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중관사상은 용수의 대표 저작인 ≪중론≫을 제외하고는 논의할 수 없어 산스끄리뜨어와 한역, 영역 등이 우리말로 옮겨진 적은 있으나 티벳역을 옮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것은 앞으로 옮길 ≪중론≫ 티벳 주석서들을 위한 사전 포석에 해당한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1999년 이후 이 길로 들어선 역자가 중관사상을 공부한 시간과 겹친다. 역자의 스승이신 빠탁(S. K. Pathak) 교수님께서는 “우빠니샤드부터 읽어라!”며 불교뿐만 아니라 인도 사상사 전체를 조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 올해 아흔다섯의 나이에도 전법을 이어가시는 사부님을 생각할 때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느낄 뿐이다.
샨띠니께딴의 ‘타고르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시절 세계 각국의 다양한 중관학자들과 교류할 기회 또한 있었다. 그 가운데 한 명이 이 책의 추천사를 써준 바라나시 인근의 초전법륜지인 녹야원으로 널리 알려진 사르나스에 위치한 고등 티벳 연구소(CIHTS, Central Institute of Higher Tibetan Studies)의 철학과 학과장인 따쉬 체링(Tashi Tsering) 교수였다. 예전처럼 중관사상에 대한 각자의 견해를 논의하기에는 힘든 처지가 되었으나 월칭의 ≪입중론(入中論)≫을 해석하는 데 빠질 수 없는 고람빠(go rams pa)의 주석서인 ≪Gorampa’s Removal of Wrong Views≫의 영역자인 그의 기대처럼 한국에서도 중관사상이 선양될 수 있기를 빌어본다.
지난 2011년 대구에서 열린 ‘고려대장경 천년학회’에 참석했을 때 만난 김성철 선생님께 ≪중론(中論)≫을 원래의 운문 형태, 시가 형태의 게송을 원래 그 형태로 옮기겠다고 말씀을 드린 적이 있다. 한국의 중관사상은 ‘김성철 선생님이 ≪중론≫을 옮기기 전과 후로 나뉜다’라고 할 만큼 한 획을 그은 선생님께서 이 책의 추천사를 써주신 점에 대해서 이 자리를 빌려 무한 감사를 드린다.
실상사 도법 스님을 찾은 혜봉 선생이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다 ‘중관학자 신상환’이라는 이에 대한 말이 나왔다고 한다. 그 옆에 앉아 있던 실상사 주지인 승목 스님이 ‘얼굴 한번 보자!’라고 바로 전화를 걸어왔던 게 이 법석의 첫 단추였다. ‘도법 스님’이란 이름을 모를 리 없었으나 항상 반대편에 서 있었던 듯싶다. 종단 개혁 때 강원을 승가대학으로 바꾸면 안 된다고 주장한 지운 스님 편에 서 있었고, ‘담을 없애면 담 밖의 것도 내 것’이라며 공동체 운동에 비판적인 종림 스님 편에 서 있었다. 그러다 보니 도법 스님과 직접 만나 말 한번 나눌 기회도 없었다. 스님과 법담을 계속 나눌 동력을 제공해준 건 실상사를 출입하던 중관학당의 스텝이었다. 스님이 중도를 강조하는 만큼, 그것이 과연 얼마만큼 여법한 것인지를 가늠해보고자 여러 차례 법담을 나누었다.
옮긴이 서문에서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중관사상은 용수의 대표 저작인 ≪중론≫을 제외하고는 논의할 수 없어 산스끄리뜨어와 한역, 영역 등이 우리말로 옮겨진 적은 있으나 티벳역을 옮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것은 앞으로 옮길 ≪중론≫ 티벳 주석서들을 위한 사전 포석에 해당한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1999년 이후 이 길로 들어선 역자가 중관사상을 공부한 시간과 겹친다. 역자의 스승이신 빠탁(S. K. Pathak) 교수님께서는 “우빠니샤드부터 읽어라!”며 불교뿐만 아니라 인도 사상사 전체를 조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 올해 아흔다섯의 나이에도 전법을 이어가시는 사부님을 생각할 때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느낄 뿐이다.
샨띠니께딴의 ‘타고르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시절 세계 각국의 다양한 중관학자들과 교류할 기회 또한 있었다. 그 가운데 한 명이 이 책의 추천사를 써준 바라나시 인근의 초전법륜지인 녹야원으로 널리 알려진 사르나스에 위치한 고등 티벳 연구소(CIHTS, Central Institute of Higher Tibetan Studies)의 철학과 학과장인 따쉬 체링(Tashi Tsering) 교수였다. 예전처럼 중관사상에 대한 각자의 견해를 논의하기에는 힘든 처지가 되었으나 월칭의 ≪입중론(入中論)≫을 해석하는 데 빠질 수 없는 고람빠(go rams pa)의 주석서인 ≪Gorampa’s Removal of Wrong Views≫의 영역자인 그의 기대처럼 한국에서도 중관사상이 선양될 수 있기를 빌어본다.
지난 2011년 대구에서 열린 ‘고려대장경 천년학회’에 참석했을 때 만난 김성철 선생님께 ≪중론(中論)≫을 원래의 운문 형태, 시가 형태의 게송을 원래 그 형태로 옮기겠다고 말씀을 드린 적이 있다. 한국의 중관사상은 ‘김성철 선생님이 ≪중론≫을 옮기기 전과 후로 나뉜다’라고 할 만큼 한 획을 그은 선생님께서 이 책의 추천사를 써주신 점에 대해서 이 자리를 빌려 무한 감사를 드린다.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중관사상은 용수의 대표 저작인 ≪중론≫을 제외하고는 논의할 수 없어 산스끄리뜨어와 한역, 영역 등이 우리말로 옮겨진 적은 있으나 티벳역을 옮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것은 앞으로 옮길 ≪중론≫ 티벳 주석서들을 위한 사전 포석에 해당한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1999년 이후 이 길로 들어선 역자가 중관사상을 공부한 시간과 겹친다. 역자의 스승이신 빠탁(S. K. Pathak) 교수님께서는 “우빠니샤드부터 읽어라!”며 불교뿐만 아니라 인도 사상사 전체를 조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 올해 아흔다섯의 나이에도 전법을 이어가시는 사부님을 생각할 때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느낄 뿐이다.
샨띠니께딴의 ‘타고르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시절 세계 각국의 다양한 중관학자들과 교류할 기회 또한 있었다. 그 가운데 한 명이 이 책의 추천사를 써준 바라나시 인근의 초전법륜지인 녹야원으로 널리 알려진 사르나스에 위치한 고등 티벳 연구소(CIHTS, Central Institute of Higher Tibetan Studies)의 철학과 학과장인 따쉬 체링(Tashi Tsering) 교수였다. 예전처럼 중관사상에 대한 각자의 견해를 논의하기에는 힘든 처지가 되었으나 월칭의 ≪입중론(入中論)≫을 해석하는 데 빠질 수 없는 고람빠(go rams pa)의 주석서인 ≪Gorampa’s Removal of Wrong Views≫의 영역자인 그의 기대처럼 한국에서도 중관사상이 선양될 수 있기를 빌어본다.
지난 2011년 대구에서 열린 ‘고려대장경 천년학회’에 참석했을 때 만난 김성철 선생님께 ≪중론(中論)≫을 원래의 운문 형태, 시가 형태의 게송을 원래 그 형태로 옮기겠다고 말씀을 드린 적이 있다. 한국의 중관사상은 ‘김성철 선생님이 ≪중론≫을 옮기기 전과 후로 나뉜다’라고 할 만큼 한 획을 그은 선생님께서 이 책의 추천사를 써주신 점에 대해서 이 자리를 빌려 무한 감사를 드린다.
법회 때마다 한글『반야심경』을 독송해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그렇지만 이 경이 ‘지혜의 정수를 담은 경’임을 알고 일체 무자성을 강조하는 삶을 살면 붓다의 가르침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삶의 변화를 위한 불교, 나와 남이 더불어 함께 사는 삶을 강조하는 것이 대승불교이고, 그 출발을 연 것이 반야부 경론이니, 그 핵심을 담고 있는 이 책의 내용을 숙지하여 삶의 이정표로 삼기를 바란다.
“색즉시공(色卽是空)”
―인식 대상은 연기적인 것이다.
한마디로 반야심경은 ‘지혜의 정수를 담은 경’이라는 뜻이다. ‘쌓고 부수는 작업’인 불교 교학의 특징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으면, 즉 오온ㆍ십팔계ㆍ사성제ㆍ십이연기 등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그렇지 않다!’라는 데까지 나가지 않으면, ‘괴로움의 바다’를 건너 피안으로 갈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경이다. 스스로 ‘부처님의 자식’인 ‘불자(佛子)’라고 여기는 이들에게는 이 책을 통해 불교적으로 생각하고 불교적으로 살지 않는 게 문제라는 점만 자각해도 의미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또한 ‘창문 밖’에서 불교를 들여다보는 이들도 불교의 바탕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중관사상은 용수의 대표 저작인 ≪중론≫을 제외하고는 논의할 수 없어 산스끄리뜨어와 한역, 영역 등이 우리말로 옮겨진 적은 있으나 티벳역을 옮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것은 앞으로 옮길 ≪중론≫ 티벳 주석서들을 위한 사전 포석에 해당한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1999년 이후 이 길로 들어선 역자가 중관사상을 공부한 시간과 겹친다. 역자의 스승이신 빠탁(S. K. Pathak) 교수님께서는 “우빠니샤드부터 읽어라!”며 불교뿐만 아니라 인도 사상사 전체를 조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 올해 아흔다섯의 나이에도 전법을 이어가시는 사부님을 생각할 때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느낄 뿐이다.
샨띠니께딴의 ‘타고르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시절 세계 각국의 다양한 중관학자들과 교류할 기회 또한 있었다. 그 가운데 한 명이 이 책의 추천사를 써준 바라나시 인근의 초전법륜지인 녹야원으로 널리 알려진 사르나스에 위치한 고등 티벳 연구소(CIHTS, Central Institute of Higher Tibetan Studies)의 철학과 학과장인 따쉬 체링(Tashi Tsering) 교수였다. 예전처럼 중관사상에 대한 각자의 견해를 논의하기에는 힘든 처지가 되었으나 월칭의 ≪입중론(入中論)≫을 해석하는 데 빠질 수 없는 고람빠(go rams pa)의 주석서인 ≪Gorampa’s Removal of Wrong Views≫의 영역자인 그의 기대처럼 한국에서도 중관사상이 선양될 수 있기를 빌어본다.
지난 2011년 대구에서 열린 ‘고려대장경 천년학회’에 참석했을 때 만난 김성철 선생님께 ≪중론(中論)≫을 원래의 운문 형태, 시가 형태의 게송을 원래 그 형태로 옮기겠다고 말씀을 드린 적이 있다. 한국의 중관사상은 ‘김성철 선생님이 ≪중론≫을 옮기기 전과 후로 나뉜다’라고 할 만큼 한 획을 그은 선생님께서 이 책의 추천사를 써주신 점에 대해서 이 자리를 빌려 무한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