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기타가와 야스시 喜多川 泰
1970년 도쿄에서 태어나 에히메 현에서 자랐다. 도쿄 가쿠게이 대학을 졸업한 뒤 1988년 요코하마에서 입시학원 <소메이샤>를 설립, 인간적 성장을 중시한 완전히 새로운 학원으로 주목을 받았다. 더 많은 젊은이가 빛나는 삶을 살아가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집필 활동을 시작했다. 2005년 《희망 나침반》으로 작가 활동을 시작한 후로 해마다 베스트셀러를 발표하고 있다. 집필 활동 이외에도 전국 각지에서 강연과 성인을 위한 배움터 ‘신가쿠 주쿠’를 개최하는 등 수많은 사람의 인생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77번 고마워》 《편지 가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공부밖에 없다》 《아버지의 선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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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고정아
도쿄외국어대학에서 일본어학을 전공했다. 7년간 일본에서 유학하고 기업체에서 일본어 통·번역을 하면서 전문 번역가의 길로 들어섰다. 하면 할수록 더 어렵게 느껴지는 번역이라는 작업에 고군분투하며 다양한 분야의 일본 서적을 우리말로 옮기고 있다. 현재 번역 에이전시 ‘바른 번역’에서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행복한 퀼트 소품 만들기》 《행복한 가방 만들기》 《행복한 자수와 디자인》 《굿바이 리스트》 《결정하는 힘》 《친절한 재봉틀&바느질 입문 DIY》 《더치오븐 퍼펙트북》 《르포 빈곤대국 아메리카》 《인사이트 마케팅》 《하늘 높이, 깁슨 플라잉V》 《빛과 그림자의 약속》 《엔터테인먼트 법칙 30》 《도요타 최강경영》 《밑바닥 성공법칙》 《한비자, 관계의 지략》 《히트상품을 맨 처음 사는 사람들》 《달려라》 등이 있다.
KABUSIKIKAISHA TIMECAPSULESHA
Written by Yasushi Kitagawa
Copyright ⓒ 2015 by Discover 21, Inc.
Original Japanese edition published by Discover 21, Inc., Tokyo, Japan
Korean edition is published by arrangement with Discover 21, I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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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강하고 다정하고 건전한 마음을 지니고
자신의 가능성을 발휘해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에게
지금이야말로 ‘마음의 양식’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지금껏 그다지 책을 읽지 않았던 분도
‘인생을 바꾸는 책 한 권’을 만나면
마음의 양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을 겁니다.
저의 작품이 여러분에게
그런 한 권이 될 수 있다면
저자로서는 최고의 기쁨입니다.
언제나 손에 책을 들고 있는 인생이 되시기를…….
- 기타가와 야스시
프롤로그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소년은 침대에 힘없이 누워 있는 소녀에게 말을 건다.
“기분은 좀 어때?”
소녀는 감았던 눈을 천천히 뜨고 소년을 바라보며 희미하게 웃는다.
“요스케…… 와 줬구나…….”
알아듣기 힘든 가느다란 목소리에 소년은 부리나케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소녀에게 얼굴을 가져다 댄다.
“와 줘서 기뻐…….”
소녀의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보던 소년의 눈에도 그렁그렁 눈물방울이 맺힌다. 마침내 더는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을 만큼 눈물이 넘쳐흐르는 소년의 모습을 보고 소녀는 옅게 미소 지으며 말한다.
“이번에는 내가 우스운 모양새네.”
그러고는 마치 무거운 짐을 움직이기라도 하듯 힘겹게 고개를 돌려 뒤통수를 소년에게 보여준다.
“이거 봐 봐…… 떡진 머리. 좀 심하지?”
벨소리가 시끄럽게 울리면서 히데오의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끙, 중요한 장면인데…….”
히데오는 손에 들고 있던 컵라면을 유리 탁자 위에 놓고 휴대폰을 봤다. 모르는 번호였지만 상대가 누구일지 짐작은 되었다. 허둥지둥 리모컨을 찾아서 보던 영화를 멈췄다. 입속에 남은 면을 서둘러 삼키자 뜨거운 것이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게 느껴졌다.
“여보세요.”
히데오는 점잖은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저는 주식회사 타임캡슐사의 와카바야시라고 합니다만, 아라이 히데오 씨가 맞습니까?”
예상대로 히데오가 면접을 보기로 한 회사에서 걸려온 전화다. 히데오는 등을 곧게 펴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네. 맞습니다. 아라이입니다. 내일 면접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안 그래도 그 일로 전화를 드렸습니다. 사실 내일 면접이 저희 사정으로 좀 어려워져서요. 죄송하지만 일정을 바꿀 수 있을까요? 갑작스러우시겠지만 오늘 오후 1시나 다음 주 금요일 오후 중에 어떠십니까?”
히데오는 시계를 봤다. 11시 전이니 시간 안에 맞춰 갈 수 있을 듯하다. 하루라도 빨리 취직을 하고 싶은 터라 면접을 일주일 이상 기다릴 수 없는 노릇이다. 사활이 걸려 있으니 말이다.
“그럼 오늘 오후 1시에 찾아뵙겠습니다.”
“그러시겠어요? 갑자기 면접 일정을 바꿔서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그러면 오늘 오후 1시에 뵐게요. 조심히 오세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히데오는 보이지 않는 상대방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 상대방이 먼저 전화를 끊은 것을 확인한 후 휴대폰을 내려놓고 아까 먹던 컵라면을 서둘러 먹어 치운다. 함께 사 온 편의점 주먹밥을 먹을 시간은 없을 듯하다. 빈 컵라면 용기를 탁자 위에 그대로 둔 채 히데오는 벌떡 일어나 DVD와 TV 전원을 끄고 어질러진 방을 가로질러 붙박이장으로 향했다.
다행히 세탁해 놓은 양복이 한 벌 있었다. 세탁 비닐을 아무렇게나 찢어 벗겼다. 양복이 모습을 드러내자 히데오는 마음이 조금 쓰라렸다. 처음 맞춘 양복이다. 언제 어디서 맞췄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그때 함께 있었던 여자도 선명히 기억한다. 황급히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 기억을 지웠다. 감상에 젖어 있을 틈이 없다.
“그래, 먼저 샤워를 해야겠어. 서둘러야겠네.”
입고 있던 셔츠와 바지를 벗고 이미 빨랫감으로 가득 찬 세탁 바구니 위에 쌓아 놓는다.
“이런 한심한 꼴이라니.”
히데오는 저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그동안 스스로 꼼꼼하고 깔끔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직했다고 방도 어질러 놓고 빨랫감도 쌓아 놓고 있었다. 시간이 남아도는데도 치울 생각이 안 들었다. 그런데 자신의 미래에 조그만 희망이 보이기 시작하자 이런 생활을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마구 솟구쳤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추워서 몸이 바르르 떨렸다. 전기세를 아끼려고 난방을 하지 않았는데 12월이 되니 역시 추웠다. 히데오는 서둘러 몸을 닦고 나갈 채비를 했다.
히데오는 긴장한 상태로 등을 곧게 펴고 앉아 있다. 눈앞에 앉아 있는 남자는 이 회사를 창업한 사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는데 아무리 봐도 히데오보다 훨씬 젊어 보인다. 그런데도 창업 15년째라고 하니 상당히 젊었을 때 회사를 차렸거나 아니면 얼굴이 동안인 모양이다.
양복 소매 사이로 눈에 띄는 커프스단추와 깔끔하게 다림질한 소맷부리가 차림새에 신경을 쓰는 사람임을 말해주고 있었지만, 부자연스럽거나 거북하지는 않았다.
히데오는 이곳으로 오는 짧은 시간 동안 면접에서 어떤 질문을 받을지 여러 가지를 상상하면서 왔다. 그 질문들에 대답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니 절망적인 기분이 들었다. 자신 있게 대답할 만한 질문을 하지는 않겠지. 그러기는커녕 예상하지도 못한 것을 꼬치꼬치 캐물을지 모른다. 더구나 마흔다섯 백수를 “환영합니다.” 하고 맞아줄 회사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경력에 대해서 이것저것 설명한들 어차피 변명으로밖에 안 들릴 것이다. 어쩌면 오히려 나쁜 인상을 줄 수도 있다. 그래도 예전에는 면접을 하는 쪽이었으므로 잘 안다. 자신을 좋게 포장하는 말은 왠지 의심스럽고 인상을 더 안 좋게 만들 뿐이다.
작전 따위는 없다. 질문에 솔직하게 답하는 수밖에. 각오를 단단히 하고 지금은 이 회사에 열정을 쏟으며 남은 인생을 바칠 생각이라는 것을 강력히 어필해야 한다.
사장 니시야마는 히데오의 이력서를 찬찬히 훑고 있다. 가끔 미소를 짓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한다. 그때마다 히데오는 니시야마의 시선을 좇으려 했지만, 무얼 보고 고개를 끄덕이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렇게 이력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보는 동안 서로 입을 다문 채 마주 보고 있었다. 히데오에게는 그 5분이 한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긴장한 탓에 입이 바짝바짝 탔다.
‘내가 면접했던 사람들도 아마 이런 기분이었겠지.’
불쑥 그런 생각이 들어 히데오는 니시야마의 등 너머로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순간 니시야마가 이력서를 책상 위에 내려놓고 웃는 얼굴로 쳐다보았다. 히데오는 서둘러 자세를 고쳤다.
“혹시 질문 있으십니까? 아라이 씨?”
“네? 아, 아뇨. 특별히 없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럼 잘 부탁합니다.”
히데오는 니시야마의 말뜻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대화를 이어나갈 말을 찾으려다가 아무래도 자신이 채용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자신이 없었다.
“저기 혹시……, 저를 채용하시겠다는 말씀인가요?”
히데오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라이 씨만 좋다면 그렇습니다.”
히데오는 얼떨결에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이 기회를 놓치면 기약 없는 구직활동을 계속해야 한다.
“무, 물론입니다. 채용해 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왔으니까요.”
니시야마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천천히 몇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음 주부터 잘 부탁드립니다. 유니폼을 만들어야 하니 몸 치수를 재도 될까요? 그게 끝나면 오늘은 그만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히데오의 대답을 듣고 니시야마가 일어났다. 히데오도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니시야마는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숙이더니 방에서 나갔다. 히데오는 90도로 허리를 숙이면서 “감사합니다.” 하고 말했다.
잠시 후 면접실에 젊은 여성이 들어 왔다.
“실례합니다. 유니폼을 만들어야 해서 아라이 씨 치수를 좀 재겠습니다.”
그녀는 인사를 하고 들고 있던 줄자를 양손으로 잡아당기며 한 걸음 다가왔다.
“네, 부탁드립니다.”
히데오는 그다지 적절치 못한 대답을 한 뒤에 그녀와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 숨을 삼켰다. 목소리가 귀에 익었다.
“실례할게요.”
그녀는 히데오 앞에서 손을 목 뒤로 돌려 줄자를 갖다 댔다. 히데오의 목둘레를 재는 것이다. 달콤한 향기가 났다. 목둘레선이 넓게 파여 쇄골이 보였다. 히데오는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천장을 올려다보고 숨을 멈췄다. 긴장해서 몸이 굳는 것 같았다.
한편 그녀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이번에는 어깨에 줄자 한쪽을 대고 손목까지 길이를 재더니 곧 등 뒤에서 어깨너비를 쟀다. 히데오는 능숙하게 치수를 잰 뒤 바인더에 끼운 종이에 적는 모습을 흘깃 곁눈으로 보았다.
‘예쁜 분이네.’
그런 생각을 하는 찰나 눈이 마주쳤다.
“왜요?”
그녀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하자 히데오는 허둥댔다.
“아, 아니요, 저기, 저한테 전화 주신 분 맞으시죠?”
와카바야시 레이코가 생긋 웃었다.
“맞습니다. 와카바야시라고 해요. 잘 부탁드려요.”
그렇게 말하고 이번에는 껴안는 자세로 줄자를 히데오의 등 뒤로 돌렸다. 가슴둘레 그리고 허리둘레. 히데오는 조금이라도 날씬해 보이려고 있는 힘껏 숨을 들이마시고 참았다. 1년 전까지만 해도 스포츠 센터에 다녀서 나이에 비하면 괜찮은 몸매였는데, 고작 1년 만에 뱃살이 불어나 있었다.
레이코가 큭 하고 웃는 것 같았다. 히데오는 괜히 창피해져서 당황하며 변명을 했다.
“1년 전까지는 스포츠 센터에 다녔습니다만…….”
말을 가로막듯 레이코가 히데오의 얼굴 앞에 5cm 정도 길이의 가늘고 긴 녹색 종이 쪼가리를 내밀었다. 숫자가 인쇄된 종이 한쪽 끝에 스테이플러가 찍혀 있다.
“이거 붙어 있었어요.”
히데오는 레이코가 웃은 이유를 깨닫고 당황하며 바지 뒤쪽 벨트 고리를 만졌다. 세탁소에서 붙여 놓은 꼬리표를 깜박하고 떼지 않았던 모양이다. 창피함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러는 사이에 치수 재기가 끝났다.
“수고하셨어요.”
레이코가 한 발자국 물러나자 히데오는 온몸에서 힘을 뺐다. 아마도 여러 부위 치수가 단번에 바뀌었을 것이다.
“그럼 다음 주 월요일 오전 7시까지 오세요. 그때 뵐게요.”
그렇게 말하고 레이코는 깊숙이 머리를 숙였다. 히데오는 그제야 정신을 차려 지금이 방에서 나갈 타이밍임을 깨닫고 의자 밑에 두었던 서류 가방을 손에 들었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방을 나섰다.
작은 사무실에 인기척은 없었다. 다른 사람은 없는 모양이다. 조금 전에 방을 나간 사장 니시야마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인사할 사람도 없는 사무실을 가로질러 복도로 나왔다. 그리고 출입문 옆에 붙어 있는 회사 이름을 바라보았다.
“주식회사 타임캡슐사.”
저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히데오 자신도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여러 가지 감정이 복잡하게 얽힌 마음의 토로였다. 이제 히데오의 인생 4막이 펼쳐지려 한다.
“근무 시간에는 유니폼을 입으셔야 합니다.”
면접 때 들은 말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히데오는 어떤 복장으로 출근해야 하나 싶어 잠시 망설였다. 모두 편안한 차림으로 출근한 후 회사에서 유니폼으로 갈아입는지도 모르겠다. “혹시 질문 있습니까?”라는 말에는 정작 묻고 싶었던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붙박이장에서 면접 때 입었던 양복을 집어 들었다. 가장 무난한 선택이리라.
신요코하마(新横浜) 역을 나설 때도 여전히 날은 어두웠다. 회사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히데오가 숨을 내쉴 때마다 입에서 하얀 김이 새어 나왔다. 오피스 빌딩 10층에 있는 타임캡슐사 앞에 도착하자 손목시계로 살짝 눈을 돌렸다.
“6시 45분.”
조그맣게 소리 내어 말해 본다. 몇 살이 되어도 역시 첫 출근은 긴장되기 마련이다. 마흔다섯에 또 이런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히데오는 문손잡이에 손을 대고 크게 한번 심호흡했다.
“나는 신입 사원이다. 이제부터 나보다 어린 녀석들에게 치이고 당하는 하루하루가 시작된다. 각오하자.”
자신을 타이르기라도 하듯 머릿속으로 거듭 다짐했다. 몇 번이고 이렇게 자신을 다독이며 각오하지 않으면 나이 어린 상사가 자신을 깔보는 태도로 지시하고 명령하는 상황에 갑자기 맞닥뜨렸을 때 욱하는 기분을 숨기지 못하고 표정에 드러내 버릴지도 모른다. 히데오는 자신이 그런 상황에 특히 취약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스스로를 단단히 타이르면서 호기롭게 문을 열고 큰 목소리로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사무실 안은 현기증이 날 정도로 밝았다. 해가 떠오르기 시작한 모양이다. 동편 유리창에서 쏟아지는 눈부신 아침 햇살에 사무실 안이 온통 주황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한 남자가 서 있다. 역광 때문에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키 큰 남자가 새하얀 정장으로 몸을 감싸고 새하얀 모자를 쓰고 있었다. 태양에서 튀어나오기라도 한 것 같은 모습에 히데오는 저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환각인가?
“안녕하십니까?”
남자의 목소리는 상당히 젊었다.
“안녕하세요? 아라이 씨.”
이번에는 다른 각도에서 들려온 여성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니 면접 날 히데오의 치수를 쟀던 와카바야시 레이코가 웃는 얼굴로 서 있었다. 요전 날처럼 목둘레가 깊이 파인 옷차림이 아니라 검정색 정장 차림이었는데 오히려 몸매가 훨씬 돋보였다.
“아, 네. 안녕하세요? 저기…….”
“와카바야시예요.”
레이코는 왼손으로 해를 등지고 있는 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쪽은 요시카와 씨고요.”
히데오는 레이코가 가리키는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처음 뵙겠습니다. 요시카와 가이토입니다.”
가이토는 모자챙을 살짝 들어 올리며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오늘부터 일하기로 한 아라이 히데오라고 합니다.”
“그럼 먼저 옷을 갈아입으실까요? 유니폼은 저쪽 방에 준비되어 있습니다.”
히데오를 대하는 레이코의 태도가 요전 면접 때와는 사뭇 달랐다. 그야말로 회사 동료를 대하는 태도였다.
“네, 알겠습니다.”
레이코를 따라 며칠 전 면접을 봤던 방으로 들어가니 방금 인사를 나눈 요시카와 가이토가 입고 있는 것과 똑같은 새하얀 정장이 옷걸이에 걸려 있고, 옷걸이 봉 끝에는 새하얀 모자도 걸려 있었다.
“아, 이 옷으로 갈아입으면 되나요?”
레이코의 온 얼굴에 퍼진 미소가 ‘그렇다.’고 말하고 있었다. 문이 닫히고 혼자 남았을 때 히데오는 잠시 눈앞에 있는 새하얀 정장을 가만히 바라봤다.
과연 이 옷이 자신에게 어울릴지…….
“갈아입는 수밖에 없겠지.”
히데오는 새하얀 정장에 팔을 뻗었다. 옷을 다 갈아입고 옷걸이 옆에 있는 전신 거울에 모습을 비춰 보는데 무심코 웃음이 나왔다.
“썩 나쁘지는 않네.” 하고 입에서 혼잣말이 튀어나온 순간,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떠세요?”
레이코의 목소리였다.
“다 갈아입었습니다. 지금 나갑니다.”
히데오는 문을 열고 사무실로 나갔다.
“좋은데요. 잘 어울립니다.”
요시카와 가이토가 말했다. 느낌이 상당히 좋은 청년이다.
“으음. 정말 딱 맞네요.”
레이코의 말에 히데오는 무심코 얼굴을 붉혔다. 치수를 잴 때 배에 힘을 꽉 주고 있었는데도 바지의 허리 치수가 딱 맞았기 때문이다. 레이코가 그걸 알아차리고 약간 큼직한 사이즈로 주문했음이 틀림없다. 레이코는 짝 소리 나게 손뼉을 한번 치더니 기운차게 요시카와를 향해 말했다.
“이제 오늘 업무에 관해서 얘기해 보기로 하죠.”
“아, 네. 그럽시다.”
가이토가 웃으며 대답했다.
가이토와 레이코가 사무실 한가운데 있는 테이블로 다가갔다.
“아라이 씨도 이쪽으로 오세요. 저희 업무를 설명해 드리죠.”
요시카와 가이토의 말에 히데오가 테이블로 다가가자 레이코는 거기에 서류 다발 한 뭉치와 편지 다섯 통을 올려놓았다. 서류는 무슨 리스트처럼 보였는데 히데오가 들여다볼 새도 없이 가이토가 서류를 집어 들었다. 책상에는 아이가 쓴 것 같은 편지 다섯 통만이 남았다.
“2005년, 세토나이카이(瀬戸内海)의 한 섬에 있는 중학교에서 졸업 기념으로 학생들이 썼던 10년 후의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레이코가 다른 자료를 보여 주면서 설명했다.
“스물다섯 살이 되었겠네요.”
가이토의 말을 그대로 무시하고 레이코는 말을 이어 나갔다.
“편지를 쓴 학생 스물세 명 중 열아홉 명은 당시에 적어 놓은 주소나 거기 사는 가족 분께 물어 현주소로 배달을 마쳤습니다. 그런데 학생 네 명과 그때 함께 편지를 썼던 계약직 교사 한 명, 총 다섯 명은 소재가 파악되지 않아 배달을 못 했어요.”
가이토는 손에 든 리스트를 보면서 딱히 레이코에게 질문하는 것은 아니라는 양 말을 내뱉었다.
“다섯 명이나?”
“좀 많긴 하죠.”
히데오는 테니스 랠리를 보는 관중처럼 요시카와 가이토의 얼굴과 와카바야시 레이코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볼 뿐이었다. 가이토가 갑자기 미간을 찌푸리고는 턱을 만졌다.
“4번째 목록에 있는 세리자와 마사시 씨는…….”
“2주 안에 부탁드려요.”
가이토의 말을 무시하듯 레이코는 딱 잘라 말하더니 가볍게 인사하고 등을 돌렸다. 가이토는 심각한 표정으로 잠시 리스트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이내 콧김을 뿜어내며 표정을 풀었다.
“레이코 씨……, 가끔은 제 불평도 좀 들어 주세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익숙한 손놀림으로 서류와 편지 다섯 통을 알루미늄 서류 가방 안에 집어넣었다.
“가실까요? 아라이 씨.”
“아, 네.”
히데오는 뭐가 뭔지 상황이 파악되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 이미 문 쪽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가이토의 뒤를 서둘러 쫓았다. 사무실 문을 닫으면서 히데오가 뒤돌아보자 레이코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웃고 있는 듯 했지만 역광 때문에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다.
“다녀오겠습니다.”
히데오는 조그맣게 말하고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는 엘리베이터 문을 열어 놓고 기다리는 가이토에게로 달려갔다.
“기다리시게 했네요.”
히데오가 엘리베이터에 타자 가이토가 물었다.
“아라이 씨, 우리 회사에 대해서 알아보고 면접을 보셨나요?”
“일단 회사 안내서를 읽어보기는 했습니다만, 자세히는 아직……. 사실 잘 모르고 면접을 봤는데 바로 붙어서…….”
가이토는 입가에 웃음을 띠었다.
“월급이 좋아서였죠?”
히데오는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이 나이엔 일자리를 찾아도 나이가 걸려서 면접조차 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어요. 이 회사는 나이, 경험 불문이고 또 자격증 같은 것도 필요 없다고 해서…….”
“그런데 채용이 된 거로군요.”
가이토가 먼저 말했다.
“네……. 뭐가 뭔지 모르는 채로 지금 여기 있습니다.”
“사장님이 면접에서 바로 채용하시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아라이 씨가 상당히 마음에 드셨나 보네요.”
히데오는 놀랐다.
“그런가요? 저는 아직도 놀라고 있습니다. 제 이력서를 보시고 아무런 질문도 없이 바로 채용하시겠다고 해서.”
“이력서에 뭐 굉장한 경력이라도 쓰여 있는 거 아녜요?”
“그렇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일일이 캐묻고 싶어지는 것투성이인 걸요.”
히데오는 자신이 쓴 이력서를 떠올려 봤지만, 경력 이외에 특별히 색다른 것을 적은 기억은 없었다.
‘띵’ 하며 엘리베이터가 지하 3층에 멈췄다.
“이동할 때는 지하철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은 승용차로 움직이기로 하죠.”
가이토는 손에 든 리모컨 키를 만지작거렸다. 삑삑 하는 소리가 인기척 없는 지하주차장에 울려 퍼짐과 동시에 검은색 고급 승용차의 비상등이 깜빡거렸다. 아무래도 저 승용차를 이용하는 모양이다.
“상당히 고급스러운 차네요.”
히데오는 느낀 점을 솔직하게 입에 담았다. 흰색 차체에 회사 로고가 붙어 있는 이른바 ‘영업용 차량’과는 크게 달랐다.
“사장님 생각이십니다. 저희 복장이나 차량 모두 회사 이미지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장님 뜻이죠.”
요시카와 가이토는 뚜벅뚜벅 발소리를 내면서 차가 있는 곳으로 가더니 운전석에 올라탔다. 히데오도 잰걸음으로 그 뒤를 따라 조수석에 올라탔다. 두 사람을 태운 차는 곧바로 미끄러지듯 움직여서 나선형 통로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태양이 제법 높이 떠올라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겨울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오늘은 아라이 씨가 첫 출근한 날이니 우리 회사 업무에 관해서 설명해 드릴게요.”
“아, 네. 감사합니다.”
가이토는 소리 높여 웃었다.
“아라이 씨, 너무 깍듯하게 그러지 마세요. 회사에서는 제가 선배일지 모르지만, 인생에서는 아라이 씨가 저보다 대선배시잖아요. 그냥 편하게 말씀하세요.”
“그래도 그럴 수는 없지요. 제 상사이니 요시카와 씨에게 존대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히데오는 신입 사원으로서의 자신의 각오가 무뎌지지 않도록 굳이 가이토의 제안을 사양했다. 가이토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시다면 어쩔 수 없네요. 그래도 ‘요시카와 씨’라는 호칭은 좀……. ‘가이토 군’이 좋겠네요. 나머지는 편하실 대로 말씀하시고요.”
“아니, 그래도 상사에게 ‘군’은 좀……. 그냥 ‘요시카와 씨’라고 부르게 해주세요.”
“그건 제가 싫은데요. 자, 알겠습니다. 그럼 ‘실장’이라고 불러 주세요. 어쨌든 제 직함이 실장이니까.”
“알겠습니다. 그러면 ‘실장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히데오는 정중하게 말했다. 가이토는 낄낄거리며 웃었다.
“재밌는 분이세요. 아라이 씨는.”
“그런 소리는 처음 듣습니다.”
히데오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건 그렇고, 어디까지 말했었죠?”
가이토는 운전을 해서인지 정말로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지 잊어버린 듯했다.
“실장님이 회사의 업무 내용을 가르쳐 주신다고…….”
가이토가 흘깃 히데오 쪽을 본다. 아무래도 역시 말투가 부담스럽다는 표정이다.
“그랬지요. 음, 우리 타임캡슐사의 주요 업무는 간단히 말해서 편지 등을 맡아 두었다가 배달하는 단순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 편지라는 게 10년 후 자신에게 쓴 것이거나 20년 후 자식에게 보내는 것 등 아무튼 장기간 보관했다가 배달한다는 점이 특징이죠.”
“말하자면 타임캡슐을 회사가 맡아둔다……는 얘기가 되겠네요.”
“쉽게 말하면 그렇죠.”
“대충 짐작은 했습니다만…….”
가이토는 흘끗 히데오의 표정을 봤다.
“그런 걸 이용하는 사람이 있나 싶은 표정이네요.”
히데오는 자신이 생각을 얼굴에 드러내는 타입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가이토에게는 훤히 보이는 모양이다. 깜짝 놀라 그를 쳐다봤다.
“가끔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 스무 살의 자기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는 이벤트를 하잖아요. 봉투에 주소를 적고 우표를 붙이면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맡아 두었다가 나중에 발송하는 거 말이에요. 그런데 그중에는 받지 못하는 사람이 몇몇 꼭 생기게 마련이더라고요.”
“네, 그렇겠지요.”
히데오는 가이토의 옆얼굴을 보면서 맞장구쳤다.
“그런 편지는 수취인 부재로 학교에 반송됩니다. 학교 측에서는 되돌아와도 달리 방법이 없는데 말이죠.”
“그런 경우에는 폐기하나요?”
“글쎄요. 어떻게 하고 있을까요? 뭐 어쨌거나 별 뾰족한 수가 없으니 한 몇 년간은 보관해 두겠죠. 그 후에 어떻게 처리되는지는 저도 모르겠지만요.”
“네…….”
업무 내용도 내용이지만, 히데오는 자신들이 지금 어딜 향해 가는지도 궁금했다. 가이토의 설명을 들으면서 이따금 창밖을 보고서 목적지를 짐작해 보려고 했다. 차는 신요코하마에서 간조(環状) 2호선을 타고 이소고(磯子) 방면을 향해 가고 있었다. 왼쪽에 신간선이 나란히 달리고 있다.
“우리 회사는 반드시 모든 사람에게 배달한다는 것이 모토입니다.”
“반드시 모든 사람에게……요?”
“물론 예외도 있습니다만.”
“예외라면?”
“받을 사람이 이미 세상을 떠나서 없는 경우죠.”
“아아~ 그렇겠군요.”
“그런 경우에는 가능한 한 가까운 사람에게 전달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렇게까지 하면 회사에 수익이 있습니까?”
“보험이랑 같아요. 가령 유치원에서 여섯 살 아이가 열 살의 자기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을 경우 편지를 넣은 봉투에 자신의 주소를 적고 82엔짜리 우표를 붙여 두면 유치원에서 그걸 보관했다가 4년 후에 잊지 않고 우체통에 넣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이런 방법으로는 아무래도 편지를 못 받는 사람이 생기게 마련이죠. 그래서 우리 회사에서 1통당 500엔에 보관했다가 배달을 책임지는 거예요. 물론 대체적으로는 100엔 이내로 배달할 수 있지만, 되돌아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되돌아온 편지는 현재 사는 곳을 조사해서 끝까지 배달합니다. 누구나 주소가 바뀔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그래서 보험료 격으로 보통 우편요금보다 조금 많이 받는 것이지요.”
“네…….”
“우리 회사를 이용하는 손님이 많으면 많을수록 한 통 당 보관료를 줄일 수 있습니다. 물론 맡기시는 분의 나이와 보관 기간에 따라서 요금은 크게 달라집니다. 대시보드 좀 열어 봐 주시겠어요.”
히데오는 조수석의 대시보드를 열어 보았다. B5 사이즈의 팸플릿이 있었다.
“우리 회사 카탈로그예요. 거기에 QR코드 보이시죠? 휴대폰으로 찍어 보세요.”
히데오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QR코드를 찍어 표시된 URL을 선택하니 타임캡슐사 홈페이지에 접속되었다.
“홈페이지에서 <이용 시뮬레이션> 페이지를 열어 보시면 거기에 단체인지 개인인지를 표시하는 부분이 있어요. 그다음은 맡길 물건이 무엇인지, 의뢰인의 나이와 몇 년 후의 누구에게 보낼 것인지, 전부 입력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적당히 숫자를 입력해 보시면 무엇을 얼마면 맡길 수 있는지 알 수 있을 거예요.”
히데오는 초등학교 6학년이 단체로 8년 후 즉 스무 살의 자기에게 편지를 보낼 경우 가격을 시뮬레이션 해 보았다.
“1,500엔…….”
“그 가격을 비싸다고 볼 것인지 싸다고 볼 것인지는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홈페이지만을 보면 택배업체와 다를 바 없다는 느낌이 드네요.”
“실제로 그래요. 다만 비용이 택배보다는 좀 비싼 편이기는 하지요. 사실 보관 비용은 그다지 많이 들지 않지만, 봉투에 적힌 주소로 보냈을 때 받을 사람이 없는 경우 철저히 조사해서 반드시 배달하는 것이 우리 일이니까요. 그런데 그런 사람이 많아지면 비용 면에서 상당히 힘들어지겠죠.”
“그야말로 생명 보험 같네요.”
히데오는 휴대폰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조건을 바꿔 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그렇지요. 사실 모든 사람이 편지를 썼을 당시 주소에서 다른 곳으로 이사해 버리는 일은 흔치 않아요. 이사한 몇몇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이 비용을 더 부담하는 셈이지요. 누구나 이사할 가능성은 있으니까요.”
히데오는 가이토의 말을 들으면서 화면에 나타난 숫자를 보았다.
“조건을 바꿔 보니 3,500엔이 되었습니다.”
가이토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관 기간이 길어지면 당연히 이사할 가능성도 커지니까 그만큼 비용도 비싸집니다. 게다가 그 편지가 정말로 필요한 사람일수록 받기로 한 주소에 살지 않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런 의미에서도 보험과 비슷하죠. 그렇지만 최근에 의뢰하는 사람이 느는 걸 보면 그렇게 비싼 건 아니라고 봐요.”
“그럼 회사에 이익이 남기는 하나요?”
“원래 우리 회사는 학교나 교육 기관에 비품을 납품하는 회사예요. 학교를 상대로 영업하기도 쉽고 상품 관리를 위한 창고도 갖추고 있죠. 그래서 시작한 서비스가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우리 부서가 탄생하게 되었어요. 뭐 그러다 보니 조사팀도 새로 생겼어요. 아무튼, 전체적으로 볼 때 어느 정도 이익은 나오는 모양이에요.”
“그렇군요…….”
“이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사장님이 과감하게 회사명을 타임캡슐사로 바꾸셨어요. 물론 지금도 학교에 비품을 공급하는 일이 메인이기는 합니다만.”
“저랑 실장님이 소속된 부서는?”
“특배로 불립니다. 특별 배달 곤란자 대책실. 줄여서 특배지요.”
“특배?”
“네. 아라이 씨가 오기 전에는 저랑 와카바야시 씨뿐이었어요. 특배 실장이 바로 저고요.”
‘특별 배달 곤란자 대책실’이라는 이름에서 히데오는 그 부서가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쉽게 상상이 되었지만, 가이토의 입을 통해 직접 듣고 싶어서 굳이 질문했다.
“그럼 특배 부서의 업무는 뭔가요?”
“예상하시는 대로 일반적인 방법으로 배달해서는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직접 전달하는 업무를 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면접 때 근무지에 대한 얘기를 들으셨을 거예요.”
“아뇨. 듣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뭐 혼자 몸이니 어디든 상관없습니다. 구인정보에는 쓰여 있었으니까요.”
가이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저희가 편지를 전달하려고 직접 찾아가면 대부분은 본인들이 그런 편지를 썼던 걸 까맣게 잊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조금이나마 극적으로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도록 이런 차림을 하고 이런 차로 그분들 앞에 나타나는 겁니다.”
“일종의 기업 이미지 메이킹인가요?”
“맞습니다. 이왕이면 멋지게 나타나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사장님께서…….”
가이토는 살짝 웃어 보였다.
“그래서 저희는 앞으로 2주 동안 편지 다섯 통을 배달해야만 합니다. 출근 첫날부터 죄송하지만, 오늘부터 2주간은 집에 돌아가실 생각은 아예 안 하시는 게 나을 거예요.”
히데오는 눈을 크게 떴다.
“그렇게 힘든 일인가요.”
가이토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그저 웃기만 했다.
“곧 익숙해지실 거예요. 아무튼, 주소가 바뀌어서 되돌아온 편지 주인이 어디에 사는지를 조사팀이 조사해서 알아내면 일단은 다시 우편으로 보내요. 그리고 우편으로 보내기 어려운 경우는 제가 직접, 아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