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중국의 ‘대륙신유가’는 19세기는 영국의 세기였고 20세기는 미국의 세기이며 21세기는 중국의 세기가 될 것이라는 확신에 차 있다. 그렇다면 이들의 입장에서 21세기의 중국은 어떤 중국이 되어야 하는가. 그것은 다름 아닌 바로 유교의 역할이 큰 중국이다. 이런 ‘확증적 상상’을 하게 한 데는 몇 가지 정치적 근거가 있다. 가장 먼저 살필 것은 2013년부터 몇 년 동안 보여준 시진핑(習近平)의 몇 가지 행보들이다. 중국의 국가주석 시진핑은 2013년 11월 산둥성 취푸에 있는 공자묘를 참배했다. 2014년 5월에는 베이징대학의 대 유학자 탕이제(湯一介) 교수를 특별히 예방했다. 2014년 9월에는 공자 탄생 2,565주기를 기념하는 회의에 몸소 참석해 직접 담화를 발표했다.
‘대륙신유가’가 보기에 중국 공산당은 모두 이제는 마르크스주의만으로 중국이 통치되기는 어렵다. 중국을 지탱해왔던 강력한 카리스마의 마오쩌둥도 사라졌고 공산주의의 이념도 중국 대중들에게 이전같이 먹혀들어가지 않게 된 상태에서 국가를 이끌어 갈 이데올로기가 텅 비어 있다. 거기에다 몇 년 전부터 경제성장 수치도 낮아지고 있다. 여느 왕조처럼 장기 통치가 최대의 목표인 중국 공산당으로서는 지금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중국 공산당은 자신을 중국 전통의 계승자로서도 자리매김해야 한다.
‘대륙신유가’에게 약간의 문제가 있다면 그들이 세계, 아시아, 중국문명권, 더 나아가 중국사회 전체의 사회사적, 문화사적 맥락을 충분히 고려하면서 유학을 사유했느냐 하는 점이다. 물론 이 책의 번역에는 넣지 않았지만 이들 중에는 중국의 화이(華夷)사상에 근거한 역사적인 중화(中華)의 회복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이도 있다. 따라서 중국에 대한 반(半) 식민의 역사뿐 아니라 20세기 동아시아 식민지 압박의 역사에 대한 분명한 의식이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조선왕조 500년의 유교 경험을 가지고 있는 한국인일지라도 무조건 중국의 유학 부흥을 반길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국 전통 회복의 흐름에서 경계해야 할 것은 과거 150년 동안 힘들여 이루어놓은 ‘평등’과 ‘자유’라는 ‘성과’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이 가치들은 지금 우리의 화두가 되고 있는 ‘공정’과 ‘정의’의 토대이다. -(조경란, <서문>에서)
최근 30년간 대륙의 유학 부흥은 두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단계를 대표하는 인물은 장칭(蔣慶)과 캉샤오광(康曉光), 천밍(陳明), 성홍(盛洪)으로 특히 장칭은 베이징 산롄서점(三聯書店)에서 출판된 저서 ??정치유학(政治儒學)??을 통해 유학의 이치로 대륙의 정치체계를 재편할 것을 분명하게 주장했다. 이는 머우쫑싼(牟宗三), 쉬푸관(徐復觀)으로 대표되는 홍콩?대만의 신유가와 정치이념에서 큰 차이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이로 인해 중국사회에서 유가가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 큰 논쟁이 일어났다. 이 논쟁은 유가의 발전 방향에 관련된 것으로 자유주의 및 기존의 주류 이데올로기와 긴장을 형성했다. 장칭의 저서는 다니엘 벨의 번역으로 프린스턴대학 출판사에서 출판되었고 서양인이 대륙의 유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2010년 이후, 대륙신유학은 두 번째 단계에 들어갔다. 정이(曾亦), 간춘송(干春松), 탕원밍(唐文明) 등이 이에 해당한다. 두 번째 단계는 장칭과의 관계에서 계승과 단절이 모두 존재한다. 계승에는 공양학(公羊學)의 전통과 정치유학의 논제를 중시하고 이러한 문제의식을 일깨운 캉유웨이(康有爲)가 포함된다. 단절에는 천하주의(天下主義)와, 삼강(三綱) 문제가 포함된다. 장칭은 이 문제들을 언급하지 않았다. 이 단계의 신유가는 중국의 국가의식과 국제질서 구축에 더욱 관심을 기울인다. 국내 문제에서, 법률체제와 유가전통 사이의 긴장에 관심을 보이며, 평등과 차등 사이의 관계를 직시하고자 한다. 이들은 유가와 현재 중국의 정치생활과 사회생활 사이의 연계점을 찾고자 하고 심지어 가정, 결혼, 남녀평등, 동성애 등 사회적으로 민감한 문제까지도 관심을 보인다. 어떤 의미에서 현재 대륙신유가는 중국의 사상 영역과 사회 생태에 전 방위적으로 개입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