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아빌라 폰티베로스의 평범한 가정에서 출생했다. 본명은 후안 데 예페스 알바레스(Juan de Yepes A'lvarez)로, 잠시 동안 메디나 병원에서 일한 후 1563년 가르멜 수도회에 입교해 후안 데 산 마티아스(Juan de san Mati'as), 즉 ‘성 마태의 요한’이라는 수도명을 받았으며 그 후 살라망카에서 수학했다.
스물다섯 살의 나이에 <맨발의 가르멜 수도회>의 창시자, 산타 테레사 데 헤수스와 운명적인 만남을 가진 후, 그녀의 가장 가까운 조력자가 되어 가르멜 수도회 개혁에 착수한다. 이 때문에 그는 거의 10년 동안 갖은 종류의 핍박을 받게 된다. 1568년, 산 후안 데 라 크루스(San Juan de la Cruz)로 수도명을 바꾸었으며, 이로 인해 우리나라에서는 ‘십자가의 성 요한’으로 알려져 있다. 핍박 가운데서도 뜻을 굽히지 않고 전심을 다해 산타 테레사를 돕다가 결국 1575년, 8개월 동안 톨레도 감옥에 갇히는 고통도 당한다.
그러다가 감옥을 탈출, 나머지 삶을 안달루시아에서 보내다가, 로마 교황청이 <맨발의 가르멜 수도회>를 가르멜 수도회로부터 분리할 것을 인허하자, 이 수도회의 몇몇 중책을 맡는다. 그 후 아메리카로 선교하러 가기 직전 안달루시아의 우베다에서 죽음을 맞는다.
1726년 베네딕토 13세 교황에 의해 시성되었으며 1993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그를 스페인어권의 모든 시인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