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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익지욱명말청초明末淸初 때 인물로 운서주굉, 자백진가, 감산덕청 등과 함께 명대明代 4대고승으로 추앙받는다. 속성은 종鍾, 이름은 제명際明 또는 명성名聲, 자字는 진지振之이다. 법명은 지욱이고, 호는 서유西有 또는 우익藕益이며, 별호는 팔불도인八不道人이다. 어릴 때 유가의 경서를 읽고 불교와 도교를 멸할 것을 서원하였으나, 17세 때 주굉이 지은 「자지록서自知錄序」와 「죽창수필竹窓隨筆」을 읽고 감화되어 불교에 입문하였다. 20세 때는 「논어」를 주석하다가 공자와 안연이 말하는 유가의 심법心法을 깨달았다. 24세 때 꿈에 수차례 감산덕청을 보고는 덕청의 문인인 설령雪嶺법사에게서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었다. 그해 주굉의 제자인 고덕古德법사에게 「성유식론」 강의를 듣다가 의문이 생겨 참구, 성종性宗과 상종相宗이 회통됨을 깨달았다. 28세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극진히 효자의 예를 다 하고는, 세상의 인연을 끊고 송릉松陵으로 가서 폐관하다가 큰 병을 얻는다. 그리하여 참선공부를 하면서 동시에 염불로 서방정토에 왕생하기를 구하였다. 지욱은 일생에 걸쳐 계율에 기초한 참선과 아울러 염불과 참회수행을 병행하면서 방대한 저술활동을 했는데, 다양한 경론의 주석을 쓰면서 여러 학설의 상이점을 서로 융통시키고자 하였고, 그 융통의 귀결점으로 정토왕생을 위한 염불을 제시하였다. 또한 그는 유교의 사서삼경을 불교적 안목으로 주석했을 뿐만 아니라 화엄, 유식, 천태 등 고도의 교학 체계와 선적 체험을 바탕으로 「주역선해」를 지었다. 「주역선해」는 불교적 안목으로 「주역」을 전면적으로 해석한 탁월한 명저로 정평이 나 있다. 57세 되던 1655년 정월에 병이 나서 가부좌한 채로 서방을 향하여 손을 들고 입적하였다. 저서로는 경전 연구의 안내서인 「열장지진」 44권을 비롯하여 「아미타경요해」, 「능가경의소」, 「능엄경현의·문구」, 「법화경회의」, 「금강경파공론」, 「범망경합주」, 「대승기신론열망소」, 「성유식론관심법요」 등 전 분야에 걸쳐 있으며, 문집으로는 「영봉종론」 38권이 전한다.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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