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를 쓴 지 여러 해가 지났다. 원고를 묵히고 출간을 주저한 이유는 여러 가지다. 하지만 무엇보다 고통으로 아우성치는 세상의 아픔을 외면한 채 시답잖은 사적 이야기나 하는 것 같은 자괴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부끄럼을 떨치고 책을 내기로 용기를 낸다. 반듯한 이성과 논리로 치장된 학자의 모습에서 벗어나 개인으로서 나의 속살을 드러내고 싶었다. 오히려 그것이 대중과 소통하고, 또 나를 알고 있는 지인들에게 친근감을 주리라는 믿음도 한몫했다.
한 주에도 몇 차례 부고를 받는다. 머잖아 나도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갈 것이다. 이제 현생에서 살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죽기 전까지 삶은 계속될 것이고, 매일 매 순간 나는 새롭게 태어나고 죽을 것이다. 살아 숨 쉬는 마지막 순간까지 나를 사랑하며 죽어야지. - 머리말
동서양에는 인류에게 영감과 감화를 안겨준 많은 고전이 있다. 그중에는 법학교육을 위한 텍스트로 활용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훌륭한 작품이 적지 않다. 그 작품을 법의 시각으로 읽고 분석하면 자연스레 법률지식은 물론 법적 정의를 체득할 수 있다. 이 방법은 문학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스토리)를 법률적 관점에서 읽고 재해석함으로써 작품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한마디로 법으로 읽는 문학, 문학으로 읽는 법이다. 이 방법은 이성과 감성을 조화시켜 독자를 정의의 길로 이끄는 훌륭한 길잡이 역할을 한다.
이번에 내는 『법으로 읽는 고전소설: 나는 태양 때문에 그를 죽였다』는 법문학에 관한 두 번째 결과물이다. 첫 번째 작업은 해방 이후 필화로 법정소송을 겪은 일곱 편의 시와 소설을 분석한 것으로 『법정에 선 문학』(한티재, 2016년)으로 결실을 맺었다. 법학자이자 시인-작가로서 나는 국가권력에 의해 목 잘린 문학작품과 저자의 권리를 복권시키고 싶었다. 출간 당시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공개되어 여러 언론사에서 이 책을 소개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하였다.
법문학에 관한 두 번째 작업인 이 책은 유럽의 고전 가운데 일반 대중에게 잘 알려진 소설작품 여덟 편을 선정하여 법의 관점에서 분석하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문학은 물론 법학에서도 이성뿐 아니라 감성도 인간이 가진 훌륭한 가치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이성과 감성이 조화된 상태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법학(혹은 법률)을 약자의 편에 서서 싸울 수 있는 학문(혹은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