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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박명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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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거울과 유리창>

거울과 유리창

01 세 번째 평론집을 상재합니다. 글쓰기를 통하여 자기 구원을 찾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만큼 굳건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믿고 의지하면서 깊은 애정을 쏟을 수 있는 건 여전히 문학뿐입니다. 그렇게 읽고 쓰는 작업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지금은 그런 열정들이 내가 갈망하던 삶의 몸짓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문장 작업으로 숲과 생명을 가꾸는 행렬에 끼어들어 창窓을 만들고 싶을 뿐입니다. 작가와의 귀한 인연으로 작품을 읽었고 글을 묶었습니다. ‘작품의 행간을 찾는 눈’ 그리고 이정표를 만드는 일이 단비가 될 것이라 믿었던 시간의 흔적입니다. 인식과 표현의 불완전함도 언젠가는 반드시 극복될 것이라 여겼기에 멈추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시간의 흐름에 의지하면서 여전히 미지의 세계에서 헤매던 흔적이기도 합니다. 그 고독의 도정들이 독자와 마주할 수 있는 연결 지점을 새롭게 맞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02 1부에서 다룬 이기영, 신채호, 강병철, 윤정모의 소설 작품론은 감시와 탄압의 시대를 기억하는 힘으로 정리했습니다. 2부에서는 권덕하, 유계자, 박송이, 이선희, 장인무, 임경숙, 오충, 조동례, 황정산, 박용주, 이문복 시인을 호명합니다. 동시대 작가와 호흡하고 그 소중한 인연을 나눈 시간의 흔적에 고마움을 표합니다. 3부에서는 청소년 문학을 담았습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지원받았던 ‘청소년문학과 노동’이라는 주제로 발표했던 글과 청소년시집 해설을 포함했습니다. 청탁받아 쓴 글 가운데 1부와 2부에 포함하기 애매한 채광석 관련 글 등을 담았습니다. 03 세 번째 평론집 제목을 『거울과 유리창』으로 정했습니다. 이름은 그 자체가 주인공이 될 수는 없지만 존재의 몫을 톡톡히 감당합니다. 제목이 실체를 규정하기도 하고 때로는 실체의 등장만으로도 이름의 의미를 축소하거나 확대하기도 합니다. 거울은 존재를 비추는 반영체입니다. 누구든지 스스로 자신을 마주할 수는 없으므로 거울과 같은 반영체를 통해서만 자신을 만날 수 있습니다. 문학작품은 그 자체로 시대와 사회 그리고 개인의 내밀한 면모를 다양하게 보여줍니다. 그래서 반영의 의미가 그림자를 비춘다는 좁은 시각을 벗어나 세계관과 시대상으로 확장되어 드러냅니다. 그 세계의 테두리에는 ‘나’도 담겨있습니다. 유리창은 ‘너머’를 보여주니 ‘나’와 ‘너머’의 세계 사이에 함께 존재합니다. 동시에 ‘나’는 이곳에, ‘너머’는 유리창 저곳에서 움직입니다. ‘나’가 관여할 수 없는 그 객관화된 세계를 냉철하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갈망했습니다. 『거울과 유리창』 그 균형감각으로 존재하는 비평을 떠올렸습니다. 작가의 내면이나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의 관점에서도 유리창이라는 ‘너머’의 객관성을 중시해야 하겠지요. 하지만 그 균형감각은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이상일지도 모릅니다. 저에게 모든 문학작품은 거울이며 유리창입니다. 우선 작품이라는 거울을 통하여 작가와 만나고 하염없이 그 안에서 배우고 놀고 사랑하고 새롭게 창안한 세상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작품을 만나는 모든 순간, 또 하나의 거울을 간직하게 되는 기쁨을 특별히 사랑합니다. 한편 저의 선입견과 자의식을 버리고 객관화를 지향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이 노력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합니다. 제가 선택한 거울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 너무도 편안하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기울어진 운동장’처럼 균형감각이 부족하다면 그것은 문학작품도 사람과 같아서 모두에게 균일하게 사랑과 관심을 부여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저는 유리창으로서의 작품해석에 주의를 기울이겠습니다만 거울로 만나는 작품해석에 더 깊은 공력을 쌓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 누구나 편하게 읽을 수 있는 평론을 쓰고 싶었음을 고백합니다. 글쓰기의 공간을 마련해준 <토지문화관>과 〈연희문학창작촌〉 그리고 담양의 <글을 낳는집>에서의 시간과 진도의 <시에그린> 등 아름다운 배경에서의 깊은 인연에 감사드립니다. 2024년 7월 공주에서

슬픔의, 힘

감히 단언컨대, 변혁의 귀퉁이에 미미하나마 힘이 되고 있다고 믿지 않았다면 저는 단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세상이 합리적으로 변화하고 발전한다고 믿었다면 도중에 펜을 놓아 버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저의 믿음은 온전히 불완전함, 불합리함, 그러함에도 불가사의하게 무한생성을 이루어 내는 아수라 세상, 특히 미물에 불과하면서도 무한반복 속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사람들의 밑바닥 이야기에 대한 관심과 사랑입니다. 그 이야기가 슬플수록, 아플수록, 지금까지 알고 있던 어떤 편견과 선입견을 깨뜨리는 새로움의 미학을 변주하며 빛난다는 어리석은 믿음입니다.

안녕, 개떡선생

책을 발간하게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충남교육연구소 소식지에 「박명순 선생님의 교단 이야기」라는 꼭지에 연재를 하면서도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전교조 해직 교사도 아니었고 참교육을 위한 선봉에 서지도 않았던 평범한 교사였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사연들을 주목하는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거대서사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곤 했던 소소한 이야기들이 중심 언어가 되는 시대이기도 하고요. 그런 세상의 변화 속에서 용기를 내게 되었습니다. 저의 이야기는 교사도 아니고 작가도 아니고 한갓 민초의 물음표이며 넋두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누구나 한 번쯤 품어보았음직한 꿈과 자화상이며 어쩌면 숨기고 싶었던 ‘내 안의 나’일 수도 있습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지도 못했고 사재를 털어서 장학금을 만드는 미담도 없습니다. 아버지는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고 어머니는 초등학교 4학년 중퇴의 학력을 가진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선생님이 되었다는 것을 명예로 알고 살았을 뿐입니다. 단 한 번도 학생들을 얕잡는 언행을 해본 적이 없었고 학교라는 공간을 폄하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요. 학교는 자랑스러운 일터였고 부족한 내면을 키우는 배움터였습니다.

영화는 얼굴이다

관심과 사랑이 반드시 일치하는 건 아니다. 나 역시 사람에게 관심이 많았으나 그만큼 사랑했었는지는 자신이 없다. 오가는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처럼 특정하지 않은 다양한 사람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모두 사랑일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때로는 스치는 실루엣 하나만으로도 사람을 읽을 수 있었던 그 순간이 좋았을 뿐이다. 그 사람의 연륜과 몸에 새겨진 질곡의 언어를 만나는 순간이 늘 감격스럽다. 사람 자체가 한 권의 책이 되는 것처럼, 하나의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창문처럼 그렇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영화는 여행이다』(삶창) 출간 이후 6년이 지났다. 그동안 과분한 사랑을 받았고 그 힘으로 영화 이야기를 지금까지 집필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영화 에세이를 출간하면서 제목 만들기에 고심을 했다. 그렇게 『영화는 얼굴이다』를 만났다. 낯선 느낌이면서도 안으로 확 안기는 이름이 될 수도 있으며 우리말 ‘얼굴’의 어원인 ‘얼골’도 떠올려 보았다. 영혼을 의미하는 ‘얼’과 골짜기를 의미하는 ‘골’이 합친 말이 자연스럽게 ‘얼굴’과 포개진 것이다. 영화를 통하여 새롭게 만난 세상, 삶의 현장 그 모든 것들을 가장 섬세하게 보여주는 건 얼굴(얼골)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한 편 마다에 담긴 이야기를 얼굴(얼골)로 기억하기를 갈망하였음을 밝힌다. 언젠가 마주했던 아름다운 순간의 표정일 수도 있고 가장 가슴 아팠던 기억 속의 인연일 수도 있다. 영화를 읽고, 영화와 놀고 나는 영화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것과 전문성을 갖추는 것은 전혀 격이 다른 일이다. 그럼에도 나는 좋아하면 응당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영화 관련 식견이 풍부하지는 못하다. 때로는 평범한 관객에 불과하다는 점이 위축될 수도 있는데 그 점이 오히려 나를 자유롭게 한다. 전문성을 위해 피땀을 뿌렸던 문학과 달리 영화는 온전하게 나의 즐거움을 위해서였다고 고백할 정도로 여유롭다. 영화가 나를 흡입시킨다는 고백에는 억눌려왔던 욕망의 해방의지가 있다. 그동안 일탈하고 싶었던 ‘또 다른 나’가 튀어나오는 것이다. 이제 비로소 나를 만날 다양한 준비가 되어 있다. 나는 실패자, 주변 인물 혹은 조연들에게 더 많은 공감과 동일시를 이루곤 하니 그게 ‘나만의 영화 읽기’ 노하우다. 니체의 ‘운명에 대한 사랑’은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라는 뜻이 아니라 그 반대 의지를 키울 수 있는 발판을 굳건히 하라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그래서 운명에 맞서 싸우다 장렬한 최후를 맞는 고대 영웅도 사랑하지만, 그보다는 운명을 사랑하는 사람(근현대인)을 더 사랑한다. 재주도 없고 평범한 사람으로서 품격 있게 살아가는 유일한 방식이 운명에 대한 사랑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또 하나, 나는 여성으로 태어난 것이 다행스럽다. 여성으로 느꼈던 불평등과 차별을 통하여 인간 평등과 해방 의지를 키우는 힘이 되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에는 영화관에 갈 형편이 되지 않았다. 다만 최초의 영화에 대한 기억은 생생하다. 중학교 3학년 겨울에 혼자서 늦게까지 TV 채널을 돌리다가 영화 『드레퓌스』를 만났다. ‘나는 고발한다’라는 문장과 빅토르 위고에 깊이 감명받았던 기억은 지금도 설렘으로 두근두근 남아 있다. 그때 영상의 막강한 힘을 처음 체험하였다. 하지만 여고 시절에 단체 관람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닥터 지바고』를 맨숭맨숭하게 보았을 뿐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없었다. 다만 마지막 장면, 지바고가 자신의 딸을 찾아서 만나는 장면만큼은 인상적이었다. 노동자가 된 소냐와 그 남자친구의 모습이 좋았던 것 같다. 최근 고전영화를 찾아보면서 고교 시절 생존의 절박함(?)이 놓쳤던 감동의 여유로움을 뒤늦게 음미한다. 영화관이나 영상문화에 낯설었고 서구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을 것이다. 고교 시절, 내 친구들은 성냥공장으로, 또는 방직공장이나 버스 안내양으로, 공단의 기숙사로 거처를 옮겼다. 나만 학교를 다닐 수 있었던 하루하루가 가시방석 같았기에 열심히 뭔가 보답해야 하는 데 방법을 알 수가 없어서 자학적인 심정으로 살았던 것 같다. 좋은 영화라고 모두에게 감동과 좋은 영향력을 발휘하는 건 아니다. 문화 콘텐츠에 대한 기반이나 접근성이 마련되어 있지 않으면 고교 시절의 나처럼 ‘보아도 보이지 않는 법’이다. 모든 인연은 우연과 필연의 만남이니, 내가 영화를 만난 것은 의도적인 노력도 있었다. 글을 쓸 때, 영화를 인용하면 글이 편하고 쉬웠다. 학생들과 영화 이야기를 나누면 반짝거리는 눈빛이 좋았다. 사람들은 나보다 영화를 많이 보는 것 같았다. 그 사람들에게 듣는 영화 이야기는 서로의 거리를 정확히 알려 주었지만, 이야기가 오가는 지점의 경계에서 나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기도 했다. 함께 보고 싶은 영화가 좋다 나는 음식 자체의 퀼리티가 함께 먹는 사람이나, 장소에 따라서 변한다고 본다. 정작 중요한 건 객관적인 맛의 정의가 아니다. 입안으로 감도는 향과 촉감 그리고 잘게 씹으며 느끼는 식도락의 즐거움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뱃속에서의 섞임과 발효를 통해서 흡수와 동화와 이화작용이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배설의 순환이 완성되기까지 어찌 음식 자체만으로 그 퀼리티를 말할 수 있겠는가. 하여, 영화나 책을 읽으면서 퀼리티를 위한 다양한 만남을 기획하고 싶었고 그래야 한다고 여겼다. 나는 인생의 목표가 지나치게 뚜렷했다. 유년의 최대목표는 가족이었다. 가난하지 않게 살고 싶었다. 소박하게 표현하면 의식주가 남루하지 않게 살고 싶었던 게 목표의 전부였다. 부모님은 사랑이라는 말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지만 목숨 걸고 자식 교육에 매진하였고 ‘평범함’ 그 이상의 선망을 알지 못할 만큼 소박했다. 성장하면서 인생의 목표가 확장되었다. 고등학교 때는 문학에 빠졌고 대학교 때는 민중과 여성학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렸다. 그래도 역시 가족에 대한 책임감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상대적 빈곤의 깨달음 그리고 나의 정체성에 거대담론이 끼어들었기 때문에 인생의 목표는 흔들렸다. 나의 결단이 헛소리에 불과했음을 깨달으면서 나는 ‘가족의 힘’으로 살아왔다는 역설을 온몸으로 긍정했다. 요즘 내 인생의 목표는 최대한 친환경적으로 하루에 세 끼를 찾아 먹는 것이며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산을 찾는 일이다. ‘말 다이어트’를 하자고 하루에 세 번 이상 다짐하기도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는 지혜가 조금이나마 나를 숨통이 트이게 한다. 나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좋아한다. 작은 방 두 칸에 11명이 살았던 유년 시절의 복작거리는 분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무엇이든 좋았다.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혼자 다니고, 먹고, 결정하는 걸 좋아했다. 혼밥은 일상이자 즐거움이었다. 그런 내가 유독 함께하려고 애쓰는 것이 있다면 그게 바로 여행과 영화다. 여러 이유로 동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나에게 영화는 만남의 광장이다. 함께할 수 있는 가장 경제적이고 풍요로운 콘텐츠가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선정은 책 모임에서와 같이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나는 뒤로 물러선다. 보고 싶은 영화는 반드시 혼자라도 보고야 말기 때문에 일단 상대방(모임)이 원하는 영화를 함께 보는 것이 더 좋은 것이다. 한 번으로 만족할 영화도 있지만 대부분은 두세 번 만나야 폭넓은 감상이 가능하다.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노고를 생각하면 수십 번 만나야 깊은 이해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시를 외울 만큼 읽어야 그 맛을 음미할 수 있듯이 말이다. 영화는 시처럼 압축적이면서 ‘비유 상징’의 장치가 있다는 점에서 쌍생아처럼 닮았다. 이미지의 메타포를 이해하려면 대사뿐 아니라 음악과 영상기법까지 읽을 줄 알아야 한다는데, 나는 아직 멀었다. 나는 영화를 ‘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 놀이를 소비에서 벗어나 생산의 콘텐츠로 만들고 싶은 역발상이 크다. 대부분의 현대인처럼 나 또한 늘 시간에 쫓기며 산다. 어렸을 때부터 유독 잠이 많았기에 깨어있는 시간에는 서둘러서 일 분 일 초를 아껴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의 효율성에 유독 민감하다. 내가 생각할 때, 영화는 가장 경제적인 문화 콘텐츠이다. 2-3시간 영화에 온몸을 맡기는 순간 내 안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만남과 다양한 감정의 흔들림을 나는 고해苦海의 엑기스를 복용하는 것으로 여긴다. 그 속에서 유독 이끌림이 강한 영화는 특별한 인연이 된다. 세상과 소통하는 또 하나의 거울로서 영화에 대한 나의 사랑은 나날이 깊어간다. 일단, 남들이 좋다는 영화를 선택한다 어느 날 예고 없이 확 안겨 오는 영화를 나는 좋아한다. 이럴 때면 그저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영화에 매달려 쩔쩔맨다. 더 좋아하는 자가 ‘을’이 되는 것처럼 영화 앞에서 나는 ‘영원한 을’이다. 언젠가 『업』(2009)을 볼 때도 그랬다. 죽음을 앞둔 노년의 남자가 모험을 떠나는 장면들이 눈물겹게 아름다웠지만 현실과 영화의 세계에 가로놓인 틈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나는 그 틈을 메꾸기 위해 끝없이 그 남자에게 편지를 쓰고 단상 메모를 하고 지인들과 뜬금없이 ‘영화로 수다 떨기’를 반복한다. 이 글은 그러한 시간들이 이루어낸 결과물이다. 아놀드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마지막 장은 영상시대를 예견한다. 예언은 적중했다. 우리는 불가사리처럼 모든 문화와 예술을 집어삼키는 영상시대에 익숙해진 지 오래다. 그나마 내가 변화하는 세상에 희망을 품는 이유는 적절한 무지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인류의 종말에 N분의 1만 책임질 것이며 절대로 완전체가 될 수 없는 역사와 사회 인류가 지닌 불완전함과 불합리와 모순에 절망 대신 수용을 작정한 바 있다. 나는 N분의 1로서 당당하게 세상과 만나면서 죽을 때까지 나를 숙성시키고 싶다. 나의 관심은 세상과 인류에 대한 것보다 나의 변화와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나 역시 ‘생로병사’에서 그다지 자유롭지 않다. 모든 인간이 그렇다고 보기 때문에 그럭저럭 견디고 있을 뿐이다. 그 안에서 절망과 비애에 침몰하지 않고 따스함과 생기(生起)를 품어내고 싶다. 어쩔 수 없는 천성이기도 하다. 다행이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는 오래도록 잔상이 남아서 나에게 공부나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는 것들이다. 부드럽게 위로하는 영화도 좋고,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작품처럼 불편한 영화도 마찬가지로 좋아한다. 영화도 사람처럼 궁합이 맞아야 하고 좋은 인연이 있는가 하면 악연도 있다. 몸이 힘들 때 무리해서 영화를 억지로 보는 건 악연이 될 수도 있다. 영화관에서 꾸벅꾸벅 존 적이 몇 번 있는데 절대 영화 때문이 아니다. 내 몸이 영화관이라는 공간에 적응하지 못할 만큼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내가 영화관을 찾는 시간은 기진맥진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가 대부분이니 아이러니하다. 나는 하염없이 눈물이 흑흑 흐르는 영화를 좋아한다. 아니면 무시무시한 공포와 스릴러도 좋아하는 히치콕의 광팬이다. 흑백영화 『사이코』가 나를 사로잡으면서 내장에 화인火印을 새겨 넣었다. 예술영화나 작품상을 받은 영화는 꼭 챙겨본다. 한마디로 말해 순수한 취향 없이 마구잡이 스타일이다. 그런데 지인들은 나보다 예민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어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내 눈물은 거의 말라붙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눈물을 닦아주어야 하는 사람과 함께 보는 불편함을 감수한다. 피가 흐르는 장면이 스치기만 해도 악몽을 꾸는 남편, 나의 여동생은 무서운 영화를 볼 때마다 극장에서 소리를 내기도 한다. 함께, 그리고 다르게-나만의 영화 읽기 오랜 세월 공부하는 시간을 부끄러워하며 살아야 했다. 어렸을 적 할머니는 책을 들고 있으면 지청구를 했었고 운동권 선후배들이 현장에 몸을 투신할 때는 공부 자체가 신선놀음 같아서 죄책감을 동반했다. 공부하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 내가 줄일 수 있는 시간은 잠이나 먹는 시간만이 아니었다. 가족과의 대화나 직장에서의 원만한 인간관계도 최소화하면서 가슴 한구석은 죄인처럼 외로웠다. 책을 끼고 사는 것조차 사치라고 여겼던 내가 어떻게 영화와 가까워질 수 있었던 건지 의아스럽기도 하다. 전교조나 여성단체에서 추진했던 영화 관람이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수시로 영화관을 출입하는 나에게 고운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공부하는 것까지는 봐주던 남편까지 영화는 늦바람이라도 난 것처럼 외면했다. 그래서 핑계를 만들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놀러 다니는 것이 아니라 모임에 참석하는 거라고. ‘영화로 수다 떨기’를 하며 만난 모든 사람들이 스승의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평생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살아왔지만, 영화에 있어서는 다르다. 고백하건대, 나는 영화에 있어서 왕초보자이다. 그러함에도 당당할 수 있는 건 영화에 대한 나만의 사랑이 지극정성이라는 점이다. 초보자만이 지닌 풋풋함이 있다고 남몰래 미소 지을 수 있는 것이다. 첫사랑은 왕초보자의 사랑이기에 지극한 것이 아니가. 62편의 글에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 가족과 함께 보고 싶은 영화, 다시 보고 싶은 영화, 모두 담았다.* 글쓰기의 공간을 마련해준 <토지문화관>과 〈연희문학창작촌〉 그리고 담양의 <글을 낳는집>에서의 시간과 진도의 <시에그린> 등 아름다운 배경에서의 깊은 인연에 감사드립니다. * 『영화는 여행이다』(삶창, 2018)의 프롤로그 내용 일부를 가져왔음을 밝힙니다.

영화는 여행이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는 오래도록 잔상이 남아서 나에게 공부나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는 것들이다. 나를 부드럽게 어루만져주거나 위로하는 영화도 좋다. 때로는 나를 불편하게 하는 영화도 마 찬가지로 좋아한다. 영화도 사람처럼 궁합이 맞아야 하고 좋은 인연이 있는가 하면 악연도 있다. 몸이 힘들 때 무리해서 보는 영화나, 내 취향이 아닌데 억지로 보는 건 악연이 될 수도 있다. 영화관에서 꾸벅꾸벅 존 적이 몇 번 있는데 절대 영화 때문이 아니다. 내 몸이 영화관이라는 공간에 적응하지 못 할만치 힘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영화관을 찾는 시간은 기진맥진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가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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