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하고 싶었지만 고독하지 못했던 시간들.
애초에 고독은 내 삶에 들어올 자리가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5년간의 에세이 한 줌.
뿌연 먼지 속에 고독은 저 혼자 눈이 부시네.
외로운 사람들을 쉽게 알아본다는 것.
아마도 그게 내 장기가 아닐까.
가을이 짧아져서 걱정이다.
예전에는 시를 쓰는 것이 무척 재미있었다. 쓰고 또 쓰고 싶었다. 요즘에는 딱히 그렇지는 않다. 더 재미있는 일이 생긴 것은 아니다. 시와 나 사이를 보호하는 데 실패했다고 해야 하나. 그렇다고 해도 별로 두렵지는 않다. 여전히 시를 쓰면서 나는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별 볼 일 없는 내가 무용한 것에 매달리며 보내는 이 시간들에 큰 의미를 둘 생각이 없고, 그렇다고 절망할 이유도 없다.
별 이유 없이 자다가도 넘어지는 나는 거칠고 딱딱한 책 정도에 비유하면 적당하지만 나는 나 자신을 요약정리 할 수가 없다. 그저 마음속에 나무 한그루를 그려본다. 숲이라면 좋겠지만 그렇게 현명했다면 일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가끔은 먼 곳의 친구들에게 편지를 쓴다. 내 것이 아닌 것들을 공들여 호흡해보는 어리석음 같은 게 거기에는 있다.
편집부에서 시집 제목으로 ‘검고 매끄러운 가능성’을 뽑아주었는데 무척 마음에 들었다. 작품을 묶을 당시에 내가생각했던 제목은 ‘뜨거운 입김으로 구성된 미래’였다. 쉼표와 마침표를 조정한 뒤에 두 제목이 함께 시집을 호흡하다가 출간되었다.
헌 옷 가게에서 스팽글이 주렁주렁 달린 옷을 하나 샀는데 그걸 입고 갈 데가 없다. 그냥 걸어두고 가끔 쳐다본다. 이 시집도 그렇게 될 것 같다. 나쁘지 않다. 아니, 감사한 일이다. 죽지 않고 서서히 늙어가는 일. 우연이라고 여기면 너무 냉담한 것 같고, 기적이라고 호들갑을 떨면 우스울 것 같다. 그 언저리에서 아침에는 명상을, 낮에는 독서를, 저녁에는 산책을. 순서는 바뀌어도 좋다.
2021년 여름
이근화
시를 쓰는 것도, 사랑하며 사는 것도 모두 어렵지만 사랑하기 위해 시를 씁니다. 시를 쓰면 조금 더 사랑할 수 있습니다. 더 오래 사랑할 수 있습니다. 쓰지 않는다면 지나칠 많은 것들이 내게 잠시 머물기 때문입니다. (…)
가족과 이웃들, 친구들에게 ‘괜찮아’라고 자주 말해 줍시다. 그 말은 ‘다음’을 만들어 냅니다. 함께라면 조금 더 잘 버틸 수가 있으니 손을 잡고 걸어가 봅시다. 약간의 위로와 다정함이라면 못할 게 뭐야, 생각해 봅니다.
모든 일이 생각한 대로 이루어지지는 않겠지만 생각조차 안 한다면 아무것도 못하겠지요. 조금 엉뚱하고 삐딱한 생각이어도 좋습니다. 상상은 다른 나를 만들고, 무엇이라도 될 수 있어요.
믿음이 이끌어 가는 삶, 그게 바로 저와 여러분의 미래가 되기를 바라며.
십여 년 전부터 썼던 산문들을 엮어 낸다. 들쭉날쭉 보기 싫다. 무용한 짓인 것도 같다. 나중에라도 혹시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자책하게 되는 순간이 오면 산문집이 날 보며 씩 웃어줄 것이다. 헛짓이라도 하긴 했어. 못났지만 애썼어. 위로를 건네주면 좋겠다.
변두리 골목길의 소녀, 부모님 애먹이는 고집불통의 딸, 건널목 신호등 앞에서 길을 잃었던 여자, 말없고 질긴 아내, 신경질적인 엄마가 부분적으로 녹아 있으니 부끄럽고도 다행스럽다. 지금도 계속 산문을 쓰고 있다. 내가 배워야 할 것은 글을 잘 쓰는 법이 아니라 침묵하는 법인지도 모르겠다.
적은 수다를 응원해준 가족들, 동료들, 선생님들, 친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2015년 늦가을
어린 시절의 자기 자신과 만나 이야기할 수 있다면 이 세상은 훨씬 더 밝고 아름다워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여유를 갖고 동시를 함께 읽어 본다면 아이도, 어른도 다 같이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거예요.
우리 주변에는 많은 동식물과 사물들이 있어요. 사람의 말을 할 줄 모르지만 조금만 귀 기울여 듣는다면 재밌는 말들이 우수수 떨어질 거예요. 거미는 긴 다리로 이야기하고 지렁이도 온몸으로 속삭입니다.
코끼리의 커다란 발이, 홍학의 붉은 깃털이 부럽지 않나요? 해파리 스탠드를 상상해 보세요. 애벌레 속에 숨은 나비를 기다려 보세요. 인간의 생명이 그러한 것처럼 생명을 가진 것들은 모두 그 자체로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이제부터 동식물과도 다정하게 친구로 지냅시다.
투덜이 세탁기, 하루 종일 물을 뿜는 가습기, 반질반질한 거울, 여기저기 쌓여 있는 재활용품도 우리 친구들에게는 재밌는 장난감과 멋진 놀이터가 되어 줍니다. 뜨거운 감자의 얼굴에 눈코입을 달아주고 함께 웃어 봅시다.
나무에게 멋진 날개를 달아주고, 눈물에 발가락을 그려주고, 콩나물이 천장을 뚫고 지붕까지 자라난다고 상상해 봅시다. 위로의 말을 건네는 사물들을 향하여 따뜻한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여러분은 더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우리에게는 미래라는 빈 페이지가 있고, 다정하게 말 거는 과거가 있습니다.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어 그 시간들은 더 소중합니다. 사랑하는 가족들, 친구들, 이웃들과 함께 즐거운 현재를 연출해 봅시다. 지금 여기서부터 시작해 봅시다.
얼마 전 지하철에서 어떤 남녀를 보았어요. 한 남자는 계속 욕을 해댔고, 한 여자는 눈이 풀린 채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나를 향해 욕을 한 것도 아니고 나를 째려보고 있었던 것도 아닌데 나는 어쩔 줄 몰라 하며 허둥댔습니다. 서둘러 자리를 뜨려다가 지하철 문에 왼쪽 어깨를 심하게 부딪쳤습니다. 너무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났습니다. 스크린도어에는 보기 좋은 어떤 작품이 씌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걸 읽어볼 여유는 없었지요. 두 남녀는 제 그림자가 아니었을까요. 요즘 들어 아무 데나 주저앉아 펑펑 울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이 삶에 대해 시위하듯이 말입니다. (……) 수상의 기쁨보다 두고두고 갚아야 할 마음의 빚이 저를 짓누릅니다. 겁 없이 창조적으로 살아보겠노라고, 열심히 쓰겠노라고 했지만 그게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 제가, 또 앞으로 제가 뭘 해야겠습니까. 친절하게 답해주십시오. 여러분! 충분히 외롭지만 조금 더 외로워질 기회를 박탈당한 저에게, 도망가는 저를 붙잡고 다독여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눈물이 나려고 합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