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 중문(仲文)이며 오흥[吳興, 지금의 저장성(浙江省) 후저우(湖州)] 사람이다. 750년 <상령의 슬 연주(湘靈鼓瑟)>라는 제목의 시험에서 진사로 급제했다. 비서성 교서랑(校書郎), 남전위(藍田尉), 사부원외랑(祠部員外郞), 사훈원외랑(司勳員外郞), 고공낭중(考功郞中) 등을 역임했다.
전기는 대력십재자(大曆十才子)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로, 일찍이 왕유(王維)와 수창(酬唱)했고, 유장경(劉長卿)과 함께 이름이 높았으며, 낭사원(郎士元)과 ‘전랑(錢郞)’으로 병칭되었다. 특히 전별시(餞別詩)에 뛰어나 대력 연간에 공경(公卿)이 장안을 떠날 때는 그의 시가 빠지지 않았다. 동시대인 고중무(高仲武)가 편찬한 ≪중흥간기집(中興間氣集)≫에선 그의 시가 맨 앞에 실렸다. 그는 진지하게 시작을 해 청려(淸麗)하고 풍격이 높은 시를 지었는데 특히 오언율시(五言律詩)에 뛰어났으며 사경(寫景)에 능했다. 한편 그는 지나치게 언어의 수식과 음률을 중시하다 보니 깊은 감정이나 내용 면에서 약점을 보이기도 했다. 성당시(盛唐詩)가 발전시킨 의경과 풍격 쪽으로 나아갔지만, 혼융(渾融)한 맛이 적어 성당 시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평을 받았다. 현재 ≪전고공집(錢考功集)≫ 10권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