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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문학일반

이름:우찬제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62년, 대한민국 충청북도 충주

직업:문학평론가, 대학교수

최근작
2023년 12월 <발견과 확산 : 지역, 매체 장르 그리고 독자>

책의 질문

책은 창이다.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고 관찰하며 음미하는 창이다. 새로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조금 다르거나 더 깊은 질문을 던지게 하는 창이다. 창가에서 책을 읽는 이 그림에 유난히 이끌리는 것도 그런 까닭일까. 제시 윌콕스 스미스(Jessie WillcoxSmith, 1863~1935)의 「창가에서 책 읽는 여성(Woman Reading byWindow)」. 미국 일러스트레이션 황금기를 빛낸 “가장 위대한 순수 일러스트레이터”로 꼽히는 그녀는 창가 책상 위에 여러 권의 책들을 세워 놓거나 쌓아 두었다. 복합적인 책의 우주 속에서 펼쳐진 책을 읽던 숙녀는 고개를 들어 책 너머 창밖을 살포시 응시한다. 막 읽은 내용을 음미하며 창밖의 현실과 우주에 새로운 길을 묻는다. 그윽한 응시는 심원한 질문과 통한다. 그러기에 질문의 창인 책은 우주로 통하는 길을 열어준다. 대개 창가에서 책 읽는 소녀/숙녀를 그린 그림에서 창은 그저 배경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이 그림에서 그렇지 않은 것은 각별한 시선 덕분이다. 책을 읽던 눈은 책의 내용을 반추하며 책 너머 창가의 풍경에 그윽한 시선을 보낸다. 그 시선이 단순치 않다. 고즈넉하기만 한 게 아니다. 책의 내용과 창밖 외면 풍경과 본인의 내면 정경이 내밀하게 교감하면서 어떤 순간은 촛불처럼 격렬하게 사념들이 타오르기 때문이다. 타오르는 사념들은 또한 질문한다. 그 풍경 너머로 건너가고, 그 내면의 심연으로 내려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질문들이 잇달아야 한다. 그러니 책은 곧 질문의 창이다. 천등산 박달재 아래 산골에서 살았던 어린 시절, 내게 내 세상 바깥으로 나가는 길은 오로지 비행운이었다. 아주 가끔 비행기가 저편으로 날아가면서 내는 비행운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그 방향으로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는 몽상에 사로잡히곤 했다. 사방이 산으로 가로막혀 있는 곳이었기에 그 산 너머의 풍경을 헤아리기 쉽지 않던 미몽의 유년기였다. 저 산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또 산이 있을까? 너른 평야를 거쳐 바다가 펼쳐질까? 그렇다면 바다 건너에는 무엇이 있나? 또는 하늘은 얼마나 높은가? 하늘을 뚫고 그 위로 더 높게 비상할 수 있을까? 태양보다 더 높이 올라갈 수 있을까? 그렇게 올라갈 수 있는 동아줄이 있을까? 혹시 썩은 동아줄이면 어떡하나? …… 몽상은 자유롭고 활달했지만 막연했고 엉성했다. 몽상의 길은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았다. 이어질 듯 끊어졌고, 끊어질 듯 다시 이어지기도 했다. 구멍이 많았고 빈틈이 즐비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그 빈틈들을 메우며, 끊어졌던 몽상들을 이어가기도 했다. 자연의 풍경은 내게 자유로운 몽상으로 다가왔지만, 책 안의 풍경들은 더 구체적이고 더 실감 있게 다가왔다. 시골의 다락방에서 책을 읽다가 졸리면 편안하게 자다가 깨면 이어 읽고 하던, 순수한 책 읽기 시절이었다. 다락방에는 산쪽으로 난 작은 창이 있었다. 책을 읽다가 종종 산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놀라워라. 풍경이 달라지면 책의 수용 양상도 달라졌고, 책에서 읽은 것에 따라 풍경은 재발견되었다. 창 안의 책과 창 밖의 풍경 사이에서 발견과 재발견을 거듭하면서,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길을 물으며 성장했던 것 같다. 누구에게나 그랬겠지만 내게도 책은 길이었다. 혹은 길을 찾기 위한 지도였다. 오래전 북미대륙에서 지내던 때의 이야기다. 수영장 탈의실을 이용할 때마다 깜짝 놀라곤 했다. 내 이름이 왜 여기 붙어 있지? CHANGE라고 적힌 탈의실의 명패를 내 이름 CHANJE로 잘못 읽어 놀란 것이다. 그러다가 내 이름을 닮은 CHANGE를 내 삶의 어떤 화두로 삼으면 어떨까? 질문했다. 나도 그렇고 함께 공부하는 후학들이 책을 읽고 연구하는 것이 결국 긍정적이고 소망스러운 변화의 길을 찾아가기 위한 것이겠기 때문이다. 이 에피소드와 함께 나는 동행하는 후학들에게 이런 얘기를 자주 하게 되었다. 질문을 통해 창의성을 계발하는 역동적이고 혁신적인 변환기CHANGER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우리는 질문을 통해 ‘혼돈 속의 질서’chaosmos를 탐문하며 창의성creativity을 발현할 수 있다고(C), 질문을 통해 하이브리드hybrid한 복합적 현실을 투시하며 새로운 희망hope을 열어나갈 수 있다고(H), 질문하는 것은 탁월한 대안alternative을 발견하고 새로운 해답answer을 찾아나가는 예술art이라고(A), 질문을 통해 우리는 지식이나 일상생활 다방면에서 최신의newest 네트워킹networking을 확보할 수 있으며(N), 질문은 창의적인 발전기generator가 되고 이 발전기가 잘 돌아가면 타인에게 관대generosity할 수 있으며(G), 타인과 공감empathy하는 가운데 나와 남 그리고 세계와 자연 모두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할 수 있는 에코토피아ecotopia에 이르는 길에 동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질문을 계속하는 한 자신을 정체의 늪에 머물게 하지 않고 끊임없이 스스로 정련refinement하고 개혁reformation해 나갈 것이라고(R), 그래서 당신들 누구나 창의적 변환기CHANGER로 희망을 열어나갔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소망처럼 말해왔다. 또 말했다. “나는 질문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그런 생각과 창의적인 질문으로 희망찬 미래를 신나게 열어나가 보자고. 이런 생각으로 이 책에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우리 시대의 고민과 고전적 지혜 및 성찰적 사유 사이의 대화가 빚어내는 질문들은 모두 6부로 구성되었다. 1부 ‘여기는 아닌, 지금은 아닌, 나는 아닌?’에서는 지속 가능성과 생명 평화론, 기후 위기 등과 관련되는 질문들을, 2부 ‘사막에서 우물의 노래를’에서는 경쟁이 강조되는 신자유주의 분위기를 거슬러서, 그 피로사회를 넘어 어떻게 웰빙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들을 펼쳤다. 3부 ‘미친 상상으로 네잎 클로버를’에는 인간적이고 인문적인 것의 가능성 및 창의적 발견과 수행적 진화를 어떻게 추구할 것인가, 하는 질문들이, 4부 ‘절망의 산에서 희망의 돌멩이를’에는 절망을 심하게 앓는 시절에 어떻게 희망을 배울 수 있고 희망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들이 망라되어 있다. 또 5부 ‘무의미의 의미와 환대’에서는 삶의 의미에 대한 탐문과 인간성 회복을 위한 성찰의 질문들을, 그리고 6부 ‘나는 질문한다, 고로 존재한다!’에서는 책과 책 읽기와 관련된 다양한 사유 및 책의 질문과 관련한 근원적 지혜를 열어나가기 위한 질문들을 담았다. 미리 고백하거니와 여기서 던진 질문은 우리가 던질 수 있는 질문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우리가 함께 읽었거나 아직 읽지 못한 책에는 무궁무진한 질문들이 보물처럼 숨어 있다. 질문의 보물창고인 책에서 더 많은 질문이 발굴되고 채굴되고 토론되고,대화를 통해 새로운 스토리텔링으로 진화할 때 우리 사회와 문화는 새로운 지평과 척도를 알게 될 것이다. 특히 급변하는 챗GPT 환경에서 우리는 질문의 중요성을 더욱절감한다. 지식이나 정보의 축적보다, 그것을 역동적으로 탈주하는 새로운 질문이 새로운 세계의 창을 열어젖힌다. 창의적 질문은 예기치 않은 정보들의 연결과 화학적 융합을 가로지르며 도래하지 않은 미래를 앞당겨 보여주게 한다. 문제 풀이에 앞서 문제를 발견하는 질문이 훨씬 요긴하다. 웬만한 풀이는 머잖아 챗GPT도 어느 정도 해줄 수 있겠기에 그렇다. 질문을 통해 우리는 존재의 정체성과 직능의 정당성을 아울러 모색할 수 있지 않을까. 깊은 질문이 깊은 학습과 연계되면서 깊은 삶을 연출하며 미래의 희망을 일구게 되지 않을까. 요컨대 질문은 미래를 여는 창이다. 이 책은 ‘우찬제의 책 읽기 세상 읽기’란 제목으로 『세계일보에 연재했던 글들을 수정한 것이다. 연재 기회를 주신 세계일보사와 황온중 부장님께 감사드린다. 책을 내주신 정중모 대표님과 책을 내는 전 과정을 독려해주시고 관련 회화 작품을 직접 찾아글과 어울리게 편집하여 책의 미학과 품격을 크게 높여주신 편집인 민병일 선생님, 그리고 서경진 편집장님의 노고에 심심한 사의를 표한다. 끝으로 이 책을 펴내는 작은 보람과 기쁨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족과 나누고 싶다. 2023년 3월 3일 로욜라도서관에서 - 책머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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