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자후기
푸코(Michael Foucault, 1926-1984)는 매우 매력적이며 상당한 흥미를 불러일으키지만 다가가기 그렇게 쉽지 않다. 그가 다룬 ‘낯선’ 주제들의 폭과 깊이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해박한 지식은 독자들의 기를 죽이기 충분했다. 무엇보다 이성, 진보, 확실성 등을 강조한 근대적 학문 체계를 통해 교육받은 사람들에게 그의 주장은 불편함과 당황스러움 그 자체이다. 하버마스(Habermas)는 푸코를 위한 조사에서 푸코를 마치 궁사(弓射)처럼 “현재의 심장을 조준(Taking aim at the heart of the present)”한 학자로 평가했다. 57세에 세상을 떠난 푸코의 주된 관심은 ‘현재의 역사(the history of the present)’였다. 그는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현재를 문제로 바라보고, 그 우연성(contingency)을 밝히고자 했다. 즉, 어떤 사고나 행동 유형이 특정 시기에는 문제로 규정되어 분류되는 반면에, 다른 시기에는 철저히 무시된 이유를 묻는다(Foucault, 1988). 이를 ‘문제화(problematization)’라고 하는데, 푸코의 관심은 현재에 대한 문제화였다.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핵심 물음은 교육자들이 “푸코를 왜 읽어야 하는가?”이다. 교육적으로 푸코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그의 연구는 교육적으로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관한 책이다. 오늘날 영국을 대표하는 교육사회학자인 저자 스테판 볼(S. J. Ball)은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을 찾고자 한다. 볼은 “푸코를 왜 읽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네 가지로 구분한다: ‘푸코에 관한 책은 더 필요한가?’, ‘교육정책의 역사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교육적 분류와 분리는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어떻게 하면 권력관계에 저항하고 자유로울 수 있는가?’ 이 책은 이들 질문을 중심으로 전체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은 엄격한 순서에 따라 구성된 것은 아니며, 책의 구성 또한 논리적으로 탄탄하지 않다. 오히려 각 장은 독립된 성격을 갖는 소논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책 전체를 개관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저자의 집필 의도를 파악한다는 점에서 제1장을 먼저 읽기를 권한다. 다른 장들은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크게 관계없다.
제1장은 볼이 이 책을 쓰게 된 개인적 소회를 밝힌 ‘자신의 역사를 다시 쓰기’이다. ‘나(내)’가 주어인 자전적 글쓰기의 형태를 취하기 때문에 조금은 낯설고, 어떤 부분은 저자의 잡담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교육사회학자로서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일생을 산 자신에게 푸코와의 만남은 학자적 정체성을 흔드는 일이었음을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푸코를 읽는 것은 투쟁이자 충격이었으며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 푸코는 당황스럽다. 푸코의 많은 독창적 아이디어들은 … 교육과정, 교육제도, 교육정책 관련 연구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렇지만 푸코의 관점, 연구 스타일, 학자와 지식인으로서의 면모 그리고 ‘어떤 것’이 되지 않으려는 그의 투쟁은 나에게도 똑같이 중요했다(p.10).
볼은 푸코와의 만남이 ‘투쟁, 충격, 경이로움’이었으며, 학자로서 자신의 삶을 ‘다시 쓰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푸코 관련 저서와 연구물들이 넘쳐나는 데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푸코에 관한 책을 쓰게 된 계기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이 이해한 푸코를 바탕으로 종래의 교육사회학은 어떤 의미와 한계를 갖는지를 담담하게 써 내려가고 있다. 더불어 푸코의 개념과 방법을 활용하여 교육을 이해하고 연구하려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권력, 고고학, 계보학, 지식 등에 대한 개념을 소개하고 있다.
제1장이 학자로서 ‘개인의 역사를 다시 쓰기’였다면, 제2장은 교육정책의 역사를 계보학적으로 재구성한 ‘교육정책의 역사를 다시 쓰기’이다. 볼은 영국을 중심으로 근대교육을 권력관계와 관련하여 분석하는데, 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분류, 배제, 정상화, 수정되는 일련의 과정을 분석한다. 교육정책의 역사를 다시 쓰는 볼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현재의 학교교육과 교육정책의 역사를 재고하는 것과 관련된 다양한 방식들을 소개했다. 분류, 배제, 정상화, 수정(치료/개선), 시간, 전문가, 그리고 지식의 역사가 그것이다. 보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주체(교사, 학습자, “타자들”)의 역사이자 실천(시험, 집단을 나누는 교육학)의 역사이며 담론(심리학, 유전, 비정상성)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계보학적 논의와 함께 또 다른 교육정책의 역사, 즉 피의 역사를 살펴보고자 한다(p.59).
볼에게 교육정책의 역사란 교육을 통해 정상과 비정상을 분류하고 분리하는 역사였다. 푸코는 권력관계를 통해 ‘통치되는’ 그리고 ‘통치되도록 하는’ 방식에 관심이 있었다. 그리고 통치와 관련된 권력을 영토를 대상으로 한 사목 권력, 개인의 몸에 주목한 규율 권력, 살아 있는 인구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생명관리 권력으로 구분했다. 그는 모든 시대를 관통하는 하나의 통치 합리성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역사적 시점에 따라 새로운 통치 합리성이 출현한다고 보았다(손준종, 2017: 166). 볼은 이러한 권력관계의 변화에 따른 통치 합리성과 교육정책과의 역사를 분석하고 있다. 볼은 2장에서 분류와 배제의 역사로서 교육정책 관련 연구물을 재구성하기 위한 기초를 다지고자 했으며, 엄청나게 다양한 푸코의 저작을 활용하여 학생이 어떻게 특정한 주체로 형성되는지를 밝히고 있다.
제3장은 근대교육의 ‘분류와 분리 그리고 차별의 역사를 다시 쓰기’에 관한 것이다. 2장이 교육정책의 역사에 대한 개념적 수준의 논의였다면, 3장은 성, 인종, 장애를 중심으로 분류와 배제의 계보를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오늘날 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상적인 분류와 배제를 논의하고자 한다. 다음은 3장에 대한 볼의 기본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푸코와 같이 우리가 외부의 관점, 즉 눈에 띄지 않고, 눈에 띄지 않게 되어 버린 개인들-범주화에 의해 그들 스스로를 말할 수 없는 이들, “특수” 또는 “비정상”인, 건강하지 않은 이들, “부적합한” 존재로 다루어진 이들-의 관점에서 교육정책을 연구한다면 어떻게 될까? 만약 우리가 그들이 권력과 맞닥뜨리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면, 그들의 숨겨진 역사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p.87).
볼에 따르면 국가 수준의 표준화된 학업성취도 평가, 책무성 강조, 통합교육 등의 교육정책은 교육적 문제를 우생학이나 신인종주의 지식에 따라 규정함으로써 특정 집단을 비정상적 위치로 배제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그는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기준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권력/지식에 따라 새롭게 구성된다고 주장하고, 교육정책이 특정한 교육 주체의 생산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분석한다.
제4장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주체를 분석하고 있다. 특히, 신자유주의 지배에 어떻게 저항하고 어떻게 자유를 누릴 것인가를 논의한다. 푸코는 지배가 있는 곳에 저항이 있다고 말한다.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라는 통치화(governmentalization)와 ‘어떻게 통치받지 않을 것인가?’라는 저항은 분리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아무런’ 통치도 받지 않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이런 식’으로 통치받지 않을 것인가 하는 점에 주목한다(Foucault, 2016 : 44). 그는 이러한 관점을 비판적 태도라고 한다. 볼은 비판적 관점에서 신자유주의적 시장 자본주의의 통치를 개관하고, 어떻게 ‘그런 식’으로 통치받지 않으며, 그것에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를 4장에서 다루고 있다. 이에 관한 볼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나는 현재의 심장을 명중시킬 목적으로 현재의 교육 역사를 쓰고, 교육정책의 역사를 다시 쓰기 시작했으며, 이를 통해 위반하고 기반을 뒤흔들고자 했다. 교육정책을 실천과 진리, 주체의 역사이자 권력관계와 통치의 역사로서 다시 쓰는 것이다. 나는 교육정책의 내부로 관심을 돌리고자 했다. …타자에 대한 “저열한” 분류와 배제의 역사, 타자를 분리하는 방식 그리고 인간성의 가능성의 한계를 설정하는 것에 주목했다. 나는 이것이 단지 시작일 뿐이며, 마무리를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p.154).
런던대학교 교육학과에 재직하고 있는 볼은 이미 1990년에 푸코와 교육(Foucault and Education: Discipline and Knowledge)이라는 제목의 책을 편집한 바 있다. 이 책은 서론과 3개의 장 그리고 총 10편의 논문으로 구성되었으며, 부제처럼 주로 규율 권력의 관점에서 푸코와 교육의 관계를 분석하고 있다. 이 책의 일부(7편의 논문)가 ??푸코와 교육??으로 번역된 바 있다. 푸코 입문서를 곁들여 읽는다면 이 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을 것으로 생각한다. 번역과 참고문헌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푸코의 많은 저서가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음을 알았다. 푸코를 읽고 공부하는 데 도움을 준 많은 번역자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다른 언어로 쓰인 글을 저자의 생각을 헤아려 우리말로 번역하는 일은 참으로 힘든 일이지만, 이 작은 번역서가 푸코를 알고자 하는 교육자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출판을 결심하였다.
이 번역서는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사회학을 공부하는 모임인 다락방 식구들의 공동 작업이다. 역자의 능력 부족으로 이 얇은 책의 번역이 참으로 힘들고 어려웠다. 학생을 가르치는 일과 번역하는 일을 병행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마무리하게 된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번역서를 출판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공부하는 것이 우선이었으며, 이 책을 번역하여 함께 읽고 논의하면서 푸코를 이해하는 짜릿한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었다. 역자로 이름을 올린 이들뿐만 아니라 다락방의 모든 벗이 공동 번역자인 셈이며, 다락방의 벗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역자의 늑장과 게으름을 비위 좋게 견뎌 주신 박영사의 안상준 대표님, 박영스토리의 노현 대표님, 이선경 차장님 그리고 책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신 황정원 님께 감사드린다. 힘겹게 탈고하고 나니, 무더위와 함께 여름이 갔다.
역자를 대표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