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하치를 만나러 가지 않겠습니까?
도쿄 시부야 역.
오늘도 하치 동상이 있는 쪽 출구를 빠져나온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역 앞 광장으로 나옵니다.
그곳에는 <충견 하치> 동상이 서 있습니다. 하치의 동상 앞은 도쿄에서도 유명한 약속 장소입니다. 기다리던 교수님을 끝내 다시 만나지 못한 하치였지만, 충견 하치 동상은 그곳에서 사람들이 만나는 모습을 벌써 몇 십 년이나 바라보고 있습니다.
지금의 동상은 1948년 여름에 새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첫 번째 동상은 1944년 가을에 전쟁으로 인해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전쟁을 위한 금속 조달로서 사용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동상은 2대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치는 동상이 되어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데, 실제 하치의 몸은 멋진 박제가 되어서 지금도 도쿄 우에노에 있는 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하치의 박제를 만든 것은 혼다 신이라는 사람입니다. 혼다 씨는 오랫동안 국립박물관에서 박제사로서 일하면서 말이나 새, 곰, 늑대, 침팬지 등 몇 만 점이나 되는 박제를 만들었습니다.
혼다 씨는 80세지만 매우 건강하여서 하치 일을 눈을 반짝이며 말씀해 주었습니다.
“하치가 상당히 약해져 있다는 말을 듣고 시부야 역으로 보러 갔었지. 내가 아직 스물세 살 때였어. 하치, 어때, 잘 지내니? 라고 말을 건네며 선물로 가져갔던 고기를 주었지만 거의 먹을 힘조차 없었어. 겨우 움직일 정도였지. 참 가엾었어.”
그러고 나서 일주일 후 1935년 3월 8일에 하치는 죽었습니다. 다음날 국립박물관 공작실에서 완전히 달라진 하치와 대면했습니다. 혼다 씨는 마음을 담아서 하치의 박제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하치의 가죽을 소금에 절이기도 하고 점토와 석고로 몸의 형태를 뜨기도 했는데, 불기가 없는 방에서의 작업은 얼마나 춥고 괴로웠는지. 전쟁이 시작되어 쇠가 부족하다고 해서 박제 몸체를 꿰는 봉으로 쓰는 철제도 겨우 손에 넣을 수 있었어.”
완성할 때까지 삼 개월 정도가 걸렸다고 합니다. 혼다 씨는 하치가 살아 있을 때의 건강한 표정을 어떻게든 후세에 남기고 싶다는 소망을 담아 만들었습니다. 동상의 하치는 왼쪽 귀가 처져 있지만 박제의 하치는 양쪽 귀가 쫑긋 서 있습니다.
이 차이에 대해서 혼다 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한쪽 귀가 처져 있었던 건 아니니까, 나는 하치를 젊은 시절로 되돌리고 싶었던 거야.”
하치의 박제 안에 혼다 씨는 한 통의 편지를 남몰래 넣었습니다. 하치가 언제 죽었고, 누가 이 박제를 만들었는지 써 넣은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도 혼다 씨는 자신이 만든 하치의 박제를 때때로 만나러 갑니다.
“지금도 하치는 살아 있어. 움직이지 않을 뿐이지.”
혼다 씨는 내내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편, 하치의 심장, 폐 그리고 간 등은 포르말린 용액에 넣어져서 도쿄대학 농학부의 표본실에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습니다.
포르말린에 담겨 있는 하치의 심장과 폐 안에는 가늘고 길게 생긴 기생충이 가득 들어 있습니다. 하치는 이 기생충 때문에 생긴 병으로 몸이 약해져 죽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또 하치를 해부했을 때 위장 안에 부러진 대나무 꼬치가 많이 꽂혀 있었다고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이것은 꼬치구이에 쓰는 꼬치였던 것입니다. 하치가 꼬치구이를 매우 좋아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이 이야기를 쓰기 위해 여러 가지 자료를 참고로 하고 또 살아있을 때의 하치를 본 사람들에게도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하치의 기분은 저의 상상입니다. 실제 하치의 기분은 어느 누구도 알 수 없겠지요.
최근에 도쿄 우에노 국립박물관에서 오랜만에 하치를 만났습니다. 그 상냥한 눈을 계속 바라보고 있으면 하치가 시간을 뛰어넘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하는 것을 조용히 말해 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