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 검사를 거의 다 마쳤을 때 어떤 물건 하나가 블랑슈의 눈길을 붙잡았다. 하얀 실크 스카프로, 핏자국이 묻어 있었다. 그녀는 최면에 걸린 듯이 오랫동안 그 스카프를 손가락으로 쓸었다.“있을 수 없는 일이야.” 마침내 그녀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블랑슈는 아쉬워하며 아드리앙의 집에서 멀어졌다. 그곳은 그녀의 아늑한 고치이자 유일한 안식처였다. 백미러를 통해 마지막 시선을 던지는 순간 은은한 분노가 그녀를 사로잡았다. 자신을 고문하는 이를 향해 느낀 증오가 불러일으킨 분노였다. 단 하나뿐인 안식처에서 도망치도록 만든 자를 결코 용서치 않으리라.
“누구의 심사를 뒤틀리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단단히 앙심을 품었군. 내 생각엔, 아가씨, 이젠 큰물에서 놀아야 할 때인 것 같아!”
널 죽인다는 건 당치도 않았어. 널 죽이는 건 너무 쉽지. 너무 빠르고. 너무 친절해.
대상도서 1권 포함, 소설/시/희곡 분야 2만원 이상 구입 시 (한정수량, 마일리지 차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