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3일 : 18호
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필요하지요
201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앨리스 먼로는 '우리 시대 단편소설의 거장'이라는 평을 얻었습니다. 체호프 작품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가슴이 찢어지는 정확한 장면으로 삶이 무엇인지 곱씹게 하는 날렵한 소설. 꼭 그런 기가 막힌 장면을 그리는, '단편소설의 거장'이 돌아왔습니다. 권여선의 소설집이 이 계절에 어울리는 잘 익은 초록빛으로 초판 1쇄 입고되어 차근차근 배송길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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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앨리스 먼로는 '우리 시대 단편소설의 거장'이라는 평을 얻었습니다. 체호프 작품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가슴이 찢어지는 정확한 장면으로 삶이 무엇인지 곱씹게 하는 날렵한 소설. 꼭 그런 기가 막힌 장면을 그리는, '단편소설의 거장'이 돌아왔습니다. 권여선의 소설집이 이 계절에 어울리는 잘 익은 초록빛으로 초판 1쇄 입고되어 차근차근 배송길에 올랐습니다.
좋은 단편소설을 읽으면 종종 그 장면의 냄새며 표정이 떠올라 넋을 놓고 그 사람은 어떻게 지낼까,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안녕 주정뱅이>에서 500밀리 캔맥주와 소주 한 병을 사 맥주를 홀짝 마시고 빈 자리에 소주를 부어 '소맥'을 말던 영경. <아직 멀었다는 말>에서 '모든 것은 사라지지만 점멸하는 동안은 살아 있다. 지금은 그 모호한 뜻만으로 충분하다.'라고 다짐하며 전갱이를 나누어 먹던 연인들. 이번 소설집을 읽을 때도 꼭 그렇게 어떤 장면을 떠올리게 될 듯 합니다. 김승옥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작품, <실버들 천만사>의 느슨하게 연결된 모녀는 서로를 '반희씨', '채운씨'라고 부르며 강원도의 팬션으로 떠나 그곳의 흙내를 함께 맡습니다.
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시절에 맞는 각각의 힘이 필요한 것 같다고 권여선 작가는 독자에게 보내는 손편지를 적었습니다. 여름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가꾸는 힘이 필요하다는 작가의 말처럼, 지금은 무릅쓰고 견뎌볼 때일 듯합니다. 이 계절에 필요한 정확한 문장과 함께 힘을 내어 계절을 직면하는 나날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 알라딘 한국소설/시/희곡 MD 김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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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쪽 :
우리는 어떻게 이렇게 됐을까?
우리는 어떻게든 이렇게 됐어.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됐을까?
우리는 언제부터든 이렇게 됐어. 이유가 뭐든 과정이 어떻든 시기가 언제든 우리는 이렇게 됐어. 삼십 년 동안 갖은 수를 써서 이렇게 되었어. 뭐 어쩔 건데? 이미 이렇게 되었는데.
Q :
신작 <별일은 없고요?>를 비롯해 이주란 작가 소설을 읽으면 속이 편한 음식을 먹은 기분이 듭니다. 이 소설을 읽은 독자에게 어떤 음식을 권할 수 있을까요?
A :
골똘히 대답을 떠올리다보니, 이번 책에 ‘차’가 많이 등장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레몬 생강차, 페퍼민트차, 생강차, 보리차, 당근즙(액체니까?)인데요, 의도한 것은 아닌데 결과적으로 인물들이 위안이 받는 순간마다 등장한 느낌입니다. 또 <여름밤>에서 두 사람의 사랑이 시작되던 순간에 먹었던 소시지 파 전골, 기약 없는 기다림에서 비롯된 허전한 마음을 채워주는 친구들과 함께 먹는 오이와 미역을 넣은 된장 냉국을 권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어른>에서 한 할머니가 슈퍼에서 식사 대신 드시는 ‘자유시간’, 또 <파주에 있는>에서 그날 이후 처음으로 혼자서 한 그릇의 음식을 비우게 되는 비 오는 날의 시장 멸치국수, 실제로 저는 아직 먹어보지 못했습니다만 마지막 장면에서 두 사람이 먹는 음식인 동충하초가 들어간 백숙도 권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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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신작 <별일은 없고요?>를 비롯해 이주란 작가 소설을 읽으면 속이 편한 음식을 먹은 기분이 듭니다. 이 소설을 읽은 독자에게 어떤 음식을 권할 수 있을까요?
A :
골똘히 대답을 떠올리다보니, 이번 책에 ‘차’가 많이 등장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레몬 생강차, 페퍼민트차, 생강차, 보리차, 당근즙(액체니까?)인데요, 의도한 것은 아닌데 결과적으로 인물들이 위안이 받는 순간마다 등장한 느낌입니다. 또 <여름밤>에서 두 사람의 사랑이 시작되던 순간에 먹었던 소시지 파 전골, 기약 없는 기다림에서 비롯된 허전한 마음을 채워주는 친구들과 함께 먹는 오이와 미역을 넣은 된장 냉국을 권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어른>에서 한 할머니가 슈퍼에서 식사 대신 드시는 ‘자유시간’, 또 <파주에 있는>에서 그날 이후 처음으로 혼자서 한 그릇의 음식을 비우게 되는 비 오는 날의 시장 멸치국수, 실제로 저는 아직 먹어보지 못했습니다만 마지막 장면에서 두 사람이 먹는 음식인 동충하초가 들어간 백숙도 권해보고 싶습니다.
Q :
읽고 나면 산책이 하고 싶어지는 소설이기도 합니다. 이 소설을 읽고 거닐기 좋은 동네, 지역이 있다면 어느 곳일지 궁금합니다.
A :
“거닐다”라는 표현을 오랜만에 보아서 무척 설렙니다. 거닐기 좋은 동네라니! 본래는 충북에 속했지만 2012년 세종시로 편입되었다는 부강면이 떠오릅니다. 인구가 오륙천 명쯤 된다고 기억하는 곳으로, 4년 전쯤 얼마간 그 마을에 머무른 적이 있었는데요, 종교는 없습니다만 매일 그곳에 있는 성당으로 산책을 다니곤 했습니다. 그리고 서울을 생각해보자면 덕수궁길과 정동길, 그리고 경복궁역에서 부암동이나 평창동까지 거닐면 좋을 것 같습니다. 모두 고즈넉한 길들이에요.
Q :
이 소설에서 사람들이 주고 받는 말들이 좋습니다. 소설의 제목도 누군가에게 건네는 말이기도 한데요. 위로가 필요한 친구와 함께 읽기 좋은 말, 단락을 추천해주실 수 있을까요.
A :
<사람들은>에서 은영이 은영에게 [저를 버린 사람들도 절 많이 사랑했다고 해요.]라는 말과 <여름밤>에서 은영과 은영의 대화가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듭니다.
[밭에 힘들게 뭘 그렇게 많이 심었어?]
[안 힘들어. 심어두고 그냥 조금 잊고 있으면 돼.]
그리고, <파주에 있는>에서 재한과 현경의 대화도 함께 읽어주신다면 어떨까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재한이 수목원에서 미끄러지는 바람에 구두에 흙이 묻었을 때, 손수건을 꺼내 닦으려다 마는 장면을 특히 좋아하고요, 두 사람의 대화로는 마지막 부분을 좋아합니다.
[현경아.]
[응.]
[잘 살아.]
[응, 너도.]
그리고 두 사람은 잠시 후에 다시 한번 같은 대화를 반복해요. 반복해야만 했지요.
[현경아. 잘. 잘 살아야 돼.]
[응. 잘 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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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파랑>에서 <랑과 나의 사막>까지, 사라지고 부서진 존재들을 기억하는 이야기로 독자의 손을 잡아온 천선란 작가의 신작 소설이 출간되었습니다. 지난 해에 원고지 300매 분량의 <이끼숲>만으로 출간을 준비중이던 작품이 일련의 일들을 겪으며 '못다 한 말이 떠올랐고,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바나눈>, <우주늪> 두 편을 더해 세 이야기가 묶인 연작소설로 출간되었다고 합니다. 다른 이의 슬픔이 너무 길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말에 저항하며 슬픔이라면 유별나도 된다고 말하는 소설이 있습니다. 슬픔으로 뚫고 나가 구하는 이야기로 천선란이 독자를 만납니다.
림LIM 젊은 작가 단편집은 장르나 형식, 제도적 등단 절차 등에 구애받지 않는
담대한 신작을 한데 모아 일 년에 두 권 출간합니다.출판사는 지금 : 열림원
첫 번째 『림: 쿠쉬룩』은 서윤빈, 서혜듬, 설재인, 육선민, 이혜오, 천선란, 최의택 작가 7인과 전청림 문학평론가가 함께합니다. 두 번째는 김병운, 서이제, 성수나, 아밀, 안윤, 이유리, 최추영 등 여기의 또 다른 젊은 작가들이 써낸 신작을 엮어 올해 가을 선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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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LIM 젊은 작가 단편집은 장르나 형식, 제도적 등단 절차 등에 구애받지 않는
담대한 신작을 한데 모아 일 년에 두 권 출간합니다.
첫 번째 『림: 쿠쉬룩』은 서윤빈, 서혜듬, 설재인, 육선민, 이혜오, 천선란, 최의택 작가 7인과 전청림 문학평론가가 함께합니다. 두 번째는 김병운, 서이제, 성수나, 아밀, 안윤, 이유리, 최추영 등 여기의 또 다른 젊은 작가들이 써낸 신작을 엮어 올해 가을 선보입니다.
새로운 연재 플랫폼 문학웹진 LIM도 동시에 오픈했는데요. 윤혜은, 황모과, 이하진 장편소설, 천선란 에세이, 이유리 단편소설 및 정아리 일러스트를 시작으로 매주 신작을 공개합니다. LIM 뉴스레터로 그 소식을 먼저 만나볼 수 있습니다. 예측할 수 없이 뻗어가는 이야기의 숲 LIM에 모두를 초대합니다.
- 열림원 담당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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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토라진 것 같은 시집의 제목이 귀여워 눈이 갑니다. 2019년 작품 활동을 시작한 허주영 시인의 첫 시집. 여러 개의 ‘나’를 내세우며 친구들이 모이는 공터로 나간 시적 화자에게 이런 위로를 건네보면 어떨까요. '기나긴 훼손의 시간을 보내온 화자를 혼자로 내버려두지 않는' 박상수 시인의 시집 제목으로요. '너를 혼잣말로 두지 않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