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3일 : 77호

우리가 깊은 바다로 갈 수 있다면
김초엽 작가의 작품을 생각하면 나무가 떠오릅니다. <지구 끝의 온실>의 온실 속 숲, <파견자들>의 균사체의 생태계 같은 것이 그러한데요, 2019년 데뷔 이후 왕성하게 작품을 발표하는 한편 동료 작가의 책을 소개하며 과학소설을 읽는 사람들의 생태계 전반을 가꿔온 작가의 활동도 나무처럼 굵직하고 굳건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한국소설, 한국장르소설 생태계의 일종의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한 김초엽 작가의 등장을 살펴보기 위해 알라딘에서는 이달의 작가 9월 김초엽 편으로 통계를 살펴보기도 했는데요, 이 막대기 모양도 산업의 종사자인 제 눈엔 정말 재미있어보였습니다. >>> 바로 가기
신작 소설집은 물의 이미지가 강합니다. 검고 깊은 바다에서 비로소 자유로워지는 사람들의 마음이 되어보길 권하는 소설은 아름답고 도전적입니다. 저도 잠수를 시도해본 적이 있는데요, 생각보다 제가 겁이 많고 엄청 살고 싶어한다는 걸 깨닫는 겸손해지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각자의 물의 경험과 함께 '녹슬고 싶은' 마음에 다가가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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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 작가의 작품을 생각하면 나무가 떠오릅니다. <지구 끝의 온실>의 온실 속 숲, <파견자들>의 균사체의 생태계 같은 것이 그러한데요, 2019년 데뷔 이후 왕성하게 작품을 발표하는 한편 동료 작가의 책을 소개하며 과학소설을 읽는 사람들의 생태계 전반을 가꿔온 작가의 활동도 나무처럼 굵직하고 굳건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한국소설, 한국장르소설 생태계의 일종의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한 김초엽 작가의 등장을 살펴보기 위해 알라딘에서는 이달의 작가 9월 김초엽 편으로 통계를 살펴보기도 했는데요, 이 막대기 모양도 산업의 종사자인 제 눈엔 정말 재미있어보였습니다. >>> 바로 가기
신작 소설집은 물의 이미지가 강합니다. 검고 깊은 바다에서 비로소 자유로워지는 사람들의 마음이 되어보길 권하는 소설은 아름답고 도전적입니다. 저도 잠수를 시도해본 적이 있는데요, 생각보다 제가 겁이 많고 엄청 살고 싶어한다는 걸 깨닫는 겸손해지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각자의 물의 경험과 함께 '녹슬고 싶은' 마음에 다가가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소설집의 첫 이야기 <수브다니의 여름휴가>에 등장하는 인물 '수브다니'는 자신을 구성하는 재료를 바꾸고 싶어합니다. 안드로이드-인간-안드로이드로 스스로를 변환하길 원하는 수브다니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의 의뢰를 받은 작업자는 '전 아직도 가끔 솜 인간이 되는 상상을 해요. 마음이 무거울 땐 펑펑 울어서 물먹은 솜이 되고 기분 좋은 날은 햇볕에 바짝 마른 보송한 솜이 되는 거예요. 화가 날 땐 나 자신을 마구 때려도 되겠죠. 솜 인간에게는 자해든 자기 파괴든 조금은 덜 위험하고 더 보송한 일이 될 거예요.'라고 편지에 적으며 그의 마음에 다가가봅니다. 기분전환을 하러 옷을 사거나 머리 모양을 바꾸는 일과 피부에 금속을 덧대는 일이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지, 김초엽의 소설이 던지는 질문에 함께 젖어 더 많은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 알라딘 한국소설/시/희곡 MD 김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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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쪽 : 검푸른 물의 세계가 우리를 압도한다. 광활한 공간 속에서 오직 우리만이 바다를 마주하고 있다. 나는 이 거대한 외로움을 직면하는 것이 두려웠었다. 하지만 레몬은 진작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 외로운 세계가, 그렇기에 얼마나 자유로운지.
Q :
신작 소설집의 제목이 《양재천 기담》입니다. 기담(奇談)과 괴담(怪談)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가 있는데요.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기담과 괴담의 차이, 양재천 괴담이 아니라 양재천 기담이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A :
기담과 괴담은 둘 다 신기하고 이상한 이야기이지만 말씀하신 대로 뉘앙스와 초점이 다른데요. 이 둘의 핵심적인 차이는 얼마나 무서운가, 즉 공포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기담이 기이한 이야기라면 괴담은 괴이한 이야기, 즉 괴상하고 무서운 이야기라고 할 수 있어요.
귀신, 유령, 저주, 도시 전설 등 사람들에게 불안감이나 공포를 주는 이야기는 모두 괴담에 속합니다. 예를 들어, 책상에서 공부하다 볼펜을 뒤로 던졌는데 소리가 나지 않았다거나 (뒤에 있던 귀신이 볼펜을 받았기 때문에),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엄마가 문득 나를 보며 “내가 아직도 네 엄마로 보이니?” 라고 했다거나, 화장실에서 나타난 귀신 손이 빨간 휴지를 줄까, 파란 휴지를 줄까 물었다거나... 오랫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온 괴담들은 진짜로 있을 법한, 누가 겪었다고 해도 믿을 법한 것들이 대부분이죠.
반면에 기담은 공포 그 자체보다 신비함, 기묘함, 으스스함을 포괄하는 개념인데요. 양재천 기담의 이야기들은 물론 무서운 작품도 있습니다만 서늘하고 아름다운, 쓸쓸하고 외로운 정서에 가깝습니다. 인간의 심연을 파고들다 보니 자연히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공포의 외피를 벗기면 마지막에는 슬픔이 남더라고요. 괴담이 아니고 기담인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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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신작 소설집의 제목이 《양재천 기담》입니다. 기담(奇談)과 괴담(怪談)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가 있는데요.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기담과 괴담의 차이, 양재천 괴담이 아니라 양재천 기담이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A :
기담과 괴담은 둘 다 신기하고 이상한 이야기이지만 말씀하신 대로 뉘앙스와 초점이 다른데요. 이 둘의 핵심적인 차이는 얼마나 무서운가, 즉 공포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기담이 기이한 이야기라면 괴담은 괴이한 이야기, 즉 괴상하고 무서운 이야기라고 할 수 있어요.
귀신, 유령, 저주, 도시 전설 등 사람들에게 불안감이나 공포를 주는 이야기는 모두 괴담에 속합니다. 예를 들어, 책상에서 공부하다 볼펜을 뒤로 던졌는데 소리가 나지 않았다거나 (뒤에 있던 귀신이 볼펜을 받았기 때문에),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엄마가 문득 나를 보며 “내가 아직도 네 엄마로 보이니?” 라고 했다거나, 화장실에서 나타난 귀신 손이 빨간 휴지를 줄까, 파란 휴지를 줄까 물었다거나... 오랫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온 괴담들은 진짜로 있을 법한, 누가 겪었다고 해도 믿을 법한 것들이 대부분이죠.
반면에 기담은 공포 그 자체보다 신비함, 기묘함, 으스스함을 포괄하는 개념인데요. 양재천 기담의 이야기들은 물론 무서운 작품도 있습니다만 서늘하고 아름다운, 쓸쓸하고 외로운 정서에 가깝습니다. 인간의 심연을 파고들다 보니 자연히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공포의 외피를 벗기면 마지막에는 슬픔이 남더라고요. 괴담이 아니고 기담인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Q :
이전에도 《양꼬치의 기쁨》이나 《부디 너희 세상에도》 같은 호러 단편집을 내셨는데요. 이전 작품집과 다른, 《양재천 기담》만의 차별점이 있다면요.
A :
이전 작품은 SF 호러, 초현실적 디스토피아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부디 너희 세상에도》에 수록된 <반짝이는 것들>은 후천적 심정지 증후군으로 인해 사람들이 좀비화된 세상을 그리고 있고요. 화면을 보고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화면 너머의 세상으로 가기 위해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화면 공포증>이나 의문의 목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서로를 죽여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목소리> 같은 작품은 코즈믹 호러적인 면을 갖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양재천 기담》은 저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제가 가 본 장소를 배경으로 쓰였다는 게 가장 큰 차별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예전에도 저는 호러 소설을 쓸 때 행복했던 기억에 악몽을 덧씌우는 방식을 활용해 왔어요. 호러라는 장르 자체가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누가 소재를 어떻게 얻었냐고 물어보면 경험담이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물어본 사람들은 당연히 당황하는데요. (네? 그게 작가님 경험담이라고요?) 양재천 기담의 이야기들은 지금까지보다 더 제 삶에 밀착되어 있어요. 작가 스스로도 경계가 모호할 정도니까요. 얼마 전에는 친구들과 샤오룽바오를 먹었는데 이게 혹시 품은 만두는 아닐까 의심스럽더라고요. (웃음)
Q :
남유하 작가는 호러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고 알고 있어요. 에세이 《호러, 이 좋은 걸 이제 알았다니》에서도 호러의 추억,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호러와의 인연을 이야기했는데요. 심신이 지칠 때 해부학 책을 읽는다는 것과 남유하 작가의 팬들에게는 익숙한 일화인 것 같아요. 해부학 책을 읽는 것이 어떻게 마음에 평온을 주는지 궁금합니다.
A :
해부학 책을 보면 인간은 결국 유기체, 뼈와 피와 근육으로 이뤄진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되잖아요. 사람은 유한한 존재이고, 우주적인 관점에서 볼 때 먼지 같은 존재다, 그러니 내가 지금 겪는 문제는 정말 정말 하찮은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또 하나의 이유를 말하자면요. 어릴 때부터 엄마가 편찮으셔서 병원에 따라다녔는데 병원에는 해부 모형 같은 것들이 있으니까, 엄마가 진료를 받는 동안 그것들은 유심히 봤던 기억이 있어요. 병원에 다녀오면 엄마가 아픈 게 나아지니까 해부학 모형이 저에게 긍정적인 인상을 심어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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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문 앞까지 다가와 서있는 듯한 날씨입니다. 아름다운 작품을 표지로 덧씌우는 시집선, 봄날의 시집으로 『단지 조금 이상한』 『Lo-fi』 강성은의 신작 시집이 출간되었습니다. 올해로 작품활동 20년이라고 하는 시인은 '악몽 같은 현실을 정직하게 응시하면서도 끝내 함께 있으려는 마음을 드러낸다'고 설명할 만한 시를 엮었습니다.
『Lo-fi』 (2018) 같은 제목을 보면('low fidelity'의 약자로, 저음질을 의미하며, 원래는 음질이 낮거나 잡음이 많은 음악을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서점에서 책을 판매하는 사람, 상인은 가장 먼저 이런걸 생각하게 됩니다. 검색에 약간의 불편함이 있을 것이다... 이 원활하지 못하다는 감각은 강성은의 시와 맞닿아 있고 그만큼 시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로파이 뮤직을 일부러 찾아듣는 분들도 요즘엔 꽤 늘어나고 있는 추세 같습니니다. 빠르지 않게, 굳이 고음질이 아니어도 되게, 강성은의 속도대로 그의 시를 읽어봅니다.

“이 소설은 여자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사랑을 둘러싼 여자들의 이야기요.”
베스트셀러 『독고솜에게 반하면』의 허진희 작가는 로맨스 미스터리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300쪽이 지나 당도한 작가의 말에는 ‘사랑’, 특히나 ‘여자들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주인공 오영은 스물아홉 모태솔로입니다. 그녀의 삶은 꽤 팍팍합니다. 엘리베이터 없는 4층짜리 빌라 꼭대기 층 원룸에서 고양이와 책에 둘러싸여 살고 있죠. 이 세상을 지키기 위해 연애를 가장 먼저 없앴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이모가 한 가지 제안을 해요. ‘출간 기념 파티에 모인 5명의 마음을 훔치면 이 저택을 줄게’ 한 번도 타인의 마음을 소유해 본 적 없는 오영은, 자신이 꾸려온 작은 세상을 지키기 위해 새로운 세계로 발을 내딛습니다.
처음엔 어설프고 우스꽝스럽기도 합니다. 타인의 마음을 뺏으려 거짓 호감을 연기하고, 그 연기는 금방 탄로가 나죠. ‘어머 왜 저래~’ 소설을 읽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이런 말이 나옵니다. 로맨스가 익어갈 무렵 저택은 미스터리의 어두운 길로 들어섭니다. 저택으로는 정체 모를 협박문이 날아오고, 마음을 사로 잡기 위해 애썼던 인물들은 각자의 본심을 숨기고 있었던 것을 알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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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여자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사랑을 둘러싼 여자들의 이야기요.”
베스트셀러 『독고솜에게 반하면』의 허진희 작가는 로맨스 미스터리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300쪽이 지나 당도한 작가의 말에는 ‘사랑’, 특히나 ‘여자들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주인공 오영은 스물아홉 모태솔로입니다. 그녀의 삶은 꽤 팍팍합니다. 엘리베이터 없는 4층짜리 빌라 꼭대기 층 원룸에서 고양이와 책에 둘러싸여 살고 있죠. 이 세상을 지키기 위해 연애를 가장 먼저 없앴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이모가 한 가지 제안을 해요. ‘출간 기념 파티에 모인 5명의 마음을 훔치면 이 저택을 줄게’ 한 번도 타인의 마음을 소유해 본 적 없는 오영은, 자신이 꾸려온 작은 세상을 지키기 위해 새로운 세계로 발을 내딛습니다.
처음엔 어설프고 우스꽝스럽기도 합니다. 타인의 마음을 뺏으려 거짓 호감을 연기하고, 그 연기는 금방 탄로가 나죠. ‘어머 왜 저래~’ 소설을 읽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이런 말이 나옵니다. 로맨스가 익어갈 무렵 저택은 미스터리의 어두운 길로 들어섭니다. 저택으로는 정체 모를 협박문이 날아오고, 마음을 사로 잡기 위해 애썼던 인물들은 각자의 본심을 숨기고 있었던 것을 알게 되죠.
책에 등장하는 사랑은 이성애로만 정의되지 않습니다. 자기애는 물론 동성애, 애증까지 다양한 사랑이 저택에 얽히고 있습니다. 그 어떤 사랑도 옳다, 그르다 표현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떨림들이 어떻게 우리를 깨우고, 그 떨림 속에서 무엇을 발견하게 되는지 질문합니다.
“본 적 없는 세상으로의 초대장” 『대도시의 사랑법』의 박상영 소설가가 이 책에 남긴 추천사입니다. 고풍스러운 저택을 배경으로 한 로맨스 미스터리는 인생에서 지켜내는 각자의 사랑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 매혹적이고 발칙한 소설로 한국 문학 독자분들을 초대합니다.
- 출판사 오리지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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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주의 작품은 강렬, 독특, 독보적입니다. 대중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경계를 흐리는 작업으로 질문을 던집니다. 한국소설을 쓰는 다른 작가들의 작품과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는 자기 자리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합니다. 2016년 <환상통>으로 문학동네 대학소설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작가가 드디어 첫 소설집을 엮었습니다. 크리미 러브와 크리미(널) 러브 사이의 낙차가 느껴지는 제목부터 작품세계의 풍모가 느껴집니다.
이희주 작가는 <사과와 링고>라는 작품으로 2025년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수상소감, 작품론, 인터뷰가 함께 실린 수상작품집과 함께 이 낯선 세계로 가는 문을 열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