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장편 <낯선 천국>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소설 <마우스>, <비열한 거리>, <카펜터의 위대한 여행>, 여행에세이 <가슴설레는 청춘 킬리만자로에 있다>, 인문에세이 < 우리들의 행복했던 순간들>, 천만 관객을 동원한 스크린소설 <명량>, <국제시장> 등을 집필했으며, 일본, 미국, 아프리카, 유럽 여러 나라를 여행했다.
폭풍이 분다.
모든 것이 흩날리고 비틀거려도 나는 바람을 볼 수 없다. 바람은 언제나 제 모습을 감춘 채 세상을 이리저리 흔들어놓는다. 그리고 한번은 반드시 거센 울음을 토해낸다. 그 울음은 폭풍이 되어 땅에서부터 하늘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바다의 물살까지 뒤집고, 파헤친다. 그 폭풍을 이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한 사람은 폭풍을 이기려 했다. 변시지……. 운명의 덫에 걸려 다리 하나를 빼앗겼음에도 불구하고 폭풍과 맞섰다.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그는 폭풍을 사랑했고, 그 사랑을 화폭에 담았다. 그것은 인내의 열매였지만 그는 또 하나의 덫에 걸려 색을 잃어버렸다. 그가 알 수 있는 색은 오직 노랑…… 그리고 검정이었다.
두 가지 색으로 그는 하늘, 바다, 소년, 소나무, 까마귀를 그렸다. 그 모든 것들을 감싸는 것은 폭풍이었다. 온통 샛노란 그림 앞에 서면 하늘과 바다, 소년을 휘감은 폭풍이 나의 몸과 마음을 흔들었다. 그리하여 변시지의 그림은 우리의 삶 그 자체가 되었다.
소나무 아래 외롭게 서 있는 소년은 왜 그곳에 있는지, 그 옆의 다리 잘린 까마귀는 왜 그 옆에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림 속 주인공은 말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림을 들여다보면 소년은 귀엣말을 한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 까마귀의 울음, 파도의 흐느낌, 폭풍의 포효 속에서 소년의 말은 바람처럼 사라진다.
그 말을 들으려면 내 마음을 온전히 비워야 한다. 제주의 옥색 바다에 풍덩 빠져야 한다. 바람과 함께 서귀포의 들판을 쏘다녀야 한다. 내가 변시지가 되어 오로지 노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때 소년의 속삭임이 들린다. 그것은 예술가의 고단한 영혼을 위로하는 노래이자, 세상을 향한 날카로운 꾸짖음일 수 있다. 변시지의 노란 폭풍 그림은 그래서 삶을 이끌어주는 지표이다.
그러나 어쩌랴!
내가 바람을 볼 수 없듯 화가의 마음을 알 수 없으며, 그의 인생은 더더구나 인식의 영역 저 너머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시지의 삶을 추적한 것은 누구보다 치열하고 험난한 굴곡을 거쳐 세상 사람들 앞에 폭풍이 무엇인지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림에는 문외한에 불과한 내가 선구적 예술가의 초상을 미약하나마 글로 표현한 것은 부끄러운 행위이다. 부끄러움을 넘어 깊고 맹렬한 화폭의 흔적을 따라간 이유는 화가가 들려주는 말이 모든 이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서였다.
부디 그의 그림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매혹과 안위, 그리움과 사랑의 깃발이 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