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단순히 먹고 자고 노는 행위의 연속인가? 아니면, 어떤 정신적 과정인가? 적지 않은 세월을 살아오면서 나는 이따금 그런 회의에 잠길 때가 있다. 내가 지금까지 읽어온 책, 귀 기울여온 성현들의 말씀에 의하면 분명 무엇인가가 있는 듯한데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그것은 보이지 않는다. 도리어 보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고자 하는 욕망만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 현실에서 깨어 있고자 하는 인간은 외롭기 마련이다. 자신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벽 때문에 항상 괴로워하기 마련이다. 나아가 타인들의 시선에 비정상적인 인물로 비치기까지 한다. 이 글에서 나는 그렇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아픈 모습을 그리고자 했다. 힘겨운 업무에 눌려 지내며 인간보다 사물에 의지하게 되는 일상인의 모습을 그리려고 했다. 내게 작은 소망이 있다면, 이 글에서 독자들이 결코 ‘안식’ 따위는 찾으려고 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나는 이 글에서 독자들이 ‘평안’이라는 단어 같은 것을 떠올리기도 원치 않는다. 도리어 많은 불편과 거부감을 느끼기를 바란다. 그것이야말로 진정 깨어 있는 자의 의식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 출판소감
학생들을 가르치며 글을 써 오는 동안 나는 숱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 중에는 결코 속내를 알 수 없는 사람들도 있었고, 한두 마디로 정의 내려도 될 만큼 단순한 이들도 더러 있었다. 그들 중 누가 더 사람다운 삶을 살고 있는가 하고 때때로 생각해 보았지만 판단을 내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진정한 사람다움이란 평범한 일상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크고 작은 사건들이 끊이지 않는 요즘, 나는 앞서의 생각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그러던 중 어떤 위기의 순간에 타인을 위해 자신을 버릴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사람다운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그 이유는, 우리 모두의 내면에는 이타적인 속성이 자리하고 있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최근에 나는 극명하게 대립되는 두 가지 인간상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중 하나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자들이며, 다른 하나는 거리낌 없이 자신을 희생한 영혼들이다. 그렇다고 앞서의 사람들이 반드시 악하기 때문이라고는 믿지 않는다. 다만 그들은 자신의 내부에 선한 면이 가득하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을 뿐이라고 믿는다. 구원받지 못할 만큼 악한 영혼이라면 애초에 육체를 입고 태어나지는 못했을 테니까.
이 소설이 나오기까지 많은 도움을 주신 ‘마음세상’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아무쪼록 보잘것없는 이 글이 독자 여러분의 내면에 사람다움을 일깨울 수 있기를.
나는 이 글을 통해 인간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사랑과 질투, 자유와 속박, 순수와 욕망을 그리려고 했다. 그런 감정들은 인간의 본능 가운데서도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서, 그 대립은 이미 비극적 결말을 암시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비극을 단순하고도 명징한 문장으로 묘사함으로써 대중성과 문학성을 동시에 추구하고자 했다.
또한 표면적으로는 주인공으로 보이는 남성이 실제로는 세 여성의 성격을 부각하는 역할로 끝난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애초부터의 의도 때문이었다. 국내외의 고전들 가운데서도 그런 작법을 취하고 있는 작품들이 더러 있으므로 차용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나름대로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어느 날, 한 가족에게 운명처럼 아기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났어요. 아기 고양이는 가족의 일원이 되어 아낌없는 사랑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예기치 않게 헤어져야만 하는 상황이 닥치게 됩니다. 아기 고양이에게 온갖 정성과 사랑을 쏟아부은 가족에게는 그야말로 충격이죠.
만약 여러분에게 그런 일이 생긴다면 어떡하겠어요? 슬픔에 잠긴 채 그저 체념하고 있을 건가요? 아니면, 자신 앞에 닥친 상황을 부정하고 저항할 건가요? 그것도 아니면, 보내야 할 대상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건가요? 이 동화 속의 주인공도 어려운 선택 앞에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가장 좋은 방법을 찾으려고 고민하죠. 그 과정 속에서 아기 고양이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뭔가를 깨닫게 됩니다.