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프레임은 어떤 특정 시간을 얼려버리고, 세상의 넓은 공간 중 아주 작은 부분만 오려낸다. 이렇게 선택된 시?공간은 세계를 바라보는 창이자 지표이다. 한때는 낯익었던 그 세상은 지금은 낯설음으로 어리둥절케 한다. 사각의 틀에 갇힌 세계는 과장, 알레고리, 그로테스크, 은유, 환유와 같은 수사로 가득한 미로의 세계이다. 낯익은 세상들이 사진작가의 지각을 통해 해체되고, 재구축되는 노역 속에서 상상과 주관적 가치로 쌓은 성(城)의 가장 높은 망루에 올라 이 세계를 새롭게 읽을 수 있다고 믿는 사진작가들……. 나는 사진 마을에서 그들의 꿈을 엿보며 살아온 것이 언제나 즐거움이었다.
사진은 나에게 이념도 이론도 아니기에 사진에 대한 평가와 재단의 잣대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단지 좋은 사진은 온몸을 뜨겁게 관류하는 사랑의 대상으로서 나의 눈길을 기다리고 있음을 어렴풋이 느낀다. 좋은 사진이라니!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겠지만 그것은 깊이와 크기를 느끼게 하고, 삶에 대한 성찰을 구체적인 이미지와 결합시키는 사진일 것이다. 그러하기에 2차 텍스트를 생산할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이 열려 있는 사진에 더욱 애정이 가는 것이다. 나는 거기에 입맞추고 싶다. 그 입맞춤이 사진에 생기를 부여하고 의미를 증폭시키며 속살을 드러낼 수 있다면…….
따라서 여기에 수록된 글들은 사진을 억압하고 지도하는 관점에서 쓴 것이 아니라 사진에 다가가 입맞춤하고 싶은, 글 쓰는 자의 욕망의 흔적들이다.
다른 모든 예술들이 그렇듯 사진 또한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의 결과다. 그저 사물 하나를 찍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더 깊은 인생의 의미를 추구한 사진가들의 통찰이 한 장의 사진 속에 녹아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진이 인생이라는 큰 물줄기와 만날 수 있는 이유다. ('책 머리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