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려는 것을 형상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작가가 천국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작가는 애초부터 천국을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글 쓰는 시간은 세계의 구석을 염탐하여 낚아채는 사냥의 시간이다. 사냥은 세계를 매끈하게 자르지 않고, 숨겨놓은 이빨과 발톱을 드러내어 세계를 찢어놓는다. 사냥은 단순히 목덜미를 물어뜯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내면을 교란하고 감각에 충격을 가하여, 순식간에 경계를 무너뜨리는 교감의 순간이다.
생각은 비평적이지만, 몸은 소설적으로, 관계는 시적이기를 바라 본다. - 평론집을 펴내면서
거대한 전환은 현실이 되었다. 많은 경우 그랬듯, 전환은 언제나 불청객처럼, 쓰나미처럼 순식간에 들이닥친다. 놀랍게도 21세기 대재앙 코로나19는 세련된 얼리어답터들의 이론적 취향이었던 텔레마틱사회의 빗장을 거칠게 그리고 단숨에 풀어버렸다. 단순히 첨단 기술의 가능성을 확인시켜준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기술적 교감을 현실로 안착시킨 것이다.
과거 디지털은 인간을 버렸지만, 지금의 디지털은 인간의 속살을 향하고 있다. 전원이 꺼지는 순간 사라지는 0차원의 화면은 차가운 평면이 아니라, 철학적 성찰과 예술적 쾌감의 동화적 판타지를 눈 앞에서 그려낸다. 우리는 새로운 텍스트의 세계로 이민(移民)을 온 것이다.
나는 디지털 쓰나미를 조금 일찍 경험했다. 15년 전부터 강의 현장에서, 연구자들의 모임에서, 여러 주변의 상황들에서, 디지털, 대중문화, 혁명의 키워드가 쐐기처럼 박혀 떠나지 않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세계 일류 지향의 한국적 강박이 디지털 코리아에 불을 붙였고, 독서와 연구는 홀로 활개를 쳤다.
이 책은 이러한 고민의 산물이다.
디지털 태초에 텍스트가 있었다. 디지털 사회에서는 리얼리티가 텍스트로 재현되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를 기획하고 여기에 맞추어 새로운 리얼리티를 구성한다. 현실은 오직 텍스트를 따를 뿐이다. 모든 곳에 텍스트, 이제 기술의 바깥은 없다.
나는 오랫동안 기술이 명령하는 텍스트의 혁명적 변화에 주목해왔다. 한 순간도 완결되지 않는 액체사회에서 텍스트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려는 것’을 형상화한다. 그 사이 텔레비전과 인터넷 공간에서는 돌연변이 콘텐츠들이 폭발했다. 대중문화 텍스트들은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고의로 넘나들었고, 클릭을 유도하는 혁명은 관행이 되었다. 여기서 인간 본연의 것을 주장한다거나, 인간적인 것의 개념을 고집하는 태도에 의문을 가졌다. 정상성과 합리성의 강박은 통하지 않았다.
내면의 시대는 갔다. 모든 것은 표면 위에 있다. 디지털 화면에는 실재가 없다. 기존의 이미지는 실재를 바탕으로 하지만, 디지털 이미지는 화면이 꺼지는 순간 소멸하는 0차원에 있다. 화면 위를 몰인격하게 깜빡거리는 점과 멸의 세계에서 연구자는 해석의 의무를 스스로 진다. 중요한 것은 ‘암호’의 해석보다 ‘암호화 과정’의 해석이다. 역동적으로 자가증식하며 순식간에 과거를 묻어버리는 유희의 기술에서 암호는 없고, 암호화 과정만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