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에 베란다 ‘백량금(百兩金)’에 싹이 돋더니 삭정이에 잎이 달리기 시작했다. 말라 죽은 줄 알았더니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뽑아버리려다 살아나라고 주문을 외며 몇 년째 물을 준 정성을 저버리지 않았다.
젊은 날 시는 영양실조였다. 늘 음지에서 골방에서 넋두리를 먹고 자랐다. 그래도 시는 굶어 죽지 않은 젊은 날이 감사했다. 동취(銅臭)에 빠져 허우적대던 시절, 시는 영양실조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관 속에 누웠다. 몇십 년 동안 잠에 빠져 있었다. 시로써 무엇인가를 할 수 있었던 시대에 온몸으로 밀고 나가지 못했던 사람의 넋두리를 책으로 내려니 쓸모없는 파지(破紙) 한 묶음을 더하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럼에도 명산(名山)에 비장하지 못하더라도 간장 항아리 뚜껑으로는 쓰이지 않을 것이라 격권(激勸)한 맹문재 교수의 말에 용기를 내었다. 이데아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시대에 시를 부둥켜안고 가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 여전히 고민스러우나, 이데아에 대한 믿음이 있던 자리에 시가 뿌리내리도록 일조하는 일이 부질없는 짓은 아니리라 자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