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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1월 20일 처음 펴냄
지은이 | 백승남
그린이 | 김정한
펴낸이 | 김윤용
펴낸곳 | (주)우리교육
등록 | 제10-796호
주소 | (121-841)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449-6
전화 | 02-3142-6770
팩스 | 02-3142-6772(주문), 02-3142-8108(출판)
홈페이지 | www.uriedu.co.kr
이메일 | editor@uriedu.co.kr
출력 | 한국커뮤니케이션
인쇄제본 | 상지사 P&B
주간 | 신명철
어린이팀 | 김명숙ㆍ나익수ㆍ방일권
디자인팀 | 윤선화ㆍ박지영ㆍ최정민
제작 | 박형우
영업부 | 김종만ㆍ김영철ㆍ윤병일ㆍ홍성구
관리부 | 윤형진ㆍ지경진ㆍ조선영
독자사업팀 | 정현숙ㆍ전희주ㆍ유회영
책임편집 | 나익수
디자인 | 박지영
ISBN : 89-8040-727-0 74810
ISBN : 89-8040-720-3(세트)
제작 : (주)한국이퍼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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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백승남
그린이 - 김정한
설움과 고통과 눈물이 소리가 되고 춤이 되고
어려서는 일본까지 흘러갔고, 해방 뒤에는 유랑극단 생활을 하며 전국을 떠돌았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일인 창무극 공연을 해 온 할머니의 ‘ 운명 같은 유랑 생활’ 이 공옥진이라는 분을 만든 건 아닐까. 어쩌면 할머니의 설움과 고통과 눈물이 소리가 되고 춤이 되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 공옥진 할머니 30대 때 모습.
▲훌훌 털고 구름처럼 살고 싶어 스님이 된 공옥진 할머니(오른쪽, 스물세 살 무렵)
ⓒ 김수남 ▲ 춤판에만 서면 벙어리 동생과 곱사등이 조카딸과 한 많은 이들의 영혼이 떠오른다.
ⓒ 김수남 ▲ 사람들은 어느새 뒤뚱뒤뚱 애기봉사춤 곱사등이춤 곰배팔이춤에 빠져들고 만다.
광대 할머니 공옥진
공옥진 할머니는 무대에 혼자 서서 춤추고 소리 하는, 광대 할머니예요.
할머니는 동물춤도 정말 잘 춰요. 동물 탈을 쓰고 동물 흉내를 내던 외국 사람이, 맨몸으로 동물춤을 추던 할머니 앞에서 넙죽 절을 했다지 뭐예요. 또 곱사등이나 앉은뱅이 같은 장애인을 흉내 낸 춤도 누가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래요.
그런데 공옥진 할머니가 동물춤을 추고 곱사춤이나 앉은뱅이 춤을 추게 된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답니다.
▲ 8·90년대 공옥진 할머니 공연 장면. 공옥진 할머니가 공연할 때면 많은 젊은이들이 모여들었다.
▲ 삶이 곧 춤이었던 공옥진 할머니.
고통스러운 삶의 몸짓이 춤이 되어 보는 사람을 웃게도, 울게도 하였다.
설움과 고통과 눈물이 소리가 되고 춤이 되고
전라남도 영광에 가 본 적 있어요? 혹시 ‘영광 굴비’는 먹어 본 적 있나요? 영광이 어딘지 모르는 사람도 굴비의 고장이라면 다 알죠. 입맛 없는 여름철, 찬물에 밥 말아 누런 영광 굴비 구워 한 점 올려 먹어 보면 그 맛을 좀처럼 잊지 못할 거예요. 혹시 영광에 갈 일 있으면 굴비를 꼭 먹어 보라 하고 싶어요.
그러나 영광 굴비를 맛보는 것보다 먼저 권하고 싶은 일이, 공옥진 할머니를 찾아뵙는 거예요. 영광 버스터미널에서 아무 택시나 잡아타고 “공옥진 할머니 댁이요.” 하면 돼요. 문화 유적지도 아닌데 택시 기사 모두 그 집을 알고, 영광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랑스럽게 여기는 분. 예전엔 ‘병신춤’으로 알려졌고 , 1970년대 후반부터는 일인 창무극을 만들어 전국 방방곡곡, 세계 여러 나라에 알려 온 ‘광대’ 할머니세요.
택시는 ‘공옥진 예술 전수관’이라 쓰인 아담한 한옥 앞에 멈출 거예요. 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대청마루가 있고, 감나무 아래 제법 튼실한 배추 포기들이 자리 잡은 마당 구석에는 잘생긴 개 두 마리가 컹컹 짖으며 반길 테고요. 공옥진 할머니가 살면서 제자도 가르치는 곳이에요. 집이 비어 있다면 근처의 밭을 뒤져 보세요. 추수가 끝난 고구마 밭이나 땅콩 밭에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호미 든 팔과 어깨를 들썩이는 할머니가 계시면 바로 그 분일 테니까요.
저토록 흥겹게 밭일을 하고 계시지만 사실 할머니 몸은 많이 불편하답니다. 위장병이 심하신 데다 담석증에 뇌졸중까지 겪으셨고요. 얼마 전엔 교통사고를 당해 아직 그 후유증이 남아 있어요. 그래도 여러분이 부르면
“이? 날 볼라고 여까정 왔다고?”
하며 옷자락 툭툭 털고 밭에서 나와 반겨 주실 거예요. 홀로 사는 공옥진 할머니는 누가 찾아가는 걸 참 좋아하고 반기거든요.
나도 할머니 이야기를 쓰는 동안 여러 차례 찾아뵈었어요.
할머니는 내게 살아온 이야기 풀어놓는 걸 참 힘들어 하셨어요. 가슴 아픈 세월 되새기게 만든다고 역정도 많이 내셨고요. 벙어리 동생과 꼽추 조카딸얘기며, 할머니의 굽이굽이 인생길 이야기를 듣노라면 나도 코끝이 시큰할 때가 많았지요.
할머니는 또 ‘병신춤’이란 말만 나오면 화부터 벌컥 내셨어요. 몸이 불편한 탓에 말씀하는 걸 힘들어하면서도 꾸지람 내릴 땐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어요. 그래도 마음을 풀고 소리 한가락 뽑으실 때면 그토록 구성지고 애잔할 수가 없었지요.
어려서 일본까지 흘러갔고, 해방 뒤 유랑극단 생활을 하며 온 나라를 떠돌았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일인 창무극 공연을 해 온 할머니의 ‘운명 같은 유랑 생활’이 공옥진이라는 분을 만든 건 아닐까. 어쩌면 할머니의 설움과 고통과 눈물이 소리가 되고 춤이 되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내가 서울로 돌아오려고 일어서면 대문 앞까지 따라 나오시지요.
“그 먼 길을 언제 갈 끄나. 조심혀서 가.”
들어가시라고 손짓하고 조금 가다 돌아보면 아직도 손을 흔들고 계시는 모습이 마치 돌아가신 우리 상할머니 모습 같아 마음 저렸어요. ‘병신춤’으로 세상에 알려진 분인데도, 그 말을 그토록 싫어하게 된 게 안타깝기도 했지요.
할머니 이야기를 쓰면서 나는 산에 자주 갔어요. 사람 발길이 많이 지나는 곳마다 나무뿌리들이 땅 위로 다 드러난 걸 보며 공옥진 할머니를 떠올렸어요. 사람들 발에 짓밟혀 맨살을 드러내고도 억세게 땅을 움켜쥐고 있는 나무뿌리들이 할머니의 삶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할머니의 일인 창무극 공연을 본 적 있는데 집에서 뵈었을 때와 참 달라 보였어요. 불편한 몸, 망가진 이 때문에 말씀조차 힘들어하던 분이 어찌나 건강하고 행복해 보이던지요. 할머니 소원대로 무대에 자주 서고 자신의 끼를 맘껏 펼치다 돌아가시면 좋겠다 싶었어요.
그러면 할머니가 살아온 이야기를 하실 때면 왜 눈물부터 보이시는지 , ‘병신춤’이란 말에는 왜 그리 민감하신지, 일인 창무극이란 무엇인지, 우리 그 이야기를 한번 들어볼까요?
백승남 씀
차례
설움과 고통과 눈물이 소리가 되고 춤이 되고
벙어리 동생과 곱사등이 조카딸
흉내쟁이 어린 시절
소리만 최곤 줄 알았더니
아부지, 지 살아왔어라
소리를 지대로 한번 배울 티냐?
소리나 한 가락 하고 죽을라요
국수 파는 소리꾼에서 창극단 단원으로
머리 깎고 다 잊어 불라요
무대에서 살다 죽고 싶었는디
곱사춤이 장애인을 모욕한다고?
일인 창무극을 만들다
눈물에서 웃음으로
동물춤 추는 할머니
뼈마디에서 우러나오는 춤
“병신춤이라 부르지 마시오.
불행하고 가난한 사람
병들어 죽어 가는 사람
장애자들
내 동생
어린 곱사 조카딸의 혼이
나에게 달라붙어요.
오장 육부가 흔들어 대는 대로 나오는 춤을 추요.”
벙어리 동생과 곱사등이 조카딸
내게는 남동생이 둘 있었는데 막내는 벙어리였어.
원래는 말을 할 줄 알았는데, 여섯 살 때 두레박으로 물을 긷다 우물에 빠져 버렸지 뭐야. 간신히 건져 냈지만 얼마나 놀랐는지 눈만 끔뻑거리고 말을 못 하는 거야. 그 뒤로 혀가 영영 굳어 버렸지.
그 남동생 이름이 ‘삼채’였는데, 춤추고 노는 걸 좋아해 툭하면 내 손을 잡고 춤추자고 졸랐어. 그러면 나는,
“덩실 덩실 춤을 추자. 덩덩실 덩실 춤을 추자… ….”
입장단 하면서 동생과 춤을 추었지. 그래서였을 거야.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의 모습이 내 눈에 예사롭게 보이지 않은 건.
벙어리였지만 남동생은 그럭저럭 잘 살았어. 어진 아내 만나 결혼도 했고, 예쁜 딸도 얻었지. 그 애 이름이 ‘경아’야. 사람만 보면 방긋방긋 웃는 아기가 어찌나 예쁜지, 하루는 뒷집에서 놀러 온 계집아이가 업어 주겠다고 제 등에 업은 거야. 목도 못 가누는 갓난아기가 어설프게 업히니 허리가 뒤로 휙 꺾여 버렸어. 결국 경아는 곱사등이가 되어 버렸구나. 곱사등이 알지? 등에 커다란 혹이 난 것처럼 등뼈가 굽은 사람. 꼽추라고도 하지.
경아는 꼽추가 된 채 아이가 되고 소녀가 되고 처녀가 됐어. 이 아이도 제 아비처럼 노래와 춤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 노래라도 나오면 등에 혹을 달고도 고개를 끄덕끄덕, 어깨를 덩실덩실, 허리는 간들간들 하며 춤을 추는 거야. 그 모습이 예쁘고도 안쓰러워 눈물이 났어.
“경아야. 고모가 니 대신 춤과 노래를 해 주끄나(*해 줄까)?니 맴 (*네 마음)을 담아 고모가 대신 해 주끄나?”
“응, 고모. 해 줘! 꼭 해 줘!”
경아 대신 춤을 추었어. 내 팔에, 내 다리에, 내 어깨에 경아의 마음을 고스란히 얹어 춤을 추었어. 온전치 못한 몸으로 평생 살아야 하는 조카딸의 한을 대신 풀어 주고 싶었어. 날 따라 다니며 덩실거리는 경아의 얼굴이 해바라기처럼 환해졌어.
그 아이 열일곱 살 때, 곱사등도 낳을 수 있단 말에 병원에서 수술을 했지. 그런데 허리가 나무토막처럼 뻣뻣하게 굳어 버렸지 뭐야. 방바닥의 물건 하나를 집으려 해도 몸이 구부려지지 않아 애를 먹고, 엎드리는 것도 마음대로 못 했어. 그러니 제대로 살 수가 있나. 결국 세상을 뜨고 말았지. 등의 혹 때문에 열일곱 해를 엎드리거나 옆으로 누워서만 잘 수 있었던 조카딸, 경아는 떠날 때만은 똑바로 누워 그렇게 갔단다.
경아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아이 아비 삼채도 뒤따라 저세상으로 갔어. 자기가 일하던 극장에 무단출입하려는 사람들과 시비가 붙은 끝에 어이없이 죽음을 맞고 말았지.
사람들은 나더러 ‘병신춤 추는 할머니’라 하는데 내 춤은 ‘병신춤’이 아니야. 어려서부터 불구로 살다 간 내 동생, 조카딸의 고통과 한을 나라도 대신 풀어 주고 싶어 시작한 한풀이이자 굿이야.
흉내쟁이 어린 시절
“쑥대머리 귀신 형용 적막옥방의 찬 자리에… ….”
“니 애비만으로도 진절머리 나는디(*나는데), 너까정(*너까지) ‘소리쟁이’ 할 텨?”
장단 맞추던 부지깽이가 회초리로 바뀌었어. 또 어머니한테 야단을 맞고 말았네.
우리 집은 소리꾼 집안이었어. 남도에서 손꼽히는 명창이던 할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