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캉디드’는 프랑스어로 ‘candide’, ‘천진한, 순진한, 순수한’이라는 뜻이다. 주인공 캉디드는 이름이 의미하는 것처럼 너무나도 해맑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가 이런 시선을 갖게 된 데에는 그의 스승 팡글로스의 영향이 크다. 팡글로스에 따르면, 세상은 항상 ‘최선의 상태’로 존재한다. 캉디드는 팡글로스의 가르침을 삶의 가장 중요한 신념으로 삼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의 앞에 펼쳐진 삶은 그를 비웃기라도 하듯 온갖 우여곡절과 역경을 펼쳐내면서 그를 가로막는다. 그러니까 소설 『캉디드』는 청년 캉디드의 파란만장한 인생 여정을 고스란히 따라간다.
캉디드는 베스트팔렌 지방에 있는 툰더-텐-트론크 남작의 성에서 나고 자란다. 남작의 아름다운 딸과 사랑에 빠지지만 입을 맞추었다는 이유로 성에서 쫓겨난다. 이로써 캉디드는 난생처음으로 ‘바깥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세상은 어차피 아름다울 수 없다던 팡글로스의 말씀만 철석같이 믿고 있던 캉디드의 가슴 깊숙한 곳에서 마침내 의심의 싹이 꿈틀대기 시작한다.
볼테르의 『캉디드』속 캉디드와 그의 스승 팡글로스가 겪는 시련들은 가히 끔찍하며, 그들이 만나는 인간 군상들을 통해서도 처절한 불행과 마주하게 된다. 비인간적인 고문은 물론 자연재해, 전쟁, 강간, 종교적 박해 그리고 노예 생활까지 인간을 그야말로 저 밑바닥까지 몰아넣는다. 그런데 그런 위기마다 팡글로스는 이 세상이 최선이라는 위로를 내놓았고 캉디드는 스승의 주장을 계속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볼테르는 이 철학적 콩트를 통해 라이프니츠의 사상을 풍자한다. 그의 비판은 종교와 권력을 향해서는 날이 서 있다. 그런데 작품을 깊숙이 관통하고 있는 시선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있지 않아 보이는 것은. 칼날을 가는 데만 몰두하기보다 오히려 균형을 유지하려고 애쓰려는 철학자의 노력이 엿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단순한 냉소와 조롱보다 인간이 삶 속에서 무엇이, 어떻게 뿌리내려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했던 것이다.
볼테르는 과거와 미래가 아닌 현재에 무게를 두고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과거에 어떤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현재 상황이 이렇다는 안주는 필요 없다 말한다. 현재에 어떤 일이 일어나든, 그것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이 모든 것은 더 좋은 미래를 위한 것이니 현재에 집중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단번에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볼테르는 말한다. 이제는 우리의 비옥한 땅을 일구고 가꾸고 경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과거를 돌아보며 반성하고 혹은 기뻐하는 것도 나의 ‘지금’을 위한 것이라고, 미래를 내다보며 계획하고 기대하는 것 역시 나의 ‘현재’를 위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그는 힘주어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