 저자이며 인재론, 조직론 분야의 권위자인 린다 그래튼은 우리의 삶과 일이라는, 개인과 좀 더 밀접한 이야기를 해준다. 이제 ‘100세 시대’는 현실로 다가왔다. 그래튼은 100세 시대에 ‘약년기에는 교육, 청장년기에는 일, 노년기에는 은퇴’라는 3단계의 삶의 방식이 통용되지 못한다고 단호하게 말하며 미래를 위한 새로운 인생 전략을 제시한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경제학자이자 사상가인 다니엘 코엔은 ‘경제성장이 행복을 담보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과학기술의 발달과 경제성장, 행복 간의 상관관계를 설명해준다. 그리고 인간과 로봇이 결합된 사이보그 세상에서 우리가 진정 원하는 행복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는지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이어간다.
세계 초강대국 미국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커다란 변화도 놓쳐서는 안 된다. 대다수의 예상을 뒤엎고 도널드 트럼프DonaldTrump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우연이나 일시적 결과로 보기 어려우며 민주주의 사회에 어떤 균열이 발생했음을 암시한다. 민주주의의 위기와 포퓰리즘의 귀환이 걱정스럽다면, 노동 전문가 조앤 윌리엄스와 인종 전문가 넬 페인터의 설명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한편 양차 세계대전과 냉전을 거친 20세기는 ‘전쟁의 세기’로도 볼 수 있을 터, 그렇다면 각국에서 핵이라는 전력을 보유한 21세기에는 전쟁이 어떤 양상으로 벌어질까? 특히 동북아시아 정세에 관해서는 북한의 동향이 커다란 열쇠를 쥐고 있다. 미국 빌 클린턴BillClinton 정부에서 1994년 1차 북핵 위기 때 국방부 장관으로서 외교교섭을 맡았던 윌리엄 페리는, 북한의 비핵화 선언으로 전쟁 위험이 줄었다고는 하나, 우발적인 핵전쟁 발발 가능성은 늘 존재한다며 경종을 울린다.
내일의 세계로 안내하는 나침반
지금 우리는 인공지능이 이끄는 혁명의 한가운데에 있다. 인공지능이 미래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예측 가능한 면도 있고,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예측 불가능성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그것은 짙은 안개 속을 운전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그러나 세계적 지성이라고 할 만한 혜안 있는 논객들의 식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그 안개는 서서히 걷히고 마음 한켠을 무겁게 짓누르는 걱정은 어느 정도 사라지는 듯하다. 물론 아무도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의 예지를 활용할 수 있다면, 대략적인 윤곽이라도 잡아볼 수 있지 않을까. 미래의 이미지를 조금이나마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으면 현재 해야 할 일은 더욱 명확해진다.
이 책이 여러분을 미래로 이끌어주는 데 일조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이다.
오노 가즈모토
“어쩌면 40억 년 역사의 유기 생명체 시대가 곧 막을 내리고 그 자리를 무기 생명체가 차지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30년 안에 우리가 내릴 수많은 결정은 단순히 정치판을 흔드는 데 그치지 않고 생명의 미래 자체를 좌우할 것입니다.”
ⓒ 노무라 다카후미(野村高文)
유발 하라리YuvalNoahHarari
1976년에 태어났다. 현재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 역사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히브리 대학교에서 전쟁사와 지중해사를 공부한 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의 지저스 칼리지에서 중세 전쟁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표 저서 『사피엔스』는 2011년에 이스라엘에서 출간된 이후 전 세계 30여 개국에 번역 출간되며 수많은 지식인과 저명인사의 호평을 받았다. 그 외 저서로 『호모 데우스』(김영사),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김영사) 등이 있다.
이스라엘의 젊은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전 세계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의 저자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중세 전쟁사를 연구했고 현재는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있는 히브리 대학교 역사학부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사피엔스』를 두고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역사와 현대 세계에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지는 책”이라고 절찬했다. 또한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나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 등 유명 인사들이 책을 추천하면서 전 세계가 하라리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역사를 보는 관점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연대나 지역을 한정해서, 혹은 전쟁이나 혁명 같은 역사적 사건이나 현상 각각에 집중해서 연구하는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장기적 시계에서 역사를 거시적으로 조망하는 방법이다. 하라리는 후자의 방법으로 연구하는 역사학자다.
대략 20만 년 전에 출현한 현생 인류, 호모 사피엔스는 다른 인간 종과 달리 어찌 살아남아 문명을 세웠을까? 이 장대한 인류사를 한 분야의 관점으로 접근하기란 쉽지 않다. 하라리가 분야 횡단적 연구 방법을 택한 이유이다.
하라리는 “현실은 하나”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편의상 자의적으로 현실을 여러 분야로 나눠 다르게 인식한다. 따라서 정말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하라리처럼 역사학뿐 아니라 정치학, 경제학, 생물학, 심리학, 철학 등 전 분야에 걸친 식견이 있어야 한다. 그러한 접근법을 통해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이라는 세 혁명을 축으로 인간 존재의 수수께끼에 답한 것이 『사피엔스』다.
예루살렘에 있는 그의 자택에서 이 영민한 천재와 미래에 인류가 어떤 현실을 맞닥뜨릴지, 그리고 세계의 가치가 어떻게 바뀔지 이야기를 나눴다.
허구의 노예가 되지 말고 허구를 이용하라
『사피엔스』에서 교수님은 호모 사피엔스가 오늘날의 지위에 오른 이유가 돈이나 국가, 법인, 인권과 같은 허구를 신봉하는 능력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평소 당연하게 생각한 돈이나 국가가 허구임을 깨달았을 때 세상을 보는 시각은 어떻게 달라집니까?
허구가 결코 나쁜 건 아닙니다. 기업이나 돈과 같은 허구 없이 인간 사회는 존재할 수 없으니까요.
기업은 직원들이 옳다고 믿는 공통의 이야기가 있어야 존속합니다. 돈은 많은 사람이 같은 가치를 믿어야 성립하고요. 이것들이 허구임을 알아버렸다고 해도 우리는 그 가치를 끝까지 믿으려 할 것입니다. 이를 테면, 돈에는 객관적인 가치가 전혀 없습니다. 돈의 가치는 많은 사람이 달러나 엔에 관해 동일한 이야기를 믿고 있다는 사실에서 나옵니다. 거의 모든 경제학자가 그 사실을 알고 있지요.
저는 절대로 이것들은 허구이니 맹신을 멈추자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이런 허구에 대한 믿음을 거둔다면 인간 사회를 지탱하는 시스템 전체가 붕괴하겠지요. 그리고 모르는 사람끼리 서로 협력하지 못할 것입니다. 다만 허구가 우리를 위해 기능하도록 해야지 허구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인간은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눈에 보이는 것이 현실인지 아니면 누군가가 만들어낸 이야기인지 구별하는 능력을 잃었습니다. 그 결과 무수한 사람이 국가나 사회, 그리고 신이라는 상상의 산물을 위해 전장에 나가거나 수백만 명을 마구잡이로 학살했습니다. 이런 사태에 이르지 않으려면 우선 눈앞에 보이는 것이 현실인지 허구인지 구별하고, 이를 이용할 방법을 고민해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현실과 허구를 구별할 수 있을까요?
최선의 방법은 대상으로 삼는 것이 고통을 느끼는지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고통은 세상에서 가장 현실적입니다. 일례로 국가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지요. 전쟁에서 패해도 괴로움을 느끼는 주체는 국가가 아니라 국민입니다. 기업도 고통을 느끼지 못합니다. 거액의 손실액이 발생하면 기업이 아니라 그 조직에 속한 경영자나 사원이 초조해합니다.
국가가 전쟁에 패해서 고통스러워한다는 말은 단순한 은유에 지나지 않습니다. 국가는 감정이 없으니 괴롭지 않을뿐더러 침울해하지도 않습니다. 인간의 상상 속에서 그렇게 묘사될 뿐입니다. 은행이나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토요타가 거금을 잃어도 토요타라는 존재 자체는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만들어낸 법적 허구에 불과하니까요. 대조적으로 인간이나 동물은 살아 있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그들이 느끼는 고통은 은유가 아니라 실제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 자신이 만들어낸 허구에 의해 우리가 고통을 느끼는 일이 어리석게 보입니다. 인간 사회가 잘 작동하려면 허구가 필요하지만, 허구를 도구로 보지 않고 그것을 목적이나 의미로 받아들이는 순간 초래될 고통은 실존하는 우리들의 몫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허구에의 과도한 몰입이 낳은 비극
어째서 인간만 이런 허구에 집착하게 되었을까요?
매우 어려운 질문이군요. 인간 외의 동물이 허구를 믿지 않으며 돈이나 기업이 인간만 공유하는 가치인 것은 분명하지만, 현시점에서 그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아직까지 우리는 인간 뇌나 정신의 작동 메커니즘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든요. 눈앞에 있는 탁자나 절 인터뷰하는 당신과 같이 구체적인 대상에 대한 뇌의 인식 메커니즘은 어느 정도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가상의 대상이나 추상적 개념과 관련해서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려면 풀어야 할 수수께끼가 많습니다.
종교와 달리 과학은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그래서 연구를 계속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과학의 세계에서는 무지를 감추기 위해 이야기를 날조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이런 태도가 중세와 근대를 구분하는 가장 큰 차이이며 그렇기에 근대에 이르러 과학기술이 발전할 수 있었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이 권리를 지키기 위해 피를 흘리고 국가에 의해 희생되며 돈이나 회사 문제로 고민하다 자살까지 합니다. 말하자면 허구 때문에 현실에서 목숨을 잃는 것인데, 이런 현상을 어떻게 봅니까?
앞서 말했듯 우리는 이 세상에서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과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이야기를 구별하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만큼 사람들이 이야기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이지요. 신에 관한 이야기, 국가에 관한 이야기, 또 인권에 관한 이야기 등 각종 이야기들에 마음을 빼앗겨버립니다. 그 이야기는 다시 자기 정체성이나 인생의 의미와 연결되고요. 일단 이야기에 빠지면 사람들은 그 내용과 상관없이 이야기를 지키기 위해 행동합니다. 고통과 희생을 감내하면서까지 전쟁에 나가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더군다나 오늘날은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 새로운 기술이 진보하면서 현실과 허구를 구별하기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가상공간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이용해 수시로 이메일을 확인하고 다른 시공간에서 일어난 일을 열심히 검색할수록 실제 일어나는 일을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을 보는 능력은 상실됩니다. 지금 이곳에서 일어나는 눈앞의 세계와 접촉할 기회를 잃어가는 것이죠.
경제적인 면에서는 바람직한 현상일지도 모르지요. 당신이 쉬지 않고 이메일을 확인하고 어디서든 전화를 받는다면 그만큼 생산성이 높아지는 거니까 회사 입장에서는 좋은 일일 테죠. 그러나 그런 삶에서는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없습니다. 자기 몸이나 감각이 눈앞에 있는 현실과 만나지 못한다면 정신은 방황하고 행복한 삶도 누리기 어려워집니다.
인류는 힘을 행복으로 바꾸지 못했다
일본에서는 해마다 최소 3만 명의 자살자가 발생합니다. 실제로는 10만 명이라는 소문도 있고요. 일본 정도면 국민이 훨씬 행복해야 하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드는데요. 이런 맥락에서 교수님이 『사피엔스』에서 인간은 풍요로워졌으나 행복해졌다고는 할 수 없다고 쓴 이유가 궁금합니다.
자살 증가는 일본뿐 아니라 한국 등 동아시아에 있는 다른 나라들은 물론이고 미국 등 서구권에서도 나타납니다. 마찬가지로 다른 선진국에서도 자살자 수 증가는 심각한 사회문제죠. 이스라엘에서는 전쟁이나 테러에 관한 뉴스를 끊임없이 접하지만, 공식 통계로는 전쟁이나 테러로 죽은 사람과 범죄로 죽은 사람의 수를 합한 것보다 자살자의 수가 많습니다. 게다가 그 수치는 매년 기록을 갱신하고 있지요.
수치로 드러나지 않는 자살자 수는 훨씬 많을지도 모릅니다. 자살이라 할지라도 감정적 혹은 법적 이유로 자살이었다고 보고하지 않고 사고나 다른 원인에 의한 죽음이라고 보고하는 경우도 있을 테니까요. 보험금을 타고 싶어서일 수도 있고요.(자살하면 보험금을 타지 못하잖아요.) 그런 가능성들을 두루 고려하더라도 공식 통계로는 평범한 이스라엘 사람이 테러나 군인, 범죄에 의해 살해당할 확률보다 자살할 확률이 더 높습니다. 자살 문제는 어느 한 나라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습니다.
전보다 풍요로워지면, 생활환경이 좋아지면, 먹거리가 많아지면, 삶에 대한 만족도나 행복 지수가 높아져야 합니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현대에 들어 자살뿐 아니라 우울증이나 불안 장애 등 다양한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사람 수가 증가하고 있거든요.
그 이유 중 하나는 인간의 행복이란 얼마나 식량이 많은가, 얼마나 큰 돈을 소유하고 있는가와 같은 객관적인 지표에 따라 결정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기대치에 좌우됩니다. 무언가를 기대하고 그 기대가 충족되면 행복하다 느끼고, 반대로 기대에 못 미치면 불행하다 여깁니다.
그러나 형편이 좋아지면 기대치도 높아집니다. 심리학에 따르면 인간은 성취감이나 즐거움을 경험하면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누리고 싶어 한다고 합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더 먹고 싶은 것이 자연스러운 반응이죠. 더 누리고 싶다는 마음이 있는 한, 만족하는 일은 없습니다. 개인은 물론이고 집단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인류는 석기 시대에 비해 수천 배 이상의 힘을 손에 넣었습니다. 그러나 수천 배만큼 행복해졌을까요? 우리는 힘을 얻는 데 뛰어난 소질이 있으나, 힘을 행복으로 전환할 줄 모릅니다. 『사피엔스』에서 말하고 싶었던 문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과학기술이 민주주의를 병들게 한다
이제 민주주의에 관해 묻겠습니다. 교수님에 따르면 민주주의도 일종의 허구일 텐데요. 인간 사회는 민주주의라는 제도 덕분에 어느 정도 안정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브렉시트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등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하면서 민주주의가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말들이 나옵니다. 교수님은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민주주의는 20세기에 가장 성공한 정치 구조입니다. 민주주의의 확산은 인류에게 막대한 이익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러나 21세기로 접어든 후 민주주의는 인류에게 닥친 난제들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그 주된 원인은 과학기술의 발전입니다. 과학기술에 의해 경제나 사회의 변화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졌는데요. 그러다 보니 지금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수집하고 분석해야 하는 정보량이 기하급수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일이 빛의 속도로 빠르게, 심지어 동시에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유권자나 정치가는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정보가 지나치게 많은 것이죠. 10년, 20년, 30년 후에 어떻게 될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예측을 할 수 없으니 미래에 추구할 목표나 가치를 결정할 수도, 계획을 세울 수도 없죠. 솔직히 이런 일은 인류 역사상 처음입니다.
물론 과거에도 완벽하게 미래를 예측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죠. 앞으로 어떤 왕이 이 나라를 다스릴지 누가 단언할 수 있었을까요? 다른 나라가 쳐들어올 위험도 늘 있었지요. 그래도 생활 방식이나 사회 기본 구조가 30년 후에 어떻게 될지는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중세 일본에서는 30년 후에 누가 천황이 될지, 또 몽골이 언제 침공할지 미리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겠지만 30년이 지나도 천황제를 기반으로 한 무사 중심의 남성 사회가 이어지고 평균수명은 40~50세일 것이라는 계산은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30년 후에 이 사회가 어떻게 될지 아예 모릅니다. 미래 고용에 관해서는 더욱 그러하고요. 더 발달한 인공지능이나 지능형 로봇이 등장하면 오늘날 존재하는 대부분 직업은 30년 내로 사라진다는데, 어떤 종류의 직업이 사라질지 전문가들도 명확하게 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2050년에 인간이 생계를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있을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는 말입니다. 수명도 마찬가지입니다. 크게 연장될 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연금이나 보험은 설계 자체가 불가능해지지요. 즉, 현행 제도는 비현실적인 가정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진보든 보수든 유권자를 실망시키고 있다
지금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앞으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알고 있지 않다면 민주주의가 존속하기 어려워집니다. 유권자도, 정치가도 답을 모르니 선거, 정당, 의회 등의 제도들이 잘 작동하지 못할 테니까요.
하지만 민주주의가 처한 상황과 상관없이 새로운 과학기술은 계속 출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