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리뷰오브북스 X 알라딘

총 상금 1,000만원

제2회 우주리뷰상
수상자 발표

책읽는 우주탐험가
책 이미지

서평을 통해 책과 독자를 잇고, 이를 기반으로 더 나은 지식 공론장의 창출을 지향하는 서평 전문지 《서울리뷰오브북스》와 알라딘이 함께하고 아모레퍼시픽재단이 후원한 제2회 우주리뷰상 수상자를 발표합니다.
이번 공모는 알라딘과 106인의 책 전문가가 뽑은 '21세기 최고의 책' 선정 도서 800여 종을 대상으로 했고, 3개월여의 공모 기간 동안 500여 편의 서평이 응모되었습니다.
책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수상자분들께는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

심사위원

  • 심사위원장 정우현 《서울리뷰오브북스》편집위원
  • 심사위원 김두얼, 권석준, 신형철, 전은지 이상 《서울리뷰오브북스》 편집위원
  • 심사위원 윤경희 문학평론가

심사 기준 및 수상 정보

서평의 우수성완성도독창성

최우수작 1편 200만 원 상금

우수작 8편 100만 원 상금

2025 제2회 우주리뷰상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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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작

콜럼바인 사건: 완전함의 신화와 통제의 구조

김선경

서평 도서 :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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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작

병명에 관한 변명들: 아프다는 것에 관하여-말하기

김연주

서평 도서 : 아프다는 것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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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작

말더듬이였던 어린 시절의 내가 이 책을 일찍 만났더라면

김준수

서평 도서 :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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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작

난민적 삶의 가능성과 서사 탐색

임은정

서평 도서 : 기억·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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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작

등을 바라본다는 것, 성장이라는 죽음을 마주한다는 것

김태현

서평 도서 : 룩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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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작

자유항의 주도자들

김샤론

서평 도서 : 면세 미술 : 지구 내전 시대의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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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작

에세이라는 별자리를 관측하는 법

강아람

서평 도서 : 에세이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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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작

빈 것을 당신께 드리오니: 윤경희, 《분더카머》

이종승(묵온)

서평 도서 : 분더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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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작

독소의 시대, 무너지는 세상의 언저리에서 그 자체로 완전한 버섯을 찾다

오효정

서평 도서 : 세계 끝의 버섯

제2회 우주리뷰상 심사 경위

정우현
심사위원장,《서울리뷰오브북스》 편집위원

《서울리뷰오브북스》와 알라딘이 공동 주관하고 아모레퍼시픽재단이 후원하는 ‘우주리뷰상’은 지난해 첫 회에서 기대를 뛰어넘는 관심과 참여를 확인한 데 힘입어, 올해 두 번째 공모전을 성황리에 이어 갔다. 7월부터 10월 중순까지 약 500편에 이르는 서평이 접수되었고, 이를 통해 단순히 독서에 그치지 않고 직접 서평을 쓰고 타인과 지적 경험을 기꺼이 나누려는 수준 높은 문화가 대중 사이에 꾸준히 확산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서평 대상 도서에 제 한을 두지 않았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알라딘이 선정한 ‘21세기 최고의 책’ 800여 종 가운데서만 대상을 선택하도록 범위를 좁혔다. 전체 응모작 가운데 절반 이상은 소설을 비롯한 문학작품이 차지했지만, 인문학과 사회과학은 물론 자연과학과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책들도 고르게 독자들의 선택을 받았다. 이에 따라 올해 심사에는 저명한 문학평론가뿐 아니라 여러 분야를 횡단하며 비판적 글쓰기를 지속해 온 전문 작가들이 동참하게 되었다.

심사는 총 여섯 명의 심사위원이 약 2주에 걸쳐 치밀하게 진행했다. 1차 예심을 통해 120편의 작품이 본선에 올랐고, 이후 2차 본심에서 최우수작 1편과 우수작 8편이 최종 선정되었다. 좋은 서평 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심사위원들은 각기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었지만, 공통적으로는 서평자가 저자의 책을 충실히 소개하고 비평하면서도 내용에 대한 공감 혹은 이견을 자기만의 목 소리로 생생하게 드러냈는지를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았다. 나아가 서평이 책에서 얻은 사유를 확장해 인간과 사회를 향한 더 넓은 탐구로 독자를 유도하는지 또한 핵심적인 평가 요소로 보았다. 우수작 선정을 위해 심사위원단은 두 차례 심도 있는 회의를 진행했으며, 그 외 기간에도 온라인으로 활발히 의견을 주고받으며 합 의를 향한 길고도 깊은 토론을 이어 갔다. 모든 심사 과정은 익명으로 진행되었고, 표절 여부 검토와 인공지능 사용 의심 분석, 심사 위원과의 이해관계 충돌 등도 함께 고려해 최대한 공정성을 확보했다.

최종적으로 최우수작은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를 다룬 김선경의 서평이 선정되었다. 그는 미국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의 가해자를 아들로 둔 어머니의 고통스럽고도 절제된 회고록을 소개하며, 개인적 윤리의 문제가 사회심리적 구조와 어떻게 맞닿는지를 정밀하게 짚어 냈다. 독자들이 원작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게 하고 사회적 논의를 확장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 가를 받았다. 오카 마리의 『기억·서사』를 다룬 임은정의 서평은 한 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사례로 들어, 폭력적 사건의 기억을 함 께 나누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고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한 저자의 논의를 충실하게 따라가면서 공감의 경로를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 에세이 『아프다는 것에 관하여』를 다룬 김연주의 서평은, 질병이라는 경험을 오래 탐구해 온 작가의 근원적이고 복잡한 물음에 대해 독자가 어떻게 능동적으로 응답할 수 있는지를 긍정적이고 단단한 문장으로 보여 주었다.

히토 슈타이얼의 『면세 미술』을 대상으로 한 김샤론의 서평은, 건조할 만큼 정직한 그의 예술 비평에 친절한 해설을 덧붙이는 데 그치지 않고, 저자의 문제의식에 정면으로 맞서며 생산적 긴장을 만들어 낸 비평으로 주목받았다. 『에세이즘』에 대한 강아람의 서평은 에세이라는 장르가 필연적으로 지닐 수밖에 없는 불안정성과 주변성을 성찰적으로 탐구한 또 하나의 수려한 에세이였다. oh5girl5의 독특한 서평은 애나 칭이 쓴 『세계 끝의 버섯』이 제기하는 거대 담론을 일상의 패치들로 끌어내려 삶의 현장에서 실제 적이고 감각적인 방식으로 재현해 낸 점이 돋보였다. 『분더카머』 에 대한 이종승의 서평은 언어와 의미 전달에 천착하며 살아온 저 자의 삶에 바치는 헌사와도 같았다. 번역을 주제로 해 언어의 본질과 그 경이로운 생명력을 낭만적으로 드러냈다.

동화책과 만화책을 각각 다룬 두 편의 서평도 당당히 우수작으로 뽑혔다. 조던 스콧과 시드니 스미스의 그림책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에 대하여 쓴 김준수는 말을 더듬는 소년이 어떻게 내 면의 아픔을 치유하는지를 시적인 비유가 가득한 글과 그림으로 표현한 작가의 예술성을 감각적으로 조망했고, 후지모토 타츠키의 만화 『룩 백』의 서평을 작성한 김태현은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독서를 기꺼이 고백하며 서로 독려하는 환대의 공동체라는 것이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특별한 매력을 발산했다고 평가되었다.

올해는 소설 같은 순수문학을 대상으로 한 서평들이 꽤 많았으나 아쉽게도 수상으로 연결되지 못했다. 특정 장르의 글에 대해 편견을 갖고 소홀히 대했거나 심사 기준을 필요 이상으로 엄격히 적용했던 것은 분명 아니었다. 총 아홉 편의 선정작 외에도 훌륭한 서평들이 물론 많았지만, 아쉽게도 분량이 너무 짧거나 지나치게 전문적이고 학술적으로 쓰였기 때문에 수상의 기회를 얻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내년에도 계속될 ‘우주리뷰상’ 공모전에 책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누구나 쉽게 읽고 즐기며 감동을 나눠 가질 수 있는 멋진 서평들이 더 많이 응모되기를 기대한다. 수준 높은 독서와 비 평의 문화가 ‘우주리뷰상’으로 인해 더 넓고 크게 확산하기를 희 망하며 모든 수상자께 축하의 메시지를 전한다.

책을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놀라울 정도로 특이한 비밀결사를 구성한다. 모든 것에 대한 호기심과 연령의 구분 없이 섞이지 않음이, 결코 서로 만나는 일 없이도 그들을 한데 모아 놓는다. - 파스칼 키냐르, 『은밀한 생』에서

제2회 우주리뷰상 심사평

권석준
《서울리뷰오브북스》 편집위원

부모가 어린 자식을 먼저 보내는 일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참척이다. 그렇지만 그 자녀가 살인을 한 후 스스로 목숨을 던지는 것은 보통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영역 밖의 일이다. 원작자 수 클리볼드는 17년 전에 있었던 미국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의 가해자 중 한 명인 딜런의 어머니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이 벌인 끔찍한 참사를 고통스러운 기억에서 꺼내 한 줄 한 줄 되짚어 간다. 기본적으로 반성적 서사와 방어적 기술이 엮이는 것을 피하기 어려운 이러한 유의 회고록은 르포라기보다 한참 뒤늦게 쓰는 육아일기에 가깝다. 클리볼드 역시 스스로 가해자의 부모라는 메타인지를 하는 동시에 아들이 왜 그러한 경로를 밟을 수밖에 없었는지 조심스레 기록한다. 고통스러울 정도로 담담하게, 그러나 복잡한 생각의 흐름으로 점철된 서사에서, 김선경은 수 클리볼드의 시선에 그리 쉽게 동조하지는 않는다. 좋은 서평의 기본 덕목은 서 평 대상이 되는 책을 가까이하되 또 멀리하는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김선경은 클리볼드의 ‘육아일기’에 내포된 도덕의 평면화 위험을 잘 읽어 냈다. 김선경은 오히려 이러한 비극을 개인의 차원이 아닌 사회 구조에서 비롯한 인과관계의 맥락으로 해석하려 한다. 즉, 김선경은 원작자의 일인칭 윤리 관점을 삼인칭 사회 심리 관점으로 승화시키는 셈이다. 이는 독 자들에게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를 다르게 바라보는 관점 을 제공하면서도 사회 구조에 내포된 비극의 반복을 막을 방법에 대한 토론의 장을 제공한다. 서평자가 잘 짚어 낸 것은 일인칭 윤리는 결국 개인에게 책임이 전가되는 도덕적 환원주의로 수렴하지만, 이것의 구조적 맥락을 읽어 낸다면 그 일인칭 윤리마저도 사회적 구조가 암묵적으로 강요하는 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선경은 이것이 미국인 개인이나 사회 구조에 국한된 일이 아님도 추적한다. 그는 한국의 치열한 입시 경쟁과 성과 지상주의 담론에도 동일한 불안-통제-관계 단절의 구조가 숨어 있음을 본다. 이 서평은 미국에서 일어난 비극을 한국의 비극적 현실을 반사하는 거울 로 보고 있는 셈이다. 이 책 곳곳에 불규칙적으로 튀어나오는 여 러 층위의 도덕과 윤리와 규범 사이에서 의미의 혼재는 피할 수 없 다. 그렇지만 서평자는 그 통제의 순연 구조까지 놓치지는 않았음을,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보여 준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사실 여러 맥락에서 앞뒤를 왕복하면서 반복해 읽어야 할 정도로 의미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김선경 역시 책의 모든 의미를 파악한 것은 아닐지라도 균형 잡힌 시각을 놓치지 않는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와 함께 최우수작 「콜럼바인 사건: 완전함의 신화와 통제의 구조」는 개인과 사회 사이의 구조에 대하여 여러 맥락의 토론 주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전은지
《서울리뷰오브북스》 편집위원

브라이언 딜런의 『에세이즘』을 다룬 강아람의 「에세이라는 별자리를 관측하는 법」은 단순히 책을 해설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에세이라는 장르가 품은 불안정한 자리를 천천히 더듬으며, 저자는 그 단어가 문학사에서 감당해 온 오명과 편견을 되짚는다. ‘에세이’라는 이름이 지닌 모호함의 기원을 언어와 시대의 흐름에서 탐색하는 과정은 담담하면서도 치밀하다. 글은 스스로의 형식 안에 서 ‘에세이즘’을 실험하며, 그 문장은 과하지 않게 균형을 잡고 있다. 강아람은 딜런의 문장을 따라가면서, 동시에 그 너머의 세계를 바라본다. “만약 에세이가 우주에 대해 쓴다면, 우주의 원리에 대해 쓰기보다, 우주의 먼지에 대해 쓸 것”이라는 구절을 인용하며, 에세이가 전체가 아닌 세부를 바라보는 장르임을 상기시킨다. 완결보다 과정, 중심보다 주변을 향하는 시선이 글 전체를 이끈다. 벤야민의 멜랑콜리, 몽테뉴의 사유, 그리고 딜런의 파편적 글쓰기가 자연스럽게 포개지며, 글은 에세이의 사유 방식을 차분히 넓혀 간다.

「에세이라는 별자리를 관측하는 법」은 에세이에 대한 비평이자, 동시에 하나의 에세이다. 설명과 성찰이 번갈아 흐르고, ‘이 글이 말하는 것’과 ‘이 글이 스스로 수행하는 것’이 조용히 맞물린다. 이 글은 에세이를 가벼운 산문으로 소비하는 통념에서 벗어나, 그것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글을 읽고 나면, ‘쓴다’는 행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자신과 세계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 려는 시도고, 그 시도의 흔적은 오래 남는다.

신형철
《서울리뷰오브북스》 편집위원

히토 슈타이얼은 요약으로는 정확히 소개하기 어려운 저자고 그의 글은 더욱 그렇다. 『면세 미술』의 역자들은 적절하게도 ‘혼란스럽지만 박력 있는’ 글이라고 평했는데, 그의 ‘혼란스러움’은 글이 부정확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극도로 정확해서 발생한다. 부연은커녕 상술이라는 게 뭔지도 모르는 사람처럼, 논증에 불가결한 문 장들만 동원해, 비트겐슈타인이 『논리철학논고』를 쓰듯 쓴다. 너무 정확해서 저체중 상태에 이른 책에 김샤론은 말 그대로 ‘살을 붙이는’ 작업을 한다. 15편의 글이 수록된 책에 대한 서평을 1편의 글만을 대상으로 썼다는 건 결격 사유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대상 글이 표제작이기도 하거니와, 이만한 시술을 모든 글에 다 할 수는 없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면세 구역인 제네바 자유항의 미술품 수장고를 대상으로 쓰인 『면세 미술』을 논평하는 글을, 보잉747이 오슬로 공항 자유항에 있는 면세 창고를 들이받는 장면이 나오는 영화 〈테넷〉을 인용하며 시작하는 건 그리 대단한 아이디 어가 아닐지도 모른다. (먼저 발표된 글 중에도 전례가 있다.) 그러나 김샤론은 단지 그럴듯한 도입부를 쓰기 위해 영화 한 편을 끌어들이는 부류가 아니다. 글의 중반부에 이르면 김샤론이 인용한 그 영화가 이 번엔 히토 슈타이얼의 책을 생산적으로 들이받는다. 어려운 책에 성실한 주석을 다는 정도에 만족하지 않고, 안 그래도 쉽지 않은 책을 더 쉽지 않은 고민의 자리로까지 밀고 간다. 이 정도면 저자에 어울리는 서평자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윤경희
문학평론가

책을 읽는 데 그치지 않고, 보다 능동적으로 책에 자신을 연루시켜 그것에 대해 무언가 쓰고 싶다는 마음은 어떻게 생겨날까. 독후감 충동이라 명명할 만한 이 신비롭고 힘센 마음은. 적지 않은 경우, 독후감 충동은 서로 응답하고자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교류되는 심적 에너지 같다. 예기치 않은 순간 누군가에게 어떤 물음이 운석처럼 떨어진다. 질문보다는 차라리 의문에 가까운 물음은 그의 실존과 생을 진동시키고 파열의 깊은 틈과 구멍을 남긴다. 상해와 고통의 물음 운석을 뽑아 던질 수 없어서 자기 것으로 삼아, 계속 품고 가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제 답 구하기가 삶의 과제로 주어진다. 물음을 수용하고 그에 대한 답을 찾는 수행의 과정을 존엄하고 성실하게 기록한 책이 있다면, 메이의 『아프다는 것에 관하여』는 그 탁월한 범례다. 저자처럼 물음 운석을 몸과 마음 안에 질병의 형식으로 끌어안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책에서 오래 간구한 응답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 응답은 물음을 해소하는 최종의 말 이 아니라 존엄한 삶의 한 양식을 사는 자들이 서로를 알아보았다는 신호의 영구한 메아리라 해야 할 것이다. 김연주의 서평 「병명에 관한 변명들」은 먼 운석구 하나에서 울려 나오는 결코 놓칠 수 없는 메아리다.

김두얼
《서울리뷰오브북스》 편집위원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는 말을 더듬는 아이의 생활과 내면을 따 뜻한 시선으로 담아낸 그림책이다.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쉼 없이 이야기하는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누구나 그렇게 되고 싶어 하는 세상에서 말을 더듬는다는 것이 얼마나 아이에게 큰 슬픔일지, 하지만 그런 아픔을 우리는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지를 책의 저자는 강물에 덧대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김준수는 자신의 경험을 담아 책의 가치를 우리가 볼 수 있게 펼쳐 보였다. 서평이 단순히 책을 분해하고 심오한 개념들에 기대 평가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책에 대한 서평자의 큰 통찰을 펼쳐 보이는 것이라는 점에서 이 글은 탁월했고 감동을 주었다. 아울러 그림책이라는 특성을 고려해서, 책의 줄거리나 내용에만 초점을 맞추는 대신 그것을 어떻게 그림으로 표현하는지 조망하는 부분 또한 훌륭했다. 앞으로도 좋은 책을 선별해서 이번 글처럼 큰 감동을 주는 서평을 계속 써주시기를 기원한다.

윤경희
문학평론가

평론가가 아니라 일반 독자로서 서평을 쓰는 사람들에게는 묘한 유혹자의 기질과 환대 의식이 있다. 내가 어떤 책을 너무나 좋아하게 되어서 그 마음을 글로 풀어냈어, 너는 부디 내 이야기를 듣고 나와 함께 그 책을 좋아해 주기를, 그리고 그 책에 대한 너의 이야기도 들려주기를. 후지모토 타츠키의 『룩 백』에 관한 김태현의 서평 「등을 바라본다는 것, 성장이라는 죽음을 마주한다는 것」을 읽으면 누구든 그가 열렬히 예찬하는 이 만화를 구해서 어서 읽고 싶다는 조바심이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이 만화의 서사와 이미지 배치에 관한 자기의 해석을 그의 것과 견주어 볼 때 어떤 점에서 조응하고 분기하는지 분명 덧붙이고 싶어질 것이다. 김태현의 서평은 이처럼 책을 사랑하는 자들이 자기의 책 읽기를 고백하고 서로의 책 읽기를 독려하며 유혹과 환대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시킨다. 나는 김태현의 서평 덕분에 후지모토 타츠키라는, 부끄럽게도 전혀 몰랐던 예술가의 세계에 기꺼이 입문하고 싶어졌다. 유혹은 성공했으며, 나는 나보다 이 책을 먼저 읽은 독자들의 공동체에서 환대받을 것이다.

권석준
《서울리뷰오브북스》 편집위원

LLM으로 대표되는 인공지능 세상에서 최근 언어(자연어)가 사고 의 틀이 아니라 오히려 지능의 폭발적 발전을 가로막는 벽으로 작용하므로 LLM은 인공지능의 종착점이 아니라는 연구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어찌 보면 인간의 원초적인 감각과 사고, 그에 기반한 지능을 언어라는 매체 하나로 모두 담아낼 수 있다는 것, 그것을 흉내 낸 인공지능을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진짜 지능은 언어 그 이면에 있는 원초적인 의미의 단 위까지 추적하는 난해한 작업을 요구할지도 모른다. 『분더카머』는 번역자로서 윤경희가 언어 그 이전의 다양한 형태들이 서로 관여하는 의미의 흐름을 추적하고 반추하는 책이다. 독일어로 ‘호기심의 방’이라는 뜻 그대로 윤경희가 『분더카머』에서 전하고자 했던 내용은 의미 이전의 세계, 그리고 번역의 원초적 불가능성이 갖는 한계 앞에서 의미를 전달하는 것의 진짜 ‘의미’에 대한 것이다.

이종승이 『분더카머』에서 속 깊이 읽어 낸 것은 이러한 작가의 의도를 파악한 것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창작자와 소비자 사이, 다양한 층위에서 의미를 해석하고 감수하고 전달한 경험을 쌓은 이종승은 자신의 직업적 배경과 특수성을 그대로 살려 이 책을 한 단계 더 깊이 읽어 낸다. 그가 주목한 것은 의미의 전달을 위해 창작자가 언어 이전의 배열에 쏟은 정성에 담긴 태도다. 이종승은 이러한 의미 전달에 대한 철학과 감각을 동시에 파악해 『분더카머』를 보다 확장적 세계에서 여러 이론과 사례를 통해 다시 평가한다. 서평자가 의미의 확장을 수면 위로 끌고 올 수 있었던 것은 윤경희가 의도했던 기이함이나 호기심의 의미가 종국에는 경이로 확장될 수 있음을 잘 잡아냈기 때문이다. 진열-체험-호기심-경이로 이어지는 의미의 흐름은 결국 창작자와 읽는 사람 사이 의미 전달의 핵심이며, 이는 이종승이 스스로 탐구하고자 하는 원래의 세계 와도 부드럽게 연결된다. 서평 「빈 것을 당신께 드리오니」는 윤경희의 『분더카머』와 함께 독자들에게 의미로 가득 찬, 그러나 동시에 빈 상자를 다시 같이 채우자며 손을 내밀고 있다.

정우현
《서울리뷰오브북스》 편집위원

임은정의 서평 「난민적 삶의 가능성과 서사 탐색」은 폭력적 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들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에서 만난 오카 마리의 『기억·서사』에 대한 서평이다. 특히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사례로 들어, 사건에 대한 기억을 나누어 갖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며,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한 저자의 논의를 충실히 좇아가며 공감의 길을 모색한다. 언어와 실재 사이의 괴리와 내셔널리즘이라는 장벽을 허물기 위해 난민적 삶을 제안하는 저자의 주장에, 조국을 재정의할 필요성과 서사를 재탐구함으로써 공유의 한계를 넘어설 가능성을 역설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아마도 분량의 한계 때문이었겠지만, 비판과 설득을 통해 독립적인 논의를 힘 있게 풀어 나갈 서사적 동력이 충분했는가에 대해서는 약간의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더 긴 호흡으로 새롭게 쓰일, 서평자의 다음 글을 기꺼이 읽어 보고 싶다.

신형철
《서울리뷰오브북스》 편집위원

필자의 운이 나빴다면 이 글은 서평의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는 판정을 받으며 수상권에서 멀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운이 좋았다. 이 글의 장점을 높이 산 심사위원들이 더 많았다. 그러나 단점을 짚은 이들의 의견은 타당했다. 서평의 대상이 된 책의 학술적·출판적 가치를 다각도로 짚고 있지 않으며 글의 구조에도 납득할 만한 원리가 보이지 않는다. 내용 면에서나 형식 면에서나 느슨한 에세이로 분류될 만한 여지가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 글에 호감을 가진 사람에게는 그게 달리 보이기도 하는 것이었다. 학술적·출판적 가치를 논평하기 위해 필요한 전문성이나 비판적 거리가 없는 자리에,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라, 하나의 삶과 한 권의 책이 만들어 내는 매력적인 ‘얽힘(entanglement)’이 있었다. 서평으로 짐작하건대 서평자는 5년 전에 거제도에 정착했고, 가끔 버섯을 캐러 나가기도 하며, 인간과 비인간이 어울려 만드는 대안적 삶의 방식을 고민하는 사람이다. 그런 삶은 『세상 끝의 버섯』을 이렇게 읽을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즉, 책과 거리를 둘 수 없어 차라리 한 몸이 되었을 것이고, 저자와 다른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책 옆에 서서 복화술로 말하고 싶었을 것이며, 한국의 현실을 비판하는 식으로 해당 책의 로컬 버전을 쓴 것일 테고, 그래서 글의 구조도 인 간 중심적 진보 담론을 닮은 선형적인 그것이 아니라 서평 도서의 구조를 닮은 패치워크 스타일이 됐을지도 모른다. 요컨대 이 서평은 『세상 끝의 버섯』이라는 소나무와 공생 중인 송이버섯 곰팡이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