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17일 : 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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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지금

전국, 연합하고 싶지 않은 여자들 연합 지망생 모임

난다시편의 이름으로 출간된 김혜순 시인의 신작 시집은 새로운 마음으로 읽게 됩니다. 그 스스로가 '예전에는 고통으로 가득차서 시를 썼어요. / 그 시들을 쓰다가 어느 순간 찬물을 몸에 끼얹듯 / 다른 시를 써야겠다 생각했어요.'라고 편지를 적은 것처럼, 바다 아네모네(Sea Anemone)라는 명패가 적힌 생물이 물속에서 일렁이며 표표히 고독하게 '싱크로나이즈드'하는 것을 홀린 듯 바라보는 것처럼 이 시들은 어깨의 긴장을 풀고 보게 됩니다.

여자가 시하는 것에 관해 쓰던 시인은 이제 <전국, 연합하고 싶지 않은 여자들 연합>이라는 시를 적습니다. '다 꺼지라고 꽥꽥거리면서 가겠다 // 담장 위에도 올라가보겠다 / 그다음 깡총깡총 뛰어보자 / 코 잡고 빙글빙글 돌자 연합'(65쪽)같은 리듬감으로 빙글빙글 도는 모임이라면 저도 이 연합에 가입하고 싶은 연합 지망생이 되고 싶습니다. 시는 무엇보다 음악이라고 말하는 시인, 폭포처럼 어항 속 물처럼 흔들리는 시인의 가벼움과 함께 폴짝 뛰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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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쪽 : 살을 벗은 뼈에도 감각이 있을까?
<백만 명의 뼈>

작가는 지금 _3문 3답

Q : <여름밤 해변의 무무 씨>의 주인공 김은희와 그의 연인 ‘무무 씨’는 세탁기가 내는 소리를 파도 소리 삼아 ‘워시토피아’를 ‘해변’으로 여기며 데이트를 했습니다. 조해진 작가께도 이렇게 애착이 가는 장소가 있을지 궁금합니다.

A : 저는 걷는 것을 좋아해서인지 어떤 형태의 애정이든 마음이 가는 사람이 생기면 함께 걷고 싶어 해요. 강가나 바닷가를 선호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물결을 볼 수 있는 공간에 애착이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워시토피아에 대해서도 좀더 이야기해도 될까요?
워시토피아는 프렌차이즈 빨래방인 ‘워시엔조이’와 ‘크린토피아’를 합쳐 만든 이름입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눈에 띄기 시작한 무인빨래방이 저에게는 도시적이면서도 주변적인 공간으로 각인되었어요. 도시의 생활에 어울리면서도 고가의 아파트단지라든지 고급 주택가 주변에는 필요 없는 곳…… 90년대에도 빨래방이 있었다면 분명 왕가위 감독의 영화에 등장했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가진 것 없고 조금은 나이 든 연인인 김은희와 무무 씨가 자주 머무는 곳으로 무인빨래방을 설정한 건 도시에 살지만 도시에서 조금은 소외된 그들에게 그 공간이 어울린다고 여겨서였습니다. +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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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MD는 지금 스마일

걸으면서 소설을 읽으면 도보의 속도와 읽는 속도가 맞춰질 때가 있습니다. 산보의 속도로 삶을 둘러보는 소설가 박솔뫼의 신작이 출간되었습니다. 박솔뫼의 소설은 목적지 없는 여행, 관광스팟 방문 없는 우연적인 발걸음과 잘 어울립니다.

<극동의 여자 친구들>의 강주는 중부시장에서 '움직임 연구소'라는 간판을 발견한 후 움직임 워크숍을 시작합니다. <스칸디나비아 클럽에서>에서 움직임 워크숍의 또 다른 멤버 ‘나’는 움직임에 대해 생각하자 아빠와 함께 팔을 맞대고 걷는 꿈을 꿉니다. <투 오브 어스>에서 강주의 워크숍 움직임 파트너인 애리는 워크숍이 끝난 후 강주와 극동공병단 근처를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이 얘기는 잘 움직인다는 것, 잘 듣는다는 것을 향해 닿습니다. 함께 걸으며 나누던 얘기가 떠오르는 소설과 함께 가을길을 타박타박 걸어봐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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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는 지금 : 난다

난다시편. 2025년 9월 5일 난다에서 새롭게 론칭한 시집 시리즈입니다. 시의 편편을 모아 시인의 편지를 더해 감히 여러분의 시심에 사뿐히 날아들겠다는 초심으로 이제 막 간판을 내건 참입니다. 이 처음의 날갯짓에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건 그 처음의 포문을 바로 이분과 함께 열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우리 시단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시의 상징이 된 이름, 바로 김혜순 시인 말입니다. 서두가 길었지만 이렇듯 난다시편의 ‘첫’은 김혜순 시인의 시집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싱크로나이즈드 바다 아네모네』로 말입니다.

삼원색 중 하나인 마젠타, 그 붉은 자줏빛 컬러를 전면에 바른 시집. 그 정면에 이게 무슨 칠판인가 그건 바로 벼루라오 우기고픈 검은 면이 단정한 듯 단단하게 정직한 듯 정확하게 들어앉은 시집. ‘바다 아네모네’ 앞에 ‘싱크로나이즈드’라 할 적에, ‘sea anemone’가 ‘말미잘’이구나 알 적에, 동시에 일렁이고 동시에 출렁이는 복합적인 세계 앞에 다면적인 감정 앞에 다각적인 사유 앞에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시의 풍경이 제각각 다른 데서 이뤄지는 합주가 얼마나 리드미컬한 조화인지 우리는 시에 있어 음악이란 걸 최초로 경험하는 사람처럼 나도 모르게 절로 흥얼거리는 나를 발견하게도 될 것입니다. +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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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소설로 만나는 이 작가

형식(분량)이 달라지면 소설이 달라진다는 점은 소설 읽는 분들도 참 재밌게 생각하시는 지점일 것 같습니다. 체호프가 신문연재를 하며 수많은 콩트를 남겼다는 점도 잘 알려져있는데요, 희곡을 쓰는 작가와 콩트를 쓰는 작가는 확실히 달라서 체호프의 콩트는 슴슴하다 피식 웃기고 서늘하다 산뜻합니다. 믿음직한 두 소설가, 장강명과 편혜영이 비슷한 시기에 짧은소설을 엮어 출간했습니다. 논픽션 <먼저 온 미래>로 AI와 예술의 미래에 대해 논한 장강명 작가는 '‘소설이라면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어서 홀가분하기도 했고, ‘어깨 힘 빼고 편하게 써도 괜찮겠지’ 생각하니 마음이 상쾌하기도 했습니다'라는 작가의 말과 함께 STS(과학사회학)의 방식으로 읽을 수 있는 뾰족뾰족한 소설을 엮었습니다.

한국인 최초 셜리 잭슨 상을 수상한 <홀>의 편혜영의 짧은 소설은 조금 '소설이라면 이래야 한다'에 가까운 그림입니다. 집요하게 나를 바라보는 누군가, 잘못 걸려온 전화, 젖은 신발을 말리는 동안 사무실에 머물겠다고 청하는 외판원 등의 등장으로 일상이라는 뜨개질의 바늘코가 한 코 빠진 순간 인생은 전혀 다른 그림이 됩니다. 불안의 대가는 경제적인 문장으로, 고요한 박력으로 우리가 진짜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피인지 자기 자신인지를 질문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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