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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정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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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신작로에 남겨진 발자국>

정봉화

1939년생. 진주중, 부산고를 나와 육군사관학교(18기)를 졸업했다. 1962년 육군 소위로 임관, 1973년 윤필용 수경사령관 비서실장으로 근무하다 소위 ‘윤필용 모반사건’ 소용돌이 와중 소령으로 예편했다. 1975년부터 기업인의 길을 걸어 기계설비제작업의 동양기공(주), 특수윤활유 판매업의 동양특유(주) 대표이사를 거쳐 1985년부터 지금까지 운송업체 영일기업의 대표이사 사장을 맡고 있다.

1996년부터 늦깎이 학도로 변신해 경남대 북한학과 대학원에서 공부에 몰입, 2000년에 ‘북한의 대남정책 연구, 1948~1998 -지속성과 변화-’ 논문으로 정치외교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관동대, 경남대, 경상대 초빙교수(북한학),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운영위원, 美 듀크(Duke)대 방문교수 역임. 현재 경남대 대우교수, 경상대 초빙교수로 있다. 2005년 ‘서정시학 신인상’으로 수필 등단해, 본격 글쓰기에 들어섰다. 1973년 갑작스러운 민간인 편입 이후 고통을 받던 중 1974년 가톨릭에 몸과 마음을 의탁, 길을 찾아갔다.

저서로 2000년 <대결에서 공존으로>(한울아카데미), 2005년 <열린마음 열린대화>
(청동거울)가 있다. 2010년 봄엔 이 책 <로중 정봉화 자서전-신작로에 남겨진 발자국>과 함께 수필집 <석화편지>(글공작소 야독), <한국 천주교회의 시원-천주교 들불로 타오르다>(지식지대 주경)를 동시에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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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신작로에 남겨진 발자국> - 2010년 3월  더보기

격랑의 한 세기, 그 운명적 삶의 기록... 윤필용 모반 사건! 나는 갑자기 호흡이 가빠짐을 느낀다.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이 사건의 전모를 증언하려니 더 그러하다. 망설임은 여전하다. 그러나 이제 더는 물러설 수 없을 것 같다. 이 기회를 놓치면 나는 아무런 삶의 기록도 남기지 못한 채 저 먼 세상으로 떠나야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이다. ‘윤필용 사건’이 터지고 당시 서빙고에 제일 먼저 구속 수감된 사람이 나였다. 그리고 제일 마지막에 풀려났다. 시종일관 “누구에게 금품을 받았는가?”가 주된 추궁 상황이었다. ‘모반’은 어디로 갔는지 실종 상태였다. 실제로 우리 집에는 그 흔한 은행 통장 하나 없었다. 수사관들은 참으로 난감하였을 것이다. 당시 수사관들이 시나리오대로 답변을 유도하느라 무척 고생한 것으로 기억한다. 이런저런 경로로 지금까지 나온 윤필용 사건의 글과 보도는 사실과 많이 다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진실을 알 만한 분은 거의 고인이 되었고, 살아 있어도 고령이어서 기억이 희미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는 내가 당시의 비서실장으로 있으면서 주변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기억하는 유일한 인물로 살아남아 있는 이유일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에라도 진실을 밝히고 가라는 소명을 받은 것 같은 느낌으로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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