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4일 : 59호
시인과 도끼는 침묵한다. 일격을 노리며.
1953년생 <트렁크> 김언희는 여전히 가장 뜨거운 지점에서 2024년에도 신작 시를 발표합니다. ‘임산부나 노약자, 심장이 약하거나 과민 체질인 사람’은 읽지 않기를 권하던 시 세계는 여전합니다. '고집이 세서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호랑말코>라는 시집의 제목부터 보법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키키 스미스의 <소화계>(1998)라는 미술 작품이 시를 읽는 동안 떠오릅니다. 혀부터 항문까지 이르는 장관 전체를 주철로 제작한 조각 작품인데요, 김언희의 시는 우리에게 내뱉을 입이 있고, 배설할 항문이 있음을 통렬하게 주지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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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생 <트렁크> 김언희는 여전히 가장 뜨거운 지점에서 2024년에도 신작 시를 발표합니다. ‘임산부나 노약자, 심장이 약하거나 과민 체질인 사람’은 읽지 않기를 권하던 시 세계는 여전합니다. '고집이 세서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호랑말코>라는 시집의 제목부터 보법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키키 스미스의 <소화계>(1998)라는 미술 작품이 시를 읽는 동안 떠오릅니다. 혀부터 항문까지 이르는 장관 전체를 주철로 제작한 조각 작품인데요, 김언희의 시는 우리에게 내뱉을 입이 있고, 배설할 항문이 있음을 통렬하게 주지시킵니다.
이 호랑말코들아, 외치고 싶은 세상에서 대신 외치는 시인의 존재는 차라리 속시원합니다. 차마 뱉지 못한 그 한 마디까지 돌진하는 것이 시가 하는 일이라면 김언희 시의 이 전위야말로 시적인 행동이 아닐까 합니다. “나의 천박이 나의 금박임을 잊지 않게 해주소서” 기도하고 웃어넘기는 기개가 있는 시입니다. 역시 김언희입니다.
- 알라딘 한국소설/시/희곡 MD 김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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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쪽 :
그녀는 코를 골았다 통렬하게 골았다 발랄과는 아주 멀게 발광과도 발작과도 다르게 그녀는 코를 골았다 비장으로도 골고 췌장으로도 골았다 의뭉하게 골고 천박하게 골고 표독하게 골았다
<그녀는 코를 골았다> 부분
Q :
노랗게 상한 나뭇잎, 쉬어버린 북엇국, 역류하는 하수구처럼 소설집 <홈 가드닝 블루>에서 묘사하는 아포칼립스의 감각은 실제적입니다. 최근 고민실 작가가 일상에서 재난이구나, 큰일이구나... 생각했던 순간이 있다면 언제일까요?
A :
얼마 전까지는 단풍이 곱게 들기 전에 떨어진 낙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척 더웠고 오래 따뜻한 해였지만, 시간이 지나면 가장 서늘한 해로 기억되리라는 말이 수시로 떠올랐거든요. 이번에 내린 눈이 은행나무 위로 쌓이는 걸 보면서 아름다운 재앙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낯선 만큼 신비로운 이 풍경이 평범해질 시기가 도래할까 싶어서요. 기후위기는 항상 날씨로서 체감하기 때문에 자주 떠올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빈도가 아닌 강도로 보자면 최근 일터에서 무례하고도 모욕적인 언행에 노출되어 한때 일상이 무너졌었고 아직 회복 중입니다. 그 사람에게 어떤 목적이 있었다기보다 가능한 범위 안에 마침 제가 있었기 때문에 겪게 된 일이라는 사실이 참담했습니다. 이미 만연한 원인이 격발 되어 결과로써 드러난 사고가 재난이기에, 앞으로 또 유사한 상황에 놓이리라는 예측은 단순한 불안이 아니라 재난의 여진으로 작동합니다. 그래서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즐거운 경험을 하고, 맛있는 걸 먹었습니다. 덕분에 카드값을 걱정하게 되었는데 그건 감당할 만한 일상이니 그럭저럭 괜찮습니다. 긴 시간선에서 강도는 점에 불과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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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노랗게 상한 나뭇잎, 쉬어버린 북엇국, 역류하는 하수구처럼 소설집 <홈 가드닝 블루>에서 묘사하는 아포칼립스의 감각은 실제적입니다. 최근 고민실 작가가 일상에서 재난이구나, 큰일이구나... 생각했던 순간이 있다면 언제일까요?
A :
얼마 전까지는 단풍이 곱게 들기 전에 떨어진 낙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척 더웠고 오래 따뜻한 해였지만, 시간이 지나면 가장 서늘한 해로 기억되리라는 말이 수시로 떠올랐거든요. 이번에 내린 눈이 은행나무 위로 쌓이는 걸 보면서 아름다운 재앙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낯선 만큼 신비로운 이 풍경이 평범해질 시기가 도래할까 싶어서요. 기후위기는 항상 날씨로서 체감하기 때문에 자주 떠올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빈도가 아닌 강도로 보자면 최근 일터에서 무례하고도 모욕적인 언행에 노출되어 한때 일상이 무너졌었고 아직 회복 중입니다. 그 사람에게 어떤 목적이 있었다기보다 가능한 범위 안에 마침 제가 있었기 때문에 겪게 된 일이라는 사실이 참담했습니다. 이미 만연한 원인이 격발 되어 결과로써 드러난 사고가 재난이기에, 앞으로 또 유사한 상황에 놓이리라는 예측은 단순한 불안이 아니라 재난의 여진으로 작동합니다. 그래서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즐거운 경험을 하고, 맛있는 걸 먹었습니다. 덕분에 카드값을 걱정하게 되었는데 그건 감당할 만한 일상이니 그럭저럭 괜찮습니다. 긴 시간선에서 강도는 점에 불과할 테니까요.
Q :
<폭염주의보> 속 남편이 신경증이 생긴 아내에 대한 진단으로 '집에만 있어서 그래' 같은 말을 하는 모습을 보며 <채식주의자>의 남편, <82년생 김지영>의 남편 캐릭터가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한국소설의 계보에서 유구한 캐릭터들인데요, 이런 캐릭터가 하는 말은 어떻게 창조-수집하시는지 궁금합니다.
A :
초반에는 잘 모르는 걸 쓰기보다 그나마 아는 걸 쓰고자 했습니다. 자료보다 간접체험을, 간접체험보다 직접체험을 우선시했던 것 같고요. <폭염주의보>에서 남편이 '더 쓸모 있는 걸 배워' 보라고 하거나 <홈 가드닝 블루>에서 리안이 '나는 집에서 놀았어?'라고 하는 것도 언젠가 들었던 말을 변형한 데에 지나지 않습니다. 창조-수집이라기보다 수집-변형에 가깝겠네요. 쉽게 눈에 띄기에 냉큼 손에 쥘 수 있는 돌멩이 같은 물성의 언행이 그 사람을 꾸리기도 하니까요. 유구한 캐릭터라는 건 그만큼 주위에서 자주 접하는 유형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은데요. 권장하지 않음에도 끈질기게 반복되고 흔하게 발견된다면 그건 이미 현상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현상은 소멸되기 전까지 말하여지겠죠. 거기에 그것이 있다고.
Q :
<골든컵>의 결말부, 주인공이 눈 내리는 바이칼 호를 '하얀 설원이 사소한 일상처럼 펼쳐져 있었다'고 바라보는 장면이 좋았습니다. 이렇듯 이 겨울 보고 싶은 풍경, 독자에게 보기를 권하고 싶은 풍경이 있다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A :
여행을 자주 다니는 편은 아닙니다. 여건적인 이유도 있지만, 성향적인 이유도 큽니다. 마침 첫눈이 오는 날 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하얗게 눈이 쌓이는 지붕이 보이는 방에서 허브차를 마실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감을 느꼈습니다. 사진을 찍어 눈이 쌓이지 않는 지역에 거주하는 부모님께 보내면서 답장을 기대하지는 않았습니다. 다음에 뵈면 대화창에서 하트 다는 법을 알려드려야겠다고 생각했죠. 첫눈이 폭설이 되기 전까지의 감상이었습니다. 비록 빠르게 휘발될지라도 찰나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풍경을 자주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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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출간 후 절판된 전설적인 소설이 2024년 6월 재출간되었습니다. '멀쩡한 항문을 두고 대통령이 입으로 똥을 싸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의 항문이 말을 하기 시작하는 파격적인 소설인데요. 구 dcdc, 현 홍지운 작가는 작가의 말에 이렇게 소회를 적고 있습니다.
네? 이 소설을 다시 내자고요? 지금 세상에? 몇 년 전이었더라. 출간 제안을 받고 아마 이렇게 대답했던 것 같다. 결국 나오고 말았다. (....) 누구를 모델로 썼는지도 뭐가 중요하겠는가. 다들 자신이 싫어하는 정치인에게 대입해서 볼 텐데 말이다.
이 소설을 재출간한 오러 출판사는 호러 전문 출판사인데요. 여전히 이 소설이 읽히는 시대가 공포일지도 모른다는 소회를 출간 당시 덧붙이셨던 기억도 떠오릅니다. 어쩐지 이 소설이 자꾸 떠오르는 밤이었습니다.
비문학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지만, 실은 한국문학/세계문학을 끼고 사느라 잠 못 드는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 시절 각별히 마음에 품었던 소설 속 주인공들은 늘 바빴어요. 깊은 고뇌에 빠졌다가, 세상과 갈등하고 투쟁했다가, 멀리 모험도 떠났다가, 끝내 위대하고 용감해졌지요. 혹은 이미 위대하고 용감했거나. 그리고 그들은 모두 남자였습니다. 그렇다면 여자는 어떤 역할을 부여받았나 생각해봅니다. 슬픔에 젖어 불행한 채였지, 이야기의 진정한 주인이 될 수는 없더군요. 먼 여정을 떠날 수도 없었고, 성장에 필요한 성찰도 대립도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욕망과 철학과 주장은 삶의 한 방식인데도 유난하고 멋모르고 바로잡아야 할 것으로 여겨졌어요. 그런데 정말 그러하였을까요?
여기, 실패와 고투와 일어섬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 속 등장인물은 ‘여자 주인공들’이에요. 한국 현대소설을 연구하는 오자은 교수님의 첫 번째 문학비평집입니다. 기발표한 논문을 바탕으로, 한국 소설을 사랑하는 대중 독자라면 누구나 손에 들고 밤새 팔랑팔랑 책장을 넘길 수 있도록 고쳐 쓰고 새로 쓴 결과물입니다. 책은 1970년대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지난 50년간 한국 소설이 여성을 어떻게 상상해왔는지 말해요. 소설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한국 여성의 삶과 마음, 운명이 걸어온 역사를 살핍니다. 얼른 함께 읽고 싶어서, 기분 좋게 두근거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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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학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지만, 실은 한국문학/세계문학을 끼고 사느라 잠 못 드는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 시절 각별히 마음에 품었던 소설 속 주인공들은 늘 바빴어요. 깊은 고뇌에 빠졌다가, 세상과 갈등하고 투쟁했다가, 멀리 모험도 떠났다가, 끝내 위대하고 용감해졌지요. 혹은 이미 위대하고 용감했거나. 그리고 그들은 모두 남자였습니다. 그렇다면 여자는 어떤 역할을 부여받았나 생각해봅니다. 슬픔에 젖어 불행한 채였지, 이야기의 진정한 주인이 될 수는 없더군요. 먼 여정을 떠날 수도 없었고, 성장에 필요한 성찰도 대립도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욕망과 철학과 주장은 삶의 한 방식인데도 유난하고 멋모르고 바로잡아야 할 것으로 여겨졌어요. 그런데 정말 그러하였을까요?
여기, 실패와 고투와 일어섬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 속 등장인물은 ‘여자 주인공들’이에요. 한국 현대소설을 연구하는 오자은 교수님의 첫 번째 문학비평집입니다. 기발표한 논문을 바탕으로, 한국 소설을 사랑하는 대중 독자라면 누구나 손에 들고 밤새 팔랑팔랑 책장을 넘길 수 있도록 고쳐 쓰고 새로 쓴 결과물입니다. 책은 1970년대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지난 50년간 한국 소설이 여성을 어떻게 상상해왔는지 말해요. 소설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한국 여성의 삶과 마음, 운명이 걸어온 역사를 살핍니다. 얼른 함께 읽고 싶어서, 기분 좋게 두근거리네요...
박완서에서 최은영에 이르기까지, 책은 상당히 다양한 원고를 다루고 그만큼 다양한 여자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지면을 가로지르는 신중하게 면밀하면서도 뜨끈한 온기로 살아 숨 쉬는 비평을 따라가다 보면, 얼핏 없는 듯 보였지만 실은 영화롭게 자기의 자리를 지키던 ‘목소리’들의 존재를 의식하고 어루만지는 읽기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의 목소리를 포개게 됩니다. 이경, 수연, 이화, 희원, 희재, 진희, 석화, 지연……. 그리고 이어질 우리의 이름들 또한 생각하게 됩니다. 불같이 반짝이고 뭉근히 타오르는 우리의 이야기, 계보, 어떤 연결에 관한 이야기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 생각의힘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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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일 지난 밤의 소동으로 잠을 설친 분도 많을 듯합니다. 저도 잠 문제가 있어 잠 잘 자는 방법이라면 여러 가지를 알고 있습니다. (명상, ASMR, 해파리가 된 것처럼 시뮬레이션 하기 등등) 잠 못 드는 한국소설 애독자는 책 속에서 잠을 찾기도 합니다. 잠을 소재로 한 두 권의 소설을 소개합니다.
언제든 잘 수 있는 것이 자랑인 오슬로가 조수 부엉이 자자와 꿀잠 선물 가게를 운영합니다. 불면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안고 가게에 도착한 손님은 잠을 이룰 수 없는 이유를 털어놓다 잠에 빠져듭니다. '잠' 하면 달러구트 꿈 백화점을 빼놓을 수 없는데요. 번역 소개되어 세계인과 함께 읽은 부수가 무려 200만 부라고 합니다. 미국판 표지를 기반으로 200만 부 기념 합본호 아메리칸드림 에디션이 새로 출간되었습니다. 신비롭게 인쇄된 책배가 무척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