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22일 : 32호
쓰면 만나고 만나면 비로소 헤어질 수 있습니다
방학 숙제로 한달 일기를 하루에 몰아 쓰던 꼬마 시절 이후 저는 일기를 쓰지 않습니다. 시옷이라는 이름으로 일기쓰기 교실에 등록하게 된, 이주혜의 소설 <계절은 짧고 기억은 영영>의 '나'도 어느 순간 일기에서 멀어진 사람이었습니다. 남편과 별거하며 딸과도 멀어지게 된 후, 정신과 치료를 받던 중 일기쓰기가 도움이 될 거라는 얘기를 듣고 '시옷'은 한 글방의 일기쓰기교실을 발견합니다. 일기를 쓰기 위해 구태여 배우는 사람들의 나른한 분위기에 젖어들며 시옷은 무너진 자리의 외면하던 기억과 마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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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 숙제로 한달 일기를 하루에 몰아 쓰던 꼬마 시절 이후 저는 일기를 쓰지 않습니다. 시옷이라는 이름으로 일기쓰기 교실에 등록하게 된, 이주혜의 소설 <계절은 짧고 기억은 영영>의 '나'도 어느 순간 일기에서 멀어진 사람이었습니다. 남편과 별거하며 딸과도 멀어지게 된 후, 정신과 치료를 받던 중 일기쓰기가 도움이 될 거라는 얘기를 듣고 '시옷'은 한 글방의 일기쓰기교실을 발견합니다. 일기를 쓰기 위해 구태여 배우는 사람들의 나른한 분위기에 젖어들며 시옷은 무너진 자리의 외면하던 기억과 마주합니다.
1980년 군인이 침입하던 도시의 언저리에서 소년도 소녀도 아닌 몸으로 시옷은 세계의 폭력을 경험했습니다. 학살자의 죽음을 두고 '사과도 않고 죽어버렸어' 욕을 섞어 내뱉는 나의 말을 들은 많은 이는 내 분노의 맥락없음에 당황해합니다. 쌓인 분노는 해명을 요구합니다.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는 분노와 슬픔을 해석하기 위해 이제 시옷은 연필을 쥐고 일기를 씁니다. 쓰기가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요? 비비언 고닉, 에이드리언 리치의 책을 우리말로 옮기기도 한, 쓰고 옮기는 사람 이주혜의 소설을 읽으며 새해엔 일기를 써볼까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이제 나는 살았나? 살아남았나?"(77쪽) 비로소 잊고 싶은 기억과 헤어지고 이런 문장을 옮겨적을 날을 바라보면서요.
- 알라딘 한국소설/시/희곡 MD 김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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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쪽 : 일기를 쓴다는 것은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행위입니다. 객관화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방법이랄까요. 자신과의 거리가 0일 때 우리는 그것을 문제적이라고 합니다.
Q :
이소 평론가의 해설 첫 문장부터 '부동산'이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신작 <축복을 비는 마음>은 각자가 살던 집이 떠오르는 소설이라 김혜진 작가의 기억 속 '집'에 대한 이야기를 여쭙고 싶습니다.
A :
집이 외면과 내면을 가지고 있다면, 외면은 누구나 쉽게 볼 수 있지만 내면은 알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집과 그 집에 사는 사람만이 공유하는 시간과 순간이 있다고 생각하고요. 누가, 어떻게, 얼마나 사느냐에 따라 집의 공기와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닐까요. 당시에는 미처 다 알지 못했지만 돌이켜보면 그동안 제가 거쳐온 집들이 저에게 준 기쁘고 환한 순간들이 많았다고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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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이소 평론가의 해설 첫 문장부터 '부동산'이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신작 <축복을 비는 마음>은 각자가 살던 집이 떠오르는 소설이라 김혜진 작가의 기억 속 '집'에 대한 이야기를 여쭙고 싶습니다.
A :
집이 외면과 내면을 가지고 있다면, 외면은 누구나 쉽게 볼 수 있지만 내면은 알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집과 그 집에 사는 사람만이 공유하는 시간과 순간이 있다고 생각하고요. 누가, 어떻게, 얼마나 사느냐에 따라 집의 공기와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닐까요. 당시에는 미처 다 알지 못했지만 돌이켜보면 그동안 제가 거쳐온 집들이 저에게 준 기쁘고 환한 순간들이 많았다고 느껴집니다.
Q :
수록작 <축복을 비는 마음>의 인선은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믿었'(246쪽)던 사람입니다. 직설적으로 원하는 바를 말하는 경옥과 일을 한 후 '필사적으로 피해 다니던 어떤 생각들'(249쪽)을 마주치게 되는데요, 김혜진의 소설을 읽는 건 이렇게 피해다닐 수도 있던 생각과 마주치는 경험인 것 같습니다.
A :
소설은 질문을 하는 행위이고, 나름대로의 답을 구하는 과정 같아요. 어떤 발견이라고 할 수도 있을 텐데요. 그것은 필연적으로 다른 존재를 통해 온다고 생각해요. 타인과의 마주침이 내 안의 뭔가를 일깨우는 것이죠. 소설을 쓸 때, 또 읽을 때도 그런 순간들이 저에게 늘 감동을 줍니다.
Q :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의 일을 하고, 각자의 사랑을 하기도 버거운 나날입니다. 축복을 비는 마음으로 김혜진의 소설을 사랑하는 독자에게 인사 부탁드립니다.
A :
요즘은 새삼 독서라는 것이 공력이 참 많이 드는 행위라는 생각을 합니다. 한자리에 앉아서 활자에 집중하고, 순서대로 페이지를 넘기며 의미를 쌓아 올려야 하니까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동시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행위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독자들이 더 귀하고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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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8일 부산에서 첫눈이 관측되었다고 합니다. 산자락을 끼고 좁고 가파르게 난 도로는 눈에 대한 대비가 거의 되어 있지 않아 눈이 조금만 쌓여도 통행을 막는다고 합니다. 그 드물고 귀하다는 부산의 눈을 생각하면 김금희의 소설 <크리스마스 타일>이 떠오릅니다.
피디인 지민은 음식 사진으로 가게를 맞히는 '맛집 알파고'의 진실을 취재하기 위해 부산으로 갔습니다. '맛집 알파고'이자 전 남자친구의 현우를 취재하는 동안 하필 날은 크리스마스, 장소는 눈이 오는 부산이라 이 희박한 행운이 지민의 마음을 뭉근하게 녹입니다. 조금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회색 바다가 보이는 영도의 카페에서 뱅쇼를 마시며 나란히 앉아있는 것 같은 소설을 읽으며 올해의 남은 날을 꼽아봅니다. 모두의 겨울에 평화가 있기를, 김금희 작가의 말을 덧붙여 봅니다. "우리는 무엇도 잃을 필요가 없다, 우리가 그것을 잃지 않겠다고 결정한다면."
화성이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화성침공〉의 대두 외계인이나 〈마션〉에서 감자 먹는 맷 데이먼일까요? 화성으로 건너가는 인원을 선발하는 스페이스 X 프로젝트에 지원한 사람이 이미 무척 많다고들 하죠. 지구를 떠나 붉은 사막과 푸른 노을이 있는 드넓은 평원을 내다보며 커피를 마시는 당신의 새로운 집을 상상해보실 수도 있나요?
“‘배명훈 SF’라는 말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정소연 소설가), “자신이 무엇을 쓰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SF평론가 심완선), SF 소설가 배명훈이 국내 최초로 화성 이주를 주제로 삼아 연작소설집 『화성과 나』를 선보입니다. 지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한 소설로 언제나 실패 없는 독서 경험을 선물해온 작가 ‘배명훈’의 신작이지만, 이번 소설집은 특별한 비하인드 스토리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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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이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화성침공〉의 대두 외계인이나 〈마션〉에서 감자 먹는 맷 데이먼일까요? 화성으로 건너가는 인원을 선발하는 스페이스 X 프로젝트에 지원한 사람이 이미 무척 많다고들 하죠. 지구를 떠나 붉은 사막과 푸른 노을이 있는 드넓은 평원을 내다보며 커피를 마시는 당신의 새로운 집을 상상해보실 수도 있나요?
“‘배명훈 SF’라는 말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정소연 소설가), “자신이 무엇을 쓰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SF평론가 심완선), SF 소설가 배명훈이 국내 최초로 화성 이주를 주제로 삼아 연작소설집 『화성과 나』를 선보입니다. 지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한 소설로 언제나 실패 없는 독서 경험을 선물해온 작가 ‘배명훈’의 신작이지만, 이번 소설집은 특별한 비하인드 스토리도 가지고 있습니다.
배명훈 작가는 2020년부터 2년간 외교부의 의뢰로 화성에 새로운 문명이 들어선다면 어떤 통치제도를 갖게 될지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그 뒤 학문을 넘어 문학만이 던질 수 있는 질문에 도달하고자 이 작품들을 집필하게 되었는데요, 연구 보고서에서 다룰 수 없던 인간의 삶과 사랑, 욕망이 다채롭게 드러나며 화성에서의 내일을 그려보게 됩니다. 깻잎 대신 셀러리를 들여온다던 온실 책임자를 우발적으로 살인한 사건, 지구-화성 간 통신 시차로 어려움에 빠지는 원거리 연애, 어느 날 대책 없이 빠져들게 된 간장게장을 향한 향수 등 배명훈 특유의 지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한 설정들이 돋보이는 이야기들과 만나보세요!
- 래빗홀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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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원의 글에 연재 당시 붙었던 이상의 삽화가 함께 실린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이 출간되었습니다. 아래와 같은 문장은 어찌나 현대적인지 꼭 2020년대의 우리의 삶 같습니다.
오후 두 시, 일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그곳 등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고, 담배를 태우고, 이야기를 하고, 또 레코드를 들었다. 그들은 거의 다 젊은이들이었고, 그리고 그 젊은이들은 그 젊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자기네들은 인생에 피로한 것같이 느꼈다. (57쪽)
이상과 구보를 추리소설의 문법으로 해석한 <경성 탐정 이상>도 구보 씨의 이야기에 함께 놓아봅니다. 시인 이상과 소설가 구보가 시가 오가는 거리에서 사건을 해결하는데, 추리소설의 문법을 문학사의 인물에게 입힌 설정이 흥미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