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미국소설과 미국학을 전공했으며, 관심사는 전쟁과 죽음, 신화와
종교, 그리고 동서양의 지적 전통 등이다.
“노근리 학살에 나타난 인종주의”, “미국학의 역사적 전개”(우암논문상), “한국의 헤밍웨이 읽기”,
“우로보로스의 현상학”(2023 연구재단 연구 우수50선 관련 연구) 등의 논문과, “꼬리 먹는 뱀 우로
보로스 사유와 서양 문명 비판” 시리즈 제1권 『선악과와 처녀 잉태: 유대-기독교 문명』(2023 세종
우수학술도서), 제2권 『메두사와 팜므 파탈: 지혜와 생명의 여성』, 제3권인 『전쟁과 평화, 사랑과
죽음: 우로보로스와 탈(脫) 우로보로 스』 등을 출판하였다.
호모 데우스! 언제부터 인간들이 신과 동격이었는지…….
신의 속성 중의 하나를 죽지도 못하는 관념으로 볼 수 있다면 인간은 오히려 죽을 수 있어 다행이다.
경망하게도 인간이 신이 된, 혹은 인간을 신으로 만든 종교가 기독교이고 불교이고 도교라고 한다면, 이슬람교도 예외는 아니다.
필자의 『선악과와 처녀 잉태』(청송재, 2023.2 출간)와 더불어 읽으면 좋을 것 같아
감히 제목을 위와 같이 정했으나, 원래 생각했던 제목은 “이 땅에 쓰이는 종교시”였다.
대부분 20~30년 전 삶의 중반에 쓰인 시들을 먼저 정리하여 이번에 내놓는다.
제목이 다소 도발적이라 자서를 빌어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다석 유영모의 “없이 계신 하나님,” 길희성 교수의 “하나님을 놓아주자” 등과 같은 표현은
우리가 축조하고 마음대로 “까불고 지친” 신 혹은 예수님과 부처님 등에 관한 선입견과 편견을 타파해야 한다는 취지의 표현인데, “예수를 만나면 예수를 죽이고” 또한 그러하다.
우리가 마음대로 생각하고 만들어 낸 신…….
우리나라의 “무심한 신” 등은 조금 다르지만,
서양의 “쓸모없는 신”(deus otiosus) 혹은 “게으른 신”은,
아퀴나스(Thomas Aquinas)와 쿠자누스(Nicolaus Cusanus)의 “숨은 신”(deus absconditus)을 필두로
매사에 휘둘리는 “불완전한 신”(Jon Levenson), “어디에도 없는 신”, “이름 없는 신”,
심지어는 카시러(Ernst Cassirer)의 “실패한 신”(deus occasionatus),
그리고 근자에는 신보다는 인간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겠지만 하라리(Jubal Harari)의 “신을 넘어서”(outgrowing God) 또는 “호모 데우스”(homo deus) 등과 같은
발칙한 표현들도 신을 지칭하는 이름들과 관련된 말들이었다.
“신성”(에크하르트), “신 위의 신”(틸리히), “창조력”(화이트헤드)등으로 표현되었듯이
신을 우주 자체라 한다면, 나는 여기에 “진화하는 하나님”, 즉 동양의 空에 상응하는 “생성과 변화의 하나님”이라는 용어를 덧붙인다.
히브리어로 야훼의 뜻이 “나는 나일 것이다”라는 말에 동조한다면 당연히 부처님 또한 진화하는 부처님이 되리라.
부디 자기가 만든 신이라는 관념에서 나아가, 알 수 없고 알아서도 안 되는 신의 개념으로
대부분이 명상시인 이 시집의 독자들이 나아가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