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과 글
아마 내게는 방랑벽이 있는 모양입니다. 20대 초반부터 기회가 되면 바람난 사람처럼 길을 떠나곤 했기 때문입니다.
길을 떠날 때, 내 가방 속에 고독이거나 쓸쓸함, 또는 기대감이거나 흥분, 아니면 ‘이유 없이’라는 것을 담아서 나서곤 했습니다.
때로 길을 잘못 잡아 헤매기도 하고, 잘못 들어 유턴하기도 하고, 어느 곳에서는 무엇엔가 푹 빠져 한참이나 서성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모음 하나가 나를 매료시켰습니다. 바로 ‘이’입니다.
기역과 리을 사이에 이 ‘ㅣ’를 세우면 길이 되고 눕히면 글이 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 모음 하나를 ‘길에서 글을 만나는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고맙게도 내가 가는 길에는 늘 글이 맞아주었습니다. 글은 언제나 나보다 먼저 그곳에서 나를 기다려 주었고, 나는 글의 도움으로 여행의 시작과 끝을 맺곤 했습니다. 어쩌면 내게 길과 글은 가장 가까운 친구이며 이웃이며 동지이며 동행자이기도 합니다.
여기 또 다시 길에서 만난 글을 소개해 드립니다. 독자들에게 소개해 드리는 것을 기뻐하면서, 더불어 또 다시 글을 만나기 위한 길을 떠나려는 이유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단상을 모아 여러분들께 내어 놓는 것은 내가 알고 있으며 생각하는 것들을 나누어 드림으로 누구에겐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입니다.
하나의 낱말을 또 다른 의미로 확장해 보는 것, 낱말의 결론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고, 그렇게 깨닫는 것을 삶에 적용하는 것, 이런 삶의 방식은 비단 글을 쓰는 이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책 제목 ‘단상’에 숫자 153이라고 정한 것은 기독교에서 큰 의미를 주는 숫자, 곧 실패와 좌절과 절망이 성공과 용기와 희망으로 전환되는 숫자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 내용도 153편으로 구성하였습니다. 그리고 소개되는 글들은 특별한 순서로 배열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가능한 연계되는 단어들을 부분별로 모아서 소개하지만, 각 낱말들이 주는 의미는 그 낱말에서 깨달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 2023년 봄, 조치원역을 바라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