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26일 : 102호

이 책이 지금
쾌적한 유리 새장을 벗어나면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정지아의 장편소설입니다. 이전 작품도 실은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비로소 아버지의 삶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로그라인의 훈훈함을 벗어나는 이야기였습니다. 유물론자였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치러지는 장례식이라는 상황은 사실 아이러니합니다. 이 이야기는 평생 이념을 추앙했던, 이념에 입각해 때론 궤변을 일삼았던 아버지의 실패까지 제대로 바라보는 용기가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이번 소설도 '평균연령 일흔여덟살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 수평마을에 도시의 젊은 여성 '찌니'들이 이사와 마을에 '찌니주의보'가 울려퍼진다는 로그라인으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너그러운 할머니들과 어르신들을 공경하는 '찌니'들이 약간의 갈등을 겪고 한 마을의 구성원이 되는 이야기라면 훈훈하지만 밋밋하겠죠. 정지아의 소설은 서로가 서로를 불쾌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 조심스러워하는 이 시대에 대화의 3대 금기라고 할 수 있는 요소들, 종교와 정치와 성별의 문제를 바로 보면서 선을 훌쩍 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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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의 정지아의 장편소설입니다. 이전 작품도 실은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비로소 아버지의 삶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로그라인의 훈훈함을 벗어나는 이야기였습니다. 유물론자였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치러지는 장례식이라는 상황은 사실 아이러니합니다. 이 이야기는 평생 이념을 추앙했던, 이념에 입각해 때론 궤변을 일삼았던 아버지의 실패까지 제대로 바라보는 용기가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이번 소설도 '평균연령 일흔여덟살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 수평마을에 도시의 젊은 여성 '찌니'들이 이사와 마을에 '찌니주의보'가 울려퍼진다는 로그라인으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너그러운 할머니들과 어르신들을 공경하는 '찌니'들이 약간의 갈등을 겪고 한 마을의 구성원이 되는 이야기라면 훈훈하지만 밋밋하겠죠. 정지아의 소설은 서로가 서로를 불쾌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 조심스러워하는 이 시대에 대화의 3대 금기라고 할 수 있는 요소들, 종교와 정치와 성별의 문제를 바로 보면서 선을 훌쩍 넘어갑니다.
레즈비언인 '찌니'들에게 수평마을 사람들은 때론 정이 많고 때론 무례합니다. 베트남에서 온 '쑤언'은 “갸들이 사램을 죽였어, 도둑질을 혔어? 머슬 워쨌다고 지랄옘벵을 떨어싼대?”하고 진한 수평마을 말로 찌니들을 감쌉니다. 어떤 땐 참 별로이다가, 또 어떤 땐 너무 사랑스러운 인간이라는 존재들의 다양한 일면을 정지아의 소설을 통해 들여다봅니다. “치명상을 입혀놓고 음식을 먹이는” 소설과 함께 선을 넘다보면 쾌적한 새장 바깥에서 참 불편하고 참 통쾌하구나, 속이 시원해집니다.
- 알라딘 한국소설/시/희곡 MD 김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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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
갸들이 말이여.
윤 선생이 터무니없이 목소리를 낮췄고 사람들은 덩달아 몸을 앞으로 숙인 채 귀를 기울였다. 윤 선생의 뒤이은 말은 누구도 상상한 적 없는, 수평마을에서 나고 자랐거나, 시집와 수십년을 살아온 이들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이었다.
찌니들이 말이여. 레지랴 레지.
작가는 지금 _3문 3답
Q :
<목소리가 들린다>와 나무병 세계관을 공유하는 <허밍>은 역주행해 지금도 새로운 독자를 만나고 있는 소설입니다. 독자들이 자발적으로 이 소설을 알리고 있는데요, 이런 독자들의 존재를 알게 됐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지 궁금합니다.
A :
읽는 분들이 즐거운 글을 쓰는 것을 목표로 작업을 하는 작가로서, 가슴이 뛰어 밤잠을 잘 못 잘 정도였어요. <허밍>도 조용히 출간된 책이었는데 어느 순간 SNS의 많은 분들께서 마음을 담아 언급해 주신 덕분에 후속작인 <목소리가 들린다>를 쓸 수 있을 만큼 알려질 수 있었거든요. 그분들을 실망시켜선 안 된다는 마음에 작업하면서도 부담이 아주 컸는데, 이번 소설도 마찬가지로 좋게 말씀해 주셔서 그저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그리고 저부터도 ‘아, 좋다.’ 하고 혼자 감탄하며 곰곰이 감상하게 되는 소설도 좋아하지만 가끔 친구와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은 소설을 읽을 때의 각별한 즐거움이 또 있거든요. 그런 즐거움을 드릴 수 있었구나 싶어서 조금 뿌듯해지기도 했어요. 앞으로도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게 된 건 당연한 일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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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목소리가 들린다>와 나무병 세계관을 공유하는 <허밍>은 역주행해 지금도 새로운 독자를 만나고 있는 소설입니다. 독자들이 자발적으로 이 소설을 알리고 있는데요, 이런 독자들의 존재를 알게 됐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지 궁금합니다.
A :
읽는 분들이 즐거운 글을 쓰는 것을 목표로 작업을 하는 작가로서, 가슴이 뛰어 밤잠을 잘 못 잘 정도였어요. <허밍>도 조용히 출간된 책이었는데 어느 순간 SNS의 많은 분들께서 마음을 담아 언급해 주신 덕분에 후속작인 <목소리가 들린다>를 쓸 수 있을 만큼 알려질 수 있었거든요. 그분들을 실망시켜선 안 된다는 마음에 작업하면서도 부담이 아주 컸는데, 이번 소설도 마찬가지로 좋게 말씀해 주셔서 그저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그리고 저부터도 ‘아, 좋다.’ 하고 혼자 감탄하며 곰곰이 감상하게 되는 소설도 좋아하지만 가끔 친구와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은 소설을 읽을 때의 각별한 즐거움이 또 있거든요. 그런 즐거움을 드릴 수 있었구나 싶어서 조금 뿌듯해지기도 했어요. 앞으로도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게 된 건 당연한 일이고요.
Q :
<목소리가 들린다>는 아포칼립스 로맨스 판타지 장르 팬이 좋아할 만한 요소가 가득한 소설입니다. 최정원 작가도 이 장르의 팬일지, 장르 팬에게 추천할 만한 다른 작품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A :
당연합니다! 좋아하지 않는 장르의 이야기를 어떻게 열심히 쓸 수 있을까요. 쓰기도 힘들지만 읽는 분들도 작가가 즐기지 못한 글은 금세 알아채시는데요. 다만 아포칼립스 로맨스 판타지라기보다는, 무너져 가는 세상에서 (절망을 제외한) 사람의 생생한 감정을 다루는, 약간의 환상성이 더해진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할 듯합니다. 추천해 드리고 싶은 작품은 많은데요, 소설로는 이미 너무 유명한 천선란 작가님의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와 청예 작가님의 <일억 번째 여름>을 권해 드리고 싶어요. 혹 소설이 아니라도 괜찮다면 타무라 유미 작가님의 만화 <7SEEDS>를 강력히 추천 드리고 싶습니다. 운석 충돌 이후의 생존자들을 그리는 이야기인데요, 이 장르가 사람의 마음에 전할 수 있는 모든 걸 보여 주는 작품이랍니다.
Q :
혹독하게 더웠던 2026년의 여름이 가고 있습니다. 이 세계를 지금처럼 낭비하며 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무 이야기를 쓴 소설가로서 독자에게 하고픈 말이 있을지, 여름을 보내는 인사를 부탁드립니다.
A :
올해 여름 정말 지독했지요. 그리고 아마 이번 여름이, 앞으로 올 모든 여름 중에서 가장 시원한 여름일 것이라고들 하세요. 글쎄요, 제 이야기 속에서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이 모두 나무로 변하게 되는데요, 이렇게 변해 가는 세상은 사람에게만 끔찍한 게 아니라 식물에조차 재앙일 게 분명합니다. 집 앞 나무가 타들어 가듯이 말라 가고 있더라고요. 지금과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서는 안 될 테고, 살 수도 없게 된 때가 온 것 같아요. 아침저녁으로 벌써 식은 바람이 붑니다. 이 기억이 희미해지기 전에, 다음 여름이 우리 기억 속의 그 아름다웠던 여름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여러분들도 함께해 주시면 무척 감사할 것 같아요. 부디 남은 여름 무사히, 건강히 보내시고 좋은 책들과 함께하는 시원한 가을 맞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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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MD는 지금 
김행숙 시인의 시집 <사춘기>를 좋아하시나요? 저뿐만 아니라 시를 읽는 독자들도 꾸준히 사랑하고 찾아읽는 시집이라 주문이 계속 만들어지는 책인데요. (MD는 도서 주문 업무도 하는데, 주문목록에 올라온 좋아하는 책 제목을 보면 새삼 그 책 참 좋지... 하고 감상에 젖곤 합니다.)
김행숙의 일곱번째 시집,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2020) 이후 오랜만에 출간된 신작입니다. 전작의 '심부름꾼 k’의 바구니에서 출발해 '바구니 맨 밑자리에 끝까지 남아 있던 ‘무서운 이야기’를 우리 앞에 마침내 펼쳐낸다'고 출판사가 소개하고 있는데요. 기담과 괴괴한 날씨의 계절에 김행숙을 읽으면 또 얼마나 좋을지 벌써 기대가 됩니다. 독자를 설레게 할 시인의 말을 함께 남겨놓습니다. '오늘은 내가 나무문이 되어 서 있을게. / 긴 겨울과 긴 여름과 긴 장마를 겪고 / 끼익, 끼익, 어딘가 꺼림직하고 불길한 소리를 내는……'

출판사는 지금 : 배드베드북스
안녕하세요. 배드베드북스의 대표 김승일 시인입니다. 몇 해 전 해외에 여행을 가서 대형 서점에 들렀을 때 충격을 받았어요. 시 코너에 현대 시인의 시가 하나도 없었거든요. 셰익스피어, 랭보, T. S. 엘리엇처럼 고전 시인들의 시만 꽂혀 있었습니다. 해외로 번역되어 소개된 한국의 시집들은 아마 힙한 동네 서점에 진열되어 있거나, 한국 문학에 관심이 많은 몇몇 독자들에게만 알음알음 읽히는 것 같았어요. 그날 시 그림책 시리즈를 꼭 내야겠다고 결심했던 것 같습니다. 시집 코너가 너무 작아서, 내 친구들의 시집이 들어갈 수 없다면. 픽션이나 그림책 코너에 넣고야 말겠다고요. 최고의 그림작가와 함께, 현대시가 어렵고 낯선 독자들이 더 흔쾌히 시를 감각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요.
이번에 나온 <건축>은 우리가 만든 첫 시 그림책입니다. 황인찬 시인이 가장 아끼는 시 <건축>에 이지후 작가가 그림을 그린 책이지요. 책 속에는 “사랑이 끝나도 아직 살아 있구나”, 의문을 표하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여름이 끝나도, 겨울이 끝나도, 달콤한 꿈에서 깨어도, 이 시가 끝나도 어째선지 나는 아직 살아 있어. <건축>은 그게 얼마나 이상한 일인지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총천연색의 여름을 단단한 흑백으로, 부스러진 흑연 가루로, 너와 나의 표정을 검게 칠한 동그라미로 표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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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배드베드북스의 대표 김승일 시인입니다. 몇 해 전 해외에 여행을 가서 대형 서점에 들렀을 때 충격을 받았어요. 시 코너에 현대 시인의 시가 하나도 없었거든요. 셰익스피어, 랭보, T. S. 엘리엇처럼 고전 시인들의 시만 꽂혀 있었습니다. 해외로 번역되어 소개된 한국의 시집들은 아마 힙한 동네 서점에 진열되어 있거나, 한국 문학에 관심이 많은 몇몇 독자들에게만 알음알음 읽히는 것 같았어요. 그날 시 그림책 시리즈를 꼭 내야겠다고 결심했던 것 같습니다. 시집 코너가 너무 작아서, 내 친구들의 시집이 들어갈 수 없다면. 픽션이나 그림책 코너에 넣고야 말겠다고요. 최고의 그림작가와 함께, 현대시가 어렵고 낯선 독자들이 더 흔쾌히 시를 감각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요.
이번에 나온 <건축>은 우리가 만든 첫 시 그림책입니다. 황인찬 시인이 가장 아끼는 시 <건축>에 이지후 작가가 그림을 그린 책이지요. 책 속에는 “사랑이 끝나도 아직 살아 있구나”, 의문을 표하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여름이 끝나도, 겨울이 끝나도, 달콤한 꿈에서 깨어도, 이 시가 끝나도 어째선지 나는 아직 살아 있어. <건축>은 그게 얼마나 이상한 일인지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총천연색의 여름을 단단한 흑백으로, 부스러진 흑연 가루로, 너와 나의 표정을 검게 칠한 동그라미로 표현합니다.
그림도 시도 압도적이었기에, 책의 사양을 결정하면서 욕심을 많이 부렸습니다. 이렇게 비싼 종이를 사용해도 될까? 몰라 일단 종이를 사고 생각하자. 책 표지를 코팅하지 않아도 정말 괜찮을까? 질감만 생각하자. 책을 이렇게 크게 만들어도 될까? 압도적인 책을 만들자. 결과물이 아름답기만 하면 돼. 출판 노동을 오래 해온 사람들이 모여 만든 출판사인데, 마치 처음 책을 만드는 사람들처럼 한껏 바람이 들어갔어요.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봐도 아름다운 책이 여기에 있습니다. 욕심이 그득그득한, 이런 책을 다시 만들 수 있을까?! 그건 아마 여러분에게 달린 것 같습니다.
- 배드베드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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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소설집에서 시작될 세계
첫 소설집은 소설가의 출사표라고 생각합니다. 첫 소설로 무엇을 배치할지, 소설 모두를 아우르는 제목을 무엇으로 정할지... 소설집을 좋아하며 읽다보면 어느새 이 흐름을 의식하게 됩니다. 어떤 리듬으로 소설을 묶어, 어떤 독자를 만날 것을 상상하며 이야기를 만들어냈을까 짐작하며 소설을 읽는 일은 재미있습니다.
2022년 문학동네소설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서고운은 4년 만에 엮은 첫 소설집의 첫 이야기로 등단작 <숨은 그림 찾기>를 선택했습니다. 2020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구소현은 소설 보다 : 가을 2021에 수록된 ‘이 계절의 소설’ 선정작인 <시트론 호러>를 첫 소설로 놓았습니다. 첫 소설부터 차근차근 차례에 주목하며 여기서 시작하는 소설가들의 세계에 탑승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두 작가는 작가의 말에 각각 이렇게 썼습니다.
서고운 : 그런데 사실, 다들 참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제 소설 속 인물들도 그러기를 바라며 이야기를 썼습니다.
구소현 : 읽히는 경험을 하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글을 쓰는 사람인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