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물리학과 웨더맨, 네오나치와 바흐 이 세상에 재앙이 찾아왔다
《헤르쉬트 07769》는 참으로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답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이 작품이 특별히 언급된 이유는, 크러스너호르커이다운 문장, 분위기, 소재의 일상성과 개성까지, 어느 하나 빼놓을 것 없이 작가의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사탄탱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처음부터 끝까지 암울한 흑백영화 같은 이미지가 용암처럼 흐른다. 거기에 바흐의 칸타타가 흐르면서, 묵시록적이면서도 우아하고 강렬한 느낌이 더해진다. 중간에 등장하는 올드팝은 일상의 감각을 더해주지만, 이 작품은 바흐 칸타타가 변주되듯 끊임없이 흐르면서 인물의 비극성을 강조한다. 이야기의 배경에는 나치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그것이 종말과 재앙의 감각을 벼린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동조한 까닭에 추축국이 된 헝가리는 전쟁의 상처가 아물지도 않은 상태로 소련에 편입됐다. 1991년 소련이 붕괴된 후, 헝가리는 기나긴 독립의 과정과 지난한 극우와 좌파의 대립으로 최근까지도 혼란스러운 상황을 겪어야 했다. 저자가 포스트모너니즘적이고 아포칼립스적 글을 쓰는 이유는 그런 배경을 지닌 헝가리에서 사회적, 정치적 해체를 목격하고 경험하면서 매 순간 종말이 다가오는 듯한 감각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글에는 종말과 재앙이 일상처럼 다가오며, 매 순간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그렇기에 수전 손탁은 작가를 “묵시록 문학의 대가”라고 칭송한 것이다.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대표작. 앞으로 여섯 스텝, 뒤로 여섯 스텝을 밟는 '탱고'의 형식처럼, 소설의 1부는 1장에서 6장으로, 2부는 6장에서 시작해 1장으로 끝맺는 독특한 순환 구성을 취해 절망의 악순환을 그려냈다.
단락 구분 하나 없는 광대한 검은 강 같은 활자들에는 녹아든 메시지는 어느 하나로 압축되기 어렵다. 그것은 작가가 건너지른 동유럽의 격변사이기도, 각 계급의 사회적 의식 형성에 대한 냉혹한 성찰이기도, ‘한낮의 악마’라고도 했던 멜랑콜리의 진창에 붙박인 인간의 운명이기도, 키치와 블랙코미디에서 그리스비극을 이끌어내려는 시도이기도, 또는 그 모두이기도 하다.
종말과 끝이 다가오고 있는, 혹은 다가온 이 세계에서 우리는 모두 탈출을 꿈꾼다. 그러나 탈출은 번번이 실패한다. 다시 있던 자리로 돌아가거나 그 자리에 멈춰 서는 것만이 인간의 숙명인 것 같다.
인간과 자연, 사냥꾼과 사냥감의 경계의 허무함에 대한 슬프도록 아름다운 철학적 탐구. 23년의 시간을 사이에 두고 발표된 두 편의 이야기, 그의 문학적 정수를 온전히 맛볼 수 있는 책.
크러스너호르커이와 가까워지고 싶었으나 선뜻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던 독자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책. 비교적 우리에게 친숙한 장소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한번 이야기의 흐름이 끊기면 다시 집중하기 어려운 장편과는 다르게 한 편, 한 편의 끝맺음이 있는 것이 진입 장벽을 낮추는 주요한 요인이다.
작가는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이 소설가로서 살아오는 동안 낙서한 것을 묶은 소설이라고 설명했다. 그렇기에 즉흥적이면서도, 라슬로의 기교를 최대한 발휘한 작품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의 차례는 악보와 같다. 다소 낯설고, 꼭지마다 붙은 제목은 가사 같으며, 악기 소리와 합창단의 목소리를 배열해놓은 것 같다.
대상도서 1권 포함, 국내도서 3만원 이상 구입 시 (택1, 각 마일리지 차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