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이 나의 인생행로를 아에 바꿔버린 셈인데, 가능한 손질을 위해 이십 년 만에 이 책을 새로 읽어보고 있는 동안, 나는 마치 내 어린 시절의 빛바랜 흑백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깊은 감회를 느꼈다. 우습지만, 나 자신에 대한 애틋한 연민도, 당초 예정보다 훨씬 더 길게 이어진 휴지기 뒤, 실로 오랜만에 소설 하나를 지어 막 펴내면서 어쨌거나 새로 시작해보자며 들메끈을 조여 매고 있는 판이었기에 더욱더 그랬을는지도 모른다. 나의 날이 다 저물기 전, 아름다운 그림 하나는 꼭 그려내 보고야 말겠다.
아비를 미워하고 어미의 죽음을 바라는 사내 하나가 있었다. 아비에 대한 감정이야 그렇다 치고라도 어미는 지극한 마음으로 공경하고 있는데도 그랬다. 버거운 자괴감을 줄기차게 느끼고 있으면서도 그런 악마성은 좀처럼 극복되지 않았다. 번민했다. 당연한 번민이었다. 당연한 그 번민으로 말미암아 우스꽝스럽게 일그러져 있는 얼굴, 괜찮은 그림거리가 될 듯했다.
그래서 그 얼굴 바투 앞에 화가를 세우고 곤두선 눈꼴로 그 사내의 그 얼굴을 응시하며 그림 하나를 그린다고 그려 보았지만, 당초 그려 보려던 그런 그림이 되지 못했다. 회화조로 그리려 했는데 엄숙조가 된 것부터가 그렇다. 늘 이 모양이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못한다. 달리 재미있는 놀이거리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