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문학은 글자 맞추기가 아닌 시다
자유시가 언어의 자유분방한 개성적 창조를 통해서 병렬적 미학을 형성하는 것이라면 시조는 정통적 특유의 율격을 통하여 완결적 미학을 이루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시조 문학의 율격은 우리의 정서를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고, 고유 정서와 변화하는 현실을 함께 수용할 수 있으며, 이 율격적 형식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생리에서 빚어진 호흡의 시라 할 수 있다.
...(중략)... 시조 문학이 왜 존재해야 하며, 왜 오늘날에도 계속 씌어져야 하는가, 시조 문학도 시의 범주 안에 존재하는 것인데 왜 시로서의 격을 늘 문제 삼는가. 실험과 시도라는 이름으로 시조 문학 본래의 특성을 왜 부수려고만 하는가, 이렇게 많은 문제들을 항상 제기하는 까닭이 무엇인가. 그것은 모두 시조 문학의 존재 이유나 본래적 특성을 무시하고 파괴하는 것만이 능사인 것으로 생각하는 소수의 사람과 시조 문학을 무슨 상황 묘사나 심경 토로의 도구쯤으로 아는 많은 사람들의 그릇된 시조관 때문에 나온 것이 아닐까.
시조는 시조여야 하며 현대 시조는 시여야 한다는 두 가지에 대한 고집, 그것이 나의 시조 문학 창작법이라 하겠다.
끝으로 시조를 3·4조의 율격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은, 시조 율격의 우리말 특성인 음보율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무식하다고 한다. 시조 문학은 3장 6구 4음보 시가로 알고 써야 맞다. 우리말도 모르고 어떻게 글자 맞추기로 시를 쓴단 말인가. - 머리말
나의 시 · 나의 시조 · 나의 동시
오늘날 현대시는 함부로 씌어진 것들이 너무 많다. 공감되지 못한 해석, 작위적 언어 배열, 부적절한 수사가 횡행하여, 마침내 무엇을 표현했는지조차 모를 아리송한 것들 말이다.
시는 일상의 말이 아니다. 시인의 감성을 통해 표현된 느낌의 언어요, 시인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해석된 말이다. 그래서 시인의 감동이 전달되고, 시인의 철학이 옮겨진다.
따라서 정련된 언어와 걸맞은 수사, 그리고 시적 사유가 합일하는 문학의 표현이 요구되며, 어렵지 않아야 한다.
나의 시법은 괜히 어렵고, 말이 복잡하며, 아리송하고, 현학적인 것을 멀리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중략)... 나는 시로 써야 할 것은 시로 쓰며, 시조적 양식에 맞을 것은 시조로 쓰고, 동시적 정서는 동시로 쓴다. 물론 성인과 어린이 독자에게 각각 맞도록 구조?언어?발상?해석을 다르게 고려하여 세 가지 장르로 쓴다. 이 모두 시이다.
여기 내가 쓴, 감히 ‘좋은 시’ ‘좋은 시조’ ‘좋은 동시’ 99편을 모아 보았다.
- 머리말 중에서
다른 연작시와 달리「해」연작시는 ‘해’라고 하는 소재와 함께 주로 밝음ㆍ생명ㆍ희망의 주제로 짜여져 있으며, 엄마의 따뜻한 손길이나 가슴의 이미지로 이뤄져 왔다고 생각합니다. 어둠을 사르는 밝음, 구겨진 곳을 펴고 아픔을 다스리는 손길, 자상하고 따뜻한 어머니의 마음이 해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것들이었습니다. - 머리말
다른 연작시와 달리「해」연작시는 ‘해’라고 하는 소재와 함께 주로 밝음ㆍ생명ㆍ희망의 주제로 짜여져 있으며, 엄마의 따뜻한 손길이나 가슴의 이미지로 이뤄져 왔다고 생각합니다. 어둠을 사르는 밝음, 구겨진 곳을 펴고 아픔을 다스리는 손길, 자상하고 따뜻한 어머니의 마음이 해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것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