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와 선이링은 <서태후와 궁녀들>의 구술자인 노궁녀 룽얼과 이웃으로 지낸 지식인 부부다. 두 사람과 노궁녀는 말년을 이웃으로 함께 보내며 서로의 살림을 돌봐주었고 이런 오고감 속에 청 황실 깊숙한 곳의 이야기가 풀려나왔다.
진이는 허베이 성 위톈玉田 현 사람으로 본명은 왕시판王錫?이다. 진이와 선이링은 1939년 베이징대 중문과에서 처음 만났고, 대학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가까워진 학구파다. 1940년대 초반 결혼하고 대학을 졸업한 둘은 해방 전의 베이징에서 궁핍한 신혼생활을 이어나갔다. 곧 지도교수의 배려로 진이가 히로시마대학 문리과대 교수로 초빙되면서 일본으로 건너갔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을 앞둔 일본에서의 생활은 큰아들이 심각한 영양실조로 불구가 되는 아픔을 남긴 채 끝나버리고 말았다. 귀국 후 1947년 진이는 베이징 제2중학, 선이링은 베이징 제25중학에 문학교사로 부임하면서 생활은 안정을 되찾았다. 하지만 남편 진이가 콩팥수술 후유증으로 요양에 들어가는 바람에 두 사람은 가정일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고, 지인의 소개로 노궁녀 룽얼과 첫 인연을 맺게 된다. 선이링이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노궁녀가 살림을 돌보고 남편 진이의 말 상대가 되어주었다. 노궁녀를 ‘허 아주머님’이라 불렀던 진이는 그녀가 들려주는 청 황실의 세부적인 이야기에 빠져들며 서서히 건강을 회복했고,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분위기 속에서 대화는 오래 지속되었다. 진이·선이링 부부는 이때의 이야기를 틈틈이 기록으로 남겨 나중에 책의 토대로 삼았다. 진이는 1950년대 초에 고전문학에 대한 오랜 연구와 조예를 인정받아 란저우 사범대학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그의 뛰어난 문학적 조예와 비상한 기억력은 1980년대 후반 『자금성』 잡지에 ‘궁녀담왕록宮女談往錄’이란 제목으로 청 황실의 이야기를 연재하면서 빛을 발했다. 중국에서 이 책은 1990년대 초반 같은 제목으로 출간되어 순식간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진이는 안타깝게도 1992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