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책 몇 권을 읽었다고 철학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도시에 관한 몇 권의 책을 읽었다고 도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것 역시 아니다. 우리 본성이 지적 사유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철학을 이야기할 수 있고, 우리가 도시 내부에 거주하기 때문에 도시를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글은 공동체, 공공, 그리고 개인의 존재 의식과 함께 오직 도시 속 거주의 바른 가치가 무엇인지를 들여다보기 위해 적혀진 것이다. 그것을 의식화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목적이다. 이 글의 배경은 풍요로워 보이는 유럽 도시의 거주 풍경으로부터 도시에 대한 침잠하는 상념에 의해 적혀지게 되었다. 무엇보다 이 글을 쓸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도시, 도시 내부, 내부 삶의 세계를 아직 제 자신의 언어로 무어라 형태화할 수 없었을 때, 긴 시간에 걸쳐 설명해주시고, 이해시켜주시며, 인내심과 함께 기다려주시어, 공명할 수 있게 만들어주신 옆방에 계신 분 때문이다, 이 글이 빛을 볼 수 있었던 것은 필자를 아들처럼 대해주셨던 일흔둘의 제 학문의 주군, Gianni Ottolini 교수님 덕분이다.
본문 어딘가에서 설명한 거주 장소의 결여로부터 오는 순수한 욕망이 거주 장소의 창조와 획득, 동시에 거주의 가치를 확보해 실현된다면, 불순한 욕망의 덩어리로 변한 도시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기만 한다면, 거주 장소를 창조하기 위한 욕망은 윤리적인 욕망의 실재(거주의 가치가 담긴 장소)가 될 수 있는 가능성(ergon/일)을 갖게 될 것이다. 그래서 도시가 생명의 에너지만을 안으로 흡수하여 밖으로 크기의 성장만을 “생산하는 욕망”과 “욕망하는 기계”가 되는 것에 대항하여, 순수하고 윤리적이고 인격적인 욕망의 실재로 변하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