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7일 : 84호

2025 제8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수상작
얀 마텔의 소설을 원작으로 영국에서 만든 연극 <라이프 오브 파이>의 초연을 지난 주에 보았습니다. 여객선이 조난당한 후 홀로 살아난 소년 '파이 파텔'은 자신이 호랑이 '리차드 파커'와 함께 구명 보트에 타고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주인공 '파이'는 끝없은 배고픔을 호소합니다. 작품 속에서 채식주의자로 묘사되는 그는 굶주림 끝에 먹게 된 거북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증언했습니다.
2025 제8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작인 공희경의 <몸으로 덮인 세계를 본 적 있는가>는 손에 쥐는 순간 기운이 느껴지는 책입니다. 표지 뒷면엔 “사피엔스의 역사는 고기의 역사다. 서로가 서로를 고기로 만들었다. 예쁜 고기. 힘센 고기. 맛있는 고기. 우리는 서로가 가진 불꽃을 보지 못했다. 이 역사를 끝내야 한다.” 라는 발췌문이 압도하듯 놓여있습니다. 인류는 사상 최대의 재난 '움'이후 신인류와 구인류로 나뉘어 먹는 자, 먹히는 자로 계급이 분화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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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마텔의 소설을 원작으로 영국에서 만든 연극 <라이프 오브 파이>의 초연을 지난 주에 보았습니다. 여객선이 조난당한 후 홀로 살아난 소년 '파이 파텔'은 자신이 호랑이 '리차드 파커'와 함께 구명 보트에 타고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주인공 '파이'는 끝없은 배고픔을 호소합니다. 작품 속에서 채식주의자로 묘사되는 그는 굶주림 끝에 먹게 된 거북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증언했습니다.
2025 제8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작인 공희경의 <몸으로 덮인 세계를 본 적 있는가>는 손에 쥐는 순간 기운이 느껴지는 책입니다. 표지 뒷면엔 “사피엔스의 역사는 고기의 역사다. 서로가 서로를 고기로 만들었다. 예쁜 고기. 힘센 고기. 맛있는 고기. 우리는 서로가 가진 불꽃을 보지 못했다. 이 역사를 끝내야 한다.” 라는 발췌문이 압도하듯 놓여있습니다. 인류는 사상 최대의 재난 '움'이후 신인류와 구인류로 나뉘어 먹는 자, 먹히는 자로 계급이 분화됩니다.
상어 바나가 유빙 아래를 느리게 헤엄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도입부의 묘사부터 다른 지점이 있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상어가 500년을 사는 동안 겪은 세계의 아름다움과 폭력성을 짧은 문장으로 통과합니다. 아포칼립스, 기후, 생태, 계급 등의 키워드로 읽기에 좋겠지만, 이 소설만의 특이성에 주목해 읽어보시는 편이 훨씬 재미있을 듯합니다. 비틀어진 말투, 덜 거른 문장으로 만들어내는 독창적인 미학이 있는 수상작입니다.
- 알라딘 한국소설/시/희곡 MD 김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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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8쪽 : 어떤 모습으로 어떤 방식으로 존재해야 가장 오래 신을 보존할 수 있을까? 조각들은 어떤 형태로 존재해야 영원히 살 수 있을지를 시험해본다. 하나의 재료에서부터 제각기 분화해 온 온 우주 생명이, 신의 이쁨을 받기 위해 노력하고 때로 서로를 시기한다. 이것은 끝없이 바통을 넘기는 계주다. 신의 관심은 너에게 있지 않다. 단지 네가 가진 유전자에 있다. '날 보존화라.' 그거싱 우리 몸에 새겨진 신의 명령이다.

Q :
'어릴 적부터, 그러니까 십대 초반 즈음부터 작가가 되길 바랐다.'고 작가의 말에 적어주셨습니다. 첫 작품집 <자개장의 용도>가 유독 아름답고 작품 속 사물들과 닮아보입니다. 이 책을 처음 실물로 쥐어본 날 함윤이 작가가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A :
첫 소설집은 제게 커다란 사건이고, 그만큼 여러 감정과 의미로 다가와요. 당장은 이걸 어떻게 소화할지 고민 중이에요. 오랫동안 이 소설들을 붙잡고 있어서인지…… 그 결과가 실제 사물로 나왔다는 사실이 얼떨떨하고요. 이런 이유로 책이 도착한 날에는 조금 긴장한 채로 상자를 열었고, 실감이 날 때까지 실물을 만져보았어요. 종이 냄새도 맡고, 표지의 박도 이런저런 각도로 비춰보고요. 이후로도 『자개장의 용도』가 몸을 가졌다는 사실에 적응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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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어릴 적부터, 그러니까 십대 초반 즈음부터 작가가 되길 바랐다.'고 작가의 말에 적어주셨습니다. 첫 작품집 <자개장의 용도>가 유독 아름답고 작품 속 사물들과 닮아보입니다. 이 책을 처음 실물로 쥐어본 날 함윤이 작가가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A :
첫 소설집은 제게 커다란 사건이고, 그만큼 여러 감정과 의미로 다가와요. 당장은 이걸 어떻게 소화할지 고민 중이에요. 오랫동안 이 소설들을 붙잡고 있어서인지…… 그 결과가 실제 사물로 나왔다는 사실이 얼떨떨하고요. 이런 이유로 책이 도착한 날에는 조금 긴장한 채로 상자를 열었고, 실감이 날 때까지 실물을 만져보았어요. 종이 냄새도 맡고, 표지의 박도 이런저런 각도로 비춰보고요. 이후로도 『자개장의 용도』가 몸을 가졌다는 사실에 적응하고 있습니다.
Q :
이야기를 좋아하는 어린이들은 <자개장의 용도>의 '자개장' 같은 것이 이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나를 텔레포트해주길 꿈꾸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꿈꾸던 시절 함윤이 작가 이야기의 문으로 인도해준, '자개장'과 같았던 책 혹은 영화 등을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A :
돌이켜보면 유년기야말로 책과 가장 순수한 사랑에 빠져 있던 시기인 듯싶어요. 로알드 달,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에리히 캐스트너, 오트프리트 프라이슬러 등 시공주니어 등에서 번역한 ‘어린이 문학’ 시리즈에 특히 반해 있었습니다. 『크라바트』나 『제임스와 슈퍼복숭아』 같은 책은 거의 침 흘리며 읽었고요. 1990~2000년대 지브리 애니메이션과 당시 대중화된 인터넷을 통해 올라오던 각종 ‘서브 컬처’에도 큰 영향을 받았어요.
Q :
2026년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정전>이 상반기 내 출간 예정이라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새해엔 어떤 작품으로 독자를 만나게 될지, 앞으로의 활동 전망 등이 궁금합니다.
A :
2025년부터 준비한 일들을 하나하나 풀어보려 해요. 지난 몇 해간 여러 차례 다시 쓴 장편 〈정전〉이 문학동네에서 출간될 예정이고, 신춘문예 당선작 「되돌아오는 곰」을 포함한 ‘공무원’ 연작 역시 묶고 퇴고하는 과정을 앞두고 있어요. 이외의 단편 등도 하나하나 잘 살펴서 내놓으려 하니,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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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작가, 에세이스트, 영국 펭귄랜덤하우스 트랜스월드에 억대 선인세로 수출된 맛있는 에세이 <라면: 지금 물 올리러 갑니다>의 저자인 윤이나의 첫 소설입니다. 신이 잃은 한때의 '여의도 재림아씨' 현재림은 신을 되찾기 위해 딸 미래와 무연맨션에 짐을 풉니다. 이 명당 자리엔 자신의 현금을 훔쳐 사라진 직원 문강은의 동생, 불운한 문강우가 무연맨션 이웃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지금은 각 은행사, 보험사 홈페이지에서 토정비결을 제공하는 21세기, 인공지능에게 생년월일을 불러주면 일주를 풀어주는 AI시대입니다. 이른바 'MZ무당'을 소재로 한 컨텐츠가 계속 방영이 되는 건 사람들이 여전히 누군가 답을 정해주길 원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친족에게 사기를 당하고 유일한 재능이던 예지력을 잃어도 사람은 살아야 하는 법. 횡재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윤이나의 소설은 피식 웃는 힘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작은 기운 하나면 된다고 읽는 사람을 응원합니다.

인간 생활의 3대 기본 요소는 의식주衣食住입니다. 이는 의衣, 식食, 주住란 인간이 누려야 할 가장 기본적인 필요충분조건이라는 말이기도 하죠. 그러나 이 중, 주住를 우리 모두가 기본 요소로 누리고 있느냐 라는 질문에는 선뜻 그렇다, 대답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살다, 거처하다라는 본래의 의미인 주住를 기본 요소로 누리기 위해서는 그 안에서 살고, 그 안에서 거처할 나의 집이 필수적입니다. 단순히 몸을 ‘누이는’ 공간이 아닌, 진정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집 말입니다.
그러나 갈수록 현실은 녹록치 않고 치솟는 집값을 따라잡을 일은 요원해 보입니다. 거기에 몇 년 전부터 기승을 부린 각종 전월세 사기는 내 집을 갖고자 애쓰는 이들에게 깊은 좌절을 안길 뿐이지요.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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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생활의 3대 기본 요소는 의식주衣食住입니다. 이는 의衣, 식食, 주住란 인간이 누려야 할 가장 기본적인 필요충분조건이라는 말이기도 하죠. 그러나 이 중, 주住를 우리 모두가 기본 요소로 누리고 있느냐 라는 질문에는 선뜻 그렇다, 대답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살다, 거처하다라는 본래의 의미인 주住를 기본 요소로 누리기 위해서는 그 안에서 살고, 그 안에서 거처할 나의 집이 필수적입니다. 단순히 몸을 ‘누이는’ 공간이 아닌, 진정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집 말입니다.
그러나 갈수록 현실은 녹록치 않고 치솟는 집값을 따라잡을 일은 요원해 보입니다. 거기에 몇 년 전부터 기승을 부린 각종 전월세 사기는 내 집을 갖고자 애쓰는 이들에게 깊은 좌절을 안길 뿐이지요.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알게 모르게 뿌리 내린 사회의 균열을 세심하게 포착해온 김의경, 장강명, 정명섭, 정진영, 최유안 다섯 작가가 나서 ‘집’과 ‘거주’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풀어낸 다섯 편의 소설을 선보입니다. 또 이 소설을 쓰게 된 비하인드 스토리인 작가 노트를 한데 모았습니다. 집주인이 아니면 반려동물조차 키울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 삶, 할 수 있는 모든 안전장치를 다 갖췄지만 속절없이 당하는 전월세 사기, 치솟는 집값, 계약서의 위선과 함정, 그리고 무너진 인간에 대한 신뢰…….
누군가의 일이 아닌, 어쩌면 우리들, 혹은 ‘당신의 이야기’일 수 있는 다섯 편의 소설을 여러 분께 띄웁니다.
- 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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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앤솔러지 <어차피 우리 집도 아니잖아>에 장강명 작가가 기획하고 참여한 앤솔러지 두 권을 함께 올려봅니다. 2024년 12월 17일 타계한 소설가 정아은 작가를 추모하는 동료들의 마음을 모아 출간한 <엔딩은 있는가요>는 정아은 작가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소재를 중심으로 적은 아홉 편의 소설을 모아 한 작가의 작품세계를 기리고 애도합니다. “사람은 가도 사랑하는 마음은 남는다. 영원히.”는 작가의 에세이의 한 문장과 함께 작가의 작품을 기억해봅니다.
대도시 한 가운데를 흐르는 한강 같은 넓은 강은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다고 합니다. 장강명, 정해연, 임지형, 차무진, 박산호, 조영주, 정명섭은 장르소설의 문법으로 한강을 다시 봅니다. 인어가 살지도 모르는 한강, 사람의 욕망을 부추기는 한강, 달리기의 땅 한강, 그 모든 한강을 바라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