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되돌아 본 이야기
“죽어버린 과거는 죽은 채 묻어두라”라는 시 한 구절처럼 입을 다물고 살려고 했는데 손자들이 성장하고, 아직도 고향의 그리움이 남은 채 어머니를 고생시킨 딸자식으로 내 가슴 속에 있는 이야기를 털어 놓고 싶었다. 내가 뛰어난 삶을 산 것도 아닌데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재미있게 읽혀지기는 어려울것 같다. 그러나 뒤늦게 결심을 하게 된 동기가 생겼다. 어느 국경일 날 해마다 돌아오는 기념일 때마다 생각이 나는 내 추억의 글을 써놓았던 원고가 떠올라 선생님에게 한 번 읽어 보세요라고 말하고 드렸다.
나도 좀 늦은 나이인데 되돌아 볼 내 인생의 순간순간들이 있었다. 지난 날들은 온갖 힘을 다 하여 자식들에게 받쳐진 세월이었다. 그 애들이 내 젊음을 가져가 버렸지만, 이제라도 내 자신을 위한 여가를 한 곳으로 집중하고 싶었다. ‘수필’을 쓰면서 태어날 때부터 나를 되돌아 볼 수도 있었고 지금의 한적한 생활을 즐길 수도 있었다. 참된 한가함이 노년의 생활이란 선물로 다가왔다. 다행히 장수시대라고 하는데 정신적 활동을 찾아야겠다는 생각도 용솟음쳤다.
휴식의 참맛은 이렇게 열심히 작업을 하고나서 느낄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알게 되었다. 엊그제 새로 산 책 톨스토이의《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에서 그가 81세 되던 해 10월에 쓴 책이라는 것을 알았다.
늦은 나이에도 이렇게 명작을 쓴 톨스토이의 글을 읽은 후 나도 나이에서 벗어나 힘을 얻었다. 수필의 소재인 체험, 관찰, 독서, 사고 이런 모든 것이 자신을 통해서 사상과 감정으로 여과되어진 글로 쓰여져 읽어보니 잊었던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종교적으로 고백하던지, 아니면 가상의 소설이라도 써서 자기를 나타내려고 한다.
“인간들은 왜 비밀을 말하고 싶어서 견딜 수 없는 것일까?” 심리학자 제임스 페니 베이컨의 말처럼 나도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꺼내어 보니 정신적 질병이나 육체적 질병이 치유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내 이야기들을 써서 한권의 책으로 내는 것은 나의 운동, 변화, 발전의 과정을 들여다 보는 본질적인 계기가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살아 온 길이라서 모든 기억이 가슴 속에서도 뜨겁게 느껴지는 것이 있고 머릿속에서 아침 이슬처럼 영롱하고 뚜렷하게 떠오른 순간순간이 그리움으로 다가왔다. 추억을 더듬어 파리도 다시 가고 유럽의 곳곳을 둘러 보는 회상은 엊그제 있었던 일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유난히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연인도 아니고 선생님도 아니고 또 같은 나라 사람도 아니다. 첫 만남이 우연히 길에서였는데 같은 시간 같은 곳에서 다시 만나 인사하게 된 인연이 인생행로에서 새생활로 나를 초대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책은 언어가 달라서 보내지 못함이 섭섭하다. 이 책을 출판하는데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고마운 마음을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