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9일 : 42호
미래를 약속하는 젊은 소설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읽는 열다섯 번째 봄입니다. 이 작품집은 제겐 다가올 소설에 대한 프리퀄로 읽힙니다. 맡김차림으로 잘 나오는 가게에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다음, 입맛에 맞는 소설을 잊지 않고 기억해두었다가 다음엔 단품으로, 앨범 단위로, 풀 렝스로 경험하면 또 얼마나 좋을까 미래를 기대하게 하는 소설집이라고 할까요!
2024년 수상작품집에서 유독 눈에 들어온 건 잘못하는 사람들, 실수하는 사람들, 미움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공현진의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의 희주와 주호 같은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이 사람들은 성인 기초 수영반의 꼴찌, 뒷 사람이 따라오는 걸 눈치채지 못해 자리를 비워주지 않아 "눈치 없다는 소리 많이 듣죠?"(79쪽)라는 말을 듣는 사람들입니다.
2023년 여름 이 소설을 읽은 후, 느리게 25미터 수영 레인을 오가는 사람들의 스트로크에 담긴 품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소설을 읽고 트인 시야에 비로소 주호 같은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제가 다니는 평일 저녁 화목 수영 레인의 번잡스러움 속에서 자기만의 수도를 하고 있는 사람들, 저는 이 사람들의 그
'눈치없음'을 좋아하게 됐습니다. 저 역시 몰라서, 일부러 못비켜주는 채로도 너무 자책하지 않고 망신스러우면 망신스러운대로, 욕 먹으면 먹는 대로 오해하면 하는대로 서있고 싶습니다.
+ 더 보기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읽는 열다섯 번째 봄입니다. 이 작품집은 제겐 다가올 소설에 대한 프리퀄로 읽힙니다. 맡김차림으로 잘 나오는 가게에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다음, 입맛에 맞는 소설을 잊지 않고 기억해두었다가 다음엔 단품으로, 앨범 단위로, 풀 렝스로 경험하면 또 얼마나 좋을까 미래를 기대하게 하는 소설집이라고 할까요!
2024년 수상작품집에서 유독 눈에 들어온 건 잘못하는 사람들, 실수하는 사람들, 미움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공현진의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의 희주와 주호 같은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이 사람들은 성인 기초 수영반의 꼴찌, 뒷 사람이 따라오는 걸 눈치채지 못해 자리를 비워주지 않아 "눈치 없다는 소리 많이 듣죠?"(79쪽)라는 말을 듣는 사람들입니다.
2023년 여름 이 소설을 읽은 후, 느리게 25미터 수영 레인을 오가는 사람들의 스트로크에 담긴 품위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소설을 읽고 트인 시야에 비로소 주호 같은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제가 다니는 평일 저녁 화목 수영 레인의 번잡스러움 속에서 자기만의 수도를 하고 있는 사람들, 저는 이 사람들의 그 '눈치없음'을 좋아하게 됐습니다. 저 역시 몰라서, 일부러 못비켜주는 채로도 너무 자책하지 않고 망신스러우면 망신스러운대로, 욕 먹으면 먹는 대로 오해하면 하는대로 서있고 싶습니다.
김남숙의 소설 <파주>에서 '나'는 군대에서 나의 남자친구 정호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찾아온 '현철'을 알게됩니다. "비열하고 역겨워도, 그래도 보상받고 싶다는 말."(185쪽)을 하며 현철은 자신의 고통에 대한 대가를 요구합니다. 복수를 하고 나면 마음 편하고 무결한 피해자 자리에 설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철이 굳이 선 자리는 지금 이 자리입니다.
내일은 선거일이라 2주에 한번, 수요일에 발송하는 편지를 하루 먼저 보냅니다. 하라는 대로 다 하고 줄 서라는 곳에 다 서도 살기 팍팍한 세상이라 이 인물들의 모남이 유독 눈에 들어오는지 모르겠습니다. 모난 사람도 모난 대로 그럭저럭 사는 세상을 꿈꾸며 저도 내일은 투표장에 서있을 것입니다.
- 알라딘 한국소설/시/희곡 MD 김효선
- 접기
214쪽 :
다시 서일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졌으니까. 그냥 호구 잡힌 채로, 목줄 매인 채로 살고 싶어졌으니까.
(<반려빚> 중)
Q :
봄은 젊은 작가상의 계절입니다. 김멜라, 공현진, 김기태, 김남숙, 김지연, 성해나, 전지영 작가님의 올 봄 계획 및 차기작 계획이 궁금합니다.
김멜라 :
아마도 올봄에는 장편소설을 쓰며 끙끙 앓을 듯합니다. 봄부터 여름 내내 그리고 어쩌면 늦가을까지 그렇게 끙끙끙 앓고 있을 듯한데요. 하루의 일을 마치면 밖으로 나가 농구와 캐치볼을 하며 소설을 완전히 잊어버리는 시간도 빼놓지 않으려고 합니다. 아마도 여름 무더위가 한창일 무렵에는 지난해 발표했던 중편소설 『환희의 책』이 출간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저의 계획은 ‘아마도’와 ‘끙끙’ 사이에서 뒤척이다가 저녁이 되면 고민을 툴툴 털어버리고 공을 던지며 뛰어노는 것입니다. ‘환희’가 찾아오기 위해선 글쓰기와 함께 충분히 앓으며 괴로워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그 시간을 기쁘게 통과하고 싶습니다.
+ 더 보기
Q :
봄은 젊은 작가상의 계절입니다. 김멜라, 공현진, 김기태, 김남숙, 김지연, 성해나, 전지영 작가님의 올 봄 계획 및 차기작 계획이 궁금합니다.
김멜라 :
아마도 올봄에는 장편소설을 쓰며 끙끙 앓을 듯합니다. 봄부터 여름 내내 그리고 어쩌면 늦가을까지 그렇게 끙끙끙 앓고 있을 듯한데요. 하루의 일을 마치면 밖으로 나가 농구와 캐치볼을 하며 소설을 완전히 잊어버리는 시간도 빼놓지 않으려고 합니다. 아마도 여름 무더위가 한창일 무렵에는 지난해 발표했던 중편소설 『환희의 책』이 출간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저의 계획은 ‘아마도’와 ‘끙끙’ 사이에서 뒤척이다가 저녁이 되면 고민을 툴툴 털어버리고 공을 던지며 뛰어노는 것입니다. ‘환희’가 찾아오기 위해선 글쓰기와 함께 충분히 앓으며 괴로워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그 시간을 기쁘게 통과하고 싶습니다.
공현진 :
봄, 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기분을 주는 계절이지요. 저는 최근 조금 긴 여행을 다녀왔어요. 쉼없이 여러 일을 해왔던 터라 잠시 내려놓고, 여행지에서 기필코 듬뿍 글을 써야지 생각했어요. 계획처럼 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일상으로 돌아왔고, 시작을 다시 할 수 있다고 믿으며(우기며),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우연한 관계에서 촉발될 수 있는 용기에 대해 생각하며 단편소설을 쓰고 있어요. 여름에 발표할 예정입니다. 우선 올봄의 계획은 이 소설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고요. 대청소도 하고 싶어요.
김기태 :
5월 초에 첫 소설집이 출간될 예정입니다. 지금 막바지 교정중인데요. 출간 전후로 할일을 하다보면 봄이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홉 작품을 잘 갈무리하려고 해요. 모아보니 따로 읽을 때와는 또다른 느낌이더라고요. 『2024 제1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수록된 「보편 교양」의 앞과 뒤에서 의미를 더해주는 소설들도 담았습니다. 저 자신에게는 3부작 비슷한 느낌의 기획이었거든요. 제 소설집이 알라딘 회원 여러분의 손에 닿기를 기대하겠습니다.
김남숙 :
봄이 되면 유독 소설을 읽는 일과 가깝게 지내는 것 같습니다. 며칠 전에는 가와카미 히로미의 『뱀을 밟다』를 읽었고 그 전에는 박완서와 최은미를 번갈아 읽었습니다. 완독을 할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습니다. 어째서인지 봄이면 항상 읽지도 않는 책들을 쌓아두었다가 그 순서를 바꾸기도 하며 뒤숭숭한 마음을 달래기도 합니다. 책이 마치 누름돌인 것처럼 말이죠. 봄이면 나이가 훨씬 어려지는 것만 같습니다. 평소보다 열 살 혹은 그 이상. 다음 작품은 저보다 어린 인물들을 다루고자 합니다. 봄에 그 시기를 짚고 여름으로 넘어가 다시 열 살쯤 더 늙어보려고 합니다.
김지연 :
봄에는 춥다는 핑계로 소홀했던 운동을 다시 시작하려고 합니다. 봄이니만큼 날이 좋은 날에는 햇살을 맞으며 많이 걷고 또 몸을 움직여서 늦어도 제발 꼭 12시 전에는 잠드는 사람이 되자를 최우선의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휴대폰과 컴퓨터 모니터 보는 시간을 좀 줄이고 밖으로 나가 아주 멀리 보면서 눈 운동도 좀 하자 하는 생각도 하고 있고요. 하고 싶은 일들이 아주 많은데 그걸 오래도록 하려면 역시 체력이 중요한 법이니까요. 올 하반기에는 저의 두번째 소설집이 나올 예정이에요. 거기에 실릴 소설들을 조금씩 손보며 내가 이런 것들을 썼었구나,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 앞으로 쓸 소설도 지금껏 써온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데 모든 걸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성해나 :
날이 풀리면 조깅을 시작하려 러닝화를 샀습니다. 3월에 두 번 정도 근린공원에서 슬렁슬렁 뛰었는데, 굳었던 몸이 개운하게 풀리는 감각도 좋고, 근심도 조금은 사라지더라구요. 단발로 그치지 않고 습관으로 배길 바라며 봄부터는 더 부지런히 뛰어볼 계획입니다. 저는 다섯 명의 친구들과 ‘애매’라는 창작 동인을 꽤 오래 지속해오고 있어요. 6월에는 저희의 첫 앤솔로지가 발간되는데요. 차기작은 이 앤솔로지에 실릴 것 같습니다. 애매의 초성인 ‘ㅇㅁ’을 키워드로 각각 양말, 의문, 입맛 등을 소설에 녹여낼 예정이에요. 저는 ‘야만’을 주제로 건축에 관한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건축에 늘 흥미를 가지고 있는 터라 즐겁게 쓰고 있긴 한데, 어떻게 끝을 맺을지 아직은 알 수 없네요.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꾸리는 단행본이기에 더 마음이 가요. 많이 읽어주시고 사랑해주셔요.
전지영 :
먼저 올 하반기에 출간 예정인 첫 소설집을 잘 준비하는 게 가장 큰 목표입니다. 요즘은 등단작을 포함해서 지금까지 발표한 작품을 하나씩 살펴보는 중입니다. 발표할 당시에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아쉬운 점이 많아요.
무엇보다 벚꽃이 지기 전에는 마음 한구석에 짐처럼 껴안고 있던 장편소설 초고와 마주할 계획입니다. 어느 때보다 아픈 마음으로 쓴 글이라서 원고를 마주하기 두려운 마음이 큽니다. 그러나 반드시 해야 할 이야기라면 언젠가는 완성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용기를 내보려고 합니다.
- 접기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한국의 작가들이 세월호참사를 기억하고 추모하고자 지난 10년간 치러온 ‘304낭독회’의 작품선집이 온다프레스에서 출간되었습니다. 304낭독회의 이름에서 ‘304’는 세월호참사의 희생자 304명을 뜻한다고 합니다.
매월 한 차례씩 열리는 이 행사가 304회를 채우려면 총 25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간 치러진 행사에서 총 1,196명이 1,223편의 작품(노래, 연주 및 공연 53회 포함)을 낭독, 발표했습니다. 이 마음 중 68명의 작가가 낭독한 작품 중 78편을 추려 담았습니다. '희망은 지난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만들어진다'는 목소리와 함께 열 번째 4월을 보낼까 합니다.
혼밥 좋아하세요? 저는 아주 좋아합니다...
점심을 가볍게 호로록 마시고 산책하고 짧은 소설 한 편을 읽는 것도 좋아합니다. 오늘은 나무에서 꽃잎이 흩날려 읽고 있던 책에 꽃잎이 떨어졌는데요, 정말 아름답더라고요....
계절감이 두드러지는 소설집, 장은진의 <가벼운 점심>이 출간되었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풍경과 이야기의 산뜻함이 잘 어우러집니다. “단단하고 짙은 인간의 외로움이 어떻게 부드러운 봄의 시간에 스미는지”를 감각하며 읽을 수 있는 세공이 잘 된 소설집입니다. 짧은 점심 시간엔 시도 좋습니다. <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시집>과 <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산문>도 함께 소개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