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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박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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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블랙 노 모어>

박재영

미국 애리조나주립대학교에서 학부와 석·박사 통합과정을 공부하고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문학과 영화에 관해 30여 편의 논문을 썼고, 초등 영어 교과서와 고등 영어 교과서 집필에 참여했으며, 마빈 피셔 도서상, 윌프레드 페렐 기금상, 전북대 평생지도교수상, 온라인 Best Teacher상을 수상했다. 옮긴 책으로는 샬럿 대커의 『조플로야』, 제시 포셋의 『플럼번』, 엘런 글래스고의 『끌림 1, 2』, 윌키 콜린스의 『이세벨의 딸』, 앤 피트리의 『116번가』, 앤 래드클리프의 『시칠리아 로맨스』, 폴린 합킨스의 『생의 나락에서 희망을 줍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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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생의 나락에서 희망을 줍다> - 2024년 1월  더보기

역자 머리말 남북 전쟁 후의 미국 폴린 합킨스의 『생의 나락에서 희망을 줍다』는 미국 문학의 지형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주목할 만한 문학 작품이다. 1900년에 출간된 이 작품은 미국 흑인 여성 작가의 초기 작품 중 중요한 작품으로, 미국의 어려운 시기에 미국 흑인 작가들의 회복력과 창의성을 보여 주는 실례이다. 이 소설은 남북 전쟁 후 시기의 인종, 성, 사회 정의 문제를 조명하는 문학적 등대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서 시대적 배경을 알아야 한다. 이 소설은 남북 전쟁 후 북부 사회를 주요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회상이나 과거사를 통해 전쟁 전 사회도 종종 배경이 된다. 남북 전쟁은 1861년부터 1865년까지 미국에서 일어난 내전이었다. 노예제를 둘러싼 남부와 북부의 대립이 전쟁의 주요 원인이었다. 1860년에 대통령에 당선된 에이브러햄 링컨은 노예제를 폐지하는 공약을 내걸었고, 노예제 유지를 원했던 남부 주들은 이에 반발하여 연방을 탈퇴했다. 남부에는 농장이 많았기 때문에 노예의 노동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1861년 4월 12일, 남부연합군이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찰스턴항에 있는 섬터 요새를 포격하면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전쟁 초기에는 남부연합군이 우세했다. 남부는 농업과 군사력에서 북부에 비해 우위를 점하고 있었고, 북부는 산업력과 인구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북부연합군이 점차 우세해졌다. 1863년, 북부연합군이 게티즈버그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전쟁의 전황이 바뀌었다. 게티즈버그 전투는 미국 역사상 가장 치열한 전투 중 하나로, 남북 양측 모두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1865년 4월 9일, 남부연합군의 로버트 E. 리 장군이 북부군에 항복하면서 전쟁은 종결되었다. 결과적으로 노예 제도는 폐지되었고, 1865년 12월, 마침내 링컨 대통령은 노예 해방을 법으로 제정했다. 남북 전쟁이 끝나고, 흑인들은 백인 미국 시민과 동등한 권리를 누리며 새로운 자유의 삶을 약속받는 듯했다. 그러나 남부에서 이제 막 해방된 흑인들은 돈이 없었고, 교육 기회도 거의 없었으며, 어디서나 인종 차별을 경험했다. 해방된 흑인들은 구속된 노예 생활에서 자유로운 삶으로 전환하는 것이 어려웠다. 심각한 경제적 빈곤으로 인해 많은 이는 해방이 달갑지 않았다. 당시 미국에는 인종적 편견의 망령이 깊이 드리워져 있었다. 인종 차별은 북부보다는 남부에서 더 심했다. 노예가 많았던 남부에서 백인들은 흑인의 존엄성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특히 폭력과 린치, 성폭행은 흑인들에게 심각한 위협이 되었다. 린치는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개인을 공개적으로 살해하는 행위로, 19세기와 20세기, 특히 남부에서 백인들이 흑인들을 공포에 떨게 하고 통제하기 위해 사용했던 폭력적 수단이었다. 이러한 처형은 주로 무법적인 폭도들에 의해 행해졌지만, 때론 경찰도 정의라는 구실로 참여하기도 했다. 린치하면 일반적으로 나무에 매달린 흑인 남성과 여성의 모습을 떠올리지만, 고문, 절단, 참수, 신체 모독과 같은 극단적인 잔인함이 수반되기도 했다. 일부 희생자는 산 채로 불태워지기도 했다. 전형적인 린치는 범죄 고발, 체포, 군중 소집에 이어 피해자의 신체를 압수하고 신체적 고통을 가한 후 살해하는 과정을 거쳤다. 린치는 백인 우월주의를 기념하기 위해 백인 커뮤니티가 참여하는 대중의 구경거리가 되었다. 심지어 린치 사진은 종종 기념엽서로 판매되기도 했다. 『생의 나락에서 희망을 줍다』에서는 먼포트 일가의 비극과 룩 쏘여가 묘사한 새포 가족의 참상을 통해 인종 차별의 폭거와 린치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19세기 후반 미국의 흑인 여성들은 인종 차별, 성차별, 경제적 불평등 등 심각한 어려움을 겪었다. 흑인 여성은 정치 분야에서 대부분 배제되었다. 1870년 수정헌법 제15조에 따라 흑인 남성에게는 투표권이 부여되었지만, 1920년 수정헌법 제19조가 통과될 때까지 여성에게는 참정권이 부여되지 않았다. 게다가 이 수정헌법은 사실 미국 모든 주에서 확립된 것이 아니었고, 현실적으로 인종 차별로 인해 흑인들이 투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1965년에 투표권법이 통과된 후에야 비로소 흑인들은 투표에 참여할 수 있었다. 흑인 여성은 주로 가사 노동에 참여했고, 또 세탁소나 재봉사와 같은 저임금, 저숙련 직종에 종사했다. 흑인 여성은 같은 일을 해도 백인 남성이나 백인 여성보다 훨씬 적은 임금을 받았다. 예를 들어, 1890년 흑인 여성은 연평균 150달러를 벌었지만 백인 여성은 300달러, 백인 남성은 500달러를 벌었다. 1890년 흑인 여성의 54%가 빈곤층에 속했지만, 백인 여성의 빈곤층 비율은 15%에 불과했다. 또한 그들에게는 교육 기회가 제한적이었다. 흑인 아동은 대체로 공립학교에 다닐 수 없었고, 공립학교에 다닌다고 해도 자원이 열악한 분리된 학교에 다녀야 했다. 흑인 여성이 주택 매입을 거부당하거나 백인보다 더 높은 임대료를 부과받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과밀하고 낡은 주택에 거주해야만 했다.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 또한 제한적이었고, 병원과 진료소에서 치료를 거부당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예방 가능한 질병으로 사망할 확률이 더 높았다. 특히 많은 흑인 여성은 성폭력의 피해자가 되었다. 그들은 법 집행 기관과 법원의 신뢰를 받을 가능성이 낮았기 때문에 법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이런 형태의 차별 외에도 19세기 후반 흑인 여성들은 인종 차별과 성차별이라는 독특한 문제에 직면했다. 흑인 여성은 게으르고 난잡하며 똑똑하지 않고 성욕이 강하다는 고정관념에 시달렸다. 이러한 고정관념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흑인 여성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었다. 소설에서도 볼 수 있듯이, 19세기 후반 흑인 여성들은 학대와 차별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흑인 여성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옹호하고 가족과 지역 사회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단체를 설립했다. 또한 인종 평등과 정의를 위해 싸우며 민권 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흑인 여성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연합체인 전미 유색인 여성 협회(NACW)나 여성 기독교 절제 연합(WCTU) 같은 흑인 여성 인권 단체도 이 시기에 설립되었다. 이들은 흑인 여성을 위한 교육, 취업 기회, 정치적 권리를 옹호했고, 보육 및 직업 훈련과 같은 사회 서비스도 제공했다. 이처럼 흑인 여성은 19세기 후반의 시민권 운동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합킨스는 이 소설에서 아써 루이스와 윌 스미스를 통해 남북 전쟁 후, 19세기 말 20세기 초, 미국 흑인 사회를 지배했던 두 이념의 흐름을 보여 준다. 이 두 인물은 당시 흑인 지도자였던 부커 T. 워싱턴과 W. E. B. 듀 보이스를 대변한다. 평등과 시민권을 위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투쟁의 역사에서 부커 T. 워싱턴과 W. E. B. 듀 보이스의 목소리는 지속적인 영향을 남겼다. 이 두 인물은 지역 사회 발전을 위한 강력한 옹호자로 부상했지만, 접근 방식과 철학은 크게 달랐다. 노예로 태어난 부커 T. 워싱턴(1856-1915)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권리를 옹호하는 대표적인 인물로 성장했다. 그는 미국 흑인의 발전을 위한 근본적인 수단으로 실용적인 교육과 경제적 자립을 신봉했다. 철학이나 문학과 같은 추상적인 학문을 지양했고, 흑인 실정에 맞게 몸으로 할 수 있는 직업 훈련을 강조했다. 그는 흑인들이 무엇보다도 먼저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하고, 그것을 통해 인종 차별에 대한 대응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노스캐롤라이나에 터스키기 대학을 세우고 농업, 기술, 건축 등 실용적인 학문을 가르쳤다. 또한 학생들에게 문명인의 덕목으로 근면과 청결을 강조하며 그런 생활 습관을 갖도록 훈육했다. 워싱턴은 흑인의 발전을 위해서는 백인의 우월성을 인정하고 그들과 협력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그의 철학은 경제적 성공이 필연적으로 사회적, 정치적 평등으로 이어진다는 믿음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그는 유명한 “애틀랜타 타협 연설”에서 백인 사회와의 직접적인 대립보다는 협력을 통해 자기 계발과 경제적 진보를 이뤄야 한다고 주장하며 일시적인 분리 수용을 옹호했다. 이런 태도에는 양면성이 있었다. 백인들은 겸손하고 안정적인 그의 태도를 좋아했기 때문에 그에게 많은 후원을 했다. 반면에 흑인들은 그가 너무 굴욕적인 태도를 취한다고 비판했다. 이 비판의 중심에는 듀 보이스가 있었다. 워싱턴과는 대조적인 접근 방식을 제시한 W. E. B. 듀 보이스(1868-1963)는 기본적으로 백인과 흑인의 차별을 절대 수용하지 않았다. 듀 보이스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철학 박사를 받은 흑인으로, 지식인이었다. 그는 학문적 연구를 활용하여 흑인 커뮤니티가 직면한 사회적, 경제적 불의를 강조하고, 인종 분리와 차별에 대한 적극적인 저항을 포함한 접근 방식을 취했다. 그는 미국 흑인 지위 향상 협회(NAACP)를 공동 설립하고, 워싱턴의 점진주의적 접근 방식을 격렬하게 비판했다. 그는 즉각적인 시민권, 완전한 정치적 대표성, 미국 흑인을 위한 고등 교육을 강조했다. 또한 교육받은 상위 10%의 미국 흑인이 시민권과 평등을 위한 투쟁에서 나머지 사람들을 이끌 것이라고 주장하며, '재능 있는 10%'라는 개념을 전파했다. 듀 보이스는 흑인이 백인과 동등한 존엄성을 가지며 사회적?정치적?문화적으로 동등하게 존중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인종 차별에 반대하고, 흑인들이 동등한 교육과 고용 기회, 투표권, 그리고 사회적 정의를 통해 미국 사회에서의 평등을 얻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흑인들이 처한 특수한 상황과 정체성의 혼란을 '이중 의식'이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했다. 이중 의식이란 백인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인종 차별로 인해 흑인들이 경험하는 내적 '이중성'의 근원을 가리키는 철학적 개념으로, 미국 흑인이 '흑인'으로서 자아를 인식하면서 동시에 '미국인'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자 하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복잡한 심리 현상을 말한다. 워싱턴과 듀 보이스는 모두 미국 흑인의 발전과 평등을 열렬히 추구했지만, 서로 다른 철학으로 인해 커뮤니티 내에서 본질적인 논쟁을 촉발시켰다. 워싱턴은 백인 사회로부터 존경과 인정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 직업 교육과 경제 발전을 강조한 반면, 듀 보이스는 즉각적인 시민권, 고등 교육, 분리와 차별에 대한 적극적인 저항을 주장하며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워싱턴은 점진적인 통합 접근법을 믿으며 협력을 옹호한 반면, 듀 보이스는 기존 사회 질서에 도전하기 위해 즉각적인 변화와 정치적 행동주의를 촉구했다. 이들은 서로 다른 이념을 통해 평등을 위한 미국 흑인의 투쟁이라는 복잡한 지형을 헤쳐 나갔다. 워싱턴과 듀 보이스의 논쟁은 이 소설 13장, 14장, 15장에 묘사된 유색인 연맹의 연설과 22장의 윌과 아써가 나눈 대화에 잘 녹여져 있다. 폴린 엘리자베스 합킨스(1859-1930)는 1859년 미국 메인주 포틀랜드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1900년부터 1903년 사이에 네 편의 소설과 많은 단편 소설을 발표했다. 그중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 1900년에 출간된 첫 소설 『생의 나락에서 희망을 줍다』이다. 이 소설의 원제는 Contending Forces: A Romance Illustrative of Negro Life North and South로 우리말로 직역하자면 '투쟁하는 힘: 북부와 남부 흑인 삶을 예증하는 로맨스'라 하겠다. 독자의 접근성과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여 이 번역에서는 원제를 수정하여 제목을 달았다. 덧붙여 이 번역은 1900년에 출간된 책을 원전으로 하고, 최근에 옥스퍼드대학에서 출간한 같은 제목의 책을 참고했다. 합킨스는 이 소설에 이어 소설 『하갈의 딸Hagar's Daughter』, 『위노나Winona』, 『한 핏줄Of One Blood』을 시리즈로 출간했다. 이 기간 그녀는 『유색 미국인 매거진Colored American Magazine』의 편집자로 일하며 이 잡지에 여러 단편을 실었다. 그녀는 흑인 역사, 인종 차별, 경제 정의, 여성의 역할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 글의 편집 작업과 소설, 논픽션을 통해 당대 최고의 지식인으로 부상했다. 합킨스의 명성은 대부분 그녀가 40대에 쓴 작품에서 비롯되었지만, 20세에는 뮤지컬 희곡을 쓰기도 했었다. 또한 그녀는 1880년대까지 가족 앙상블인 '합킨스 유색인 트루바두르'에서 보컬리스트로 활동했으며, 1890년대에는 주로 속기사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여성 클럽 운동과 기타 시민 단체에서 활발히 활동했고 인종과 여성을 주제로 강연도 했다. 1898년에는 뉴잉글랜드 여성 클럽 연맹 연례 대회에서 여성 시대 클럽을 대표하여 연설했다. 그리고 1901년에는 보스턴 문학 및 역사 협회의 창립 회원이 되었다. 20세기 초, 합킨스는 유색인 협동조합 출판사를 통해 『생의 나락에서 희망을 줍다』를 출간하면서 더 많은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또한 『유색 미국인 매거진』을 통해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유색 미국인 매거진』은 처음부터 정치적인 성향을 띠었고, 흑인 지식인들(주로 워싱턴과 듀 보이스) 사이에서 갈등이 발생하자 부커 T. 워싱턴이 에이전트를 통해 이 잡지사를 은밀히 인수해 버렸다. 그리하여 이 잡지는 보스턴의 급진주의에서 멀어져 갔다. 잡지사 소유주가 바뀌면서, 합킨스도 이곳을 떠나 또 다른 전국 월간지인 『흑인의 목소리Voice of the Negro』로 옮겨 갔다. 합킨스는 1904년부터 1905년까지 이 잡지에 여러 비평 기사를 실었다. 합킨스는 활발하게 사회 활동을 한 덕분에 해를 거듭할수록 인지도가 올라갔다.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서는 자신의 이름으로 소책자를 출간했고, 여러 집회에서 끊임없이 강연을 계속했다. 1930년 8월, 폴린 합킨스는 케임브리지 자택에서 화재로 사망했다. 『생의 나락에서 희망을 줍다』는 미국 흑인 문학의 고전으로, 혼혈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미국 남북 전쟁 이후 흑인들의 비극적 삶과 경험을 그린다. 인종 분리와 차별에 직면하면서 겪는 어려움과 투쟁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미국의 인종 문제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동시에 한국 사회의 인종 차별 문제에 대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소설은 흑인 여성의 불평등?불공정 경험을 조명하고 여성의 권리와 평등을 역설하기 때문에 한국 독자들에게 한국의 여성 인권 문제와 연관하여 생각해 볼 거리를 제공한다. 이 소설을 통해 국내 독자들이 미국 흑인 문학과 역사, 문화를 접하고 문화의 다양성과 풍요로움을 경험함으로써 폭넓은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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